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133화 (133/137)

〈 133화 〉 chapter 131. 독한 사람들

* * *

독하다.

예진이 여태껏 지켜봐 온 이우연이라는 사람은 독한 사람이다.

한없이 착하고 다정하면서도 때로는 지독한.

“오케이, 원 모어!”

소위 얼굴 값한다는 말이, 정말 다른 의미로 얼굴 값을 하고 있었다.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만하지 않고, 악용하지 않고.

되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면 이우연이라는 존재로 인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것 같았다.

‘사랑 받을 줄 아는 사람.’

그렇다고 해서 받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고 팬들에게 사랑을 주는 법도 알았다.

사소한 행동, 사소한 말 그 모든 것이 구성되어 만들어지는 집합체.

이제는 비교하는 것마저도 지긋지긋하지만 예진이 우연을 맡기 전 맡았었던 남자 아이돌 그룹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그들보다 우연이 백 배, 천 배 낫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단 하나 우연이 그들보다 못한 게 있다면

티를 안 내는 것.

“하......”

모니터링을 하면서 한숨을 쉬는 우연을 예진은 멀리서 바라봤다.

지금은 촬영이 진행중이라 함부로 끼어들 수 없지만, 떨어져서 시선은 계속 우연에게 고정한 채로 상황을 살폈고.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지.’

일이 터져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 때문에 더 그랬었는데 요즘엔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조금씩은 티를 내기 시작했으니까.

지금까지 우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해온 예진은 우연의 기분이나 상태가 변하는 걸 귀신같이 눈치챘다.

앞에서는 아무 말 없거나 살짝 웃다가도 순식간에 무표정한 얼굴로 편하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

‘약간 이중인격으로 보이긴 했지만.’

그 모든 게 다 우연의 성격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한테 피해를 안 끼치려고 하는 성격. 그 덕에 자기를 채찍질하는 거 같았고.

“예전이면 초콜릿이라도 갖다 줬을 텐데.....”

지금은 먹는 거에 굉장히 예민했기 때문에 초콜릿을 줄 수 없어 주머니에 넣은 손을 그대로 뺐다.

아까 모니터링하면서 한숨 쉰 것도 그렇고.

‘힘든가 보네.’

오늘만 해도 에이전시로부터 갑작스럽게 잡힌 피팅이 한두 개가 아니라 예상에 없던 스케줄로 인해 빡세게 굴러갔다.

끝나면 바로 쉬게 해줘야지.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 감사합니다.”

관계자가 혼자 서 있던 예진에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커피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웃으면서 다가온 관계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고.

“매니저는 언제부터 했어요?”

“올해로 3년이에요.”

“흐음...... 굉장히 오래했네요. 촬영장까지 따라다니면서 케어하려면 힘들 텐데.”

퇴사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관계자를 보면서 예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대화가 안 익숙하기도 하고.’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에 바짝 긴장했다가 첫 마디를 뗀 뒤로부터 긴장이 싹 가셨다.

“모델이 착해서 별로 안 힘들어요. 아직 나이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케어가 필요하니까......”

“그렇군요.”

예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그래도 매니저 일은 힘들다며 힘내라고 응원의 말을 남겨준 뒤 자리를 떴다.

그러자 다시 또 혼자 남아 머릿속에는 다른 잡생각이 들었는데.

‘3년이라......’

확실히 오래하긴 했다. 애초에 3년 동안 한 명의 매니저를 맡을 줄은 몰랐으니까.

‘우연이도 이제 내년이면 성인인데.’

지금껏 예진이 안전을 명목으로 우연의 해외 활동까지 매니징을 했다지만 그가 성인이 되면 달라질 가능성이 컸다.

본디 해외 에이전시들은 매니저가 따로 없고 ‘부커’라는 존재가 있었으며

비행기나 호텔 같은 건 미리 잡아주고 일정을 잡는 게 부커의 일이지 나머지 이동이나 일은 모델 혼자 해야 했으니까.

우연은 동양인 남자이기도 했고, 어린 나이를 고려해 지금껏 모든 이동에 예진이 동행한 것이었다.

솔직히 매니저 일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누나, 저 물 좀 줄래요?”

“여기. 이제 진짜 마지막이니까 조금만 더 힘내.”

“고마워요.”

힘든 와중에 고맙다는 말을 하는 우연을, 어떻게 안 좋아하겠어.

‘알면 알수록 진국이라.’

매니저 일을 그만두고 싶다기보다는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유럽권은 남자 혼자 다니면 위험하고......’

눈에 띄는 위협은 지금까지 없었다지만 우연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국적을 분하고 여전하니까.

이래서 예쁜 남자는 만국 공통이었다.

지금도 당장 타국의 촬영장인 이곳에서도 대다수의 스탭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지 않는가.

‘그만큼 타고났다는 것도.’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이기에.

뭐, 이런 문제들은 아마 에이전시에서 차차 결정할 문제였기에 예진이 고민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하지만 자칫해서 정말 이번 해외 패션위크를 마지막으로, 우연과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최선을 다해야지.”

촬영이 얼추 끝나는 듯 마지막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우연을 보면서 예진이 걸음을 옮겼다.

한 손에는 계속 들고 있었던 우연의 가방을 들고, 까지 않은 생수도 하나 챙긴 채.

“수고했어, 수고했어.”

“...... 힘들어요.”

누가 봐도 지친 상태의 우연이 걸음을 옮기면서 예진은 그의 옆으로 가 걸음을 맞췄다.

예진은 우연의 지독한 팬이었다.

****

아직까지 쓰러진 적은 없지만.

당장에라도 쓰러지라고 한다면 쓰러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해야 하나.

‘신경도 많이 곤두서있고.’

누가 날 스치기만 해도 반응하게 되는 게 여간 예민한 게 아니었다.

끊임없이 이어졌었던 화보 촬영에 늪에서 벗어나니, 곧장 한시의 긴장도 늦출 수 없는 패션위크 주간이 당장 눈앞으로 다가왔으니까.

밤중에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오면 오는 대로 계속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패션위크 중 제일 처음으로 열리는 뉴욕 패션위크를 위해서, 뉴욕행 비행기에 올라탄다는 사실도 당일에 통보받았고.

그렇게 뉴욕에 도착하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 앞으로 남은 건 런웨이에 설 일만 남았으니까.

나는 숙소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었다.

“아웃스타그램 안 올린지도 꽤 됐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엄청 활발하게 업로드 했었던 거 같은데.

시즌이 시작되자 바쁘긴 오지게 바빴다. SNS에 올린 마지막 게시글이 2주 전이고. 그전에 올린 게시글은 또 일주일 전이었다.

‘신경을 안 쓴 것도 있지만.’

중간에 한 번 예진이 아웃스타그램 업로드를 한 번 하라고 말할 법도 한데, 그런 말도 없었다.

그러면서 SNS 대신 가장 많이 들어갔던 건 다름 아닌 너튜브였고.

스트레스도 풀 겸 노래를 듣거나 재밌는 영상을 보면서 자투리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하나 올려야지.

“근데 올릴 사진이 있나?”

생존 신고라도 할 겸 뭐라도 하나 게시물을 올리려는데 마땅히 생각나는 사진이 없었다.

하지만 갤러리에 들어가자 은근히 많은 사진 양에 되려 뭘 올려야 할지 고민해야 했고.

‘거의 다 예진이 찍어준 사진이네.’

역시 믿고 보는 사진이었다. 아무래도 매니저 그만둔다고 하면 포토그래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해야겠어.

개중에서 내가 일하고 있는 모습이 잘 나온 사진으로 몇 장 골라내서 짤막한 글과 함께 게시물을 올렸고.

‘그새 팔로워 수가 더 는 거 같은데?’

올라가는 게 없어서 한동안 정체기라고 봐도 무방할 아웃스타그램이, 팔로워 수는 그대로이긴커녕 더 는 것 같았다.

‘정확히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 올라간 게시물의 댓글들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본어가 보였다.

“일본어?”

갑작스러운 일본어 댓글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프로필 사진으로 내 사진을 달고 있는 계정을 눌러보니 일본에서 촬영했었던 화보 사진이었다.

‘아. 일본 잡지 나왔었지.’

몇 개는 번역기를 돌려서 무슨 말인지 알아냈지만, 귀찮아서 그럴 필요가 없는 한국어 댓글들을 위주로 읽고 있었다.

캐톡ㅡ

[송이: 뭐하고 있어?]

“어.”

그렇게 아웃스타그램 댓글을 읽고 있던 와중, 알림 소리와 함께 캐톡 미리보기가 화면에 떴고.

‘송이...... 오랜만이네.’

송이와도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2주 전이었다. 시차가 다르기도 하고 송이 또한 활동 중이기에 바로바로 연락을 주고받는 건 힘든 일이었으니까.

“송이 하니까 서아도 괜히 생각나네.”

완전히 끊겨 버린 연락.

사실 내가 먼저 할까도 고민해봤지만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뭐라고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다시 머리가 아파 오는 것 같아 일단 이 문제는 제쳐둬야겠다. 캐톡에 들어가 송이에게 답장을 보내자 바로 칼답이 돌아왔는데.

자기는 이제 일 시작이라면서 우는소리를 내길래

: 지금 일하는 사람이 어딨어?

나는 캐톡으로 열심히 송이를 놀렸다.

아, 스트레스 풀리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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