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chapter 133. 당사자만 괜찮은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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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시아 에이전시에서 우연의 담당 팀이 따로 꾸려진 뒤.
채용 공고를 통해서 너튜브 운영을 위한 영상 제작 직원이 두 명 들어왔다. 한 명은 들어오기 전부터 우연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한 명은 잘 몰랐고.
연의 담당 팀인 만큼 처음에는 차이가 눈에 보였으나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다.
“진짜 행동반경이 침대 위가 전부네요.”
“왜 모범생이라고 했는지...... 알 거 같아요.”
엄청난 분량의 영상이 도착하자 그들은 그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했고.
우연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직원은, 우연의 일상이 담겨 있는 영상들을 보면서 하나둘씩 그에 대해 알아갔다.
어떻게 일을 하는지, 성격과 말투는 어떤지, 행동은 어떻고 혼자 있을 때는 무엇을 하는지.
전부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촬영을 담당했었던 해외에 있는 에이전시는 영상을 건네주면서 우연은 흠잡을 곳 없는 모범생이라고 말을 덧붙였었는데.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거 같네.’
이 긴 영상의 공통점을 하나 찾으라면 우연이 숙소에 있을 때 침대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분명 숙소는 넓고 쇼파와 TV, 의자와 책상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하거나 노트북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종이를 넘기면서 패션쇼에 대한 준비와 공부를 할 때도 전부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덕분에 다른 캠들은 휑하네.”
영상별로 나누어져 있는 섹션 중에서 하나는 아주 간간이 우연의 모습이 비치는 다른 각도에 설치된 캠의 영상이었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모습이 안 보인 건 우연이 아직 한국 나이로 성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혹시 모르니까.’
만약 그런 게 영상에 담겨 있다고 해도 무조건 편집이었다. 그 외에도 편집 매뉴얼로 전달받은 것들이 꽤 있어서.
영상을 전부 한 번씩 확인한 두 직원이 본격적인 컷 편집에 들어갔다.
‘어차피 노래가 깔릴 거라서 소리는 하나도 신경 안 써도 되니까.’
장면 단위로 괜찮은 것들을 건져내면서 회의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편집할 것인지 회의했다.
“맛있겠다.”
“삼겹살에 된장찌개 먹고 싶다.”
“이젠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어요.”
“아까부터 계속 찍고 있는데 누나 안 힘들어요?”
사운드를 전부 버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연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입가에 자동으로 미소가 띄워졌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이기에 아쉬움을 삼키면서 편집에 들어갔고.
자막을 어떻게 넣을지에 대해 다시 또 회의를 거쳐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원래 이런 건 처음이 제일 어려운 법이니까...... 힘내.”
뭔가를 시작할 때는 맨 처음이 가장 중요했기에 어떻게 기틀을 마련할지가 관건이었다. 초장부터 확실하게 정해놔야 뒤탈이 없으니까.
우연의 담당 팀 직원들은 너튜브에 가장 많은 신경을 쏟아부으면서도 동시에 IMG 에이전시와 리디아 에이전시로부터 들어오는 계약과 피팅 브랜드들을 정리했다.
최종적으로 참가하는 컬렉션들은 더 자세히 따져가며 기록해야 했고.
덕분에 우연의 담당 팀은 에이전시의 대표인 주성훈 대표와 가장 많이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 아닌 팩트 기반이지만.’
영상 담당으로 들어온 두 직원은 다른 직원들보다 주성훈 대표를 만난 횟수가 더 많았다.
그렇게, 우연을 잘 모르던 직원까지도 우연의 소식을 계속해서 접하면서 우연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갔고.
“어라.”
어느 순간부터 우연에게 입덕해버렸다.
직장 사람들로부터 들은 그의 미담 그리고 브이로그 영상 편집을 통해 보이는 모습까지.
누가 들으면 영업을 제대로 당했겠다고 말하겠지만 당사자는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첫 영상은 완전히 마무리 돼서 올라갈 날짜와 시간까지 정해졌고, 이때는 우연이 런던 패션위크를 하고 있었을 즈음이라
“아직 촬영본 더 안 왔죠?”
“네. 일단 왔던 거 끝에만 미리 해두면 돼요.”
영상 담당 직원들은 한숨 돌리고 있었다.
사전에 우연의 너튜브는 업로드가 없을 예정이라고 공표를 해놨기에 서프라이즈 개념으로 홍보를 하지 않고 영상이 올라간 뒤 홍보를 하기로 했고.
두 직원은 여유를 가지면서 다른 직원들이 하는 일로 우연의 소식을 꾸준하게 전해 들었다.
사실 별다른 얘기는 없이 어느 패션쇼에 섰고, 성공적으로 잘 끝났더라 정도에서 대화가 끝이었지만.
“그 얘기 들었어요?”
“무슨 얘기요?”
“그...... 이번에 런던에서 생긴 일이요,”
“무슨 일인데요?”
어느 날, 출근하자마자 듣게 된 우연의 소식은 달랐다.
영문을 모르는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나 말하기를 망설이던 직원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뗐고.
“무슨 일인데요?”
“패션쇼에서 옷이 고정이 안 됐는지...... 왼쪽 옷이 흘러내렸대요.”
“흘러내려요?”
“네. 그래서 가슴 노출됐다는데.”
“헉.”
가슴 노출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란 직원이 되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글쎄요. 아직 어떻게 한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런던 패션위크의 패션쇼면, 사진이 엄청나게 찍혔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패션쇼지만, 남자가 가슴 노출이라니......’
명백한 사고였다.
아마 이 사실이 한국에 알려지면 많은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될 게 뻔히 보였고.
얘기를 전해준 직원은 자기가 출근하기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이라며 아직 기사는 안 났을 거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내일이면 너튜브 영상이 올라갈 예정이었는데.
‘이거 때문에 영향 가는 거 아냐?’
마음 한편으로는 우연을 걱정하면서도 혹시나 이 여파가 어떻게 미치게 될지 걱정되는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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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노출에 있어서 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여기는 정반대여도,
‘더 보수적인 거 같단 말이지.’
패션계에 있어서 의상의 노출은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주목을 끌기도 하지만.
평소에 내가 노출을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라서.
이에 관련한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은 적은 없으나 기본적으로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들은 단순히 지켜줘야 한다는 개념을 넘어선 것 같았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해야 하나?’
남자의 인구수가 적은 걸 생각하면 그것 때문인가 싶기도 했고.
이와 관련된 문제가, F/W 런던 패션위크 도중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 초반에 일어나버렸다.
무대에서 워킹을 하고 있던 도중 왼쪽 어깨 뒤에 있던 스트랩이 고정이 잘 안 됐는지 중간에 풀어져서 옷이 흘러내렸고.
왼쪽 가슴이 약간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뭐, 바지가 벗겨진 것도 아닌데’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워킹을 하면서 백스테이지로 돌아왔었다.
그러자 헬퍼가 당황해하는 얼굴로 나를 데려가면서 정신없이 다음 의상으로 빠르게 갈아입으면서 쇼를 이어갔었는데.
그때까지는 딱히 아무 생각 없었다.
하지만 피날레까지 끝나고 완전히 쇼가 끝나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이나 개인 사진을 촬영하면서
“괜찮아요?”
“수고했어요...... 그리고 완전 멋졌어요.”
“힘내요.”
내게 다가온 헬퍼와 다른 모델, 심지어는 디자이너까지 위로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고.
불쑥 다가와서 하는 말들에 얼떨결에 괜찮다고 대답했었지만 왜 그런지는 그 뒤에서야 알게 됐다.
‘옷이 흘러내려서 왼쪽 가슴이 보인 거 때문에?’
사고라고 한다면야 사고로 볼 수 있겠지만.
패션계에서 노출은 어느 정도 통용되기도 하고, 크게 문제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을 보고 난 뒤 문제를 인식을 한 내가 서둘러 예진에게 있었던 일을 전달했으며.
이 문제가 바로 다음날
[F/W 비비안 웨스트우드 패션쇼, 노출 사고 “프로 모델다운 모습이었다.”]
바로 이런 기사가 났다는 말이지.
어그로 하나는 잘 끌게 제목을 만들었다.
“클릭을 안 할 수가 없네.”
하지만 그 기사를 클릭하자 보이는 사진이 내 사진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이번 일로 노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내용은 꽤 괜찮게 나왔는데?’
내용을 쭉 읽어보니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무대를 소화해낸 프로페셔널함으로 소개되었다. 비록 사진이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하나 있다면, 패션계가 아닌 일반인들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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