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로 살아가는 법-137화 (137/137)

〈 137화 〉 chapter 135. 동양인 최초 클로징 모델

* * *

F/W 뉴욕 패션위크와 런던 패션위크가 완전히 끝이 났다.

‘일이 끝나면 끝날수록 기뻐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네.’

무려 남은 패션위크가 밀라노와 파리.

이번 시즌 주력인 패션쇼들이 대거 몰려 있는 패션위크였다.

두 패션위크 모두 이우연이라는 모델의 커리어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한 수였으니까.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단 말이지.’

지난 뉴욕과 런던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복기했다.

“우연아 가방.”

“아 맞다.”

“줘, 내가 들고 있을게.”

“고마워요.”

잠시 한눈 판 사이 챙겨야 할 가방을 챙기지 않아 그대로 두고 갈 뻔했다.

‘분명 예진이 없었으면 실수 한두 개쯤은 우습게 했었겠지.’

내가 종종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을 때 챙겨준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아무리 인생을 두 번 산다고 해도, 이렇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는 건 나도 처음이었으니까.

만약 예진이 옆에서 서포트 해주지 않았더라면 사소한 거 하나에 멘탈이 나가거나 컨디션 관리를 실패했었을 것 같았다.

‘나중에 꼭 고맙다고 말해야지.’

물론 말로만 하는 게 아닌 소정의 선물도 함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예진과 짐을 끌고 걸음을 옮겼다.

“저 사람들인 거 같은데?”

“맞네요.”

이탈리아에 입국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나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는데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노트에 우연이라는 한국어를 서툴게 적어놓은 글씨가 적힌 걸 들고 있는 여자가 있었고.

그녀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우연!”

“안녕하세요.”

“피곤하죠? 바로 숙소로 이동할 수 있게 차 대기 시켜놨어요.”

리디아 에이전시에서 나온 사람.

예진에게도 인사한 그녀는 자기소개를 하면서 내가 끌고 가고 있던 캐리어를 가로챘다.

그리고 그대로 차로 이동해 짐을 싣고 이동했고.

이동하는 동안 몇 번 말을 걸어오긴 했지만 피곤해서 적당히 성의 있는 선에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자 눈치챘는지 그 뒤로는 별말 없이 전달사항만 몇 개만 알려준 채 조용히 숙소로 이동.

옆을 보니 거의 반쯤 잠자는 상태로 예진이 고개를 꾸벅거리면서 졸길래 내 쪽으로 머리를 기댈 수 있게 해줬다.

‘비행기에서 못 잤나 보네.’

나는 피곤하면서 잠은 안 오는 상태였기에 대충 눈만 감고 있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하자 예진이 기대고 있었던 어깨가 굉장히 뻐근했지만.

“진짜 미안...... 정말 미안해......”

“제가 해준 건데 왜 누나가 미안해해요. 차라리 고맙다고 말해줘요.”

“고마워.....”

안절부절 못하는 예진의 모습을 보고 내 어깨가 희생한 걸로 치기로 했다.

‘더 늦었으면 내 어깨가 못 버텨서 예진을 깨웠겠지만.’

그러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네.

그렇게 여자로부터 리디아 에이전시에서 제공해 준 숙소 안으로 들어가며 대강 어떻게 이용하면 되는지 설명을 간단하게 들었다.

IMG 에이전시 때도 그렇지만.

‘숙소 하나는 끝내주게 좋네. 뷰도 예술이었다.’

일단 내부 디자인도 이탈리아 아니랄까봐 고풍스러운 느낌과 세련된 느낌이 물씬 났고.

그러힞만 내가 주로 있는 곳이 침실과 화장실이 전부라는 걸 생각해 보면 조금 안타까웠다.

‘나중에는 꼭 여행으로 한 번 와봐야지.’

간단한 짐만 풀어둔 뒤 씻고 바로 침대로 향했다.

내일부터, 전쟁이다.

****

“이번엔 어디라고요?”

“구찌.”

“여기서 얼마나 걸려요?”

“좀 멀어.”

내가 이탈리아에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아침부터 오기 시작한 연락들은 마치 폭풍처럼 쏟아져왔다.

모델들은 쇼에 서기 전까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또 그런 모델들을 아주 신중하게 결정하기 때문에 촉박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피팅 연락이 오니까.

이른바 라스트 오더.

미리 전 시즌부터 연을 만들어놓은 몇몇 브랜드들이야 예외였지만 이렇게 서게 되는 패션쇼들도 부지기수였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펜디에서의 피팅을 마치고 곧장 구찌에서 피팅을 하기 위해 바로 이동.

매니저인 예진이 있고, 리디아 에이전시가 있어서 연락이나 이동에 훨씬 수월했다. 이런 거 하나하나 놓치는 게 얼마나 타격이 큰데.

‘역시 프리랜서는 안 돼.’

다시 한번 이들의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라면야 못할 건 없지만 돈은 더 벌 수 있을지 언정 이런 일들에는 영 일머리가 없기에 힘들 게 뻔하니까.

남에게 맡기는 것이 제일 적합했다.

모델로서 무대에 서는 건 천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설 수 있었다.

“저는 숙소에 있을 테니까 나가서 뭐 좀 먹고 와요.”

하루 종일 여기저기를 피팅 해보러 돌아다닌 탓에 먹은 게 없었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곳들도 있어 미리 예진에게 말하고 밖에서 시간을 때워야 하는 건 예진이었으니까.

‘오늘 하루는 예진이 더 힘들었지.’

하지만 어딘가 미안한 표정인 예진이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채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고.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 핸드폰은 소리를 켜둔 채 밀라노 패션위크에 잡혀 있는 패션쇼들의 시간과 장소를 한 번 더 확인, 의상을 체크했다.

그걸 전부 끝마치자 순식간에 끊어지는 한껏 끌어올린 집중력.

‘...... 누워서 폰이나 좀 봐야지.’

한 번 끊긴 집중력을 다시 끌어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금부터는 또 제대로 쉬어줘야지.

침대에 벌러덩 누우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너무 일만 생각하면 과부하도 오고 안 좋아.’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또 포즈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애써 신경을 분산시키면서 아웃스타그램에 들어갔다.

그러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늘어나 있는 팔로워 수.

“천 만 넘었네.”

어느새 천만 명이 넘었음에도 그것이 숫자에 불과해서인지 감격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조금 놀라는 정도?

‘딱히 파급력 있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너튜브에 올라간 첫 브이로그 영상을 봤을 때의 감상이었다.

크게 재밌지도 않고 일부러 내가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거는 부분들도 전부 편집되어 노래가 대신해서.

이럴 거면 뭐하러 그렇게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원래 가지고 있었던 구독자 수가 있으니 조회수가 보장된다고 해도 볼 사람만 보는 그 정도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다른 포인트가 있었나 보지 뭐.’

반응을 찾아볼 생각은 안 했지만.

브이로그의 조회수도 그렇고 아웃스타그램과 페룩의 팔로워 수도 그렇고 나날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전생에 기억을 살려 전한 아이디어와 추구한 방향성 중에 방향성 만큼은 확실히 내 뜻과 들어맞아 별말 안 했지만.

‘그거면 됐어.’

너튜브에 큰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렇게 승승장구한다면야 이득이었다. 어디까지나 새로운 시도니까.

그렇게 아웃스타그램에 생존신고 게시물 하나를 업로드 하고 너튜브에 들어가서 영상을 보려는데.

지잉ㅡ

[예진 누나]

예진으로부터 온 전화로 화면이 바우면서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우연아 숙소에 있지?”

“네. 또 피팅 하러 가야 돼요?”

“응, 나갈 준비하고 있어...... 내가 지금 빨리 갈게.”

“알겠어요.”

뭐 좀 먹었나?

왠지 다급해 보이는 예진의 목소리였지만 나는 한없이 차분했다. 혹시 아무것도 못 먹었을까봐 물어보려고 입을 떼는데

수화 너머로 다급한 예진의 말이 들려왔다.

“이번에 가는 곳은 프라다야! 그...... 너를 클로징 모델로 고려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 클로징 모델이요?”

“응. 클로징 모델. 아 나 전화 끊고 빨리 갈게! 준비하고 있어.”

“..... 조심히 와요.”

전화가 끊기자 핸드폰 화면은 너튜브 화면으로 전환되어 있었지만 이미 내 정신은 다른 곳으로 간지 오래였다.

‘오프닝, 클로징 같은 중요한 모델은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예진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 생의 프라다 패션쇼에서는 동양인 남자 모델이 쇼의 클로징 모델로 섰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었고......

그 말인즉슨.

‘서게 된다면 동양인 최초로, 프라다쇼 클로징 모델.’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그 어떤 패션쇼보다도 더.

고양감이 일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아직 클로징 모델로 결정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시 이성을 되찾았고.

“기대하지 마.”

실수하지 마.

나 자신에게 말하듯이 내뱉은 말.

큰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르기 마련이고 기회를 잡으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베스트다.

예진이 오는 동안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한 번 정리한 뒤 얼굴은 기초만 해놨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우리는 이동했다.

‘아무것도 안 먹길 잘했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새로운 의상을 입으며 피팅을 마쳤고 이날 새벽,

나는 동양인 최초 프라다 클로징 모델이 되었음을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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