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러스티 네일 한잔(2)
* *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름 성황리에 영업이 끝나간다.
다 마신 칵테일 잔을 정리하며, 오늘 하루 주문된 메뉴를 다시 한번 검토해보니, 대부분 신맛과 단맛이 주된 주문이 많다.
최근 날씨가 더워진 게, 이러한 음료류가 잘나가게 된 건가?
잔에 얼음 넣을 때 바닥에 떨어지면 귀찮은데…
문득 카운터 맞은편에 있는 벽걸이 시계를 보니 밤 12시 30분 즈음 된 걸까?
슬슬 마감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기에 또 다른 준비를 해본다.
그것은, 내일이 정기 휴무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퇴근 전 마시고 가는 날인 거다.
“이번 주는 드람뷔가 좋을까? 비를루(le birlou)가 좋을까?”
남녀 역전세상에서 남자 혼자 마시고 귀가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지만, 생각보단 안전하다.
이세계 문이 자주 열리는 특성상 긴급대응팀이 필요한데, 그것이 경찰이다.
경찰들은 중상급 능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소에는 치안 활동을 중시하지만, 이세계문이 열리면 제일 먼저 대응하는 1차 부서이기도 하다.
평소에 경찰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영혼 순찰 보내는 다른 어딘가의 경찰들과 다르다.
그들은 구역별로 정해진 순찰 경로를 매시간 돌며, 이세계 문이 발생하면 헌터나 군이 오기 전까지 넘어오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 주된 업무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경찰은 대다수가 중상급 능력자들로 구성된 실력자들이며, 그로 인해 일반 폭행이나 성추행, 절도 등의 범죄율은 상당히 줄었다.
물론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끝나면 대처할 수 없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다.
CCTV가 쫙 깔린 이곳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순식간에 덜미를 잡힌다.
역시 경찰이, 체력적이든, 능력적으로든, 강하니 안심이 된다.
경찰보다 강한 능력자들의 경우는 돈 안 되는 범죄보단 약물이나, 뒤 조직 관리, 부정 청탁 비리 등에 연루된다고 하니 생각보다 큰일에 처할 상황이 드물다고 생각된다.
다 변명이고, 사실 전생의 기억으로 인해 안전불감증에 걸린 걸까?
“비를루는 많이 다니까, 드람뷔로 러스티네일이나 만들어야겠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세상의 술은 내가 잘 아는 술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술의 종류는 3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 전생과 똑같은 술.
2. 이세계문 너머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술.
3. 1과 2번의 술을 블랜딩한 술.
술의 구분은 재료 기준으로 3가지의 대분류로 시작된다.
2번과 3번의 경우 가격도 비싸거니와,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기에 손이 잘 안 간다.
그리고 드람뷔라는 술은 흔히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엘릭서의 일종이다.
그래서 만능 영약이냐 하면, 그 또한 아니다.
과거 스코틀랜드 왕가 대대로 내려오던 약술을, 그곳 언어로 엘릭서라고 부르던 것뿐이다.
맛은 약초류를 넣은 술답게 오묘한 맛을 내며, 비슷한 약술이라 불리는 예거마이스터보다는 매우 달다. 비유하면 꿀물처럼 찐득하게 단맛을 내면서 약초가 함유된 맛?
“러스티네일에 어울릴 위스키는…위스키는… 미친 척하고 로열 살루트라도 넣을까?”
제정신이 아닌 조합, 어느 누가 비싼 술을 칵테일 해서 마시려 할까?
로열 살루트는 21년 숙성한 스카치위스키며,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술이라는 네임벨류 때문인지 매우 비싸다.
생각해 보니, 얼마 전 영국 왕실에서 문 공략 방송을 실시간 중계한 적이 있다.
90대로 연로하시다고 할 수 있는 연세지만, 왕가의 상징 검을 들고 진두지휘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정정하셨다. 오히려 일반 헌터들보다 강인해 보인다.
게이트 대전쟁 시기에도 현재의 유럽 대연합 대표로 지휘를 하셨다고 역사책에 나올 정도인데, 지금도 간간이 왕실의 위상을 위해 공략을 나서시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 생각이 든다.
역시, 이 술을 칵테일 해서 마시기는 아까운데 어쩌지?
“아냐 아냐 블랙보틀이 더 좋을 것 같아, 단맛과 같이 올라오는 진한 피트향과 스모크함이 좋지”
블랙보틀 또한 로열 살루트와 같은 스카치위스키의 일종이지만, 장기 숙성하는 물건이 아니기에 매우 싸다.
이 술만의 특징은 단 향과 마지막에 올라오는 스모크한 향과 이 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강한 피트향이다.
그리고 러스티네일에 있어서 주관적 기준으로 최고의 조합이다.
드람뷔에서 오는 달달하며 부드러운 목 넘김, 그리고 마신 뒤 목에서 올라오는 블랙보틀의 스모크함과 피트향.
중독될만한 향이다.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취향은 존중해줘야 하는 법.
“으음… 혼자 마실 거니까, 얼음은 그냥 음료용 얼음이나 써야겠다.”
칵테일에 있어서 얼음은 매우 중대 사항이다. 절대 양보는 있을 수 없는 게 얼음이다.
흔히들 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나, 얼음은 칵테일의 청량감과 맛을 좌우하기에, 술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맛없는 술을 맛있게 마시기 위해 섞어 마시는 게, 칵테일의 기원이다. 그런 역사를 생각하면 역시 얼음이 더 중요하다.
나 홀로 가게에서, 음료용 얼음들이 잔에 부딪혀 내는 맑은소리를 즐기며 칵테일을 제조해본다.
칵테일이라고 해서 대단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다. 대충 위스키 2 : 드람뷔 1 정로 본인 취향에 맞게 잔에 따라서 조절하면 된다.
과장되게 말하면 본인의 취향이 1:1이다? 그 또한 칵테일이 된다.
레시피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며, 다양한 술을 본인의 취향에 맞게 조절하면 칵테일의 완성이다.
그리고, 손님의 취향에 맞게 제조하는 게 바텐더의 주된 업무 중 하나다.
완성된 칵테일은, 녹슨 못이라는 이름 그대로 아주 연한 붉은 빛을 띠는 갈색의 액체이다.
게다가 이번 주를 무사히 지나감을 기념하며 만든 술이기에 그 의미는 한층 더 각별하다.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 시판가격이 아닌 납품가격의 술로 칵테일을 마실 수 있으니.
아, 직업 만족도 최고다.
딸랑~
“아앗,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마시기 위해 만들어 둔 칵테일을 옆으로 치웠다.
손님 접대 중에는 마시기가 어렵고, 손님 접대를 하다 보면 필시 얼음 많이 녹아 희석되기에 칵테일의 맛이 아주 밍밍해지는데, 지금이라도 한 번에 다 마셔야 할까?
문 입구 근처 벽에 걸어둔 시계를 보아하니,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 될 거 같다.
손님은 여성 한 분이며, 허리까지 오는 긴 흑발에 다부진 몸매를 보니 헌터 같다.
“저어…. 손님? 괜찮으신가요?”
손님이 실연이라도 당했는지 상태가 이상하다. 전체적으로 지친 표정에 축 처진 어깨, 비유하자면 아마 주인에게 혼난 대형견 같은 인상이다.
평소에 쓰지 않는 말이지만, 남자의 감으로,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
터벅터벅
지나가는 사람들도 드문, 교외의 심야 시간.
전체적으로 몸에 힘이 빠진 걸까? 터덜터덜 걸어가는 한 여성이 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목적과 방향성 없이, 억지로 걸으며 상점가를 걸어간다.
“하아…. 씁. 한숨만 느네, 내 책임이지만 너무들 하잖아”
무엇이 불만일까?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였는지 길가에 있는 빈 캔을 발로 차버린다.
그리고 깡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에 그녀는 문득 주변을 돌아봤다.
얼마나 걸어서 어디까지 온 것일까? 그저 방황하며 걸어 다녔을 뿐이기에,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른다.
“여긴 어딜까…?”
저 멀리 강 너머에서 비쳐오는 도시의 불빛을 보면, 여기는 강 건너의 교외 지역인 걸까?
머리를 헝클리며 새삼 많이 걸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확한 시간은 확인하지 않았지만, 아마 오후부터 쭉 걸어 다녔으며, 하늘에는 보름달이 달빛을 비추며 거리를 환히 밝혀 주고 있다.
“아하하 많이도 걸어 다녔네….”
허탈한 기분일까? 갑작스레 웃다가 어깨가 축 처져졌다.
꼬르륵~
배에서 나는 소리에 얼굴에 피가 몰린다…들은 사람 없겠지??
애초에 들을 사람이 지나다닐 시간도 아닌데 울려봤자.
“하아…쓰읍 진짜 무슨 생각으로 하루 종일 걸어 다닌 거지? 무어라도 먹어야겠지만 먹기는 싫고 어쩌지…음??”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지금 시간에도 영업 중인 가게가 있었다.
[카페 숲속 & 바 만월]
특이한 이름의 가게.
지금 시간까지 영업하는지 불이 켜져있는 상황을 보면, 커피도 팔고 술도 파는 가게인 걸까?
다리도 아프고 목마르다고 생각 드는 순간.
이상한 논리일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보름이고 가게 이름도 만월이니, 배울 채울 만한 음식점은 아니지만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딸랑~
이 가게는 문에 종을 달은 걸까? 그런데 작은 크기의 종 치고는 소리가 매우 맑다.
아마도, 이세계 재료로 만든 종 같다.
카운터에는 종업원이 깜짝 놀라 컵을 치우고 있었다.
“아앗, 안녕하세요!”
깜짝 놀랐다.
지금 시간에 남성 혼자 가게를 운영하다니.
게다가, 순한 작은 소동물을 보는 느낌이 들면서도 전체적으로 이질적인 느낌도 든다, 혹시 능력자일까? 이세계의 문에서만 느껴오던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그러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종업원이 이상하게 나를 바라보는 게 뭔가, 이상한 게…. 아~,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몰골이 말이 아닌 걸까?
“혹시 영업 끝난 건가요?”
그게 아니면 영업시간이 끝났지만, 손님이 들어와서 곤란해하는 중인가?
“아뇨아뇨, 영업 종료 시간까지 아직 남아 있어요, 편하게 주문하세요. 혹시 바는 처음이신가요? “
“저어, 바는 처음인데, 뭘 어떻게 하나요?”
이 시간까지 가게에서 홀로 일을 하기에, 성격이 강하거나 흔히 말하는 양 X 치 같은 성격일 줄 알았는데, 역시 편견은 좋지 않다. 생긴 그대로 순한 성격의 남성이다.
게다가 칵테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에, 카운터 석에 앉으며 질문을 해보았다.
“네~! 좋아하시는 술 혹은 좋아하는 맛이 있으신가요? 아! 그전에 술을 못 드시거나 하지 않으시죠? “
“어…딱히 술을 못 하거나 그런 건 없고…칵테일 자체가 처음인지라….”
가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았지만, 내가 모르는 분야의 가게이기에 왠지 모르게 위축된다.
“뭐든지 말씀해보세요, 최대한 입맛에 맞는 술로 추천해 드릴게요.”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는 목소리로 권유해온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을까, 일반적인 전문가가 그러한 행동을 취하면 전문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소형견같은 외모로 그렇게 자신 있게 권유해오는 모습이 오히려 더 귀엽게 느껴진다.
“저어 혹시…지금 치우시려던 잔에 들어 있는 액체도 칵테일인가요?”
손님인 내가 들어오자마자 깜짝 놀라며 옆으로 민 것을 보면, 아마 본인이 마시려 한 칵테일이었을까?
마시려던 시점에서 내가 가게에 들어와 방해한 기분이 드는데 괜히 미안해진다.
“아네네! 러스티네일이라는 칵테일이며 달면서 위스키 맛이 강한 칵테일입니다”
당황한 모습이 꽤 귀엽다.
“그럼, 저 잔으로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의 주문을 듣고, 새 칵테일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의미 전달을 잘못한 기분이다.
“새 칵테일이 아니라 저거로 주세요”
“네네…, 네? 아 저 손님 그건 저… 일반적인 레시피가 아니라서 조금은 곤란합니다…”
곤란해하는 모습이, 정말 소동물을 괴롭히는 느낌이 계속 든다.
게다가 마시려던 칵테일을 굳이 주문한 이유는, 단순히 호기심이 동해서이다. 가게에 들어갔을 때 카운터에서 매우 즐겁다는 행복한 표정으로 칵테일을 보던 표정을 잠깐 보았다.
가게에 들어온 나를 보고 당황하며 표정을 지웠지만, 그 행복해하던 표정을 보니, 정말로 맛이 궁금해졌을 뿐이었다. 날 이상 변태성욕자로 보면 곤란하다.
“괜찮아요, 그냥 궁금해졌을 뿐이에요.”
“아…저…으음…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가 옆으로 치워 둔 잔을 나에게 건네준다. 아직 잔을 들지 않아서일까, 특별한 향은 나지 않는다.
게다가 갈색에 붉은빛을 띠는 게…이름이 러스티네일이라 하였던가? 이름에 걸맞은 색이다. 그보다 괜히 미안해지는데, 나중에 계산할 때 두 배의 값을 내야겠다.
그 후, 나는 이날의 일을, 인생에 가장 손에 꼽힐 흑역사로 만들었다.
왜 공복 상태였던 상황을 잊은 걸까? 공복에 술이 더해지면, 금방 취기가 오르는 점을 간과하였으며, 이날은 전체적으로 기분이 울적해 있던 기분을 잠시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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