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4화 (4/140)

〈 4화 〉 러스티 네일 한잔(3)

* * *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맛이다.

직업이 헌터이다 보니, 술을 마시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헌터에게 있어서 술이란, 취하기 위한 물건이다. 헌터라 하여 언제나 보장된 고소득과 즐거운 모험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조금 전까지 즐겁게 대화하던 동료가, 예상치 못한 기습을 받아 목 위의 머리통이 사라지던가, 중상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 신입 헌터의 경우 생명체를 죽인다는 부담에 의한 트라우마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 술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지만, 잠시라도 마음이 편해질 수는 있다.

공략 성공하였든 실패하였든, 다 끝난 이후 다 모여서 술을 마시며 울거나, 웃거나, 싸우거나, 그렇게 풀기 위한 수단이 술이다.

그렇기에 헌터가 마시는 술들은, 대부분 도수가 높거나, 많은 양을 마시기 위해 품질이 낮은 술을 마시다 보니, 다음날 숙취가 심해서 온종일 구르던 기억만 있다.

대량의 술을 준비해서, 먼저 가버린 동료를 추모하거나, 슬픔을 잊기 위해 마시는 용도.

헌터에게 술이란 그런 물건이다.

그래도, 이 술은 나쁘지 않은 맛이다. 일반적인 레시피가 아니라 했던가.

“생각보다 뒷맛이 좋은 게 나쁘지 않은데요? 일반적인 레시피와 뭐가 다른가요?"

“아…저…그, 일반 레시피 보다는 많이 독한 배합입니다”

독하지 않고 달다고 생각했는데, 독한 술인가?

게다가 남성이 독한 술을 마시는 게, 매치가 안 되지만…너무 편견인 걸까?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러스티네일이라 했죠? 계속 마실만한데요”

“정말요?! 생각보다 괜찮은 조합이죠!? “

“물론요 평소에 마시는 술에 비교하면, 달달한게 일반 음료 같은걸요. 달기만 한 느낌도 아니고 뒤에서 올라오는 코를 쏘는 느낌?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흙냄새? 가죽 냄새?”

생각보다 이 조합을 좋아하는 사람이 드문 걸까? 맛이 괜찮다는 한마디에, 자신이 칭찬이라도 받은 것처럼 매우 기뻐하는 모습이, 정말 소형견 같은 인상이다.

“그 향을 피트향이라 표현하는 사람이 많아요, 물론 표현은 주관적이니까 정답은 없어요. 가죽 향도 일부 나지만 흙의 냄새도 나죠, 저의 경우는 스모크함. 즉 탄내가 제일 강하게 느껴지기에 무두질할 때 날 법한 훈제 냄새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무두질할 때 날 훈제 냄새라 하는 건 독특하네요, 혹시 무두질을 해보거나 본적이 있으신가요?”

“아­뇨? 그런 경험 없답니다. 그저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내의 표현이랍니다. 표현 이란 그런 거잖아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연하다며 말한다. 일부로 기른 걸까? 옆머리가 흔들리는 모습이 매우 귀엽다. 포인트로 기른 머리카락일까?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 대부분은, 정형화된 표현이나 규칙에 연연할 텐데, 예상외로 매우 개방적이다.

“그렇네요, 그렇다면, 가죽 훈제 냄새겠네요.”

재미있는 표현에, 왠지 모르게 실소가 났다. 그리고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느낌, 확실히 도수가 강한 칵테일이다.

“혹시, 도수가 몇 도에요?”

“기본적으로 40도입니다. 2가지 재료가 40도 거든요”

정말 놀랐다. 평소에 마시는 소주가 16도~20도쯤 하기에, 독한 술이라 해서 30도는 될 줄 알았는데, 소주의 2배라니.

“와… 30도쯤 되는 술인 줄 알았는데, 40도라니 그래도 맛있으니 계속 마시게 되네요?”

“그렇죠? 너무 마시면 취할지도 모르니 조심하세요”

“아하하, 제가 남성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쉽게 취할 리가 없잖아요? 그런 의미로 같은 거 한잔 더 주세요”

이러한 술이면 나쁘지 않다. 몇 잔 더 마실 수 있을 거 같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칵테일을 제조하는 그를 보면, 이 가게에 자주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와 대화를 나누며, 한잔, 두잔, 계속 마시게 되었다.

***

“흐에에엥, 잘못 한 건 알아도 자존심이 있는걸 어떻게 해요?”

아하하, 제가 남성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쉽게 취할 리가 없잖아요?

없잖아요오오오?

하아…건장한 헌터라도, 취할 리가 있다.

생각보다 술 취향이 맞는 손님이라 생각했는데, 칵테일은 처음이라는 점을 아쉽게도 까먹었다.

칵테일은 술을 맛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보니, 맛에 숨겨진 높은 도수를 잊는 경우가 잦다.

대부분 칵테일이 처음인 경우, 도수가 낮은 줄 알고 음료수 마시듯이 바로바로 마시는데, 간 건강에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도오오 자존심으로 먹고 산다고요오…."

게다가, 그녀의 주사는, 같은 말 계속하기인 걸까?

반복적으로 말하는 그녀의 후회 섞인 발언 등으로 추측해보건대, 오후 신문에서 본 그 A급 파티의 일원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신의 실수로 팀원이 피해를 보았고, 자신은 사과는 했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누군가와 말싸움을 크게 한 거고.

이래서 여자들 이란.

응…?

남녀역전인 세계인 건 알지만, 가끔 이렇게 적응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손님? 벌써 10잔째 에요. 그만 드시는 편이 자고 일어났을 때 숙취가 그나마 없으실 거예요.”

칵테일 혹은 양주류는 숙취가 없다는 소문이 있다.

물론 위스키 쪽은 증류주이기에 상대적으로 숙취가 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지만, 드람뷔는 리큐르의 일종이기에 매우 많은 당분과 숙취를 유발하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다.

게다가 그러한 불순물들이 가득한 술을 벌써 10잔 넘게 마시고 있으니.

가게 재정에는 감사하지만, 슬슬 내일 일어났을 때 좋지 못한 사태가 일어난다.

리큐르 비율이 높은 칵테일을 3잔만 마셔도 숙취가 끝내주는데 10잔? 그냥 죽여줘어어 라는 말이 실시간으로 나올 정도로 심각한 두통을 경험하겠지.

“손니임이라뇨오오, 지혜라고 불러 주세요오, 에헤헤헤”

울먹였다가 웃었다가, 하나만 해줬으면 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술주정이 순해진다는 점일까? 첫인상 그대로 정말 순한 대형견 같은 모습이다.

그냥 개새끼였다면, 카운터 아래에 있는, 크고 붉은 신고 버튼을 고민 없이 눌렀을 텐데.

지혜라…지혜….

아 ­ 생각났다. A급으로 분류되며, 게이트의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가능한 몇 안 되는 조직으로, [천칭]의 공격담당 투창의 이지혜다.

생각보다 유명한 인물이 도시에서 꽤 먼 곳까지 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저 손님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진정하시는 게….”

“지혜에에요오”

흠…반쯤 정신을 놓은 걸까? 곤란한데… 슬슬 쉬고 싶기도 하고, 진상손님은 귀찮고, 폐점까지 10분 남아 있다.

카운터석의 테이블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헤실거리는 그녀를 보니 '이번만'이라는 생각과 '까짓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르바이트 혹은 직장에서, 정시 퇴근이 불가능한 경우 받는 스트레스는 누구나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변덕에 의해 퇴근 시간이 지나도 [기분이다!] 라는 식으로 연장근무를 하는 그런 날이 누구에게나 한 번은 있지 않은가?

그게 바로 오늘인 거 같다.

신세 한탄을 들어주다 보니 불쌍하다 느낀 걸까?

아니면 상급의 외모라 할 수 있는 여성이, 술에 취한 채로 귀여운 모습을 보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나도 남자다 보니 이런 상황에 약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세상의 남자라면 면식 없는 여성이 만취하였다면 상대도 안 하려 한다.

오늘 영업 마감 후가 정기 휴무일이기에, 30분~1시간 정도 어울려줘도 문제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안가면 근처 파출소에 연락해서 취객 좀 데려가라 해야지 뭐 별수 있나.

“하는 수 없네요, 지혜님? 지혜씨? 지혜씨라고 할게요”

“네에~!”

나의 말 한마디에, 방긋 웃으며 두 팔을 위로 드는 것이…실시간 흑역사를 적립하는 모습이다. 아무렴 어떠하리, 나의 흑역사는 아니다.

일단은 무언가 마시고 싶어져서, 블랙보틀을 얼음이 가득한 종이컵에 부어본다.

문제라도 있는가? 종이컵으로 마시면, 설거지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음료 혹은 요식업에 일하게 되면, 대부분 자신이 먹을 음식은 적당히 담아내게 된다.

간단하게 자취할 때의 본인 요리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편하지 않을까?

자신이 먹는 음식은, 귀찮아서 적당히 대충 한 접시에 담아서 먹는 그러한 생활 말이다.

“사자앙님도 마셔요? 자! 건배에에!”

“건배~!“

당연하게도, 종이컵과 유리컵이기에 유리가 부딪쳐 내는 짠 하는 소리는 없다.

로망이 너무 없는 걸까? 로망보다는 실리가 편해서 좋다.

“뭐어~. 나름 기분이고 서비스이니까 뭐든 말해봐요. 즐거운 일이든 한탄이든 뭐든지 들어는 줄게요”

손님하고 간단한 대화는 하지만, 이렇게 뭐든 들어주는 경우는 오랜만이다. 절대 그녀가 예쁘고 귀엽다고 느껴져 서가 아니다. 바텐더라는 직업정신을 발휘할 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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