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러스티 네일 한잔(4)
* * *
“와 아 싸자아앙님, 최고오!”
이세계 문의 공격을 전담한다는 인상 탓일까, 미디어에서 접할 때는 기가 센 당찬 여성으로 보았는데, 편견은 좋지 않다.
두 팔을 한껏 흔들며, 기분 좋다는 반응을 해주니, 되려 이쪽도 기분이 좋아진다.
빵긋빵긋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볼살 한번 만져보고 싶다. 아니 대형견이니 턱을 만져보는 건…? 그래도 아쉽다. 저 정도의 미녀가, 자고 일어났을 때, 엄청난 두통과 함께 몰려오는 자신의 흑역사를 기억해내며, 구르는 모습을 못 보는 게 매우 아쉽다.
나, 성격이 나쁜 걸까…?
그래도 필름 끊겼으면, 괜찮겠지만?
“네에, 네에, 최고라고 합시다.”
취기로 인해 몸을 가누는 게 더는 힘든 걸까? 양팔을 벌려 와아와아 하다가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어져 버린다. 안 아픈가?
“에헤헤 사장니이임도 같은 거 마셔요오?”
테이블 위에 얼굴을 묻은 채로 위를 올려 보는 모습이, 생각 이상으로 귀엽다. 미디어 매체에서 보는 느낌과는 너무 다르다.
“아뇨? 재료 중 하나인 위스키만 마시고 있답니다.”
“에헤…? 마시써요오?”
정말 궁금한지 갑작스레 물어본다. 블랙보틀은 일반적 위스키치고 싼 맛에 마시는 위스키지만, 가격 대비 매우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블랙보틀 자체의 맛은, 위스키치고 굉장히 강렬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취향을 심하게 타는 술이다.
블랙보틀의 향은 냄새가 바닐라 향의 단 향이 가득하며, 첫맛 또한 단맛에 속하기에 독하지 않은 술로 착각할 수 있으나, 마신 후 잠시 뒤 입안에 몰아치는 향신료의 맛, 흔히들 스파이시하다는 그러한 맛이 입안을 감돌텐데, 생각보다 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가죽과 은은한 탄내, 러스티네일의 경우에는 드람뷔가 향신료의 향을 어느 정도 누그러트리기에, 피트향이 좋은 사람에게는 이만한 조합이 없긴 하다.
술이든 뭐든 취향을 탄다는 말은 장단점이 뚜렷하다는 의미이기에 취향껏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이지혜 헌터가 오기 전 마시고 싶어 하던 러스티네일이 아니라, 블랙보틀만을 마시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지혜 헌터가 마시는 양을 보니, 마시지도 않은 내가 숙취를 느낄 만큼 머리가 아파져 오기 때문에, 간단하게 숙취가 거의 없는 위스키를 온더락 스타일로 마시는 중이다.
온더락 (On the Rock)은 단어만 들으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냥 얼음을 넣었다는 의미 정도이다. 얼음도 안 넣으면 스트레이트(Straight)라고 한다.
“글쎄요? 맛도 맛이지만, 요즘은 독해서 마시는 느낌이 있네요.”
홀짝이면서 종이컵에 든 위스키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독한 술은 해결책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였다.
이세상의 남성이라면 내숭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독한 술보단 순한 술을 마신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전 세상의 여성의 마음도 몰랐는데 이 세상의 남성을 알 리가 없다. 내숭인지 몸이 약해서 마시지 않는 건지.
내가 잘 마시는 거 보면, 신체적 문제보단 내숭일지도?
“아하하 사장니임 왜 그리 표정 구더써요오? 저처러엄 무슨 일 이써요?”
걱정하는 표정으로 올려 보며 묻는 모습이, 꼬리와 귀만 달아주면 호감 가는 상대에게 꼬리를 흔드는, 늑대인간 계열의 여성일지도 모르겠다.
“아…아뇨아뇨 갑자기 여러 생각이 들어서요. 뭐든지 들어 드린다 하였는데, 이런 모습 보여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상체를 일으키며, 한 손은 술잔을 들고, 한 손은 턱을 괴며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으음, 괜찮아요~! 뭐든 이라…별 재미없는 이야기 이긴 하는데….”
대화로 어느 정도 술을 깬 상태일까? 혹은 고민이나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바른 자세로 앉으려 하였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하기에 턱을 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반쯤 남은 러스티네일 잔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간다.
“이야기라 해도 제 잘못이고, 그냥 가족 같은 사람과 싸웠을 뿐이에요.”
가족 같은 사람으로 추측하건대, 그녀가 속한 A급 조직인 [천칭]에 속한 누군가와 싸운 걸지도 모르겠다. 가족 같은 이라 말할 정도면, 아주 친한 친구 혹은 선배, 혹은 후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왼쪽이 시큰거린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를 권유하였으며 바텐더로서 자존심이 있기에,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해야겠다.
“네? 가족하고 싸우다니, 그건 큰일 아니에요?”
가족이라 칭하는 자와 싸울 정도면 꽤 큰 싸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출근 시간에 본 신문의 뉴스처럼, 문의 공략 실패에 의한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제 잘못인 건 알지만,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서요…”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래도 자신의 잘못임을 인지하고 있는 점에서, 큰 싸움은 아닌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 말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손에 남아있는 러스티네일을 천천히 마신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위스키 마시는 모습은 난다.
처음에는 음료수 마시듯 넘기더니, 지금은 어느 정도 맛을 보면서 마시는 행동을 보면, 바텐더로서 편안한 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직업 병이다.
“어떤 일이 있었나 보네요, 그래도 가족같이 친한 사이이기에 싸울 수도 있는 일이지 않을까요?”
가족같이 친할 정도면, 생각보다 오래된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친한 친구가 있기에,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줄 수 있다. 그런 친구라...나쁘지는 않다.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시큰거리던 왼쪽 손목이 약간 가렵다.
“네에, 어린애도 아니고, 머리는 알아도 마음은 다르기도 하죠, 특히 제 능력을 가지고 말싸움이 난건, 자존심 싸움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오...”
나 자신도 이전 생의 친구들에게 장난으로도[너 게임 X나 못하잖아] 그런 소릴 들으면 어떠했던가? 필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다. 이 세상에서 자존심을 건들 만한...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는 아마도, 공략에 대한 의견 차이 혹은 능력 사용의 미숙으로 인해 싸움 정도일까? 그보다 이지혜 헌터 급이면, 능력 사용 미숙의 문제는 없을 텐데? 무엇이 문제일까?
자신이 말하고도 부끄러운지,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건 이것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형견은 대형견답게 당당하게 웃는 게 좋다.
뭐어…그저…지금 나에게 웃어주는 모습이, 귀여웠을 뿐이다.
“어떠한 능력이길래요?”
타인의 능력을 묻는 건 어느 정도 실례일지 모르나,
이지혜 헌터의 경우는 유명인 이기도 하며, 기억 날 듯 말 듯 해서 물어보았다.
“쓰...으읍, 푸후...네, 제 능력은 작살을 만들어 내서 던지는 건데...하자가 있어서요”
무언가 자신의 부끄러운 점을 말하는 느낌으로 주저하며 말하는 게 귀엽다.
그래 들어 본 적이 있다. 투창의 이지혜라는 칭호답게, 그녀는 창을 만들어 던지는 부류의 능력이었다. 그녀가 던진 창의 위력은 꽤 높은 관통력을 자랑한다고, 뉴스 기사나 예능 등에서 본 거 같은데 하자라니…?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음 사장니임 이건 비밀이에요, 언론이나 다른 데서 말하면 안데요오”
그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내가 궁금한 표정을 보이자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려 한다. 아마 만취 상태기에,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말하는 걸까?
만취 상태면, 속에 있는 답답한 속마음을 말해서 풀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흑역사 적립으로 인한 부끄러움은 별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술로 인해 마음이 편해지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진 않다.
“투창하면 적중 대상을 끌고 와요, 그래서 이번에 수호자 중에 대방패병이라는 녀석 끌고 와서, 큰 피해가 날 뻔했거든요...”
아, 아까 대방패병에 적중 어쩌고 이야기가 생각난다.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충 이해는 간다.
흔히들 게임에서 말하는 끌고 오면 안 될 상대를 끌고 오는, 데스그랩의 상황이다. 아마 숙련된 파티가 아니면 진형이 붕괴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능력 단련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대다수의 상대를 일격에 제거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본인의 콤플렉스에 관한 이야기 인걸까? 자신의 노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일까? 정말로 분하다는 몸짓으로 잔을 든 손을 꽉 쥔다.
“그래도, 다른 분들도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당사자가 아닌 나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직위와 능력, 천칭이라는 조직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대비되어 있을 텐데?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하다, 시야가 좁아져서 주변인의 행동은 보이지 않게된다.
약간 불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왜 귀엽게 느껴지는 걸까? 전생에서 여성들도 이러한 기분을 남성에게 느꼈을까?
가족 혹은 친구와 관련된 고민이, 본인은 큰 고민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길, 실은 정말 작디작은 고민에 불과하지 않다고 말한 것에 화를 내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 보여서 생각보다 귀엽다.
아, 이 세상에서는 여성에게 애 같다는 표현을 쓰던가?
“지혜씨 잘 들어봐요. 가족같이 친한 친구 라면서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거 아니에요? 자존심 같은 건, 한순간이에요 맨정신이 힘들다면, 한번 술이라도 마시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는 거도 나쁘지 않겠네요, 뭐어 여기서라면 서비스는 못 줘도, 할인 정도는 해줄게요”
나름 직업상으로 인한 대화라지만, 오랜만에 친구라는 단어를 입으로 꺼내니 어색하게 느껴진다. 친구라…가렵던 왼팔이, 더 가려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보다 이지혜 헌터는, 토끼 같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정말 어디 도박장이나 카지노를 가면 호구를 당할 정도로 표정변화가 빠르다.
“모르겠어요. 오히려 자존심 싸움 같은 건 친구이니까 더 하게 되는 그런 것 아닐까요?”
그녀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거리지만.
나도 사실 정답은 모른다. 하지만 가족 같은 친구라면 정말로 걱정하기에, 그러한 말을 하였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서로 대화를 하다 보니, 자존심의 영역까지 들어갔을 테고.
어떻게 말해줄지는 모르겠다. 자존심 관련 이야기는 민감한 사항이기에, 그 누가 옆에서 틀린 점을 조언하거나 말해도 귀를 닫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냥 술친구라도 생겨서 그런지, 나는 그녀의 손에 들고 있는 빈 잔에, 블랙 보틀을 한잔 따라 준다. 한잔이라 하여도 독한 술이기에 적당히 1/2온스(15mL)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주문하지 않아도 술을 따라줬기 때문일까? 이게 무엇인가 표정으로 잔을 바라보다. 바라보는 표정이, 정말로 전생에, 개가 아니었을까?
“돈은 안 받을게요, 한번 마셔봐요”
그녀는 얼떨떨해하면서도, 마시기 위해서 컵에 입을 대어 본다.
아…깜빡했다. 블랙보틀은, 위스키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맛이 독할지도 모르는 점을 사전에 말하지 않았지만, 마시고 난 뒤의 표정은 괜찮은거 같다.
“쓰네요. 그리고 달기도 하고”
“그렇죠? 흔히들 인생을 위스키 맛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첫 단맛과 그 뒤에 속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향신료의 향이 인생의 고난일지도 모르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올라오는 단 향과 왠지 모르게 안심되는, 가죽 냄새라든지, 탄 냄새라든지… 다양한 생각 들지 않아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양한 술이 존재하겠지만, 위스키 같은 쓰거나 매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다양한 향이, 여러 생각이 들게 해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힘들다면, 힘든 느낌을 받으면서도 뒷맛에 올라오는 느낌으로, 자신감 혹은 위로를 받던가.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마시면, 향신료의 향조차 즐거워지던가.
너무 주관적이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같이 잠시간의 침묵을 즐긴다.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친구를 생각하는 것일까?
싸워서 후회하는 것일까?
그 누구도 모를 본인만의 고민이다.
“그렇네요. 그런 거겠죠…한 번 이야기라도 해봐야겠어요. 에헤헤”
“그런 거로도 충분해요,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그때 한판 싸워도 늦지 않아요”
“아하하 – 그거 뭐에요 완전…엉망이잖아요?”
엉망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생이 그런 느낌 아닐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표정의 웃는 그녀를 보니, 괜히 가슴 한편 어딘가 아파진다.
친구라…부럽네.
♪~♬~~♪
그리고, 갑작스럽게 걸려온 스마트폰의 착신 소리.
소리를 들어보니, 언제나 기본 착신 음을 하는 내 폰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최신곡인 걸까, 그런 쪽으로는 잘 모르겠다.
만취 상태에 가까워서 그런지, 착신버튼을 옆으로 밀기가 두세 번 실수한 뒤에, 전화를 받았다.
“네에헤 여보세.... “
전화를 받자마자 스마트폰에서 귀를 때는 그녀.
카운터에있는 나까지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시끄럽다.
아, 마음에 응어리를 어느 정도 풀자마자 새로운 시련이 온 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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