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푸근한 양 한잔(1)
* * *
조용한 적막 속에서 내 귓가에까지 들리는 심장의 소리가 나의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것일까?
이지혜 헌터에게는 내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양손을 꼼지락거려봤다.
역시나, 미친 사람 취급이겠지? 치녀로 보이려나? 이 세계로 치면 치남이겠다.
정말 어떤 생각으로 저지른 건지...꼼지락거리던 양손이 점점 내려가 진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당황하고있겠지?
역시 안되는 건 안 될지도.
나 같은 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 때, 머리에 자그마한 온기가 느껴진다.
어...그럴리가...?
“저…어, 사장님? 괜찮으세요? 누구한테 협박이라도 받으시는 거는 아니죠?”
밝고 활기차던 목소리가 아닌 부드럽고 안심이 되는 목소리.
그리고 천천히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녀의 손길.
눈이 살짝 뜨거워지며 무언가 나올 듯하지만 겨우 참아낸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같이 흔들리는 양옆머리가 조금은 거슬린다.
“으음, 그렇다면 괜찮으신 건데, 아으으...!”
이지혜 헌터가 곤란해할 짓을 저질러 버렸다.
소문이라도 나면, 그녀의 명성에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지만...가게 안이라서 괜찮을지도?
그보다는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것을 요구하였다.
“손…손좀 주세요….”
“네...넷!”
“그 손 말고 반대 손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건네주려 하였지만, 머리를 쓰다듬는 손은, 내려서는 안된다.
그렇게 나의 말 한마디에 반대 손을 건네며,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렇게 받은 그녀의 손을 주물러 봤다.
새삼 느끼지만, 역시 다른 세상이다.
손은 가늘고 길지만, 여성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손바닥이 딱딱하다. 무언가를 강하게 쥐어온 굳은살 혹은 피부가 찢어졌다가 치유된 흔적들.
이전 세상이었다면 여성의 손은 대부분 부드러운 느낌이지 않았을까? 제대로 만져본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다.
이렇게 험한 일을 해왔다는 느낌의 손이라...역시 헌터라서 그런 걸지도.
꾹꾹 눌러 보는데 정말 중독될 느낌이다.
겉은 딱딱할지라도 누르면 손바닥 피부 너머로 느껴지는 탄성, 그리고 따뜻한 온기.
“저어 사장님? 정말 괜찮은거 맞으세요?”
당혹스러워하던 목소리도 어느새 차분해졌지만, 나는 그녀의 손 냄새를 맡고 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나?
그보다 손바닥의 냄새라 하여도 피부의 향기? 여성의 피부의 향기지만 손바닥이라 그런지 약간 땀내도 살짝 나는 거 같기도 하다.
냄새를 맡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혀끝으로 핥아버렸다.
“햐악! 사장님?! 더러워요!!”
내 혀가 닿아서 그런 걸까?
깜짝 놀라서 손을 빼려 하였지만, 내가 양손으로 잡고 있기에 그렇게 큰 힘은 주지 않았다.
갑작스레 힘을 주면 내가 다칠 수도 있기에 그런 걸지도모르겠다.
그녀의 손바닥의 맛은...짠맛이 조금은 난다. 그리고 혀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사장님, 정말 괜찮은거 맞으세요? 어디 문제 있으면 병원이라도 같이 가요! 아니면 진짜 흑월놈들한테 협박받는 거 아니시죠? 네?!”
흑월? 아, 그 헌터들을 말하는 건가? 그렇게 큰 규모의 가게는 아니기에, 두세 명씩 모여서 오기는 한다.
매번 가게 이름이 좋다고 말하거나, 납품 이야기 등을 하는 것을 보면 채집계열의 조직 같았다.
가끔 사육장을 이야기 하는 거를보면...채집과 상업을 동시에 하는 것일지도?
게다가 나를 인지하지도 못하기에 협박 같은 것은 없다. 생각보다 평판이 좋지 못한 조직일까?
점점 눈물이 차오르는 상황에, 말로 답변하려 하였지만, 목이 메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행동으로 답변을 하였다.
“아니…네, 아니면 아닌 거겠죠…?”
당황하던 이지혜헌터는 이내 냉정해진 걸까? 등 뒤로 느껴지던 당황한 몸짓이 잠잠해졌다.
그렇게 손을 만지다가 정신을 차리니 이지혜 헌터의 손을 나의 뺨에 대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속 어딘가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들.
아, 이건 못 참을지도...
그렇게 참아오던 눈물이 한번 흐르기 시작하니 끝없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사장님 우, 우시는 거예요?”
나는 울고 있지만, 인정하기 싫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우시는…아뇨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이내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토닥여 주고 있다.
오히려 그 토닥임에 눈물이 더 나기 시작했다.
목놓아 울고 싶지만, 나는 우는 방법을 잊은 것일까? 그녀의 품에 안겨서 눈물만을 흘리며, 그녀의 손길을 느끼고 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였다.
정말이지...너무나도 따뜻했다.
…
한참은 운 것 같다. 몇 년 만일까? 아니 그보다 얼마나 운 것일까? 못해도 20분은 넘은 거 같다.
그보다 눈물과 심장의 고동은 진정하였지만 미친 듯이 부끄럽다. 얼굴에 열이 화끈한 게 눈도 부어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남에게 보여줄 만한 상황은 아닐 거 같다.
갑자기 마음에도 없는 자살 할까 라는 생각이 가득해진다.
부끄러워서 자살이라니...우으으...
그렇지 않은가?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여성의 품에 안겨서 울어버리다니, 전생이든 현생이든...이러한 상황이라면 부끄러워 죽을 것이다.
“사장님 진정하셨어요?”
“네…”
분위기에 눌린 기분이다. 그녀에게 민폐도 끼쳤기에 어떤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울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죠.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나의 머리를 토닥여 주니, 나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다시한번 그녀의 손길을 느꼈다.
“안 궁금해요?”
“글쎄요? 안 궁금하면 거짓말이지만 묻고 싶지는 않네요”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그녀는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 것일까?
그렇게 말하며 다시 토닥여 주는 게 나쁘지는 않다.
그래도…어차피 기억 못 할 것이 분명하다.
“어차피…이지혜 헌터님도 잊을 거예요... 오늘 일도 어제 일도.”
“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나의 말이 이상한 걸까? 하긴...내가 이상한 소리나 지껄이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못할 것이다.
미친놈 취급이라도 당하면 다행일것이다.
아마도, 그녀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망각의 조건도 모르겠으며, 왜 이런 상황이 오는지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그녀에게 큰소리를 쳐버렸다.
“어차피 잊을 거잖아요!! 다들 그래! 어차피 기억 못 할 거잖아!!”
차라리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면 포기라도 하지만, 가끔 나를 잊지 않는 부류는 나에 대한 기억이 단편적으로 기억하기에 더욱더 미칠 것 같다.
전생자라서 그런 걸까?
정말로 소설에서 읽던 세계의 억지력이라는 개념이 존재할까?
아니면 무언가 저주라도 걸린 걸까?
정말로 알 수가 없기에 더욱더 미쳐가는 기분이다.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말라가는 기분이다.
차라리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이러한 감정도 몰랐을까? 전생의 기억이 저주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 가게라도 열어봤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나를 완벽하게 잊지 않는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서! 그런데 아무도 없었어요! 다! 전부다! 나를 잊었다고!”
나도 놀랐다. 이렇게나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니.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잡고있는 그녀의 손을 놓지않았다.
아니 놓지를 못했다. 너무...오랜만의 사람의 온기이기에 놓지를 못하였다.
어차피 그녀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속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여러감정들...계속있다가 더 심한말을 해버릴지도몰라서 그녀의 품에서일어나려 했지만.
나를 꼭 안아주는 그녀의 행동이 더 빨랐다.
이번에는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숨이 막히지않을 정도로...
“괜찮아요…괜찮아요, 저는 안 잊을 거예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도망치려하지만, 그녀의 힘이 더 강하기에 품안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그렇기에 큰소리로 저항만 하였다.
“거짓말!!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다. 그럴 리가 없다. 다 잊었다.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을 빼면 이제는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은 없다.
언제나...언제나 그래왔다. 나라는 존재를 봐주지 않는다.
사물로서 바라보는 그 눈빛들...이제는 지쳐간다.
하지만 저런 말을 들을때마다 흔들리는것은 어쩔 수 가없다.
그래도 거짓말이다. 그녀는 거짓말쟁이다. 믿으면 안 된다...
아주 오래전 그런말을 한 사람또한 나를 잊은적이 있다.
그렇게 도망치려던 나를 꼭 안은 채 몇 분이 지났을까?
나도 반쯤 포기한 상태로 그녀에게 안겨있으니, 그녀가 천천히 입을 땐다.
“저어…사장님 혹시 [능력 과잉장애 증후군]이라는 병을 아세요?”
처음 듣는 병이다.
나랑 관계가 있는 병인 걸까?
이때까지 힘들어했던 모든 일이 병 때문이었던 걸까?
사실은 전생의 기억이니, 저주니 뭐니...나의 착각 이었던걸까?
정말로...그런 것이라면, 나는 해방될 수 있는 것일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