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14화 (14/140)

〈 14화 〉 푸근한 양 한잔(3)

* * *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본다.

그리곤 그녀의 손을 잡고 만져본다.

따뜻하다.

나의 이상한 상상과는 다른, 단순한 병이었다고 한다.

희귀병이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다.

그 말 한마디에, 무채색처럼 보이던 세상이,색이 입혀져 보이게 된다.

“그보다 사장님? 이제 약간 감이 오세요?”

그래도 무섭긴 하다.

자고 일어나면 꿈이었다는 듯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았기에.

내일 오겠다던 그녀의 손목을 잡아서 막아 세웠지만, 너무 당황해서 이상한 말까지 한 것이 문제다. 나도 흑역사 적립이라니…

그렇게 잠시 고민을 하더니 내일 같이 가는 거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부끄러워해야 할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있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남녀역전 세계면 내가 몸이라도 준다는 듯이 말하면, 여자일 경우 오히려 좋아해야 할 일 아닐까?

왜 엄하게 혼을 내는 거지? 우울증을 이해는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안된다 로 시작을 해서, 좋은 상담사 소개를 해주겠다 까지, 혼을 내면서도 안심을 시켜 주는 것이,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다.

“네, 아마도…?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시작된, 나의 능력 점검시간.

난,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전생의 소설 마냥, 헌터의 능력은 게임 시스템처럼 객관화가 될 수 있다고착각을 하여서, 능력 자체의 병 혹은 하자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거기다 능력 검사의 경우에는 100% 신뢰성을 가지기 힘들다는 것 또한 지금 알았다.

검사라 하여도 능력이 [있다] [없다] 수준으로만 알게 되며, 은신 관련은 능력 특성상 일반적인 검사로는 알기가 매우 힘 든다니, 그 말을 들은 순간 느껴지는 허탈함이란. 전생의 기억에 너무 의존한 잘못도 있다.

“사장님 아시겠죠? 이렇게 어느 정도 접촉하면, 사장님을 기억하게 돼요”

“네, 넷! 알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으셔도…”

배움을 받는 학생이 된 기분이다.

일단 이지혜 헌터와 같이 알아낸 나의 능력의 특징은 대강 이렇다.

1. 첫 인지 후 30분~1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잊힌다. 이 현상을 망각 현상이라 칭한다.

2. 나에 관해 잊어도, 사람마다 망각하는 내용과 망각의 속도가 다를 것으로 추측한다.

3. 이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가, 피부접촉이 현재로써 유일한 방법이다.

4. 첫 피부 접촉 이후, 1번 항목에서 추정하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잊히기 시작한다.

5. 감지계열의 경우, 망각을 저항하는 것으로 추측한다.

6. 헌터의 경우 어느 정도 저항을 하지만, 천천히 잊는 거로 추정되며, 그 기간은 약 1주일 내외

여기서 추측한 내용은, 이지혜 헌터가 공격계열의 능력이기에 가설로서 추측한 것이다.

역시 헌터경력은 무시하지 못할 경력인 것 같다. [헌터답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헌터직업을 가진 사람 대부분은, 무엇이든 냉정하게 분석한다고 하는데, 이지혜 헌터는 공격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능력에 관해서 매우 상세하게 분석을 해냈다.

더욱더 상세한 분석은, 내일 총괄팀장에게 부탁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진짜 헌터의 모습을 보니, 과거의 나 자신이 떠올라서 더욱더 부끄러워진다.

분석 중 문제가 된 것은 [능력 과잉장애 증후군]으로 인해서 은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변질한 상태 추측된다고 한다.

그래서 망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라며 설명을 해줬다.

“아시겠죠 사장님? 이렇게 손바닥에 닿기만 해도, 제 머릿속의 안개 낀 듯한 느낌이 사라지는 게, 아마도 현재 유일한 망각을 해제하는 방법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아니…그렇게까지, 안 딱딱해지셔도 괜찮은데…아우…”

능력 해제의 조건이 어처구니없다. 피부접촉으로 은신 해제라니.

난 정말이지 바보 아니었을까 싶다.

전생에 기억에 얽매여서, 이상한 저주니, 억지력이니 같은 생각만 하고, 나를 잊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도망만 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X신 짓이었다.

애초에 약방 사장님과 그 딸인 수아도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어주며 먼저 다가왔는데, 그들도 나를 언젠가 잊을 거라 착각해서, 다가가오면 도망치는 생활을 반복해 왔다.

약방 사장님 외에도, 상가에서 만나는 다른 헌터들도… 감지능력이 아무리 희소한 능력 중 하나라고 하지만, 회복이나 은신 계열만큼은 희소하지가 않다.

그렇기에 나를 잊지 않는 손님들도 몇몇 존재할 것이지만, 그저 나의 착각으로 인해…그들 또한 나를 무시하게 된다는 착각에 빠진 내 잘못이다.

다가가도 언젠가 혼자가 될 것이라는 착각 하나가, 나의 인생의 저주 그 자체였다.

이제는 무섭지 않다…아니 조금은 무섭다. 내가 먼저 다가갈 용기가 안 날 뿐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라고 드는 생각이 무서울 뿐이다.

그렇게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허탈하면서도 무섭기도 하다.

그보다 이지혜 헌터가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지, 주저하듯 고민하다가 말을 먼저 꺼낸다.

“저어…내일 같이 본사에 가신다 하셔도…오늘 밤은 어쩌죠? 여기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까요?”

아…이런 생각지 못했다. 잠은 어디서 자야 하는 걸까? 아무리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무섭다. 혼자 있는 것 자체가 무섭다.

“아, 생각을 못 했네요…죄송합니다.”

“어음…역시 가게에서라도 밤을 새울까요?

그건 곤란하다. 나의 억지로 인해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는데, 대접도 못 하다니 안될 말이다.

“그, 그럼 일단 제집에 가요!”

“네헤엑!?”

남녀역전 세계면, 남자가 먼저 초대하면 좋아할 게 아닌 걸까? 왜 저렇게 놀라지?

“술 좋아하시죠? 집에서 쉴 겸, 술 같이 마셔요!”

“아, 아니!! 사장님 아까도 말했지만 또!!! 남자가 그러면 안 돼요! 아무리 우울증 등으로 힘드신 것 … . “

아까와 같은 이유로, 남자가 몸가짐을 조심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혼내기 시작한다.

아니 왜? 이 상황이면 여자에게 있어서 로망인 상황 아닌가? 아…내가 문제인 걸까? 키도 작고 볼품도 없기도 하고…역시…

“역시…제가 매력이 없는 걸까요…? 그러니까 망각되기 쉽기도하고…”

“아, 아니! 왜! 이야기가 매력과 능력으로 빠져요!? 품행 이야기예요!”

품행이든 뭐든 결국 내가 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아아악! 사장니임 좀! 들으시라고요!!”

역시, 이번 생에서는 남자치고도 작은 키와 능력의 장애로 인해 존재감 자체도 없으니…역시 나 같은 건…

“정말 매력 없거나 그런건아니에요!! 쫌! 믿어주세요!”

“장난이에요”

“그러니까 매력의 정의는! ...예?”

순간 나의 말 한마디에, 무슨 말이냐며 멈춰서는 모습이 멋있는데 귀엽다? 알 수 없는 감정이긴 하다.

사실은 알고 있다.

알지도 못하는 남녀가, 갑작스레 하룻밤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방에서 지내다니. 사회적 규칙이 견고한 현대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이면 쉽게 결정하기 힘든 일이긴 하다.

그래도, 정말 무섭다. 정말 이 모든 것이 꿈일 까봐 무서운 거다.

“많은 것을 알려주셨지만 그래도 무서워요, 그러니까 부탁할 게요”

“아… 그, 저, ... … 하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손을 잡고는, 나의 마음을 전해본다. 정말 매력이니 남녀관계니 이러한 문제가 아니라, 그냥 혼자 남겨지는 것이 너무나도 무섭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의견을 수긍해준 이지혜 헌터는, 전화로 자신의 팀원들에게 알려 두겠다 말하며 전화를 하는데, 팀원들도 목소리가 큰 것일까?

휴대전화에서 귀를 자주 때는 것이…천칭입사 조건에 [목소리가 커야 할 것]이라는 항목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남의 전화를 엿듣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기에, 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제의 일은 너무 바로 앞에서 들렸기 때문에 불가항력이었다. 난 그렇게 예의 없는 놈이 아니다.

“하아… 일단은 외박한다고 말해뒀어요, 정말 괜찮겠어요? 외간 여자를 집에 들인다니 역시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좀…그렇잖아요”

같이 밤을 지낼 장소에 관해서 상의한 결과, 내 집에서 지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이지혜 헌터는 숙소생활이라 기각되었으며, 모텔 같은 곳도 불가능하다.

애초에 A급 헌터정도면 준 연예인 취급이라서, 모텔에 들어가는 현장이 포착되면 매스컴에서 ‘신난다!’ 하면서 반응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결국, 소거법에 따라 내 집만이 남았다.

“윤리고 도덕 이전에 부탁할게요… 정말 아무 일 없도록 할게요.”

내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이용하는, 나쁜 놈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말을 들은 이지혜 헌터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더니, 결국 허락의 말을 해주었다.

“하아… 자꾸 한숨만 느는 거 같은데, 이번만이에요…?”

“그것만으로 감사해요”

그렇게 이지혜 헌터와 같이, 가게 내부를 간단히 정리한 후, 가게 바깥을 나가려 한다.

“그보다 좋아하시는 술 있으신가요?”

“어, 특별히 싫어하는 것도 없으니 뭐든 좋아요”

가게 문의 팻말에 [다음 주까지 쉽니다] 라는 팻말을 걸어 두면서, 그녀의 술 취향에 관해 질문을 해보았다. 다행히 싫어하는 술은 없는 것일까?

“그럼, 어제의 술은 어떠셨나요?”

“어…러스티 네일? 이었죠? 단맛이 나쁘지 않았어요, 다음에도 마실 만한 맛? 단맛이 좋았아요!”

“그래요? 그럼 그쪽 계열로 드려야겠네요”

“아니, 사장니임, 하룻밤같이 자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왜 술이야기로 빠져요?”

정말 곤란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나는 술이 없으면 잠을 못 잔다. 흔히 말하는 알콜 의존증이다. 혼자 마시기는 심심하니, 이지혜 헌터랑 간단하게 마시는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그녀의 주량은 대충 알았으니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같이 마시면 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을 하는 점에서, 순간 깜짝 놀랐다. 만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은인 같은 사람을 놀려먹으려 하다니, 곤란하다. 그래도…나는 이제, 혼자라는 공포에서 해방되는 걸까?

이지혜 헌터를 조금 놀리고 싶은 생각과, 나는 정말로 안 잊히는 걸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까? 라는 생각 등을 하면서 가게 문을 나선다.

“때마침 나오시네! 이거이거, 이지혜 헌터님 아닙니까?! HC 신문에서 나왔습니다! 인터뷰 좀 되겠습니까!?”

문을 나서자마자 갑작스레 들이대는 신문기자가 아니었다면, 좀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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