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15화 (15/140)

〈 15화 〉 푸근한 양 한잔(4)

* * *

가게를 나서니,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기자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 것 같다.

기자의 모습은, 날씨에 맞는 편안한 복장인 평범한 동네 아줌마? 그렇지만 기자라는 느낌이 나는 이유는 자신의 소속을 말하면서 기자라고 한 이유도 있지만, 스마트폰의 녹음 앱을 켠 채로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우와 아… 이런 장면은 처음 본다. 그보다 기자는 다들 정장을 입는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간단한 이유라도 좋아요~ 아, 이런이런 자기소개를 까먹었네~! 정아연 기자라고 해요. 가게에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해서 그런데…이거, 지금쯤이면 천칭의 본사에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말이죠~ 이런 장소에 있는 게 수상하지 않을까요오~? 정말이지 특종의 향기가 나니까 참을 수가 없네요~ 이 영광을 같이 나누는 건 어떨까요!”

말투가 참…유들유들한 느낌이 들면서도, 짜증날 화법을 구사한다. 직업 병인 걸까, 성격이 그런 걸까?

그와 동시에 나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헌터 이지혜 … 일반인과 스캔들!]

[(특집)문 공략 실패 후 문란한 생활!?]

등등…

나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하며, 이지혜 헌터의 손을 꽉 잡았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너무 애 같은 걸까?

그녀의 표정 또한 굳었다. 역시 상위권 헌터들에게 가장 귀찮은 것은 기자들일지도 모르겠다.뉴스에서도 자주 언급될 정도로 기자와 헌터의 관계는 나쁘다. 헌터는 언제나 기삿거리가 넘치기에 기자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헌터들이 쫓아내도 어떻게 해서라도 취재를 하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이란…

“인.터.뷰.할 기분 아닙니다."

굉장히 딱딱한 목소리다. 그래 내가 알던 이지혜헌터의 매스컴에서의 모습이, 바로 이런 날카로운 모습이다. 이때까지 보여주던 부드러움과는 대비되는 날카로움, 프로는 프로이다. 이런 건가?

그렇게 목소리에 날을 세우면서까지 말을 하여도 기자는 물러설 느낌도 없다. 언제나 그래 왔다는 듯이…

[거절 같은 단어는 모릅니다] 라는 사람처럼 질문해온다.

“아~거, 쪼잔하게 구실까?~ 네에~? 문 공략을 왜 실패했는지 정도만 알려주셔도 괜찮은 데에~?”

어? 미묘하게 다른 질문인데?

첫 질문과 조금 다른 질문이 왔다. 정말로 스캔들 관련 질문이 올 줄 알고 긴장했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이 대하는 사람들이 넘쳐났기에…이지혜 헌터가 나를 기억해주며, 나의 능력이 무엇인지 윤곽 정도만 알아낸 정도이지만, 그것만으로 너무 기뻐서 현실을 잠깐 잊은 거다.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은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가게에서 나오기 전까지 한껏 들떠 있던 모습에서, 약간 풀이 죽어서 그런 것일까? 손으로 살짝 쥐는 신호로 안심을 시켜주려 한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이제 능력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게 된 거잖아요?”

그렇게 고개를 돌려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

정말이지…여자, 아니 남자 여럿 사귀고 있어도 이해가 갈 만한 성격이다. 자신의 사람 혹은, 호감을 느낀 상대에게는 장난스러우면서도 매너가 넘치다니, 지금 사귀는 상대가 있다 해도 믿을 수 있다. 아니 상위 헌터이기도 하고, 상대가 없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대놓고 말하면 너무 티 나는 행동이 아닐까?

“아니, 왜 얼굴을 돌리시는 걸까~? 말 상대도 하기 싫은 걸까 나~?”

응? 고개를 돌려서 대화를 피한 게 아니라 나에게 말을 건 것일 텐데…정말이지, 성능 하나는 확실한 능력이다.

이지혜 헌터의 생각으로도 분명 내가 인지되지 않을 테니까, 혼잣말하는 정도로 보일 거로 생각했을 거다.

그렇게 기자는 이지혜 헌터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지적해야 했다. 하지만 기자의 말로 추측을 하면, 나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며, 이지혜 헌터가 말을 한 것이 아닌 고개를 돌린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렇게 이지혜 헌터와 나는, 눈을 마주치며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우리 둘 다, [은신계열이 이 정도로 변질하여 있다니] 라는 비슷한 생각 중일 거다…아마도?

“정말…놀랍네요, 단순한 은신 계열인 줄 알았는데…망각이랑 인지 저해까지라니, 이거 진짜 지혜 언니한테 어떻게든 물어봐야겠네요. 조건 없이 스카우트 하고 싶어질 정도의 능력이라니…”

준 대기업 취급받는 천칭의 스카우트라니, 몇 년 전이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보다, 인지 저해라… 분명 정아연 기자는 처음에 가게에 들어간 이유를 묻긴 했는데, 어느 순간 며칠 전에 있었던 문 공략의 실패 요인으로 질문의 요점이 바뀌었다. 기자라면 질문을 한번 정하면 끝까지 캐내려 할 텐데…[왜 이런 교외의 가게에 있는 것인가?], [공략 실패와 관련 있는가?], [혹시 애인 때문?]으로 연결되는 질문의 공세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언급 정도만 얻으려 한다.

그렇게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버렸다.

“아, 앗! 사장님 그렇게 하면…!!”

그리 큰 장난은 아니다. 정아연 기자의 눈앞에 손을 흔들어 봤을 뿐이다.

지나가던 몇몇 헌터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상하게 보고 지나가지만, 정아연 기자는 아마도 일반인 쪽인 거 같다. 이걸로 확신이 섰다.

“저~기~요~? 어디 소속이라고요?”

나는 이러한 상황에 익숙하다. 내가 없다는 듯이 행동을 하지만, 질문하거나 물건을 건네는 등의 상호작용이 일어날 경우, 나에게 답변 혹은 그에 맞는 행동을 해주는 경우를 말이다.

“아 소속 말입니까? 헌터 클럽 뉴스의 비정규직 외부 취재팀 소속입니다. 아~그래서! 이지혜 헌터씨 빨리 말 안 주시죠?? 저 시간 많이 없거든요~? 기사를 막 써드려요? 악성 댓글 한번 달려 보시고 싶죠?”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정말로 웃음만이 나온다. 알기 전에는 그저 공포 그 자체였는데… 정말 하루하루가 말라 죽어가는 기분을… 술로 버텨 온 거 같은데… 허탈함 또한 느껴지긴 하다.

옛날 동화 혹은 설화에도 자주 나오는 이야기 아닐까?

사실은 별거 없는데, 이야기의 대상이 지레 겁먹어서 더 큰 일을 만드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알고 나니 정말…허무할 정도로 기운 빠지네요.”

“그래도 굉장한걸요? 게다가 능력과 신체능력은 영향을 받으니, 신체 능력도 굉장할지도 모르잖아요? 아니 그보다 일단 기자 놈부터 처리해야겠어요, 정말 거머리 같은 년들 지긋지긋하네…”

신체능력이라…솔직히 모르겠다.

이미 헌터라는 직업을 포기했기에 멀게만 느껴지는 말이다.

“저, 사장님? 소, 손 좀…”

혼자서 짜증 내고 있는 기자를 무시한 채로, 나에게 손을 놓아 달라고 부탁을 해온다.

나도 모르게…손에 힘을 주고 있었나 보다…그래도 손 놓기는 싫은데.

그렇게 주저하는 나에게 이지혜헌터는 어린아이 달래듯이 말을 걸어준다.

“괜찮아요, 문제없을 거예요, 아까도 실험을 해봐서 알고 있잖아요? 저년만 처리하고 제가 먼저 손을 건네어 드릴게요, 그래도 제가 잊을까 봐 걱정된다면…음…사장님이 먼저 손을 잡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이지, 헌터답지 않은 성격이다. 천칭이 유독 그런 성향일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인 헌터들의 이미지는, 돈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단인 인식이 크며,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의 수준도 폭행, 강간, 협박이 애교일 정도다. 만약 이지혜 헌터가 아닌 다른 조직의 헌터에게 걸렸다면, 인체실험부터 시작해서…상상도 하기 싫다.

그렇게 손을 놓아주니, 이지혜 헌터는 이내 기자에게 어깨동무하더니 남들에게는 잘 안 들릴 만한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한다. 나에게는 약간씩 들릴 목소리긴 하지만, 헌터가 협박하는 상황에 굳어버린 기자의 목소리는 개미만 하기에 들리지도 않는다.

­거 신입 비정규 계약직 기자 같은데 이 바닥에서 얼마나 일 했느냐?

­왜 헌터 아무나 잡고 취재하면 될 거 같았냐?

­내가 협박? 재밌네! 계속 말해봐

­천칭이 사고 안 치니까 마냥 순둥해보이지?

­야, 우리가 왜 조직명을 천칭이라 칭했는지 보여줘? 처신 잘하라고

등등

생각보다 무서운 이야기가 오간다.

“자~ 아시겠죠? 기자님? 잘 알~이해했다고 믿어요? 나쁘지 않은 ‘즐거운’ 대화였죠?”

“네? 예!! 옛! 이해했습니다!! 그…그럼!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황급하게 도망가는 기자.

그런 기자를 당연하다는 듯이 한심하게 바라보는 주변 헌터들, 확실히 헌터들은 기자들을 싫어한다.

그보다 손을 놓은지 몇 분 되었다고, 벌써 손이 허전하고 무서워진다.

당연히 잊었을 리 없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잊었을까? 기억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 만이 한가득하다…

그렇게 기자의 도망가는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던 이지혜 헌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머리로 알아도 마음은 이해 못한 다라…씁쓸하다.

이지혜 헌터는 이내 뒤로 돌아서, 나의 눈높이에 맞춰 약간 허리를 숙인 채로 손을 건네어 왔다.

“자아, 사장님? 약속대로 손…?”

어…?

그렇게 몇 번이고 눈을 깜빡여 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지혜 헌터의 눈을 봤다. 이 사람 왜 이러지 하는 느낌의 표정이다.

아마 그녀는 알기 힘들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감정을 느꼈는지를.

어제만 하여도 담배와 술을 하면서 신세 한탄만 한 거 같은데…

그렇게 이지혜 헌터의 손을 잡아보니, 첫 느낌 그대로다. 헌터답게 굳은살이 박인 손 하며 약간의 흉터가 느껴지는 손.

그래도 나에게 있어서 제일 따뜻한 손이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이끌며 상가 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정말 오늘 하루 여러 일이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쁜 일만 가득했다. 물론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기쁜 일이거나, 힘든 일, 슬픈 일, 혹은 다시 혼자가 되어버리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은 아닐 것이다.

“자! 어서 가요, 집에 있는 정~말! 많은! 술들을 보여 드릴게요! 같이 마셔요! 네!?”

“아니! 사장님! 아까도 말했지만 왜 마시는 게 전제예요!?”

정말 나쁘지 않은 하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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