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푸근한 양 한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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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노랗게 노을 져가는 것이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길
그렇게 사장님의 손에 이끌려 온 곳은. 가게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주택가다.
깔끔하게 정리된 거리와 연식이 있어 보이는 건물들, 이 수준이면 중산층이라 말하여도 될 정도일까? 모호한 경계에 있는 듯한 느낌의 거리풍경이다. 게다가 치안 또한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신기한 듯 거리풍경을 돌아보던 나에게, 사장님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온다.
“으음, 역시 A급 헌터 기준으로 보면 영 아니죠?
“아! 아뇨!”
그래도 남자 혼자 이런 곳에 산다는 것이 신경이 쓰인다.
“나…나쁘지 않은 곳이에요! 그래도 치안이 좀 신경 쓰이네요. 괜찮았던가요?”
질문하고 ‘아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질문에 답변하려다, 곤란해하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확실하다.
“으음, 뭐 처음엔 정말 치안이 좋은 줄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능력 탓일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마도 괜찮을 거예요. 이젠 알고 있으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그렇게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을 해주지만, 복잡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반증하듯이 꼭 잡은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괜히 입이 방정인 거 같다.
“아마…능력 때문에 범죄 같은 일을 겪지 않은 거겠죠? 잊힌다 해도 헌터라면 안 잊겠지만, 동네 자체가 중상위권 헌터 지역이다 보니, 돈 잘 버는 사람들이 범죄 저지를 이유도 없고…범죄 당할 일은 없겠지 하고 지내온 것도 크네요. 중요한 거는 망각의 조건을 몰랐을 때는 그냥 단순히 범죄가 없구나 싶었는데 역시 틀린 걸까요?”
큰일이다…사장님의 말이 많아졌다. 딱 지뢰를 밟은 듯한 그 기분. 혹은 지나 언니가 형부한테 말실수 한번 했다가, 후폭풍으로 인해 팀 전체 분위기가 끝장났을 때의 분위기…?
“아…! 그렇지는 않아요!! 이 정도 동네면 확실히 경범죄는 없을 거예요!! 아니 그래도 골목길만 안 들어간다 면이지만!! 아니 그래도!! 정말 안전해요!!
정말로 말하면서도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있다.
정말로 이성 앞에서는 혀가 꼬이기 시작할 거라고 말해주던 선배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이성과의 대화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인 의미로 말이다.
“이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아마도?”
갑작스럽게 조용해지는 분위기.
서로의 분위기는 어색해졌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노을 지는 태양을 등지면서, 언덕길을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신선한 경험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다 집에 돌아가는지 저녁이 야기를 하거나, 아버지와 같이 장을 보고 오는 길인지 학원 가방을 맨 채로 장바구니를 들고 귀가하는 풍경과 까마귀가 까악 까악 거리는 울림까지, 생각보다 이러한 장소가 아직도 남아있었구나 싶다.
역시 교외 지역이라고 무시할 것은 안 되나 보다.
…음…이거…
새삼 느끼지만, 데이트 아닐까…?
“사장니임? 역시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는 게…?”
“싫어요. 아니 싫어.”
1초의 고민도 없이 거절, 단호박이다.
“에이, 그래도 사귀는 사이도 아닌…”
“좋아요, 사귀어요.”
잠시간의 침묵이 있었다.
응? 방금 뭐라고 했지? 사귀자고? 귀가 잘못됐을 리는 없다.
하아…역시 능력 과잉장애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 다수가, 정신병에 깊이 연관이 있다고 하던데 사장님도 그런 쪽일까? 강박증 비슷한 무언가? 이런 쪽은 전혀 모르겠다.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역시…우울증 관련일까?
사귀어요…나쁘지 않은 단어지만…우울증이라는 약점을 이용하는 듯하기에 승낙하기는 싫다.
“항ㅡ복, 항복입니다. 잘못했어요.”
“에~ 전 정말 괜찮은데.”
나의 반응에 장난기가 돌아온 것일까? 옆을 봐주며 살짝 웃어준다.
가게를 나온 뒤부터 웃음이 늘어난 것 같은데… 찰거머리 같은 기자 년을 적당히 처리한 후부터 그런 거 같다.
그러다 어느 한 건물을 지나갈 때, 쥐고 있던 사장님의 손이 나의 손을 살짝 당긴다.
“여기예요.”
약 5층 높이의 실거주 공간은 작아 보이는 건물이다. 입구만 있으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것이…보안 괜찮으려나…?
그렇게 사장님의 손길에 이끌려 올라간 5층. 정말 평범한 현관문이 눈앞에 있다.
“그래도 신경 쓰이기는 하네요, 타인을 들인 적은 없다 보니…”
“역시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하지만 나의 말은 그대로 무시당하였다.
끼이익 하고 열리는 현관문. 관리가 안 되고 있는지 기름칠이 조금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집안의 모습은…음, 으으음…흔히 보는 풍경 같은 느낌? 독신자 숙소에서 흔히 보는 그런 풍경 말이다.
전체적으로 정리된 듯이 안된듯한 그 느낌? 딱 그런 말 있지 않은가? 방주인만이 물건의 위치를 안다? 라는 느낌으로 어질러진 방이다.
“역시 더럽죠? 잠깐 치울까요?”
“아뇨아뇨!! 괜찮습니다아앗!”
쓸데없이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너무 긴장한 걸지도.
역시 사장님 성격은 여성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남성이면 이러한 상황에 방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고들 하던데, 가끔 남성스러울 상황에서는 무감각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여성 같아 보일 때도 종종 보인다. 옆머리도 상당히 길기도 하고, 조금만 옷과 얼굴을 꾸며보면 이거…?
그보다 벽 한 면을 차지하는 다양한 술병들을 보면 술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다.
일반 술과 사각형 술병으로 시작해서, 다양한 장식이 들어간 병 혹은 유리 인형인지 술병인지 구분이 안 가는 술병, 도자기로 책을 만든 듯한 술병까지. 정말 모르는 술이 가득했다.
“예쁘죠?”
집에 들어온 이후, 자신의 영역이라 안심한 걸까? 잡았던 손을 놓아주고선 앉을 자리 확보를 위해서 방을 약간 청소하고 있다. 대부분 책과 일회용 용기, 술병들뿐인데…마신 양이 확실히 많다.
그리곤 내가 술병을 신기하게 바라보자 디자인이 어떠한지 물어온다. 확실히 고가의 술 답게 아름답긴 하다.
“네, 술병도 예쁜 병이 많네요.”
“예쁘기만 하지 보관하기 정말 귀찮아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예쁘면 좋은 것 아닐까? 남성들은 이런 거를 좋아하지 않나?
술은 고가이기에, 일반 명품들처럼 병도 예쁜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요? 최초의 사각 유리병이라 불리는 조니워커처럼 모든 술이 사각이면, 눕혀서 책장에 보관하면 공간이 확 줄어들 텐데…아니 장식이 아닌 마시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사각 병으로도 팔아 줬으면 한데 말이죠? “
“아하하…술을 정말 좋아하시는 거 같네요”
직업 때문이 아니라 평소에도 술을 좋아하는 걸까? 나름대로 진심이 담긴 듯한 말이다.
술이라…평소에 마시는 술은 싸고 양이 많은 술만 마셔서 그런지, 이런 쪽은 정말 모르겠다.
“네 좋아해요, 힘들 때 마시는 것도 있지만, 평소에 마시고 취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잖아요? 조금 격한 파도를 헤쳐나가는 배의 선실에 누운듯한 느낌? 아니면 흔들의자를 조금 빠르게 흔들거리며 앉은 느낌일까요? 뭐라 표현하기가 그렇네요…”
확실히 술을 마셔서 취하면, 머릿속을 흔들거나 몸의 감각이 조금 무뎌지는 때도 있는데, 저런 표현은 신기하다. 바텐더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저녁은 어쩌지…? 손님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사장님을 보아하니 밥 생각이 없으신 듯하다. 몸이 작은 편이셔서 식사량도 적으신 걸까?
어제 일의 추태에 대해 사과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어제 점심부터 아무것도 안 먹다가 아침 겸 점심을 정말 간단하게 샌드위치 몇 조각 정도로 끝내버려서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 정말 배고프다. 역시 실례지만 어차피 곧 먹을 것인데 지금 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사장님에게 저녁밥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기로 했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배달 음식이 좋을지도?
“저어…사장님 혹시 저녁밥…”
“앗…”
사장님 표정이 순간 굳었다가 나의 시선을 회피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곤란한 일이 있는지…음, 만화적 표현을 빌리자면 땀방울이 비 오듯 흐르는 그러한 분위기?
“이…인스턴트라도 괜찮으세요?”
“네…?”
집에서 해 먹는 거는 민폐이기에 배달음식을 생각했는데 인스턴트라니?
“그…저, 저… 집에서 먹을 만한 게 인스턴트식품 뿐이라서요…?”
“네에에에에?!”
가게에서도 느꼈지만, 사장님은 남성치고 여성스러운행동이 자주보인다.
사장님의 체격이 유독 작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옛날부터 쭉 이러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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