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푸근한 양 한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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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양이라 하면, 어떠한 이미지인가?
털이 많다. 흰색이다. 순하다. 정도의 이미지 아닐까?
애매모호한 말을 하니, 정말 궁금해하는 표정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리큐르와 우유를 꺼내어 냄새를 확인해봤다.
다행히 상하지는 않은 듯하다. 리큐르는 도수가 낮은 술이 많기에, 금방 상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냉장 보관 해야 하는 술은 낮은 온도에서 보관을 해둬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보관해도 맛이 없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우유의 경우는단순히…유통기한이 하루가 지났기에 확인한 거뿐이다. 절대로 상하지 않았다…냄새가 괜찮으니 문제없겠지?
“사장님, 정말 양 한잔이 아니라, 술 이름인가요?”
“네, 술 이름보다는칵테일이랍니다.”
주방까지 따라온 이지혜 헌터는 정말 양을 갈아서 마시려고 한 줄 안 걸까? 당연하게도 칵테일이다.
집안이…나 혼자 살 때는 좁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지혜 헌터가 방문하니, 새삼 집이 작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지금 둘이서 있는 주방조차 좁게 느껴진다. 솔직히 발하나 잘못 옮기면 이지혜 헌터에게 안겨버릴 듯한 거리감이다.
역시 원룸이라서 그런 걸까? 두 명이 있으니 좁게 느껴진다.
그냥 안겨버릴까?
“음, 정말 술 좋아하시나 보네요…”
“그냥, 매번 같은 술 마시다 보니, 질려서 칵테일을 시작하게 됐답니다. 그렇게 정신 차리니 가게까지 열어버렸고…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뒷사정이 많은 가게네요.”
그리고, 술을 좋아한 다라…그러고 보니, 술만 마시다가 너무 질려서 칵테일을 시작한 것이, 가계를 오픈 한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이지혜 헌터 덕에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당시에는 우울증인지, 다른 정신병인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무섭지만,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고, 유산에 의지하면 언젠가 잔고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에 가장 자신이 있고, 좋아했던 커피와 술을 중심으로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 일이지만, 나의 증상을 알고 나니 이제는 추억처럼 느껴진다.
이지혜 헌터는 손님이기에 방에 있어도 괜찮지만, 주방까지 와서 나의 일을 돕겠다고 옆에 서 있으니…막상 일을 도와달라 해도, 이 이상으로 무엇을 지시할지는 모르겠다.
“일단은…저기 저 컵처럼 보이는 기계 있죠? 거기에 우유 좀 담아 주실래요?”
“검은색에 손잡이 달린 저 포트인가요?”
“네, 그거에요, 뚜껑을 열면 안에 거품기 같은 스프링이 달려있을 거예요. 없으면 싱크대에 건조 중일 테니까 말해주세요.”
“아, 안에 들어 있어요. 우유를 넣으면 될까요?”
“네, 벽면의 MAX라 적힌 선까지만요. 그 이상은 넘치니까 안 돼요.”
차가운 우유를 따뜻하게 만들기 위한, 스팀밀크 머신이다.
마음 같아서는 가게에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스팀밀크를 치고 싶지만, 그러기엔 머신값이 너무 비싸다. 업소용이다 보니 기본단위가…백만? 최근에는 가정용도 늘고 있다지만, 가정용의 경우 스팀 보일러의 크기가 작기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업소용과 비교하면 에너지 효율이 좋지도 않고, 압력도 상대적으로 낮다고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스팀밀크 머신또한 만능은 아니다. 진짜 스팀이 아니라 회전으로 우유를 뎁히면서 거품을 만들어서 그런지, 거품 입자가 너무 거칠기 때문이다. 그래도 라떼 아트를 포기한다면 마실 만한 물건이며, 스팀으로 거품 내기보다 훨씬 간편하다.
“사장님, 다 넣었는데 무엇을 할까요?”
“거기 파란 버튼 말고, 붉은 버튼 보이죠? 그거 눌러 두면 돼요. 음, 그리고 저 대신 찬장에 든 컵 하나만 빼 주실래요? 네 저거.”
평소에 발 받침대를 사용해서 찬장에 든 컵을 꺼내기에 그녀에게 지시하는데…기분이 오묘하다. 전생에서 만약 결혼까지 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주방의 선반에서, 곁눈질로 슬쩍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의 얼굴도 약간 붉은 기가 감돌며 행동 또한 머뭇거리면서 무엇을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
음…새삼 느끼지만, 역시 다른 세상이다.
머뭇거리는 이지혜 헌터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아보니, 역시 따뜻하다.
“앗, 사장님…? 아하하…”
“따뜻하네요, 에헤헤…”
여기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남자가, 본인의 무릎 위에 앉아서 가슴에 기대거나 손을 핥거나, 냄새를 맡거나 하면서, 오열을 토하고 난 뒤에 남자가 자취하는 집까지 온 다음, 하룻밤을 같이 묵는다? 이거를 역전이 아닌 세상으로 생각해보자.
어우…이거 완전, 그린라이트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남녀역전 세상일지라도 나는 나답게 있고 싶다.
내가 굳이 이세상의 남성에게 맞출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남성이니까 호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바라봐 줬으면 하다.
그래도 나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매력이 없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마른 몸에 작은 키, 이지혜 헌터가 지적해주지 않았다면, 자각도 못 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생각을 하는 사이에 다른 재료는 준비가 끝났으니, 뜨거운 우유가 필요하다.
그보다 손을 놓기는 싫지만,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 천천히 손을 놓으니 이지혜 헌터도 아쉽다는 듯이 천천히 손을 내렸다.
음, 조금만 더 잡고 있는 게 좋았으려나?
“흠, 흠! 전원 넣은 거 회전이 멈췄으면 저주세요. 그 뒤는 별거 없으니까 방에 계셔도 돼요”
서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얼굴이 너무 화끈거린다.
“아, 네…넷!”
역시 그녀도, 이러한 상황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처음에는 도우려 왔다가, 손이 잡혀서 어찌할 줄 몰라 하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니 바로 빠지는 것을 보니...
그보다 방 안은 괜찮을까? 조금 더러울지도 모르겠다. 빨랫거리라든지 마시다 남은 병들, 우울증약까지…아, 약 치우는 것을 깜빡했다. 못 봤겠지?
그래도, 먼저 덮치거나 건들지 않는 것을 보면, 이런 일에는 숙맥이거나, 역시 내가 매력이 없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 난 언제나 괜찮은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지혜 헌터는 나에게 있어서 은인이다. 그녀가 원한다면, 나의 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는 무엇이든 해줄 용의는 있다.
일단은, 칵테일부터 만들고 생각하자.
그렇게 간단히 유리잔을 씻고, 건조할 시간은 없으니 키친타올로 물기를 닦아낸다. 깨끗한 행주? 나쁘지는 않지만…가게에서나 사용하지 내가 사는 집에서 활용하기는 귀찮다.
유리잔과 함께 재료를 나열해보았다.
위스키, 베일리스, 드람뷔, 우유 이 정도면 충분하다.
위스키도 솔직히 고민을 많이 해봤다. 또 블랙보틀을 할지, 발렌타인을 할지, 테네시 위스키 계열을 쓸지…새삼 느끼지만, 나 개성이 넘치는 칵테일을 좋아하는 걸까? 그래도 오늘은 순한 맛으로 결정했으니 임페리얼 12를 꺼내어봤다.
흔히들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술을 저평가한다. 위스키는 맛 이외에도 브랜드를 즐기는 사람이 존재하기에 나 또한 인정하지만, 칵테일이라면 말이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특색이 있는 칵테일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그냥 싼 술을 넣으면 된다. 그래도 좀, 칵테일을 있어 보이게 하려면, 임페리얼만 한 술이 없기도 하다.
가장 큰 이유는 무난한 맛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발렌타인과 비슷한 향을 내는 특징이 있다. 애초에 블렌딩하는 사람이 발렌타인을 블렌딩 하는 사람과 같기에 비슷한 맛을 낸다. 발렌타인은 오묘한 맛과 향이 존재한다.
나무 훈제 냄새와 향신료 향은 분명히 나는데 맛이 약간 달다. 그리고 삼킬 때 올라오는 느낌은 매우…뭐라 해야 할까? 그냥 음료수를 마시는 느낌? 블랙보틀과는 다르게 무언가 향이 폭발적으로 올라오는 느낌은 없지만,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임페리얼 또한 비슷한 맛을 내지만, 발렌타인보다는 향이 조금 옅은 이미지가 있지만, 마시기는 편하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마시기 쉬운 술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왜 발렌타인을 안 쓰고 임페리얼을 쓰냐고? 단순한 이유다. 발렌타인보다 ‘배로 싸다’ 칵테일은 좋은 술 쓸 필요도 없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발렌타인을 칵테일에 넣기는 아쉬우니 대용으로 쓰는 술이 임페리얼12인 거다.
사실은 어차피 내가 마실 거, 이세계의 재료로 만든 위스키가 제일 싸며, 리터로 판매하기에 그것을 넣을까 했지만, ‘날도 날인데 그건 좀…’이라는 생각이 너무 들어서, 차선책으로 가장 좋은 위스키가 무엇일까 생각한 결과가 이 술이다.
자, 푸근한 양 한잔이면 어떤 술일까?
사실은 웜 울리 쉽이라는 칵테일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름이란, 붙이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뭐긴 뭐겠어, 그냥 흰색의 따뜻한 칵테일이면 되는 거지.”
칵테일 이름을 부르는 것부터 느낌이 있지 않은가?
푹신하고 따뜻하게, 정말 순수한 의미로 그녀와 같이 자고 싶어서, 웜 울리 쉽이라는 칵테일의 이름을 빌려서 ‘푸근한 양 한잔’을 같이하자 한 거였다.
혼자 자는 것은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희망을 알게 되니 오히려 더 무서워졌다.
거짓말처럼 자고 일어나면, 모든 일이 꿈이었을 거 같기에 그녀의 손을 놓치지 못하겠다.
최소한, 일어나 있을 때 최대한 행복해지고 싶어서 억지를 부린 것이다.
역시, 그녀에게 사과해야 하는 걸까? 억지를 부려서?
아니면, 내 마음속 생각을 말해줘야 하는 걸까?
나의 능력과 병을 알게 된 것은 기쁘지만.
겨우 안정시킨 현재의 일상이 무너질까 봐 너무 무섭다고 말해야 할까?
나에게 희망을 준 그녀에게 보답하지는 못할망정…
너무…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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