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푸근한 양 한잔(8)
* * *
일단은 칵테일을 만들어야겠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
사실…도수 안 낮다. 좀, 높다.
이지혜 헌터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그래도 이 정도는 마셔야 잠이 온다.
도수가 낮은 척을 했으니 괜히 신경이 쓰인다.
내가 입을 댄 거까지 마시려 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이지혜 헌터에게는 도수가 더 낮은 칵테일을 주기 위해서, 같은 흰색의 따뜻한 음료를 줄 예정이다. 베일리스 밀크라는 칵테일인데, 도수가 매우 낮다. 아마…5~8도? 우유 비율에 따라서 바뀌기는 하겠지만, 도수가 거의 없는 칵테일 중 하나다.
우유에 설탕만 넣고 마시기에 심심하면, 한 번쯤은 해 볼 만한 칵테일이다.
그래도…내가 마시려는 칵테일, 도수 높은거 안 들키겠지?
우울증과 더불어 알콜 의존증으로 보려나…?
일단 우유가 식기 전에, 칵테일을 만들기로 하였다.
레시피는 매우 단순하다.
따듯한 우유 한 컵에, 러스티네일과 같은 비율로 드람뷔와 위스키를 넣어주면 된다.
베일리스 밀크 또한 비슷하다. 우유 한 컵에 베일리스를 3분에 1 정도 넣으면 된다.
정해진 비율로 섞으면 완성~!
흔히들 쉐이크병을 흔들면서 던지는 것을 상상했는가?
그건 ‘플레어 바’라고 불리는 스타일이다.
볼거리를 제공하기에, 가격이 일반 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비싸다.
나의 경우는 목재를 많이 사용하였기에 웨스턴바라고 연상될지 모르지만, 서부 개척 시대적인 느낌보다는 숲속의 만월이라는 느낌에 집중하였기에 꽃과 식물 등으로 장식하였기에 웨스턴바 스타일은 아닌 오리지널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분류를 하자면…클래식 바 정도?
맨즈바(걸즈바)도 생각을 해봤지만, 여성에게 아양을 떨면서 술을 더 마실 것을 권유라…멘탈적으로 불가능하다.
술값도 남성이랑 대화한다는 의미로 배로 받아내니 양심상의 문제도 있다.
그렇게 완성된 칵테일.
이지혜 헌터의 경우 투명한 유리잔에 손잡이가 달린 따뜻한 칵테일에 정석적인 잔이다.
나의 경우는…큰 머그잔에 적당히?
칵테일용 글라스는 소모품이다. 자주 쓸수록 잔기스나 이빨이 나가거나 한다. 그렇다 보니, 내가 마시는 칵테일은 대충 아무 잔을 사용한다. 깨져도 돈이 안 아까운 그런 물건.
완성된 웜울리쉽 위에는 시나몬 가루를 뿌렸다. 이건 단지 취향일 뿐이다.
그렇게 완성된 칵테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손님?”
“아, 사장님…여기서는 제가손님이 아니지 않을까요.?”
“아, 그냥 한번 해본 소리랍니다.”
술을 접대하기에 손님이라는 소리가 바로 나와버렸다.
손님이라 말실수를 하였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보니 속아주는 걸까? 눈치를 못 채는 걸까?
“정말로 양털의 색 같네요.”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게. 이것이 인싸?
나라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네, 흰 양이랑, 아주 연한 갈색의 양이랍니다.”
위스키와 드람뷔가 들어간 웜울리쉽의 경우, 각 술이 색을 띠지만 칵테일은 흰색에 가까운 색을 유지하고 있다.
그에 비해 베일리스 밀크는 연한 갈색을 유지하고 있다. 베일리스 자체가 초콜릿이 들어간 크림 리큐르라서 그런것일까?
“푸근한 양 한잔은 그냥 해본 소리랍니다. 사실 흰색이 웜울리쉽, 연한 갈색이 베일리스 밀크라 불리는 칵테일이에요.”
“같은 칵테일 하실 줄 알았는데, 다른 칵테일이네요?”
“네~, 이지혜 헌터님은 이쪽의 술이랍니다.”
그렇게 베일리스 밀크 잔을 건네어 주려는데, 섭섭한 목소리로 이지혜 헌터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 사장님…지혜씨라 하셔도 괜찮은데.”
아, 깜빡했다. 이렇게 사람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라 입에 붙지 않는다.
“아, 그럼 지혜씨?”
“네~ 사장님!”
으아아, 막상 하려니 너무 부끄럽다. 게다가 ‘지혜씨’라고 불러주자 활짝 웃는 모습이 정말, 주인이 불러줘서 기분이 좋다고 꼬리를 흔드는 대형견 같다.
그렇게 답변을 받고 나니 어떤 말을 할지를 모르겠다.
약간의 침묵이 방안을 감돈다.
역시 노래라도 틀어두거나, 뉴스라도 켜뒀어야 했나…?
“에…에헤헤”
“아, 아하하…”
서로의 어색한 웃음이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것일까?
“지, 지혜씨! 이, 일단! 건배!”
“네, 넷! 건배에~!”
정말 부끄럽긴 하지만, 유리가 맞부딪히는 소리는 나쁘지 않다.
새벽에, 종이컵이 아닌 진짜 잔으로 언젠가 한 번 제대로 된 건배를 하자 했을 때는 정말 빈소리로 한 말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 몰랐다.
그렇게 웜울리쉽을 한잔 마시니, 나쁘지는 않다.
맛을 극단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면, 따듯한 우유에 꿀을 넣은 다음, 소주를 약간 넣은 듯한 맛?
너무 과장일지는 모르지만, 따듯한 우유랑 드람뷔 맛이 단맛을 내주지만, 알콜이 들어간 음료답게 뒷맛에서 올라오는 알콜 향과 임페리얼 계열의 위스키 향이 연하게 올라온다. 그래도 우유 향이 좀더 강하기에 금방 없어지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우유가 베이스인 칵테일을 마셔서 그런 것일까? 생각보다 계속 마시게 된다.
그보다 하루도 안 지났지만, 말다툼은 원만하게 해결했으려나?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싸우신 건 해결하셨나요?”
“아! 일단 언니랑 어떻게 말은 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자존심을 안 내세웠더니, 오히려 대화가 진행되더라고요.”
“그쵸? 자존심은 친구나 가족에게는 의미 없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조만간 저희 팀원들이랑 한번 ….”
자연스럽게 시작된 잡담의 시간.
아마, 가까운 시일 내로 팀원들과 한번 방문하겠다는 내용이다. 전부 다 데리고 오지는 않고 아마 소대장들로 3~4명 정도?
그래도 잘 해결된 것 같다.
나 또한 어찌 해결된 것 같지만, 아직 갈 길이 멀지도 모르겠다.
팔목이 시큰거리는 것이, 팔목을 긁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 긁고 난 후의 상처가 아파져 온다. 게다가 아직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우울해지거나 하는 증세도 쉽게는 안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희망을 보았다고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내 망상이었다. 라는 전개 혹은 능력을 상담받을 받을 때 해결 불가 판정을 받으면…?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만 들고 있다.
“… 님? … … 장님…? 사장니임?”
“아, 앗! 녜,녯!”
너무 깊이 생각한 탓일까, 발음을 이상하게 하면서 답변해버렸다.
잔을 안 들고 있어서 다행이다. 들고 있었다면 깜짝 놀라서 조금 쏟았을지도 모른다.
지혜씨는 그렇게 나의 왼쪽 손목을 잡아준다. 피부가 벗겨진 상처이기에 순간 따끔했지만, 금세 따뜻함이 느껴진다.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나의 손목의 상처를 살포시 잡아주며 나의 손까지 잡아 줬다.
이번에는 눈물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나의 못난 점을 보인 것 같기에 조금은 부끄럽다.
나의 상처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은 걸까? 그렇게 또다시 찾아온 어색한 침묵 속에서 질문을 해보았다.
“손목의 상처 이거…안 물어봐요?”
그녀의 생각이 궁금하긴 하다. 이렇게 자상이 가득한 손목에, 최근에 또 했다는 느낌으로, 피부가 벗겨진 상처까지 있다. 대게 궁금해서 묻지 않을까?
“으, 음…헌터라고 해서 꿈과 희망이 넘치는 건 아니거든요, 가끔 전투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동료들 보면…상황을 묻기보다는…그냥, 위로만 해주게 되었어요, 습관이려나? 아하하.”
그렇게 멍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어떻게 보답을 해줄지도 감이 안 잡힌다.
“혹시,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절대 그런 목적으로 도움 드린 건 아니에요!”
아, 의미전달이 잘못되었다.
“아뇨아뇨, 저는 받기만 해서요…?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다면 뭐든 드릴 용의는 있답니다.”
나의 말로 인하여 당황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하더니 ‘어, 어’ 만 연발하기 시작한다.
말하고 생각해보니, 그녀는 상위권 헌터다. 원하는 게 생기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위인데…역시 말실수를 한 걸까?
또다시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을 때, 지혜씨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럼, 칵테일이라도 알려주세요. 자주는 아니고 가끔?”
“뭐예요, 바에 오시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그런 칵테일 이야기 아닌가요?”
“물론, 손님이 아니라 저로서 대해줄 것이 조건요”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면서, 나의 손과 손목을 만져준다.
딱히, 반박할 이유도 없으며,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고개만 끄덕인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니 지혜씨가 먼저 나의 손을 놓으면서 건배를 제의해왔다.
아, 손길 나쁘지는 않았는데…
“자, 그럼 한 번 더 건배~!”
헌터라는 직업 특성상 회식 자리에서 술을 자주 하기에, 자주 건배를 하게 되는 걸까?
나 또한, 군말 없이 건배를 받아주었다.
응, 정말 따뜻한…푸근한 양이네.
***
그렇게 잠시간 떠들면서 주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약간 취기가 도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스피리터스를 마신 다음 날은 최대한 술을 자제해왔는데, 분위기를 타버린 것일까?
아마도 새벽에 마신 술의 해독이 끝나지 않은 거 같다.
알콜의 해독은 간의 해독능력 외에 사람의 체중과 관계도 있다.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알콜분해 능력 및 취기가 오르는 속도가 느려진다.
반면에 나같이 키가 작은 경우 대게 체중도 낮으므로 빨리 취하거나 알콜 분해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그렇게 추가로 알콜이 들어오니, 혹사한 간이 빠른 해독을 못 하는지 금방 취기가 오르는 느낌이다.
“저어, 사장님 괜찮은가요?”
“녜헤, 괜찮답니다.”
“어제의 제 모습이 보이는데요…?”
“그게 나쁜걸까요오?”
“아, 아니 나쁜 건 아니지만, 그보다 도수 없는 술이라 하지 않았어요!?”
아, 들켰다. 그래도 거짓말은 하지 않아서 나는 당당하다.
“녜, 지혜씨 술은 도수 거희이 없?니댜아?”
몸을 가누기가 조금 힘들다. 특히 머리가 휘청거릴 때마다. 옆머리가 흔들 거리는 것이 생각보다 귀찮다. 이번 기회에 자를까?
침대에 몸을 기대고 있다고는 하지만 세상이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 온다.
역시 취한 거 맞다….
“아니 거짓말은 아니긴 한데요. 으읏, 어쩌지….”
취기가 오른 나를 보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인 걸까?
이전 세상이었다면 취한 남성을 안 좋은 의미로 곤란해하는 여성은 당연한 모습이지만, 남녀역전 세계인데! 남자가 이렇게 취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는 점에서 괜히 울컥한다.
새삼 보지만, 역시 예쁘긴 하다.
반 묶음 포니테일을 해서 그런 것일까? 멋지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머리카락에서 좋은 냄새가 날지도?
음, 음?음…!지르고 보자.
“제혜씨이이?”
“네에네에, 약속을 교묘하게 우회하신 사장님?”
너무하다. 거짓말은 안 한 것일 뿐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다리 좀, 벌려 봐요.”
“… … 네?”
지혜씨의 표정이 정말 굳어버렸다.
아, 나 또 의미전달을 잘못한 것일까?
사람과 이렇게 오래 대화하는 것은 오랜만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의미로 한 말은 아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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