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22화 (22/140)

〈 22화 〉 신맛 커피&쓴맛 커피(3)

* * *

원룸이다 보니 화장실이 하나뿐이다.

그렇기에 일단은 내가 먼저 씻기로 하였다.

“그럼 먼저 씻을게요?”

“네, 넷!! 머, 먼저 씻고 계세요! 전 여, 여기서 가만히 있을게요!”

“아, 네? 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누가 보면…이상한 상상을 할 법한 대답을 한다.

아니, 이 세상 기준으로 치면 내가 너무 무감각해서 '여성'인지혜씨를 배려해주지 못한 건가?

남녀역전도 그렇지만, 헌터들도 있다는 점에서....

역시 이 세상은…아직도 적응하지를 못하겠다.

***

일단은 화장실의 세면대 앞에 서 보니, 거울 속의 내 모습, 얼굴의 부기도 있는 거 같고…다크서클이 더 진해진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마시고 난리를 쳤는데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어제의 기억이 나기에 부끄러워서 머리를 살짝 흔드니 좌우로 흔들리는 옆머리.

사람의 눈에 띌 수 있도록 포인트를 준거인데, 이제 원인도 알았으니 자르는 편이 좋을까?

생각보다 관리가 귀찮긴한데...빠른 시일 내로 잘라야 겠다.

그보다, 이런 모습으로 어제 그런 추태를 보이다니…이상하게 보지는 않겠지?

나를 질려 하면 어떻게 하지…?

사람이 너무 그리워서 그러긴 했는데…지금 생각하면….

여기서 더 집착하면 이상하게 보려나…?

고민해도 방법이 없다.일단은 씻고 생각을 해보자.

거기다, 씻는 김에 손목의 상처도 좀 처리해야겠다.

비누로 소독부터 해두고, 붕대로 가려야지…. 지혜씨한테 보일 때마다 좀 그렇다.

**

그렇게 씻고 나오니, 아직도 긴장한 지혜씨가 있었다.

너무 긴장한 거 같은데…게다가 다리를 가만히 두지를 못하는 것을 보니…내가 너무 화장실에서 오래 씻고 있었나 보다.

“저어…안 씻으세요?”

“네…! 씨, 씻을게요! 실례하겠습니다아!!”

그렇게 말하고는 황급히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이…아주 급했나 보다.

역시 빠르게 씻고 나오는 편이 좋았으려나?

“샴푸는 흰색 통이고 린스는 검은 통에 들어있어요!”

“네녯! 아, 알아서 할게요!!”

그렇게 그녀를 기다릴 겸 점심밥을 준비하였다.

준비라 하여도, 어제 먹은 음식들을 다시 데우는 정도다.

그런데 여성이니까…남녀역전세계임을 생각해보면, 더 빨리 씻으려나?

하지만 지혜씨의 경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역시 남녀역전 세계라 하여도 여자라서 그런 걸까?

특히, 화장실 내에서의 드라이기 사용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머리카락의 결과 스타일은 들어갈 때 그대로인 것 같은데…착각인가?

“아, 그…그! 아무 일 없었어요! 씻기만 했어요!”

“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씻기만 하지 굳이 다른 일도 있을까?

성적인 것을 상상해도 남의 집에서 그런 행위를 할 리가 없고. 그러한 소리도 없기도 했다.

아 혹시 씻다가 옷이 젖어서 드라이기로 말린다고 오래 걸린 걸까?

하긴 옷이 젖어 있으면 찝찝하긴 하다.

“저…어, 일단은 늦었지만, 식사라도 할까요?”

“아! 네! 늦은 시간대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먹죠!”

내가 화제를 바꾸니,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면서 답변을 해준다.

역시 씻다가 옷이 젖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던게 맞다.

"으음, 그...어제 먹다남은 음식들인데, 이게 싫다면 인스턴트 식품이라도 드실래요? 인스턴트이긴 하지만, 새 음식이고...그편이...더...."

"아뇨! 인스턴트보다는 차라리 조금 식은 음식이 좋아요! 사장님 손목봐요! 너무 얇잖아요? 자,자! 단백질 보충을 하는거에요! 파우더같은거도 나쁘진 않지만 자연식이 더 좋아요!"

우와...건강에 신경을 쓰는 헌터다운 발언이다.

으음, 고기라...좋아하긴 하지만, 값이 비싸기도 하고 술값으로 대부분 사용하다 보니....

가끔 희귀한 술이라던가, 전생에서 맛보지 못한 이세계의 술 등등...그런것을 보게 되면, 마시시 않더라도 모으고 싶어진다.

그렇게 다음달의 나에게 부탁을 하면서 과감하게 구매를 해버려오긴 했다.

으음, 지출이 편중되어 있는것을 생각해보니...확실히 심하긴했다.

그래도...취해있는 동안은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기에 그래왔지만...이제 나도 바뀔수 있다면, 이러한 생활에서 변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이제는 바뀌고 싶다.

정신적인 외톨이는 너무 외롭다....

그보다 식사부터 해야겠다.

"그럼 조금 도와주세요. 어제 먹다남은 음식을 담아둔 반찬통좀 꺼내주세요. 생각보다 많아서 아직 전부 준비를 못했거든요."

"이걸 꺼내면 되죠? 그 다음은요?"

"어~. 수저 셋팅정도?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

정말 동거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얼굴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 분명히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을 것이다.

그나마 있는 김치나 반찬 등을 준비하는 척을 하면서 그녀를 등진 채로 서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부끄러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준비하는 척을 하였다.

그보다…. 식사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지혜씨의 모습이 귀엽긴 했다.

정말 꼬리만 있었다면, 계속 꼬리를 흔들거리는 모습을 봤을 텐데 아쉽네.

***

“아시겠죠 사장님? 남은 음식들은 빨리 드시고! 오늘 집에 오시는 대로 장을 보시는 거예요! 약속?”

그렇게 늦은 식사시간이 끝나고, 잔소리를 시작하는 모습이…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전생과 현생의 나의 부모님 말이다.

그보다, 약속이라 말하면서 새끼손가락을 꺼내는 모습이, 평소 매스컴에서의 모습과 다르기에 귀엽게 느껴진다.

“네~!약속! 못 믿으시면,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여드릴게요!”

걱정받는 기분이 나쁘지 않기에, 지혜씨의 말에 웃으면서 새끼손가락 약속을 하였다.

이런 거는 전생에서도 하지 못한 경험인데, 왠지 모르게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복잡한 기분이다.

“자, 그럼 준비도 끝난 거 같고, 슬슬 나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건네어 온다.그 손을 본 나는 당황해서 멈칫하였고. 지혜씨 또한 자신도 모르게 건넨 손을 보고는 무안해하며 슬며시 손을 거둔다.

어제 내가 얼마나 손에 집착했으면…너무 부끄럽다…

“아하하하…실수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녀는 손을 거두면서 웃지만…분위기가 어색해지기는 했다.

어떻게 해야 이상해진 분위기를 회복시킬 수 있을까?

음…잘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로 하였다.

“자, 가요.”

“어, 어?! 사, 사장…아니, 성화씨!?”

그렇게 그녀의 팔꿈치를 잡아서 내 품에 끌어당겼다.

여성이지만 헌터답게 근육으로 탄탄한 느낌, 나쁘지 않다.

“빨리 가~요 네?”

“그, 그렇긴 한데…너, 너무 가까워요!”

전생에서의 여성들이 이러한 기분을 느꼈을까?

이러한 모습이 귀엽다고 느껴진다.

그래도 지혜씨는 나의 은인이기에 나쁘지 않을지도…?

***

그렇게 집을 나왔지만, 버스정류장까지는 좀 걸어야 한다.

걷다가 느낀 거지만, 나도 부끄럽다.

손을 잡는 거만큼 부끄럽다.

사귀지는 않지만 사귀는 듯한 기분? 복잡하다.

그리고 지혜씨의 움직임도 조금 뻣뻣해진 게…의식하고 있는 걸까?

정말 그렇다면 조금은 기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는…본부에 가면 뭘 하면 될까요?”

“아마, 저 먼저 언니…아니 총괄팀장님이랑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하고, 성화씨와 상담을 들어갈 거 같네요. 총괄팀장님이 감지계열이다 보니까. 이런 쪽으로는 빠르게 검진할 수 있기도 하고 병원에 가서, 국가 전산시스템에 등록되는 것보다는 안전하고요….”

처음에는 병원을 갈 줄 알았지만, 병원만큼은 위험할지 모른다며 나를 말려왔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능력에 문제가 있으면 장기입원이 강제될지 모르기에 내린 판단이라 하였다.

솔직히…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남녀역전세계니까 몸이 목적이거나, 혹은 돈이 목적이거나…?

그런 이야기가 일절 없기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보다 그녀의 팔을 꼭잡으면서 걷는 기분이…데이트하는 거 같다.

“저…어...어, 지혜씨는 여러 사람이랑 사귀어 봤죠? 저와 다르게 유명한 헌터이기도 하고 예쁘시고…으음…”

해서는 안 될 질문이 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정작 질문을 한 내가 기분이 가라앉아 버려서 그녀의 팔을 꽉 잡아버렸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루가 겨우 지난 사이인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도 웃기기도 하다.

“커플이 된다는 의미로 사귄 적은 없네요. 헌터 일에 집중하고 살다 보니…. 어느새 이런 자리까지 와버렸고…. 역시 이상한 걸까요?”

그 말 한마디가 나의 기분을 좋게 해줬다.

아직은 지혜씨도 경험이 없단 거지? 나쁘진 않다.

응,나쁘지 않다.

"아뇨~! 이상하지 않아요!"

"읏! 성화씨 갑자기 크게 소리 지르시면, 저한테만 시선이 집중되요.“

너무 기쁜 나머지 큰소리를 쳐버렸는데.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내가 이렇게 팔짱을 끼고 있어도 대부분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조금 더 몸쪽으로 밀착해버리는 것이…. 나도 ‘남자’이긴 하네.

그보다 밥만 먹고 나와서 목이 마르긴 하는데…뭐라도 마실까?

“저, 아직 시간이 조금 있는데 커피라도 마시고 가실래요?”

“커피? 나쁘지 않네요. 그보다 성화씨 가게에서도 커피 팔지 않나요?”

“그냥, 시장조사요. 시장조사일뿐이에요.”

단순한 시장조사 일뿐이다.

다른 가게에는 어떤 커피를 제공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서비스를 하는지.

내 방식만 고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손님들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데이트하는 기분은…어떤 기분일지 궁금하긴 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