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나는 누구인가(1)
* * *
그렇게 지혜씨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사인을 해주고 가게를 나왔지만, 나는 왠지 모를 짜증에 의해서 지혜씨의 팔을 꽉 잡고 버스정류장에서 대기 중이다.
“저어…성화씨? 파, 팔이 조금….”
“뭐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쏘아붙이며 말해 버렸다.
쌀쌀한 표정을 지은 기분인데…표정 관리도 못한 거 같다.
아무 관계도 아닌 것을 알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답지 않은 행동이기도 하고…왜 이리도 짜증이 나는 걸까?
은인한테 이런 버릇없는 행동이나 해대고…. 복잡한 감정 등으로 인해서 기분이 정말 최악이다.….
그렇게 그녀의 팔을 잡으면서 버스를 기다려 보는데, 역시나 유명인인지 주변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말을 걸어볼까 하면서 머뭇거리는 남성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왜 이리 기분이 더 저조해질까?
알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면서 지혜씨의 팔을 양손으로 꼭 잡을 뿐이다.
“역시 보는 눈이 많아지니까 좀 그렇긴 한데…성화씨 이런 관심은 절대로 좋은 관심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성화씨는 문제없을 거예요. 문제가 생기면 제가 어떻게든 해드릴게요.”
어떻게든 해결해준다는, 그 말 한마디에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다.
뭐~어 나쁘지는 않네….
그렇게 생각하니 팔을 잡은 힘이 슬며시 빠지는데.
새삼 느끼지만, 이거 질투 아냐?
내가 왜…?
이런 질투는 여성이 하는…아, 다른 세계지….
그래도 나는 이전 세상의 기억이 있기에, 나 스스로 남성이라 생각한다.
질투라니…에이,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슬며시 지혜씨의 팔을 다시 양손으로 잡아 나의 몸통을 향해 밀착시켰다.
“아뇨, 문제없어요. 문제가 생기면 저 스스로 해결해야겠죠? 같이 가자고 말한 것은 저랍니다?”
내가 너무 밀착해버렸나…? 지혜씨가 이쪽을 보지를 못한다.
그리고 그녀와 같이 있음을 선택한 건 나다.
그렇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오롯이 나의 책임이다….
이 세상 남성들처럼, 오또케를 연발하면서 회피할 생각은 없다.
인생의 주역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든 나 스스로 해결해야겠지.
남녀 역전 세상이라고 보호받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오기가 생겨버려서 이전 세상 남성들의 행동을 해버린다.
나는 나인데…왜 이 세상에 맞춰야 해…?
“어…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래도 성화씨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어요. 능력이 아니라 성격요.”
“네?”
“으음…어떻게 설명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성 같은 성격? 다른 남성이라면 술을 마시면서 내숭을 부리거나…담배를 안 피우는 척하거나…아, 아니 아니 성화씨가 담배를 피우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저도 피우긴 하는데…! 아으, 또 입이 방정이야….”
그녀의 멀뚱히 들으며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았다.
여성스럽다는 말은…나 기준으로는 남성과 비슷해 보인다는 의미겠지?
다행이다. 나는 아직 나이기에, 남성스러운…아니 이 세상 기준으로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그게 정말로 옳은 행동일까?
지혜씨 팔을 나의 양팔로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이게 정말 여성스러운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버스가 도착하였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던 지혜씨는, 버스가 오자마자 나를 살짝 당기며 버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 가요. 버스 안에 사람이 많이 없는 듯한데, 한참은 가야 하니까 앉을 자리 있어서 다행이네요.”
“…아, 네…가요.”
고민하다 대답이 조금 늦었다.
그보다 자리에 앉으면 옆에 붙지 못하고 앞뒤로 떨어져서 앉아야 한다.
옆에 있고 싶은데 조금은 싫네….
다행히도 이지혜 헌터를 계속 보겠다면서 따라오는 인파는 없었다.
헌터들의 인기는 일반 중견 스포츠 선수 정도의 인기지 탑 연예인급의 인기는 없다.
그래도 남성 팬이 많은 것을 직접 보니, 기분이 조금은 좀…그렇다.
왜지…?
***
그렇게 출발한 버스는 어느새 도시의 번화가 쪽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아마 번화가 구역 옆 구역에 있는 시청정류장이 목적지일 것이다.
헌터 일들은 국가 의뢰가 대부분이기에, 헌터들의 사무실은 관공서 옆에 주로 위치하며, 상위권 그룹은 대부분 시청 근처에 본사가 존재한다.
그리고 버스에 탑승한 뒤 지혜씨와 말이 없어졌다.
나는 나대로 능력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지혜씨는 지혜씨 나름의 고민과 생각을 하는 걸까?
역시 내가 귀찮다고 생각하거나…아니 아니, 그럴 리 없다. 좋은 생각…좋은 생각을 하자….
그보다 오늘 약을 먹었던가…? 하루 정도는 상관없긴 하지만…신경은 쓰인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버스는 번화가 중심을 지나고 있다.
번화가에 들어온 뒤 버스 창 너머로 보이기 시작하는 이종족들.
대부분, 누군가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시중을 들고 있다.
복장도 대부분 활동하기 편하면서도 튀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다. 개중에는 메이드 복장이나 집사 복을 입은 모습도 보인다.
흔히들 말하는 ‘노예’다. 그렇다 해서 문에서 포획한 노예들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문에서 포획한 이종족들을 목장이라 불리는 장소에 집어넣은 뒤, 지속적인 품종교배를 시행해온 결과물이다.
결과물에는 다양한 품종이 존재한다. 힘이 강해서 노동현장에 쓰이는 오크나 드워프, 타우렌 계열. 아름답거나 귀여워서 집사나 메이드 일을 시키는 엘프나 수인족 계열 등등
필요에 따라서 교배를 하거나 사육을 한다고 하니….
그곳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내 알바가 아니지만, 최대한 인간에게 온순한 종자만을 길러왔다 하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전생의 기억 때문에 솔직히 노예에 대한 거부감이 있긴 했는데, 이 세상에서는 일반적이기도 하고…요리하기가 귀찮아서 인스턴트나 먹는 생활이 중심인데, 나도 잡무용 메이드 하나 사볼까?
그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으려나? 한 기본 천만 원 단위로 말이다.
“저어, 지혜씨? 잡무용 메이드 가격 아세요?”
“네? 메이드요? 으음, 본사에서 사용하지만 정확히는 잘 몰라요. 그렇게까지는 비싸지는 않고…아마 [특별주문] 없는 보급형이면 1,000만 원 전후는 깨질걸요? 그보다 사시게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까? 고개를 돌려 지혜씨를 보았을 때의 감상은, 창 바깥을 바라보며 고민을 하던 모습이 예쁘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생각 중에 괜히 말을 걸었나 싶기도 한데…그보다 1,000만 원 전후라…역시 목장에서 안정적인 생산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많이 싸다. 그래도 비싸긴 하지만.
구매비용 이외에 유지비 등을 생각하면…지금 소득이면 문제는 없을 듯한데….
문제는 한동안 술을 못 살지도 모르는 지출이다. 1,000만 원이면 리큐르랑 위스키가 몇 병이야….
술이냐 향후 생활이 편해지는 것이냐…그것이 문제로다.
“으음,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정말 사시게요?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보다는 특별 주문하지 않은 물건을 ’남성 혼자’ 관리하실 수 있을지 걱정이라서요. 만약을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심어두긴 했지만, 저것도 생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열을 알기도 하고 만만해 보이는 주인에게는 대들지도 몰라요. 심하게 반항하면 살처분도 방법이긴 한데, 역시 투자비용이 아깝잖아요? 그래도 품종에 따라서는 일이 조금 서툴러도 주인에게 충성하는 품종이나, 중성화 처리하는 방법도 있는데 한번 알아봐 드릴까요?”
역시 그녀와 내가 사는 세상은 다른 걸지도 모르겠다. 다른 지성 생명체를 물건 취급하거나 쉽게 살처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기본 상식구조가 조금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 와닿는다.
“그냥 해본 소리랍니다. ‘메이드’가 있으면, 생활이 편해질까 해서요.”
“성화씨면 메이드보단 '집사'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한번 알아봐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거기까지 민폐를 끼칠 수는 없죠.”
“아, 괜찮은데….”
집안일도 그렇고 가게 일을 혼자서 하기에는 체력문제보다는 손이 부족함을 느끼는데…집사든 메이드든 하나를 구매하는 편이 좋으려나…?
이전 세상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보면 나도 많이 적응된 거같다.
이런 적응은 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번화가를 지나서 시청이 있는 사무구역을 지났으며, 이제 막 시청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듯하다.
뉴스에 자주 나오던 ‘천칭’의 본사 건물이 저건가?
이전에는 관심도 없었기도 하고, 번화가나 시청에 올 일이 없어서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천칭의 본사 크기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대기업 사옥과 비슷한 규모?
역시 세금을 더 내기 싫어서 조직 전체가 A급을 유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
내부 사정은 일반인은 모르겠지만, 본사의 규모만 봐도 왜 S급이 아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 성화씨 가요 여기가 제가 일하는 곳이에요!”
"와, 정말 건물이 엄청크네요....사원 복지는 좋나요?"
"네! 나쁘지 않아요! 성화씨 능력도 조절되기 시작하시면, 저랑 같이 일해보실래요?"
자신의 일터에 대한 자부심일까? 뿌듯해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그보다 헌터일이라...은신인지 뭔지 모를 능력인 나와 공격적인 능력인 지혜씨와 같이 헌터일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봤지만, 헌터에대한 미련은 접은지가 오래다.
"으음, 생각은 해볼게요. 그보다 어서 들어가요 아직 20분은 남았지만, 부탁하러 가는 입장에서 지금 들어가야 한다 생각해요."
"언니면 10분 지각해도 잔소리 정도긴한데...일단 가죠!"
그렇게 말하며 본사 입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팔이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녀의 직장이기도 하고 폐를 끼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쭉잡아오다가 손을 놓고 있으니 허전하긴 하다.
그리고 본사를 향해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주로 안 좋은 쪽으로.
이미 늦었으면? 사실은 지혜씨의 착각이면? 등등….
역시 약을 먹고 왔어야 했나?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이제 본사 입구 앞이다…
평범한 입구이지만, 나에게는 이세계 문의 입구처럼 느껴진다….
여기를 들어가서 나의 능력을 확인함에 따라서…. 나의 인생이 바뀔 수 있을까?
부디…나의 능력에 문제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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