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27화 (27/140)

〈 27화 〉 나는 누구인가(4)

* * *

천칭의 본사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로비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압감은 상당하였다.

대형 헌터 그룹의 본사 아니랄까 봐, 입구부터 각종 무기 장식부터 시작해서 이종족 박제까지 오크나 드워프는 본 적이 있지만, 엘프는 처음 봤다.

게다가, 각 종족끼리 싸우는 모습을 박제로 연출하다니, 과연 얼마나 돈을 쓴 걸까?

이거 분명 손님으로 방문한 방문객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장식들이다.

방문객들은 대부분 다른 헌터 그룹 혹은 정부의 인사이기에 위압감을 줘서 협상이나 회의에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과시일까?

이러한 로비 장식으로 인해서, 정말로 S급이지만 세금 내기 싫어서 아득바득 A급을 유지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보다는 본사라면 헌터가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없다.

일반 사무직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가끔 헌터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다니니 천칭의 본부는 맞는 것 같은데…. 헌터라 하여도 본사에는 현장직이 적은 걸까?

“상담 전에 담배라도 한대 하실래요? 지나 언니랑 상담이 길어질지도 모르니까. 지금 피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아뇨, 괜찮답니다. 가끔 힘들 때만 담배를 피워서요.”

“아…저, 그러면, 여기 로비 안쪽에 응접실이 있으니까 잠시 있어 주실래요?”

“네~. 문제없답니다.”

이상한 표정을 지은 지혜씨는 흡연실을 향해 갔다. 역시 혼자 피우기는 심심한데 동행을 안 해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담배를 피우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아까 전부터 느껴지는 시선들이 부담스럽다. 응접실에 앉아 있지만, 로비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를 보던 시선을 시작해서 지금도 간간이 응접실 유리 벽 너머로 시선이 느껴진다.

나를 인지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상위권 헌터들이라 그런 걸지도…?

생각보다 많은 시선을 받아서 그런 걸까? 아마도 지혜씨와 같이 본사를 들어와서 주목을 받아버린 걸까?

이러한 시선을 받는 것은 처음이기에 괜히 긴장되어 응접실에 앉은 채로 고개를 푹 숙여 손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보이는 왼 손목. 밴드를 붙이자니…너무 티가 날 것 같기에,

‘손목관절이 안 좋아서 손목아대 대신 감았다.’라는 느낌으로 붕대를 감은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상위권 헌터들은 나를 잘 보는 것 같은데…’지혜씨가 자해를 하는 손님을 데리고 왔다.’라는 소문이라도 났으면 지혜씨를 볼 면목이 없어진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지혜씨가 왔다. 생각보다 빨리 피운 거 같은데…역시 혼자 피우면 누구든 빨리 피우게 되는 것일까?

“자,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 총괄 팀장님한테 가요!”

그렇게 ‘네’라고 답변을 하고는 지혜씨를 따라서 로비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향해 갔다.

가는 와중에도 우리의 모습을 찍는 몇몇 헌터가 있는데, 그때마다 지혜씨가 그 헌터를 향해 노려보니까 다들 그만두는 모습이, 확실히 지혜씨는 높은 직책에 있네 라는 생각이 든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대여서 이동하는 사람이 적은 것일까? 그렇게 지혜씨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그보다 로비에서부터 드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였다.

“저어, 지혜씨 본사에는 헌터들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은데 원래 이런가요?”

“공격조라고 불리는 팀이 현재 전투휴무? 아 남성분은 잘 모르니 간단하게 설명하면…전체 휴가? 공격팀 전원이 휴가를 받았거든요. 게다가 본사의 경우 사무직이 중심이라서요. 헌터가 본사에 있다면 보고서 작성 때문에 있거나 가끔 있는 서류작업 때문에 본사를 방문하고, 대부분은 훈련장에 있죠.”

“아,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한 거 같네요.”

“에이~. 일반인이면 모를 수도 있죠. 걱정 마세요. 성화씨. 그보다 궁금한 게 있으면 대외비가 아닌 궁금증은 물어만 보시면 알려드릴게요!”

“네, 질문이 있으면 질문을 드릴게요.”

확실히 헌터라면 몸을 움직이는 현장직이기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하는 서류작업보다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훈련하는 모습이 먼저 연상이 된다.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해버렸다.

나의 질문에 간단하게 말해주는 것 또한, 딱히 비밀이 아니기에 해주는 말이겠지.

기본 상식이기도 하고. 대외비가 아닌 정도의 질문이라 하여도, 지금은 딱히 드는 궁금증은 없다.

그렇게 지혜씨와 엘리베이터에서 갑작스러운 침묵이 찾아왔다.

역시 이렇게 조용해지면, 다양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주로 우울한 이야기 쪽으로…내 능력이 잘못됐으면 어찌 지부터 시작해서, 나는 구제 불능이야 까지.

하아…. 항불안제라도 먹고 왔어야 했는데.

그렇게 침묵 속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자,가요 성화씨 여기부터는 고위직의 층이다 보니 조금 조용히 해주세요.”

“네, 조용히 할 거랍니다. 그보다 약속 시각이 다되어 가는데 괜찮을까요?”

도착한 층에는, 확실히 일반 사무구역과 다른 느낌일 게 분명한…분위기다. 복도에 비싸 보이는 장식도 있고 바닥에는 발소리조차 용납을 못 한다는 듯이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다.

가정에서 이렇게 푹신한 카펫을 사용한다면, 청소할 때 정말 난감한데…. 역시 돈 잘 버는 곳은 달라도 다르네.

그렇게 도착한 한 사무실의 입구. 문에는 공격팀 총괄팀장 김지나라고 적혀 있다.

막상 문 앞에 서니…여러 생각이 든다. 저 문안에 들어가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여러 상상도 된다.

혹시 치료 불가능 판정을 받으면 어떻게 하지…? 이러한 생각을 하니 긴장되어버린다.

“그보다 성화씨 잠시, 저 먼저 들어가도 될까요?”

“네? 문제라도 있나요?”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데 지혜씨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어떤 일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벌써 불안해진다.

“아, 서, 성…화씨 말고 다른 이야기가 있어서요.”

지혜씨가 곤란한 듯이 말한다. 확실히 이 정도 크기의 조직이면, 일반인들이 모르는 작전이나 혹은 사내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겠지.

나는 외부인이기에 들을 수 없고.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아시겠죠. 성화씨? 잠시 총괄 팀장님이랑 이전에 있었던 작전 이야기를 먼저 끝내야 해서요. 먼저 이야기하고 올게요.”

역시나, 내 생각대로 외부인은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된다.

“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갔다 오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거랍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 자리에서 안 보여도 손을 한번 뻗어주세요. 혹시 기억이 안 나면…제가 먼저 잡을게요.”

“끄응…. 성화씨 그렇게 빨리 잊히지는 않아요. 그래도 걱정되시면 그렇게 하죠. 꼭 어디 가지 마시고 여기 앉아 계세요. 약속?”

“네 약속이랍니다.”

응접실에 있을 때는 주변 시선이 신경이 쓰여서 말하지 못하였지만, 복도에 단둘이 되니 이러한 말이 나오게 된다.

그보다 버스 정류장서부터 지혜씨의 손을 잡지 않았기에 이제 슬슬 잊히는가 싶어 걱정되기에 이러한 말을 해버렸다.

더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손을 잡자니…벌써 문 앞에 서 있기에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지혜씨는 문에 노크를 한 뒤 ‘들어와’라는 목소리와 함께 방 안에 들어갔다. 문을 닫기 전에 나를 보며 살짝 웃어주던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복도에서 혼자 앉아 있는데…확실히 돈을 잘 버는 헌터 그룹이다. 엄청나게 넓은 복도에 비싼 장식까지… 건들면 흠집이라도 낼까 무서워서 건들지도 못할 물건들이다.

혼자 할 것도 없기에 심심하다고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보니….

지혜씨와 찍힌 사진이 메인으로 걸린 뉴스가 보인다. 나의 능력은 전자기기까지는 통하지 않는 걸까?

그보다 뉴스라…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책임진다고 말은 하였지만…이 경우는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기심에 뉴스를 눌러보니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언제나 스포츠나 연예계 뉴스처럼, 사진만 보고 상황을 유추하려는 기사의 상상으로 쓴 글이다. 지혜씨가 나 같은 거랑 사귈 리가 없는데….

그렇게 스크롤 해서 내려보니 댓글 창이 보인다. 1위 검색포털의 뉴스라 그런지 댓글이 한가득하다.

댓글의 내용은, 나에 대한 궁금증 혹은 지혜씨에 대한 욕설이 대다수다. 거기다 나를 따먹고 싶다 하거나 성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 글도 많이 보인다.

나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글들이 한가득하다.

헌터라는 직업이 있기에 그런 것일까? 성별에 대한 차별이 그렇게 크지 않지만, 이렇게 남녀구분이 확실한 글을 볼 때마다. ‘나는 누구일까?’라는 생각만 가득하다.

전생의 기억이 있다고는 하지만…이게 진짜 기억이 맞을까? 애초에 검증할 수 없는 기억들이다. 게다가 이 기억이 진짜인지, 누군가 능력에 의한 의도적인 기억의 삽입 혹은…나의 망상이거나…. 지금 생각하는 1초 전의 나도 나 자신이라 할 수 있을까? 애초에 나라는 정의가 뭘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생각할수록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성인이 되고도 자아 성찰 중이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하아…. 그래서 나는 뭘까?”

누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에 절로 혼잣말이 나와버렸다.

정말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전생의 기억을 '인정한 나’로서 살아갈까?

전생의 기억을 '부정한 나'로서 살아갈까?

지금에 와서는, 그 어느 쪽도 부정도 긍정도 못 하겠다.

전생을 인지하며 살아온 인생이 몇 년인데….

능력에 대해 알 방법을 찾았다는 이유로, 다시 자아 성찰을 시작하게 되다니…. 웃기기도 하다.

“성화야…. 성화야. 왜 이리도 한심하니….”

너무나도 간사한 성격에 한숨이 나온다. 그렇지 않은가? 능력에 대해서 모를 때는 하루하루를…일을 하면서 웃지만, 속으로는 좋지 않은 생각을 계속해왔다. 수면제를 잔뜩 먹으면 괴롭지 않을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가속도에 의해서 고통 없이 갈 수 있다던데? 익사는 무서운걸? 같은 좋지 않은 생각만을 해왔다.

그런데, 지혜씨를 만나고, 지혜씨로부터, 나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러한 생각보다는…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아 고찰이나 하고 있다. 역시 나는 살고 싶었던 것일까?

간사하다. 그리고 한심하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도중 문이 열렸다.

생각보다 대화가 빨리 끝난 걸까? 나를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지혜씨는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예상외의 반응이다. 두리번거리거나 갸웃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심각한 표정에서 웃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나에게 걸어와, 살짝 허리를 굽히면서 허벅지 위에 올려둔 나의 손을 잡고 말을 하였다.

“잡았다. 제가 먼저 잡은 거 맞죠?”

그렇게 멍하게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이건 좀…예상하지 못한 전개인데.

“네, 그렇네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먼저 잡으셨네요.”

“그렇죠? 그렇게까지 빨리 잊히지는 않아요.”

그렇게 말한 지혜씨 또한 나를 향해 다시 한번 웃어주었다.

전생이었다면 예쁘다고 생각되겠지만, 지금 나의 감상은 멋지네였다.

그렇게 지혜씨의 손을 잡고, 문이 열린 방을 향해 걸어가면서 다양한 생각이 들고 있지만, 한가지 확고한 생각이 든다.

나는현재를 살아가고 싶은 걸지도...?

그렇기에 전생이든 현생이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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