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달밤에 나 홀로 술을(2)
* * *
“그러니까! 그냥 드리는 물건이라니까요!?”
“천칭의 훈련 비품이잖아요?”
“아, 아니!그러니까 훈련 비품은 널렸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드린다니까요!?”
으음, 조금 전부터 이러한 느낌의 대화만 5분째 이어지는 기분이다.
훈련용 비품이면 필시 천칭 내의 재물 조사표에 등록이 되어있을 텐데, 이렇게 외부인한테 막 줘도 되는 물건일까?
나중에 감사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고?
“비품이라고 해도 회사의 재물 조사표에 등록된 물건 아닌가요?”
“큿…. 그건 그렇지만…!”
지혜씨 본인도 인정하는데…. 괜히 외부인이 비품을 가져갔다가 민폐를 끼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그렇게 우리의 모습을 보던 김지나 헌터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끝없이 논쟁이 이어질 상황을 볼 수 없었던지, 지혜씨와 나 사이의 말에 끼어들어 중재를 시작하였다.
“그냥 받으셔도 무관할 물건입니다. '파손' 처리된 물건이기도 해서 저희 헌터들에게는 그렇게 '효과적인 물건은' 안될 겁니다. 그렇지 않은가? 오공팀장?”
“그, 그렇죠, 그렇긴 하죠. 저희 공격팀이 보고 없이 좀 많이 부셔 먹으니까…?”
“뭐? 보고 없이? 다시 한번 말해보게 오공팀장.”
“읏, 시정하겠습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역시 헌터들의 능력은 나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걸까? 하긴…. 나는 능력 과잉장애 증후군이라는 병이니까 '파손된 훈련 물품'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지혜씨의 말에 김지나 헌터님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외부인에게 공격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확실히 민감하게 반응할 만하다.
그래도 값은 치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쩌지?
“그래도 값은….”
“끄으응…. 아! 사장님도 제가 마신 칵테일 가격 깎으셨죠? 그럼 그걸로 퉁쳐요.”
“네? 그런 적 없는데요…?”
아, 기억하고 있구나. 모른 척하면서 어물쩍 넘기려고 하였는데….
바텐더로서 만취 상태의 손님에게 술을 권유하기도 했고, 같이 마신 거도 있어서 할인한 거뿐이다.
그래도 이걸로 헌터들의 훈련 물품과 값 차이가 날 거로 생각한다.
“정말요? 못해도 20만 원 가까이 마신 거 같은데 정말로요?”
“읏, 그, 그건….”
거의 정확하게 가격을 맞혔다.
다시 한번 가게에 왔을 때 메뉴판을 본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평소에 바를 자주 다녀본 경험이 있거나.
아니 칵테일은 처음이라고 하였으니 메뉴판을 본 거겠다.
역시 헌터라 그런지 주변 탐색이 빠르다.
“이걸로 상황 해결! 자! 어서 나가요! 총괄팀장님은 바쁘신 분이니까요! 그렇죠? 총괄팀장님?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지, 지혜씨이이!? 이,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오? 손 너무 당기지 마세요!! 제가 걸어갈게요!”
“하아…. 그래 먼저 나가보도록. 나중에 보도록 하지 오공팀장. 그보다 조성화님도 다음에 한 번 뵙죠.”
김지나 헌터의 말을 뒤로하면서, 거의 끌려 나오다시피 사무실에서 나왔다.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나왔는데 이건 좀…. 이라는 생각만 가득하며, 아무리 편한 지혜씨와 김지나 헌터가 사이라지만, 이러면 안 될 텐데…. 그렇기에 약간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지혜씨! 이건 좀 예의가 아니잖…!”
“쉿. 여기 층은 고위직 분들이 많은 층이랬죠?”
나의 언성이 높아지기 전에 지혜씨의 말이 더 빨랐다. 확실히 이 층은 고위직의 인사가 있는 층이라 했던가? 언성을 높일만한 층은 아니다.
일단은 진정하고 현재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지혜씨는 나를 돕기 위해서 천칭 본사에 왔고.
나는 상담으로 끝낼 줄 알았지만, 천칭 본사의 헌터들이 사용하는 훈련 비품까지 받아버렸다.
확실히 이건 좀 너무 과한 배려 아닐까?
역시 지금이라도 값을 치르거나 반납을 한 뒤 병원을 가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시 아닌 거 같아요….”
“저희가 괜찮으면 된 거랍니다? 음 성화씨 말투는 조금 힘드네요. 이래 봐도 저 제5 공격대 팀장이에요! 이 정도 재량도 없을까 봐요?”
나의 말투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왜 따라하는 걸까?
게다가... 지혜씨의 위치라면 이렇게 비품을 처분하는 행위가 가능하겠지만…. 이렇게까지 도와줄 이유가 있을까?
그저 작디작은 바를 운영하는 시민 A에 불과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줄 의미가 있을까?
“끄응…. 그렇긴 한데….”
“자 가요! 한번 로비에 내려가서 회사 주변을 걸어볼래요? 회사주차장에 며칠 전 주차해둔 제 차도 있으니까 나중에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그렇게 말을 하더니 방에서부터 잡고 있던 손을 당기면서 엘리베이터로 데리고 간다.
지혜씨가 갑작스레 마이페이스가 된 기분인데…? 기분 탓인가?
일단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이라도 항의를 하려 하였지만, 정말 타이밍이라도 맞춘 듯이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에 의해서 시도도 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지혜씨의 손에 이끌려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니 여러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정말 팔찌 하나만으로도 해결이 될까?
해결되면 신기한 일이겠지만…. 어처구니없지 않을까?
사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나의 무지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무능력자라 생각하여 능력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능력의 폭주라 불리는 상태에서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았기에 해결을 하지 못하였다.
결국, 이 모든 일을 나의 탓으로 돌리며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사는 기분으로 살았다.
나의 탓은 맞네…. 나의 무지에서 시작된 일이기도 하니까.
그러한 적막 속에서 지혜씨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성화씨, 능력이 제어된다면 제일 먼저 뭐를 하고 싶어요?”
“글쎄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라….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처음에는 그저 사람들이 나를 인지해주지 못하기에, 그저…. 인지를 해줬으면 이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정말 이걸로 제어된다면… 지금은 딱히 드는 생각이 없다.
최소한 가게에 처음 방문한 손님이 아닌, 자주 오는 단골과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한 느낌으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시작한 가게이기도 하니까.
“아마…. 단골이 생기면, 그분들이랑 술이나 같이하겠죠?”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데…. 혹시 연예인 혹은 헌터에 도전해보시지 않을래요?”
연예인이나 헌터라….
둘 다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 아닐까? 아무리 남녀 역전세상이라고 하지만, 연예인이든 헌터든 결국 피나는 노력이 동반되는 직업이다.
아니, 어느 직업이든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 재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연예인이나 헌터가 하고 싶다 해서 가능한 직업일까?
연예인의 경우에는 예능감이나 목소리가 좋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항은 외모일 텐데...나 같은 외모는 길거리에 널리지 않았을까?
게다가 헌터에 관해서는 김지나 헌터가 사무실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미성년자였다면, 스카우트 대상이었다.'는 말은 지금의 나는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 아닐까?
나는 가게를 열기 위해서 술과 음료에 관하여 열심히 공부해왔고, 현재의 벌이도 나쁘지는 않기에, 지금 운영하는 음료 가게에 만족을 한다.
그렇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혜씨에게 답하였다.
“단골분들과 대화하는 느낌의 평범함을 원했을 뿐이랍니다.”
“성화씨가 그렇다면 어쩔 수는 없지만요…. 그래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네요. 카페 겸 바 사장님이잖아요? 대화 등으로 서비스가 좋다고 소문나면, 손님이 많아질지도 몰라요!”
“그러면 좋겠네요.”
정말이지 지혜씨는 긍정에너지가 넘친다.
나는 저 말을 듣자마자 귀찮아질 생각만 가득했다.
예를 들면, 손님이 많아져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던가. 앉을 자리가 없어서 대기열이 생겨버린다든지 등등….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야 할까? 아니면 이종족을'구매'해야 할까?
게다가 평범함을 원한다 하였지만, 인생에 평범함을 유지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다.
애초에 가게에서 커피나 술을 팔면서 밤낮이 바뀐 생활인데 평범하다 할 수는 있나?
평범한 생활이라는 정의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때 가서 생각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엘리베이터가 로비 층에 멈추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한참 생각을 한 기분인데, 천칭의 본사 건물은 얼마나 높은 거야…?
그렇게 '로비 층입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
긴장이 안 된다 말하면 거짓말이다. 손바닥에 땀이 나는 기분이다.
정말이지 나의 능력이 억제되고 있을까? 이걸로 해결될까? 같은 생각으로 말이다.
“자, 어서 한번 가봐요!”
“그! 너무 끌지 마세요. 제 발로 걸을 수 있어요!”
지혜씨는 여전히 하이텐션이다. 남을 돕기 좋아하는 성격인 걸까?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지혜씨의 손을 잡은 채로 로비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그래…. 지혜씨의 손을 잡은 채로 말이다….
나를 보는 시선이 많아진 상황을 인지한 때는, 이미 로비의 한가운데를 지나갈 때 즈음이었다.
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