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달밤에 나 홀로 술을(3)
* * *
천칭의 본사 안에 있는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점에 지혜씨와 마주 보며 앉아있다.
아하하….
정말 사람이 많구나….
근처 대기업의 본사 건물이 많아서 그런지,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나간다.
이 정도의 회전율이면 매출이 높을지도? 내 가게 한 달 매출보다 높겠지…. 대신 가게의 유지비가 엄청난 가격일 게 분명하다. 특히나 높은 임대료가 지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르바이트가 8명이나 있지만, 잠시라도 쉴 여유도 없어 보인다.
카운터 담당 2명, 음료 제조 담당 3명, 서빙 담당 1명, 상황을 보면서 포지션을 변경하는 1명과 아르바이트생에게 지속적인 지시를 내리는 매니저로 추정되는 1명.
나쁘지 않은 팀워크다. 각자의 포지션을 담당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방향이 모든 일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 외에 불만 사항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 ‘남성 엘프’를 보니 '여성 엘프'면 더 좋을지도? 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그렇지 않은가? 남자가 주문 받는거보단 예쁜 여성이 주문을 받아주면 보는 눈도 좋고 듣기도 좋을 텐데…. 게다가 가격 기준으로 남성 엘프보다 여성 엘프가 더 싸지 않나?
아하하하….
“저어…. 성화씨?”
“지금은…. 말 걸지 말아 주세요.”
말을 걸어오는 지혜씨를 애써 무시하며, 조금 남은 딸기라떼나 마셔본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라 그런지, 생딸기 맛이 아닌 일반적인 딸기 퓨레를 사용한 맛이 난다.
퓨레라 하면, 잼이 되기 직전의 점도를 가진 과일 소스라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 물건을 우유와 섞으면 딸기라떼가 되거나 빙수에 부어주면, 딸기 빙수가 된다.
칵테일계에 S&S시럽이 있다면 과일음료계에는 퓨레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시럽과 다르게 퓨레의 경우 가공상태 혹은 가공회사에 따라 맛이 다르다.
생과일은 가게에서 활용할 때 신선도 관련 문제가 많기에, 생과일보다는 퓨레를 사용하는 가게가 많다. 맛과 퀄리티를 원한다면, 적당히 절충해서 사용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예를 들면 퓨레 20% 생과일 80%라는 느낌으로 섞는다든지?
생과일만 사용하면, 색 혹은 일정한 맛이 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퓨레를 섞는 느낌이다. 그래…. 모든 것은 소스 맛이지 그럼 그럼.
어찌 됐든 지금 마시는 딸기라떼정도면, 대기업 프랜차이즈 정도네 하는 기분으로 쭈욱 마실 수 있을 정도다.
“저…. 성화씨? 정말 문제없을 거예요!!”
“...”
지혜씨의 말을 무시한 채로 딸기라떼에 꼽힌 빨대나 씹고 있다.
지금 현재 손목에 끼고 있던 능력 억제용 팔지를 빼둔 상태이기에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상위권 헌터들 정도일까? 감지능력자들은 인지할 수 있을 것이고….
손목에 차고 있는 감정을 확인하는 팔찌는 연한 남색을 띠고 있다. 진정하지 못하는 중이라는 의미일까?
자, 지혜씨의 말도 있기도 하고.
성화야 진정해보자, 진정….
…
될리가있냐!!!
지혜씨 손을 잡은 채로 로비 중앙까지 나간 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 '나 같은 소시민이 눈에 띄어봐야 얼마나 띄겠느냐.'는 생각이 있었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유명인인 점을 까먹었다.
그런 유명인의 손을 잡고 본사의 로비한 가운데를 걷는다?
전생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수준의 '아름다운 여성과 같이 손잡고 걷기'라는 상황만 본다면, 전생 이후 내 인생의 최고의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 부끄러운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처음 느껴보는 남녀역전의 상황이기도 했고….
아니 뭐 멘탈이좀 깨져서 지혜씨에게 들러붙긴 했지만, 거부를 안 해서 좋기도 했고….
'남녀역전 세상…나쁘지만은 않네'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어쨌든! 그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생각보다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이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그렇지 않은가? 평생을 무시 속에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갑작스러운 시선을 받는다? 여러 가지 의미로 정신이 버티지를 못하겠더라.
팔찌의성능이좋아도너무나도좋았다.
그렇기에 로비에서 다수의 시선에 당황하였고, 나는 그대로 밴드 형태의 팔찌를 손에서 벗겨내기 급급했다.
진심으로 당황을 해서 그런지…. 팔찌를 벗겨내려던 손이 떨려서 몇 번 실패했지만, 지혜씨가 빠르게 팔찌를 벗겨줘서 해결은 되었다.
그래도 소수의 헌터들은 나와 지혜씨를 보면서 휘파람을 불거나, '오공팀장님 모쏠탈출이다!' 라는 소리도 들리고….
지혜씨가 모쏠이라, 좋은 정보를 들은 기분이다.
그렇게 로비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로 인해서, 전신이 뻣뻣하게 굳은 나를 데리고 온 장소가, 본사 안에 있는 카페였다.
“하아…. 여러 가지 의미로…어제부터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기분이 드는데. 기분 탓이겠죠?”
“그, 그렇죠? 그보다 진정하셨나요. 성화씨?”
“빨대에 스트레스를 푸니 어느 정도 진정은 된 기분이랍니다.”
뭐, 딸기라떼도 거의 다 마시기도 했고. 빨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빨대를 씹어대면서 화풀이 중이다. 씹는다 하여도 끝부분만 씹어대는 중이겠지만.
이런 행위라도 진정효과가 있는지, 손목에 감아둔 감정을 확인하는 보석의 색은 푸른색에 가까워지고 있다.
“후…. 어제부터 계속 실례되는 행동만 보이는 기분이네요. 죄송합니다.”
마음이 진정되니 지혜씨에게 실례되는 행동만 해온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아, 시선 집중에 당황을 하고 나니 이번에는 부끄러움이라….
부끄러워서 죽는다는 표현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로비의 시선을 생각 못 한 제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성화씨랑 걷기는….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요. 그래도 부끄럽네요.”
지혜씨가 나쁘지 않았다 하니 안심은 된다.
그래도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겠지만.
성능 하나는 확실한 물건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으니 이 이후는 어쩌지…?
슬슬 퇴근 시간인가? 역시 휴가 중인 지혜씨를 잡은 상황 자체가 실례 아닐까?
처음 도착하였을 때 즈음, 전투휴무 중인 상황이라 설명해준 게 이제 생각이 나다니.
유급휴가가 얼마나 귀중한데!
“지혜씨 여기 전화번호 좀 써주실래요?”
일단 지혜씨를 먼저 보내는 편이 내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휴일에 본사를 나오게 하다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상황인가!
내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누른 뒤 키패드를 띄운 채로 지혜씨에게 건네준다.
하지만 지혜씨는 그 핸드폰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다.
“버…번호요? 제 번호요?”
“네, 지혜씨의 핸드폰 번호요. 어…. 혹시 문제라도 있나요?”
나중에 지혜씨에게 사례를 하기 위한 번호저장인데 문제라도 있나…?
아, 유명인이라서, 일반인에게 전화번호 유출되면 안 된다는 이유이려나?
‘핸드폰 번호는 역시 아닌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슬그머니 치우려 하니, 핸드폰을 먼저 잡는 지혜씨의 손이 더 빨랐다.
“아뇨! 문제없어요! 얼른 주세요!”
그렇게 뺏다시피 들고 간 핸드폰에 번호를 누르고 나에게 건네준다.
타이핑속도 엄청 빠르네.
“다 썼어요!”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건네어 받은 번호를 보고는 통화버튼을 눌러봤다.
착신 음이…. 최신 유행하는 음악이네?
그 착신 음이 들린 지 몇 초 뒤 지혜씨의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제 번호도 떴겠죠?”
“어…. 잠시만요. 성화씨의 번호네요! 여기로 연락하면 되나요?”
“네, 하신다면,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하니 편할 때 해주세요.”
“그렇다면, 매일 할게요!”
전화번호 교환이 그렇게 기쁜 걸까? 내 번호를 저장하면서 밝은 표정의 지혜씨를 보니 궁금증이 생긴다. 나를 왜 도운 걸까? 정말 동정심에 도운 걸까?
게다가 매일 연락이라니. 나를 놀리는 말은 아닐 테고…. 예의상 하는 빈말이겠지?
“지혜씨는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지 않나요? 저 같은 수준의 남성이면, 길거리에 널리지 않았을까요? 매일 연락할 정도라…. 저는 지혜씨와 비슷한 수준은 아니라 생각하는데요?”
나 정도의 수준이면 '평범' 그 자체 아닐까? 아 능력은 기준에서 빼야겠다. 능력은 병이 걸린 상태라 생각하고 있다.
남성들에게 인기가 넘칠 게 분명한 지혜씨가 나를 돕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혜씨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기에, 저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의 번호를 받고 기뻐하던 표정을 짓던 지혜씨는 나의 말을 듣고는 살짝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고민을 하더니 간결하게 답변해주었다.
“글쎄요? 사장님이 귀여워서?”
“저어언혀 답변이 아닌 거 같은데요? 주변에 저보다 멋지거나 잘생긴 남성들 많지 않아요? 몇 달 전에 본 예능에도 한 번 출현하신 거 같은데. 그때 본 남성 출연진에 비교하면 전 너무 보잘것없지 않을까요?”
너무 과하게 질문한 기분이다. 아, 이건 좀. 나를 도와준 은인 같은 분에게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 말을 하려 하였지만, 지혜씨의 말이 더 빨랐다.
“으음…. 성화씨? 먼저 사과를 할게요.”
“네?”
사과라니…. 아, 역시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하여서 화가난 상태일까?
지혜씨의 말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역시 내가 한 질문에 기분이 상해서 폭언을 하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조건 죄송합니다 하면서 사과를 해야 할까?
“성화씨는…. 잊히기에 사람이 그리울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게 아니거든요?”
내가 상상한 상황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나의 질문에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본인의 이야기라니?
그보다 사람이 싫을 수도 있지 나에게 사과할만한 내용은 아닌데….
그렇게 지혜씨의 말이 이어진다.
“유명하고 그러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저를 알까요? 안다 하였어도 저를 알까요? 어떤 모습의 저를 알까요? 대외적인 모습? 일상에서의 모습?”
“어…. 대외적인 모습 아닐까요?”
“그렇죠? 그래서 그냥, 그냥 팀원이 아닌 사람들은 좀 그래요. 아무리 남성이라 하여도 저의 명예와 돈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제가 만약 명예와 돈이 없다면, 그들이 저에게 접근했을까요?”
확실히 지혜씨를 보는 대중의 인식은, 대외적인 모습이 전부일 것이다.
지혜씨 나름의 고민이 있는 상황이 이해는 간다.
나를 봐주는 상대가 진짜 나를 알까? 소문으로만 나를 알까? 돈과 명예만 보고 접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한가득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고민될만한 문제다.
“그렇다면 저는요?”
그렇다고 해도 지혜씨의 답변은, 나를 돕는 이유가 되지 못하기에 되물었다.
어떠한 대답이 올까? 살짝 기대되기는 한다.
되도록 긍정적인 답변이면 좋을 텐데.
“그냥요. 그냥.”
“네?”
“그저 저를 손님으로만 바라봐줬잖아요? 그리고 다음 날? 아니 그날 새벽까지 마시고 점심시간에 방문했을 때도 저를 손님으로서 대했죠?”
“그렇긴 하죠…? 손님이니까?”
처음 만났을 때 손님으로서 대했고, 그날 점심시간에 만났을 때는 나의 멘탈이 조금 흔들린 상태이기도 했고…. 지혜씨의 술주정까지 다 봤다. 그렇게 지혜씨의 본모습을 한번 봤기에 편하게 대했던 걸까?
괜히 '여성에게 들이대면 여성들은 싫어한다.'고 생각하는전생의기억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죠? 손님이라 하여도, 저를 저로서 봐준 거죠?”
“네. 그렇답니다. 딱히 지혜씨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니, 저한테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에요!”
오해하기 쉬운 발언을 하여서 황급히 정정하였지만, 지혜씨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다.
지혜씨는 혹시 진짜 자신을 봐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음. 역시 하루도 안 된 사이에 급히 진행하는 것보다는, 순서대로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네? 무엇을요?”
“성화씨 저와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어…. 이건 좀 예상을 못 한 전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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