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달밤에 나 홀로 술을(4)
* * *
친구라…. 친구.
나쁘지는 않은 울림이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단어일까?
그러한 생각을 지혜씨 차에 탄 채로 몇 분째 하고 있다.
김지나 헌터도 스포츠카였는데 지혜씨도 스포츠카라니…. 역시 상위권 헌터는 벌이가 좋은 걸까?
“역시, 저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예요. 성화씨. 퇴근 시간이 얼마나 사람이 붐비는데! 치한이라도 만나면 어쩌시려고요?”
으음, 교외에 살다 보니 대중교통을 탈 일이 적어서, 치한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만약 내가 치한을 당한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보니….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솔직한 심정으로 고민이 되는 주제다.
전생의 나로서 즐길까? 현생의 나로서 거부해야 할까?
전자면 나 자신의 가치를 깎는 짓이고, 나 자신이 싸 보인다.
후자면 나 자신의 가치를 지키지만, 무언가 아쉽다.
그보다 승차감이 좋네.
푹신하면서도 적당히 딱딱한 시트의 느낌에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내부 디자인.
거기다 운전석을 향해있는 각종 버튼이 일반 차량과는 다른 느낌을 내고 있다.
차량 변속기 레버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다. 버튼으로 해결하나?
"으음, 제가 팔찌를 빼고 있으면 상관없지 않을까요?“
치한이라고 해도 감지능력이 아니면 나를 정확히 인지하기도 힘들고, 처음 인지한다고 하여도 중상위 헌터가 아니면 나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그렇기에 치한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지혜씨의 생각은 다른 걸까?
“성화씨 팔찌를 빼고 있어도, 만원 버스 안이면 타인과 밀착하게 돼요. 성화씨 능력은 타인과 접촉이 일어나면 인지하게 되잖아요?”
“아…. 거기까지 생각은 못 했네요.”
“게다가 '친구' 잖아요? 퇴근 시간 버스 안의 인파에 끼여서 가는 거는, 친구로서 보지 못하겠네요.”
팔찌만 생각해서 타인과 접촉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내 능력이 과잉증으로 인해 잊힌다고 하지만, 내가 타인을 잡거나, 내 신체가 타인에게 닿으면 능력이 그 대상 한정으로 풀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체접촉 실험을 해본 대상이, 지혜씨와 김지나 헌터님 뿐이기에 정확한 판단은 아니다.
친구라…. 나쁘지는 않네 라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친구라 하여도 급 차이가 크다.
이 세상 남성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지혜씨와의 만남을 신분 상승의 기회로 여기려나?
권력, 재산, 취업 등의, 사회적 지위가 차이나는 관계라면, 과연 정상적인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쪽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도, 낮은 쪽이 신경을 쓴다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쪽이 신경을 쓰지 않지만, 높은 쪽에서 과도한 배려를 한다면?
그러한 차이가 난다면, 친구라는 관계를 맺기가 매우 힘들지 않을까?
유유상종이라는 고사성어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친구라 하여도 사회적 지위를 보고 행동이 변하게 될지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전생의 남성으로서 영향일까? 아니면 소시민적인 발언일까?
“저 같은 거랑 친구를 하면, 나중에 댓글이나 뉴스에 지혜씨한테 안 좋은 쪽으로 언급되지 않을까요?”
“성화씨. 사무실에서 저도 기사를 봤는데…. ”
“네?”
지혜씨는 어떤 말을 생각 중인 걸까?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해온 상대에게 할 말은 아니었나…?
지혜씨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일까? 내가 너무 저자세로 나가는 기분이긴 하다.
“혹시 악성 댓글이 달리거나 뉴스에 나올 것이 걱정이라면, 제가 다 막아드릴게요. 천칭의 팀장급이면, 개인에 관한 언론 보도 정도는 막을 수는 있어요. ”
“네?”
응? 왜 이런 쪽으로 생각하는 걸까?
악성 댓글이나 뉴스라…. 나의 능력이 전자장비까지는 통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였기에 신경이 쓰이기는 한다.
김지나 헌터 사무실 앞에서 대기할 때 읽은 뉴스의 댓글들이 생각난다.
대부분 성희롱적인 발언이었지만, 수치심보다는 ‘그래서 뭐?’라는 느낌이 강하다.
나중에 도가 심한 악성 댓글을 보면, 고소나 해서 합의금 받아서 비싼 술이나 사볼까 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제가 ‘남자들의 돌려 말하는 언어’ 쪽은 잘 모르지만, 그런 걱정을 하시는 중 아닌가요?”
“아뇨? 그런 생각 한 적은 없는데요? 그냥 지혜 씨에게 단순히 폐가 될까 봐 그렇게 말한 건데요?”
“어…. 그, 그런가요?”
“네, 그런데요?”
돌려 말한 건 아닌데, 그렇게 들렸으려나?
지혜씨의 추측이 틀려서 무안해진 걸까?
차 안에서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퇴근 시간이라 차량은 막히지만, 지혜씨의 차 근처에는 일절 접근하지 않는 기적을 보고 있다.
그보다 시내에서 이런 시간대에 스포츠카를 타기에는 기름값이 엄청나지 않을까?
어색한 침묵과 더불어서, 어떤 말을 할지 몰라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지혜씨가 말을 걸어온다.
“그러면 정말 친구라는 주제로 고민 중이었던 건가요?”
“네. 악성 댓글 같은 경우는, 고소해버리죠. 뭐, 익명도 아니고 얼굴도 공개되어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걸로 괜찮겠어요?”
“물론요. 그보다 친구보다는 지혜씨의 지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천칭이 A급의 조직이라 불리긴 하지만 거의 대기업이잖아요? 그런 곳의 팀장이 저 같은 소시민과 친구 되는 거보다는 사교모임 등에서 나가는 편이…. 신분 상승과 재산축적의 기회 아닐까요?”
나라면, 친구니 뭐니해도 권력이나 재산축적이 우선 아닐까 싶다.
지혜씨의 경우는…. 속마음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순한 변덕 아닐까?
상위권 생활에 지겨움을 느끼다가 서민적인 생활을 체험하고 신선함을 느끼는 그러한 감정 말이다.
흔히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그러한 전개 말이다.
“신분 상승이나 사회적 지위를 따진 다라…. 성화씨는 역시 다른 느낌이에요.”
“뭐가요?”
“가끔 남성인데, 분명 남성인데 가끔 여성스러운 기분도 느껴져서요. ”
“네? 으음…. 남자인데요?”
“말이 그런 거예요 말이….”
성별에 대해 여성스럽다고 하기에 반사적으로 남성이라고 말하였다.
이 세상에서 여성스럽다는 말은, 전생의 ‘남성’스럽다고 해석해야 하려나?
아직 전생의 남자다움을 유지하기에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성화씨. 아까 카페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그냥 저를 저로서 봐줄 친구가 필요할 뿐이에요.”
“그래도 저는 지혜 씨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답니다.”
정말로 없다.
친구라 하여도 일정 부분 급이 비슷해야 하겠지만, 나와 지혜씨의 경우 격차가 너무 크다.
“없긴 왜 없어요?”
“어…. 정말로 없어요. 재산이나 헌터로서 능력이나, 지혜씨와 비교하면 한없이 작은걸요?”
“있잖아요 ‘그거’”
“네?”
그거라 하면 전혀 감이 안 오는데…. 역시 성적인 그런 것을 요구하는 걸까?
흔히 뉴스에서 보던 ‘~접대’라는 상황…?
어…. 지혜씨가 그런 행위를 요구해올 줄 몰랐는데.
그렇게 조금은 당황한 채로 지혜씨의 다음 말을 기다려보았다.
솔직히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한 기대도 있다.
“술이나 가르쳐주세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칵테일요. 칵테일에 대해서 가르쳐주세요.”
“너무 사소한 정보 아닐까요? 칵테일에 관한 정보는 조금만 검색해도 나올 텐데요? 아니면 호텔 같은 고급 바도 있어요.”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왔다. 나도 '남자'라서 그런 쪽으로 상상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운영하는 가게의 경우, 고급바 보다는 질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사용하는 술도 싼 술이다.
상위층 손님보다는 퇴근하는 길에 한잔 정도라는 느낌의 가게이기에 그렇게까지 고급 재료는 쓰지 않는다.
고급 바와 비교하면 분위기나 서비스의 질도 낮다. 애초에 나 혼자 운영하는 시점에서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저는 술에 대해서 모르지만, 성화씨는 잘 알잖아요? 상위권 헌터라고 해서 모든 것을 잘 알지는 않아요. 권력이나 돈, 사회적 지위로도 얻을 수 없는 것 또한 친구 아닐까요?”
이번에는 내가 잘못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과 지혜씨의 격차만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열등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혜씨는 상위권 헌터고, 나는 전생했다고 설치면서 헌터가 되려 하였지만, 결국 헌터가 되지 못하였다.
이 세상에서 상위권 층인 지혜씨가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뭐…. 술 이야기라면 나쁘지 않겠네요.”
“그렇죠? 그럼 정말 지금부터 친구인 거예요!”
“앞!! 앞을 봐요! 운전 중에 옆을 보지 마요!”
“아하하! 문제없어요.”
나의 말 한마디에 옆을 보며 활짝 웃는 모습이 예쁘긴 했다. 지혜씨는 웃으면서 넘겼지만, 운전 중에는 옆을 보면 안 된다 생각된다.
이런 상위권 층의 여성과 친구라…. 처음에는 열등감을 먼저 생각했지만, 술친구라 생각하니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든다.
혼자 마시기 적적할 때의 같이하는 술친구.
나쁘지는 않네.
그렇게 지혜씨와 나는 서로 부끄러운지 말이 없어졌다.
나라도 친구라는 단어를 계속 입에 담으면 부끄러워질 것 같다.
“자, 도착했습니다. 손님~?”
“어…. 스포츠카면 요금이 몇 배죠?”
“다음번에 가게에 가면 맛있는 음료로 대신해요.”
친구라는 의미를 고민하던 도중 내 집 앞에 도착하였다.
스포츠카라서 벌써 도착한 걸까? 내가 고민을 많이 해서 일찍 도착했다고 느끼는 걸까?
그렇게 창문 바깥을 둘러보니 이런 장소에 스포츠카가 주차되어있기에, 다들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본다.
일단 팔찌는 주머니에 넣고 내려야겠네.
“그럼 먼저 내릴게요…? 어제부터 계속 민폐만 끼친 거 같아서 죄송해요. 그래도 도와주신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값을 게요.”
“에이, 친구잖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지만….”
어제부터 시작해서 엄청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이 드는데….
받기만 하고 주는 게 없는 기분이 든다.
아무리 친구라 하지만 일방적으로 받는 기분인데, 역시 보답을 해야겠다.
“자! 먼저 갈게요! 저녁밥 꼭 드시고. 내일 장 한번 보시는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연락할게요!”
“네에네에. 저녁밥 꼭 먹고 내일 오후쯤에 장을 볼 거랍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가볼게요!”
지혜씨는 집 앞까지 데려다줄 성격이라 생각하지만, 주택가 특성상 차를 주차할 장소가 마땅치 않기에, 집 앞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주택가라는 협소한 공간에 주차를 시도하다가 차체에 흠집이라도 나면…. 보는 내가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겠다.
“어음, 친구가 생겼네…?”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지혜씨의 차를 바라보며 어제부터 있던 일을 생각해본다.
솔직히 안 부끄러우면 거짓말이고, 기쁘지 않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며칠 전이 보름달이었을까? 천천히 그믐달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밤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게 나쁘지 않네.
그러한 생각을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역시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그런지 계단을 올라가기가 너무 귀찮다.
나는 이때 눈치채지 못했다.
나를 지켜보던 시선이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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