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쓰면서도 고소한(3)
* * *
옆머리라…. 음 역시 기르는 게 좋겠지?
수아가 틀리거나 나쁜 말을 한 적은 없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서니 수아도 자연스레 테이블 석에 앉았다. 나를 인지 못할 때는 핸드폰을 보거나 해서 신경을 안 썼지만, 인지하는 날은 음료를 만들 때 지긋이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서 신경이 쓰인다.
화려한 쇼를 보여주는 플레어 바도 아니기에, 음료를 만드는 모습 자체는 특별한 무언가가 없을 텐데 왜 그리 보는 걸까.
주문이 뭐였더라. 라떼였지. 카페라테라…. 테이크아웃이라서 라테아트는 안 해도 되기에 좋아하는 주문 중 하나다.
카푸치노 = 카페라테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조금 다르다. 카페라테는 기존의 카푸치노에서 우유의 양을 추가한 음료이기에 전혀 다른 음료라고 할 수 있다.
전혀 다른 음료이기에 맛 또한 다르다. 카푸치노는 커피의 맛에 우유를 살짝 섞어서 우유 향을 추가한 기분이라면, 카페라테는 우유에 커피를 탄 느낌으로 두 음료의 차이는 크다.
이렇게 차이 나는 이유는 우유 거품의 차이에 있다. 카푸치노와 카페라테의 잔은 크기 차이가 조금 있지만, 한잔을 두고 보면 그렇게까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정말로 차이가 나는 것은 우유 거품 양의 차이다.
카페라테는 잔에 담겨있으면 평평하지만, 카푸치노는 우유 거품이 부풀어 올라있기에 우유 거품의 비중이 크다. 대부분 따뜻한 우유로 구성된 카페라테보다 우유 거품 비중이 큰 카푸치노의 커피 향이 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에스프레소 뽑는 김에 내 것도 뽑아야겠지?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포타필터를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분리하여 원두 분쇄기(그라인더)의 분쇄 원두 토출구에 가져다 댄 뒤에 손에 들고있는 포타필터로 그라인더의 스위치를 눌렀다.
여기까지 들으면 전문용어뿐이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해석하면 매우 간단하다.
포타필터는 핸드드립의 종이 여과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바리스타 하면 손잡이 달린 원형 철 뭉치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것을 포타필터라 한다.
원두 분쇄기는 잘 볶은 원두 콩을 분쇄해주는 물건이지만, 에스프레소용 가루는 핸드드립보다는 더 고운 가루를 사용한다. 그리고 원두 토출구에서 포타필터로 버튼을 누르는 이유는 정량을 정확히 받아내기 위함에 있다. 가루를 포타필터에 바로 넣지 못하고 바닥에 흘리면 재사용하기가 정말 귀찮다. 드링크바에서 좋아하는 음료수를 받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정확한 원두 가루 양을 포타필터에 담았다면, 탬퍼라는 원두 가루를 평탄화시켜주는 도구로 살짝 눌러 평탄화시켜준다. 꽉 눌러서 압착 시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평탄화만 시켜주면 에스프레소 머신의 기압으로 꽉 밀착된다. 원두 가루의 평탄화 작업이 끝났으면 포타필터를 에스프레소 머신에 끼운 후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역시 에스프레소의 장점은 핸드드립보다 빠르게 추출할 수 있으면서, 커피 기름 특유의 향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일까?
에스프레소가 추출되길 기다리는 동안 우유와 얼음, 잔을 준비해둔다.
수아는 쓴맛이 싫어서 우유를 많이 넣던 쪽이었던가?
“수아야. 우유 좀 많이 넣어줄까?”
“응 그러면 좋고. 있지 오빠 저번 주에 무슨 일 있었어? 왜 쉰 건지 궁금해.”
“일? 특별히, 어… 음, 약간의 일 정도는 있었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면서 저번 주의 생각을 해보니….
휴무일을 하기 전날부터 시작해서 삼 일간 다양한 일들이 있긴 했다.
대부분 지혜씨에게 연관된 일이었지, 그때 수아는 며칠간 출장을 간다고 했으니 못 본 게 당연한 걸지도.
그 외에는 밀린 집 청소를 하거나, 한가함을 즐겨보는 정도? 정말로 일이 있다면 있었고, 없다면 없다고 할만한 한주였다.
“헤에, 궁금한데에~?”
“별일 없었어, 정말로 일상적인 이야기야.”
“피이, 오빠는 철벽남이야~. 수아의 마음도 몰라줘~.”
“철벽남이라고 말하여도 정말로 없답니다~? 그냥 이것저것 머릿속이 복잡해서 푹 쉰 거뿐이야. 이때까지 휴가를 가본 적도 없었고…. 그냥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나니 여유가 생기더라. 신기하지?”
“흐으음, 그래…? 이제는 안 복잡하구나.”
내가 질문을 하거나 말을 주도할만한 능력이 부족하기에, 수아와의 대화는 매번 수아가 질문하는 쪽이다.
하긴 갑작스러운 휴무 팻말을 걸었으니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나라도 약방 사장님이 언급도 없이 휴무를 걸어놓고 가게를 닫았으면 걱정이 될 것이다.
언질이나 문자라도 해둘 걸 그랬나…? 미안해지네.
저번 주에 있었던 일은 말로 하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인생의 흑역사 순위에 넣을만한 사건이기에 남에게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지혜씨와 있었던 사건을 제외한다면 정말 평탄한 한주였다. 어디 놀러 가지 않고, 집에서만 푹 쉬는 것만으로도 휴가를 보낸 기분이었다.
한주 푹 쉬어서 그런 걸까?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 가끔 휴가를 보내야겠다. 매달은 불가능할 거 같고…. 3개월에 한 번쯤? 너무 빈도가 많은 걸까?
대충 얼버무리면서 답변을 하였지만,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음, 수아는 언제나 은은하게 웃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이게 말로만 듣던 포커페이스인가?
은은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수아를 애써 무시하면서 테이크아웃용 종이컵과 우유를 담은 스팀 피쳐를 준비하였다.
수아는 우유를 좋아하니 스팀 피쳐에 내가 마실 분량을 포함한 18온스(510g) 정도를 넣고 스팀완드의 팁, 끝부분을 살짝 담근 후에 레버를 돌린다.
레버가 돌아가는 정도에 따라서 스팀의 분출이 점점 많아지며, 치 이익 하는 소리도 점점 커진다.
순간적으로 거품이 일어났다가 소용돌이치면서 회전하는 우유. 크게 형성된 우유 거품이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면서 거품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이렇게 거친 거품이 고운 거품으로 변한다.
얼핏 보면 간단한 작업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난이도가 높다. 너무 오래 하면 우유의 맛과 냄새가 비려지고, 짧으면 차가운 우유 그대로다. 게다가 스팀 분출을 너무 강하게 하여도 우유 거품이 거칠어진다. 흔히들 말하는 게거품의 느낌이다. 거품이 없는 듯이 있는 상태의 느낌을 벨벳 밀크라 하는데 생각보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이 귀찮기에, 얼음 넣고 차가운 우유 넣고 에스프레소 넣으면 끝인 아이스 카페라테 주문을 가장 좋아한다.
우유 스팀은 빠르게 끝나는 작업이기에 원하는 정도의 온도와 거품에 도달했으면 레버를 돌려서 스팀을 먼저 끄는 편이 좋다. 그냥 그대로 빼면 스팀완드에서는 강한 압력의 스팀이 계속 분출되는 상황이기에 대참사가 일어난다. 그날 하루 우유 비린내와 함께하기 싫다면 먼저 스팀을 끄고 피쳐를 옮기는 게 좋겠지.
완성된 스팀밀크를 바닥에 한번 통통친 뒤 종이컵에 따를 준비를 한다.
“오빠, 혹시 스포츠카 같은 거 좋아해? 남자들은 막 스포츠카 타는 여성 좋아하고 그러잖아?”
수아도 그렇게까지 수다스러운 성격은 아닌데, 오늘따라 질문이 많은 기분이다.
스포츠카라 뭐 타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역시 실상에 쓰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도심 내에서는 연비가 나쁘다.
애초에 고속으로 속도만을 생각하여 만든 차량이기에 연비가 나쁘지만, 도심 내에서는 주행하다 멈추기를 반복해야 해서 더욱더 가성비가 나빠진다.
또 한 이 세상 한정으로, 교외로 바깥으로 나갈 때는 군대에서 직접 관리하는 고속도로가 아니라면, 종종 야생화된 이종족 혹은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준대형차가 인기가 있다.
스포츠카에 흠집이라도 나면? 어휴 수리비 생각에 오금이 저린다.
흠, 그래도 일반 준대형 차량들은 습격당했을 때 차량흠집을 감수하고 들이박는 용도라면, 스포츠카는 기습을 당하였을 때 빠른 속도를 활용해서 이탈하는 용도일까? 그래도 차량에 흠집이 날 거 같은데…. 지혜씨는 상위권 헌터라서 그런 차를 사용하는 걸까?
“뭐,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 실용성도 좋지 않았던 거 같은데.”
“좋지 않았구나, 역시 오빠다운 말이네. 다른 남자들은 왜 그리 허영심이 많은 걸까? 그치 오빠? 내 오빠의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글쎄. 요즘 들어서 나 다운 게 뭘까 싶기도 해. 그리고 난 소시민적으로 생각할 뿐이야.”
확실히 너무 오래 살아왔기에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는 한다. 이 세상 남성들처럼 자신의 성별을 무기 삼아서 살아가 볼까 싶었지만, 전생의 괴리감이 들어서 하지는 못하였다.
만약 능력 과잉장애 증후군이 없었다면, 지금쯤 이 세상의 상식과 완전히 동화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 대화를 하는 중에 따뜻한 우유를 부은 종이컵에 에스프레소 투 샷을 넣어서 카페라테가 완성되었다. 이제 화상방지를 위해서 종이홀더를 끼우고 뚜껑만 덮으면 완성.
“자, 여기. 컵 한계까지 우유 넣었으니까 조심해서 들고 다녀야 해.”
“응, 고마워. 역시 내 오빠뿐이라니까?”
카페라테가 든 컵을 건네어 주니, 수아는 결제를 위해서 카드를 건네어 준다.
“안 받으려 하면, 현금으로 돈을 더 놓고 갈 거지?”
“정~답. 어서 결제해줘. 저녁 시간 전까지 가봐야 할 거 같아. 급한 일 처리하고 빨리 올게.”
“급한 일이면, 천천히 정확히 해결해야지 너무 가게에 올 생각으로 수아가 일을 그르치지 않았으면 해.”
결제를 완료한 후에 카드를 건네어 주려 하지만, 수아의 반응이 조금 굼떴다.
역시 바쁜 일 때문에 신경이 그쪽으로만 쏠린 거 같네.
“거봐. 바쁜 일 있지? 너무 정신 팔린 채로 있지 말고 빨리 해결하고 천천히 와.”
“흐음. 역시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지?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올게!”
“아니 빨리 말고 천천히 정확하게 해라니까?!”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걸까? 아하하 하면서 즐겁다는 컵을 들고 카운터에서 일어나 뒤돌아 나가려 하였지만, 수아는 무언가 깜빡한 듯이 다시 컵을 내려놓는다.
“아차, 깜빡했다. 이건 오늘 약. 그리고 저번 주 출장 간 곳에서 사 온 물건이야 가게 카운터에 꼭 붙여줬으면 해.”
“읏, 매번 안 줘도 괜찮아. 난 헌터 아니…. 아니 알았어! 받을게 그런 표정 짓지 말아줘.”
거의 매일이라 하여도 좋을 정도로, 볼 때마다 선물로 주는 환약이기에 거절을 하려 했지만, 시무룩해지는 수아의 표정 때문에 받게 되었다.
약방 사장님은 연장자라서 받게 되고, 수아는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되어버리니…. 포커페이스라 생각한 조금 전의 생각 취소다. 약을 거절하려 하면 시무룩해 하는 표정을 지어버리는데 이걸 깜빡했다.
하아…. 나는 헌터가 아니기에 이런 환약을 받아봤자 큰 의미도 없을 텐데…. 음, 가끔 주변 사람에게 자양강장제를 건네어 주는 느낌이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자꾸 주려고 하니까 이쪽이 부담스럽다.
그리고 수아가 선물이라고 건네준 물건은 검은색 깃털이다. 길고 큰 깃털인데 일반적인 동물로부터 채집한 물건은 아닌 것 같다…. 문 너머의 몬스터중 하나일까?
“흑조라고 불리는 새 모습의 대형 몬스터에서 채취한 깃털이야. 오빠 가게에 어울릴 거 같아서 들고 왔어. 가게 인테리어도 숲속 느낌이잖아? 카운터에 붙여놓으면 이쁘겠지?”
“으음. 너무 검은 색인데 가게 인테리어에 어울리려나…?”
“어울릴 거야 오빠는 내 말 잘 들어 주잖아? 그치? 약이랑 같이 받아줘.”
“으, 응 그렇…. 지? 선물이기도 하니까 장식 정도야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
“오빠는 언제나 내 말 잘 들어 주잖아, 고마워. 그러면 장식하는 거다? 그리고, 음 시간이 없는 거 같으니까 이제 슬슬 가볼게. 나중에 봐.”
“그래 나중에 봐.”
내려놓았던 잔을 들고는 가게에서 나가는 수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음, 언제나 이런 식이다.
수아가 가끔 나를 망각하지만, 인지하고 있을 때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말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거절하자니 뭔가 내가 잘못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단호히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만 해온다.
뭐, 동생이니까 부탁을 들어주는 기분이 크다.
그리고 환약…. 윽, 결국 받게 된 걸까?
맛이 씁쓸한 게 딱 내 취향 같아서 좋기는 하지만…. 자양강장제를 매번 먹기는 그렇지 않나…?
매번 받으면 아까워서 먹어왔다면, 이번에는 지혜씨에게 챙겨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가게일 보다는 헌터 일이 육체적 피로가 더 심하다고 생각한다.
카운터의 돈 통에 환약을 넣어두었다. 지혜씨 오면 줘야지.
아직은 퇴근 시간 전이라 수아랑 대화하는 동안에도 손님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수아가 가게에 오면 손님이 줄어드는 기분이었는데 손님을 내쫓는 사주라도 있는 걸까?
사주니 운명이니 믿지 않는 편이지만, 수아만 오면 그렇게 되니 신기하기는 하다. 정말 운명이나 사주가 어느 정도 맞으려나?
어찌 됐든 내가 마실 음료나 만들어 마시기로 하였다.
재료는 이미 준비되었다. 수아의 카페라테를 만들 때 수아의 취향에 더하여 우유를 더 많이 넣었기에 내가 마실 분량은 충분히 남아있다. 그리고 뽑아둔 에스프레소를 그대로 피쳐에 넣으면 카페라테가 완성이다.
카페에서 일하지 않으면 마실 수 없는 잔이다.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일할 맛이 나지 않을까?
그보다. 지혜씨는 언제 오려는 걸까? 문 조사가 끝나서 장비를 정리 중일까? 아니면 조사가 길어져서 아직도 문 너머에 있는 걸까?
피쳐 잔에 들어있는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지혜씨가 오길 기다리는 상황이…….
나 자신이 반려견처럼 느껴졌다.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라니 맙소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