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37화 (37/140)

〈 37화 〉 쓰면서도 고소한(5)

* * *

몇 번 들은 기억은 있다.

통칭 독거미. 이쪽 구역 지배조직의 간부 중, 한 명을 칭하는 별명이다.

처음부터 독거미라 불리지 않았다.

그렇게 불리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 이 골목에 나타났을 때는본인 구역 내의 사람 혹은 뒷골목에 위치하는 가게를 대상으로, 친근한 분위기와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하였다.

그 결과, 뒷 골목의 새 관리인을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함정인 것을 누가 알았을까?

어느샌가 그녀에게 빌린 돈 혹은 빌린 물건으로 인해서, 범죄조직과 연결된 사람들 대부분이 각서 혹은 강제계약서를 작성한 대사건 이후로, 독거미라 불리고 있다.

먹잇감이 잡혀있다 해도 바로 죽이지 않고, 천천히 독을 주입한 다음 확실하게 죽이는 모습에서 별명을 따온 걸지도 모르겠다.

죽인다는 표현보다는 정확히 말하면, 고금리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다. 그 외의 계약서는 각서 같은 비정상적인 계약서라던데….

대사건 이후로 현재, 그녀가 보이기만 하면 다들 경계를 하기에, 예전처럼 친근하게 대하기보다는 웃으면서 압박을 주는 방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독거미년이라 말하는 걸 들어보면 여성이겠구나….

왜 이전에는 이런 소문을 듣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걸까?

가게 초창기에는 뒷 골목 소문을 듣고는 무서워했던 기억이 몇 번 있었는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가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걸까?

이러한 생각을 가지던 중에도 헌터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 뭐냐, 공가년 알지?”

“공씨? 실력은 뭣도 없으면서 흑월 맴버라고 콧대만 높은 년?”

흑월이라…. 흑월도 유명한 헌터 조직이다. 한국인에게 오래된 헌터 조직을 꼽으라 하면 광휘, 천칭, 흑월을 꼽을 것이다.

한국 해방전쟁 전부터 존재해온 조직들이라서 그런지 네이밍센스가 구리다. 124년 전에는 멋진 느낌의 이름이었으려나?

이 조직들은 서로의 특기가 조금씩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해방전쟁 당시 이야기로는 광휘가 최선봉에서 방패의 역할을 했다면, 흑월이 적의 최후방에서 적을 괴롭혔다. 그리고 천칭은 두 조직의 백업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역사가 있어서 그런 걸까? 광휘는 최전방에 돌격만 하는 이미지, 천칭은 공수교대가 빠르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 흑월은 조사와 탐사는 잘하는데 그 외는 좀…. 이라는 고정관념이 붙어버렸다.

현재의 흑월은 조사 및 탐사 전문이라 B급 클래스로 낮게 평가된 조직이다. 하지만 흑월에 들어가면 주위 사람들이 대기업 입사 취급을 해주다 보니 공씨라는 사람의 콧대가 높아진 걸까?

그렇게 전체적인 청소를 끝낸 이후, 싱크대에서 내일 사용할 레몬을 미리 손질하고 있지만, 내 귀는 두 헌터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 공가년. 아니 그 공씨, 그 멍청한 년이 독거미 앞에서 알짱대면서 신경 줄을 벅벅 긁었대.”

“아니….허, 그래도 흑월 소속 한정으로 적당히 넘기지 않나?”

하긴…. 흑월은 이상하게도 뒷 조직들과 대립하지 않는다. 아니, 좀더 명확히 말하면 범죄조직과 대립하려 하지 않는다. 범죄조직을 검거하려고 하여도 흑월이 유독 소극적이다.

어디까지나 국내 조직 한정이지, 외국 범죄조직 검거에는 가장 협조적이다.

“그게 말이지…. 아 술 떨어졌네, 위스키 한 병이나 사줘, 이야깃거리가 있는데~그치? 술이 없다니~ 너~무 아쉽잖아~?”

“어허 이 사람이…. 솔직히 말해봐. 술 얻어 마시려고 말 꺼낸 거지!?”

“아~시름 여기서 끝내든가!”

“오케이 한 병!”

“들었지? 바텐더! 이 라인업에서 비싼 위스키 아무거나 한 병 줘!”

역시 취하면 사람이 바뀌는 느낌이다.

두 분은 가게에 들어오실 때만 해도 진중한 느낌의 헌터였을 텐데, 어느 순간 장난끼가 넘치고 있다.

물론 고급 바에서 이런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지만, 동네 바 컨셉을 표방하는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분위기라 생각한다.

포장마차에서 위스키를 파는 느낌이려나?

현재 팔찌를 뺀 상태라 나를 정확히 인지는 못 하지만, 주문받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위스키 브랜드 지정 없이 없는데, 이번에도 ‘팔봉 드워프 위스키’라인으로 드리면 될까…? 흠, 맛은 비슷하면서도 도수가 높아서 조금 더 비싼 ‘팔봉 블랙’으로 드리면 괜찮을까? 저분들이 드시는 물건은 35도짜리 도수가 낮은 위스키지만, 블랙의 50도도 괜찮지 않을까? 알콜의 향이 조금 더 강하게 쏘는 느낌이지 전체적인 맛과 향신료의 느낌 차이는 크지 않다.

애초에 이쪽 위스키 라인업으로 주문을 하는 시점에서 맛보다는 취하려고 마시는 물건이다.

게다가. 이때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범죄조직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취하면 다른 말이 나올지도 몰라서 50도짜리 위스키를 내어드렸다.

가격은 팔봉 드워프 위스키랑 같은 값을 받아야겠다. 할인한 가격은 정보 값이라 생각하자.

“팔봉 위스키 블랙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음 더 드릴게요.”

“여어, 고마워 바텐더 양.”

나를 제대로 인지 못 할 때는 어떠한 느낌으로 인식하는 걸까? 조금 전에는 남성으로 인식하더니 이제는 ‘양’을 붙여서 부른다. 정말 능력에 관해서는 알듯이 모르겠다.

최근 소문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듯한 헌터는 위스키병을 잡고 뚜껑을 돌렸다.

따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리는 위스키병.

병 입구로부터 향을 맡더니 그대로 서로의 잔에 부어준다.

“크! 바텐더 ‘군’이 이번에는 독한 술로 줬구먼! 나쁘진 않아. ”

“한동안 약도 못 하게 된 판에 독한 위스키라도 마시고 뻗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두 헌터는 여전히 소주를 마시듯이 위스키를 마신다.

본인이 낸 돈이기에 참견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소문이 더 궁금하다.

“어, 그래서 어디까지 했지?”

“공가년이 독거미한테 깝친 상황까지.”

정보를 듣던 헌터는 그렇게 말하고는 위스키 잔에 얼음을 한가득 넣고 잔을 입에 댄 채로 아주 천천히 위스키를 입안으로 흘러 넣고 있다.

“아! 그래그래 거기까지 했지. 취해서 그런지 머리가 둔하구먼! 하하!”

“위스키병으로 대가리 찍기 전에,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거, 사람 성격 급하기는. 그래 공가년이 약이 좀 필요했나 봐. 그거 때문에 독거미년한테 가서 ‘빨리 약 내놔.’라고 한 거지.”

“그 정도로는 안 빡치잖아? 오히려 호갱님 왔다고 잡아먹을 생각 한가득 으로 즐거워 할 텐데?”

소문을 알고 있는 헌터는, 고개를 흔들면서 부정의 의사를 내비치었다.

“뭐,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거라서 어디까지 진실인지 모르겠다. 내가 들은 바로는 독거미년이 이상하게도 '무표정'으로 ‘그곳’에 가는 도중에 멍청한 년이 약달라고 조른 거지.”

독거미라 불리는 자가 무표정이었다는 말에 깜짝 놀란 걸까? 이야기를 듣던 헌터는 소문을 알던 헌터의 입에서 ‘무표정’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잔을 든 채로 전신이 굳어버렸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일까?

소문을 듣던 헌터가 눈이 동그랗게 떠진 채로 소문을 아는 헌터에게 물었다.

“미친…. 그, 독거미가 무표정?”

“몰라. 나도 확인하러 가기 존나 무서우니까, 궁금하면 니가 알아봐.”

“하 씹. 한동안 약 못 구하겠네. 우리 같은 D급은 증폭 약 없이 어떻게 문넘어로 탐사를 가냐…. 그래 그보다 그 씨발년 어떻게 된 거야?”

“아, 공씨?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무표정으로 공씨 말을 들어주다가 한숨을 푹 쉬더니 그대로 풀스윙으로 뺨을 후려갈겼대. 그리고 공씨는 그대로 넘어졌고. 얼마나 눈치가 없으면, 그 독거미가 무표정으로 있는 상태에서 위기감을 못 느낀 거야….”

“그걸로 끝?”

소문을 알고 있는 헌터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목이 마른 걸까? 얼음이 녹아서 위스키의 강한 맛이 조금 희석된 위스키를 한잔 마시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헌터에게 빈 잔을 들이댄다.

술안주 거리로 이야기만 한 게 없는 걸까? 소문을 듣던 헌터는 ‘칫’ 하는 소리와 함께 위스키를 따라준다. 그렇게 새 잔을 받고는 소문을 알고 있는 헌터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끝이면 좋겠지만 공씨한테는 재앙이 들이닥친 거지 뭐. 뺨 한 대에 옥수수 몇 개가 떨어지긴 했다던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말 로는 거기서 끝날 줄 알았다더라.”

“뭐야 더 있어?”

“이다음부터는…. 그 독거미가 일을 이렇게까지 벌리냐 싶어서 말이지. 내 생각으로는 과장된 소문인 거 같기도 하고….”

소문을 알고 있는 헌터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확실히 소문이면, 어느 정도 와전이 되기에 100% 신뢰할 수는 없다.

“뭔데? 공가년 씨발년이 반격이라도 한 거야?”

“그러면 소문에 신빙성이라도 있지. 독거미년이, 뺨을 맞은 고통에 정신 못 차리는 공씨를 있는 힘껏 밟아대기 시작했다는 정도? 솔직히 안 믿어지긴 해.”

독거미라는 여성이 누군가를 폭행했다는 말에, 이야기를 듣던 헌터는 정말로 큰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들의 이야기만 들으면, 독거미는 사람을 천천히 말려 죽이면서 강제 계약을 맺지만, 폭력적인 일은 하지 않는 성격일까?

“아…. 진짜?”

“나도 정말 몰라 확인하기도 무섭고….어찌 되었든 갈비뼈 등 뼈 몇 군데가 금 갔을 정도로 한참을 밟아대고는 공씨를 보더니 뭐라 말한 줄 알어?”

“어…. 두 번 다시 알짱대지 마라?”

고개를 절레거리더니 위스키를 한 모금 한다.

이번에는 바로 마시지 않고, 한 모금을 머금은 다음에 목 뒤로 넘겼다.

“후…. 이게 팔봉 블랙인가? 독한 게 나쁘지 않네…. 거, 말할게. 표정 좀 펴라. 어디까지나 소문이니까 어디 가서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

“거, 년 엄청 뜸 들이네.”

“이런 재미가 있으니 술 하는 거 아냐? 뭐어, 한참 밟은 다음에 활짝 웃으면서 ‘기분 정말 개 같은데 제 기분을 풀어주러 오셨네요? 고마워요. 당신의 몸 좀 조금 더 빌릴게요.’라고 말하고는 피범벅으로 ‘살려만 주세요.’라고 중얼거리던 공씨의 발을 잡고 그대로 끌고 갔다더라.”

“미친….”

이야기를 듣던 헌터의 반응에 소문을 알고 있는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의 말에 맞장구친다.

“그렇지? 뺨을 후려치는 정도야 이해하는데, 지르밟은 다음에 끌고 갔다 까지는 솔직히 못 믿겠지?”

“아니, 되도록 본인의 관리구역 내에서 조용히 조지면 조졌지, 시끄러운 소문 안 내려던 독거미 성격과는 좀…. 그렇긴 하네”

두 헌터는 서로를 보다가 한숨을 푹 쉬며 남은 위스키를 서로의 잔에 따라줬다. 벌써 다 마셔 가는 걸까?

“그보다. 공가년도 증폭 약을 했구먼, 아니 아직 약한지 얼마 안 됐으면 조만간 흑월에서 쫓겨나는 거 아니야?”

“뭐, 살아있다면 말이지.”

“아…. 에이 설마 죽이기까지 하겠어.”

"그렇지…?"

순간 찾아온 어색한 분위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위스키를 다 마신 두 헌터는 계산을 하고 나갔다.

마지막 손님까지 나가서 그런 걸까? 가게 안이 조용하게 느껴진다.

두 헌터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손님이 나갈 때도 대충대충 계산한 기분이다.

일단은 가게 안의 음악 소리를 들으며 카운터에 앉아 디카페인 카페라테를 한잔 마시고 있다.

두 여성 헌터의 이야기가 길어지길래 입이 심심해서 마시는 논 카페인 카페라테다.

흠…. 방금전의 이야기와 이때까지 들어온 소문을 총합해보면, 큰길 쪽의 상가는 건들지 않고 범죄조직과 관련된 사람만 건드는 걸까…? 게다가 이쪽 골목은 능력 증폭 약 유통으로 유명하고?

누구는 능력 과잉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약을 하면서까지 능력 증폭을 하고 싶은 걸까?

그보다. 가게 초기에는 아는 정보가 없어서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여차하면 팔찌를 빼고 다니는 방법도, 상위 능력자라면 통할까?

역시 우울증은 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아…. 치안이 좋기는 한데…. 큰길만 치안이 좋다니.

이때까지 치안이 좋다고 생각해왔기에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평소에 신경 쓰지 않고 지내왔지만, 옆집에 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면, 과연 평소대로 멀쩡히 지낼 수 있을까?

조금 고민을 해야 하는 문제다.

그렇게 고민하던 도중 손님이 들어왔다. 아직 영업 종료까지 1시간은 남은 거 같은데 수아일까?

문에 달아둔 종소리와 함께, 가게에 들어오는 여성.

정장을 입은 지혜씨다.

“성화씨 많이 늦었죠! 서프라이즈~! 하려고 연락 없이 왔어요!”

“지혜씨!”

마시던 음료를 카운터위에 올리고, 지혜씨가 있는 가게 입구로 걸어 갔다.

문자나 연락이 없어서 임무가 장기임무로 바뀐 줄 알았다.

둘째 주가 지나가려던 시기였기에 나를 잊었을까 봐 걱정 좀 했다.

문 너머에서 뭘 했을까? 공중파나 너튜브에서 보게 되는 문 공략 방송은 이미 인간 측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문에서 안전하게 촬영한 장면이라서, 어느 영상이든 비슷비슷한 느낌을 낸다.

현직 헌터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금 더 다른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왠지모르게 지혜씨가 괘씸하니까 일단 술부터 먹여야겠다.

절대로 나를 놀라게 했으니 하는 사소한 복수가 아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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