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쓰면서도 고소한(6)
* * *
오른손에 쥔 백색의 창.
나의 힘으로 만들어진 물건이기에, 창의 상태로 현재의 몸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
창대가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이며, 날이 아주 날카롭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최상의 컨디션이겠지.
언젠가의 언론 취재에서 투창시연을 한 영상이 인상적이었던 걸까?
SNS나 뉴스 댓글, 너트뷰 등에서 ‘투창의 이지혜’‘투창’‘천투(천칭투창)’ 등등 투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렇게 다들 투창이라는 이명을 먼저 생각하기에, 나의 능력으로 창만 던지는 줄 알지만,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투창보다는 근접전을 선호한다.
능력으로 창날과 길이와 창날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지만, 한번 정한 모양을 변경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사용하는 창의 형태는 월도에 가까운 형태의 장창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정해둔 창의 모습으로 인해, 찌르기보다는 적진에 한가운데에서 다수의 적을 베거나, 창날의 반대편 끝으로 창대를 휘두르면서 충격을 주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 창으로 투창을 할 때는 창의 모양을 내가 조절할 수 없다. 내 생각과 상관없이 창끝이 화살촉 모양으로 강제적으로 바뀐다.
던지기는 편하지만 한번 박히면 뽑아내기가 힘든 모양이다.
투창할 때 완전히 관통을 시키지 않으면 시체까지 끌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투창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정쩡 하게 약한 녀석이 끌려오면, 되돌아온 창을 잡고 발로 밀어내면, 창 촉과 함께 그 대상의 살덩이를 뜯어내면서 창이 뽑힌다.
끌려온 대상은 치명적인 상처로 인해서, 대부분은 과다출혈 혹은 쇼크로 사망. 살아있더라도 반격하기 힘든 상태가 되기에 그대로 목을 베어 버린다.
문제는 혼자 상대하기 불가능하며, 분대급은 투입되어야 하는 강력한 적에게 투창이 명중하였을 경우다.
난전에서는 변수가 다양하다.
투창은 총알의 속도와 비교하면 투사체의 속도가 느리기에, 던져진 창의 체공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그 잠시의 시간 동안, 다른 존재가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빗나가면 다행이지만, 현재 게이트의 주 종족의 대장급, 대마녀급 혹은 수호자에게 어정쩡하게 창끝이 박힌다?
명중으로 판정되어서 그 대상을 내 앞으로 끌고 오게 된다.
이전에 전선의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목표를 대상으로 투창을 하였지만, 그사이에 끼어든 수호자급이라 불리는 거대 골렘의 손에 창끝이 끼여서, 그 골렘을 끌고 왔을 때 정말로 대형 사고를 친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훈련 내용대로 전원이 일제히 물러서면서 수호자급을 최대한 피하였지만, 진영 붕괴로 인한 손실은 어쩔 수 없었다.
수호자급이라는 말답게 더럽게 튼튼하며, 그 크기와 질량으로 인해 매우 위력적인 상대이다.
후방 지원 포격이 성공해서 다행이지. 성공하지 못했다면, 팀원을 잃거나 중상을 입힐뻔했다. 게다가 너무 이른 나이에 팀장에 임명되어서 그런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총괄팀장님과 팀원에게 욕을 하면서 대판 싸우긴 했지만, 어떻게든 그 감정을 풀기는 했다.
조만간 성화씨가 운영하는 만월 바에 가서 단체 회식 겸 술이나 한번 해야겠지.
팀 전체가 가기에는 인원이 너무 많고, 조장들만 뽑아서 가야겠다.
성화씨에게 사람을 소개해주고, 성화씨 자랑을 팀원에게도 하고. 일석이조 아닐까?
어찌 되었든 현재는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
투창 자세를 잡으면서 전방을 주시한다.
창을 보면서 언제나 생각하지만, 창이 밝게 빛이 나지 않아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빛이 난다면 기습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도 위장에 적합한 색이 아닌, 백색인 시점에서 창을 만들어내고 들키기 전에 던져야 한다.
목표는 전방에 보이는 5마리의 오크.
아마도 정찰 중으로 추정된다.
정찰대 오크 중에서 가장 크고 좋은 장비를 들고 있는 녀석을 향해 창을 던졌다.
화기처럼 큰 소리는 없지만, 능력으로 만들어낸 창이기에, 매우 긴 사거리를 가졌으며, 위력은 일반 탄환을 사용하는 총기보다 뛰어나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 큰 구멍이 뚫린 오크.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다른 오크의 흉부까지 완벽히 관통하였다.
투창의 관통력이 워낙 좋기에, 투창 한 번에 두 마리를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나의 옆에서 울리는 세 번의 총소리.
저격총에 소음기를 장착했다고 하지만, 총기 소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km 이상의 거리에서는 들리지 않을 테니 상관은 없겠지.
“시작부터 나쁘지는 않군.”
“그러게. 숙영지 근처를 산책할 겸 나왔는데 정찰병이라…. 우리가 먼저 발견하지 않았다면 습격받을지도 몰랐겠어. 그치 지나 언니?”
“그러게 말이다. 산책 도중 감지가 되어서 확인해보니 이번 게이트는 오크라니…. 생각보다 귀찮은 임무가 되겠군.”
저격총을 사용한 건 천칭의 공격팀 총괄팀장이었다.
지나 언니는 감지계열 중에서도 광범위 탐사에 특화되어있어서 저격총을 주로 사용한다.
능력이 만능은 아니기에, 스코프를 활용해서 육안으로 주변을 확인하고 있다.
“그보다 총괄팀장이라는 직책인데 이렇게 바깥을 돌아다녀도 괜찮겠어? 나야 산책 나왔다 하면 되는데….”
“숙영지 전개 중에는 나와주는 게 서로 편해서 말이지.”
“뭐, 그렇긴 하지. 현역 경험 때문인지, 애들이 팀장급을 편하게 대하는 것 같으면서도, 눈치를 많이 보기는 해.”
오크정찰대를 처리한 이후, 여러 잡담을 하면서 숲길을 걷고 있다.
팀원의 훈련 상태가 부실하다.
급식 상태가 개선되었다.
최근 이런 소재의 무기가 유행한다.
같은 천칭에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너무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나 언니의 감지능력이라면 기습당할 일은 없다.
물자 관련 이야기는 게이트 진입 전에 끝났고. 숙영지 전개 이후의 작전에 관해서도 계획대로 진행하면 된다.
게이트 진입 첫날이라 그런지, 지나 언니랑 딱히 할 말이 없다.
형부 이야기는 지뢰 확정이다.
이번 게이트의 주 적은 오크로 추정되니까 그에 관한 말을 하는 편이 좋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며 숲길을 걷던 도중 지나언니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지혜야. 사장님이랑 어떻게 된 거니?”
“예? 잘못 들었슴다?”
아니 여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와!?
나도 모르게 현역시절 말투가 되어버렸다.
“바 말이다. 거기 사장님이랑 어떻게 된 거냐.”
“어…. 그냥 연락하고 지내는데?”
오늘 아침에 게이트 안에 진입한다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숙소에 두고 왔다.
게이트 내에서는 전파 기지국이 없어 통신망의 사용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락이….
몸조심하고 잘 다녀오세요.
였나?
응, 뭐 나쁘지는 않네.
그러한 생각을 하는 도중 지나 언니의 말이 이어진다.
“훈련용 팔찌 받으러 왔을 때, 쭈욱 지혜씨라고 부르는 걸 보면 수상하단 말이지.”
“아니 뭐, 언니, 친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만난 지 한 주도 안 지나지 않았나? 3일인가?”
“그, 그냥. 얼굴만 아는 친한 사이라 해주면 안 될까?”
“그러면 게이트에 출발 전까지 히쭉히쭉하면서 핸드폰을 본 건 누굴까? 우리 지혜 누구랑 연락했을까?”
“윽…. 그럴 수도 있지. 뭘, 그거 가지고 자꾸 물고 늘어져!!”
숲길을 걸으면서 놀림을 받게 되었다.
실제로 만난 지 이틀도 안 된 시점에서 여러 일이 있긴 했다.
뭐, 우리 성화씨가 귀엽긴 하지.
자꾸 눈길이 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여중, 여고를 나왔고 빠른 나이에 헌터로써 입사 및 현역 입대까지…. 생각보다 남자를 만날 기회가 적기는 했었다.
동기 혹은 공격팀 내의 남성은, 전장을 구르다 보니 남자 같지도 않다.
게이트의 숙영지에서 성별 관계없이 무엇이든 공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겠지.
그런 남성만 보다가, 성화씨 같은 남성을 만나고 나니 솔직히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
다음번에 좀더 여성스럽게 당당하게 나가야 하나?
아니면 성화씨한테 다 맞춰줘야 할까?
그보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기념품이라도 가져가 볼까?
한때 헌터 지망을 했으니 이세계에 거주하는 종족이 사용하는 물품이 궁금하겠지?
여러 고민을 하는 나의 표정을 보고는 지나언니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래 첫사랑이 그런 걸 수도 있지. 이해는 한다. 그래도 임무에는 지장을 주지 말도록.”
“예이, 그러도록 합죠…. 응? 첫사랑이라니?”
나의 말에 다시 한번 피식하고 웃더니, 나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무언가 이상하게 꼬이는 기분인데?
“뭐, 자각을 못 하면 그건 그거대로 풋풋하겠지. 그래도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지 마음 단단히 먹어두도록.”
“윽…. 아직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그보다 언니, 형부가 첫사랑이야…?”
“지혜야….”
“응?”
“때로는 승리를 위해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단다.”
아…. 생각해보니 지나언니는 형부한테 잡혀 살지….
아마도 숙영지 전개를 감독하는 서준 오빠를 피하고자 나랑 같이 산책 나온 것 같다.
웬일로 나와 같이 산책하러 나가나 싶었는데 그런 이유였나….
@@@
이번 게이트의 조사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상대하는 종족이 오크라는 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든 방벽을 세운 숙영지다 보니, 오크들에게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하고는 있었다.
4~5일쯤 되었을 때근처 오크부락에 발각되어 본격적인 라인이 형성되었지만,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오크들을 상대할 때의 문제점은 다른 곳에 있다.
정찰할 때에는 분명히 아무것도 없던 숲속이었지만, 다시 정찰을 가보면 오크부락이 생겨있다. 그곳에서도 추가 병력이 몰려오는 점이 오크를 상대할 때 가장 난감한 문제다.
산책하면서 오크정찰대를 잡았을 때 각오는 했다지만, 전투할 때 몰려오는 오크가…. 비유하면 초록의 물결만 보였다.
진짜 오크 포자설이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쐐기석의 위치 확인 및 이종족 구성을 조사해서 정부에 보고하는 임무 계약이기에, 조사하러 나간 정찰팀을 기다려야 하므로, 일주일 정도를 게이트 내에서 전투만 하게 되었다.
방벽의 방어는 방어 전문팀이 담당했지만, 콘크리트 블록으로 세운 방벽이라 내구성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렇기에 공격팀이 방벽 앞에서 오크들을 밀어내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렇게 버티다가. 정찰팀이 도착하자마자 네이팜탄이나 백린 같은 가연성 물질에 불을 붙여서 뿌린 후에, 전원이 게이트에서 철수하였다.
생태 자체도 목재가 많은 평범하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게이트로 추정되고, 낮은 등급으로 책정된 게이트답게 희귀한 자원은 없었다.
오크가 주종족인 게이트다 보니 조만간 군대 쪽에서 게이트를 폐기하러 오겠지.
조사 임무가 종료되었기에 성화씨와 연락하기 위해서 숙소로 가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회식 장소에 앉아 있다.
““건배!!””
임무가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천칭’의 훈련장이 위치한 곳의 연병장에서 술 파티를 하는 게 전통이다.
100~200명이 모일만한 장소가 없어서 연병장에서 회식하는 거겠지.
일단은 우리 팀원부터 챙겨야겠다.
“조장들 수고했어. 오크 놈들 징하게 몰려오긴 했지?”
“뭐, 그렇긴 하네요. 이번에는 신참들 교육에 적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팀장님! 질문 있습니다!”
나에게 질문을 해오는 2번 조장 금나리 제5팀의 머리 담당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 회전이 빠르기로 유명한데….
웬 질문이래? 아, 혹시?
“어…. 뭐, 뭔데?”
“조사 준비 때문에 묻지를 못했는데, 저번 주에 본사의 로비에서 있었던 일 말입니다! 남자죠!? 드디어 팀장님한테 남자 생긴 거죠!?”
“아,아냐! 성화씨랑 그런 사이 아니야!!”
“그 남성분의 이름이 성화씨군요! 그보다 이름으로 부르시다니…! 드디어 처녀막이 단단해지다 못해 아다만티움의 강도에 가까워졌다고 소문내는 7방 놈들에게 우리 팀장님 아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나리가 좀 취했나 보다…. 이상한 소리를 하다니.
나도 벌써 취했나? 뭔 개소리가 들리지?
“야 이 개XXXX!!! 그게 뭔 개소리야!!”
“다들 들었지!? 우리 팀장님 처녀막 때신단다!!”
“야! 나리 너! X씨XXX!!!”
나리의 말 한마디에 내 팀원들이 ‘오오오!’ 하는 소리와 함께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듣던 다른 팀까지 이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술이 들어가자마자 이런 대형 사고를 치다니.
내가 평소에 팀원을 너무 풀어주기는 했나 보다.
일단 벌어진 일이기에 한숨을 쉬고는 잔에든 소주 한 잔을 마셨다.
블랙보틀이었나? 그 위스키를 마신 이후부터 소주의 맛이 특색이 없다고 생각된다.
맛보다는 취하기 위해서 소주를 마신다고 표현하던 지나언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회식이 있어서 성화씨에게 못 갈 거 같고, 내일 영업 마감 시간 전쯤에 연락 없이 가볼까?
소주나 맥주 말고도 다른 술이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술에 대해서 알려달라 해야지.
현재 회식장에서 퍼지는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말해야 오해를 풀 수 있을까?
음…취해서 그런지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일단 나리부터 조져야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