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39화 (39/140)

〈 39화 〉 쓰면서도 고소한(7)

* * *

애인이 생겼다는 소문은 적당히 진화되었다.

본인이 없다고 말하니 어찌할 건가?

계속 추궁할 수도 없기에, 일단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내 이야기를 캐묻기보다는 술과 고기나 잔뜩 먹고 내일부터 3일간 전투휴무로 놀 생각이 더 중요하겠지.

“나리야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열린 곳에서 하면 진짜 뒤지는 수가 있다?”

“에이 팀장님두. 다들 이런 분위기서 이야기해 보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딱밤이라니!”

성화씨 이야기보다는 처녀막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에서 빡쳐버려서 그대로 딱밤을 날렸다.

다른 팀이 보는 상황에서 주먹을 날릴 수는 없지 않은가?

팀에 따라서 분위기가 다르지만, 제5번 공격팀은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만들어온 건 나다.

군대도 아니고, 위계질서는 현장에서만 지키면 된다.

문제가 있다면, 내가 소문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겠지.

“하아. 진짜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야. 너희랑 싸운 날 우연히 들린 바에서 만난 사람이야.”

“‘아직은’ 인 거죠!?”

“콱 씨!”

“히익! 폭력 반대!”

내가 주먹을 들어서 짜증을 내니, 양팔을 들어서 머리를 감싸 매면서 고개를 숙이는 나리다.

자유분방한 조직 분위기의 단점은, 술이 들어가면 다들 최소한으로 지켜오던 상하관계의 구분이 더 애매해지는 점일까?

우리 팀원도 그렇지만 옆자리에 앉은 다른 팀들 또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듯이, 이쪽을 향해 귀를 열어둔 모습이 훤히 보인다.

하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근데 왜 본사에 들렀대요?”

“능력제어 때문에 총괄팀장님이랑 상담하러?”

괜히 말 안 해줬다가 이상한 소문이 나는 것보다는, 팀원들에게는 말해주는 편이 좋겠지.

“능력 제어 때문이라뇨? 상견례 때문에 찾아온 줄 알았는데….”

“하아….”

나리는 나의 한숨 소리에 자신이 맞는 줄 알고 움찔하였다.

“소문 한번 이상하게 났네. 나머지 조장도 잘 들어 둬, 나중에 술 취해서 기억 못 했다 하면 진짜 미확인 게이트에 무기 하나만 쥐여준 채로 떨궈버린다?”

5명의 조장 및 나머지 팀원들도 ‘네’라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경청하기 시작한다.

대답은 잘하네….

그보다 우리 팀원들이 한 번에 대답하여서 다른 팀에게 살짝 주목을 받은 기분인데…. 상관없겠지?

“진짜 별거 아니야. 아는 사람이 과잉 장애라서 총괄팀장님이 그쪽으로는 잘 알잖아? 그래서 데려온 거뿐이야. 별거 아니지?”

과잉 장애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팀원들을 포함한 주변인들의 얼굴이 핼쑥해진다.

아니 뭐…. 능력 과잉 장애 증후군이라는 병이 전체적인 통계로 보면 드물긴 하지만, 그 임펙트가 엄청나서 기억에 오래 남는 게 문제다.

특히 방출형이 능력 과잉 장애 증후군을 앓고 있다? A급 헌터들로 구성하더라도 생각보다 고되고 귀찮다.

방출형이 무작위로 난사를 하지만, 위력이 S급에 준할 정도로 너무 강해서 접근하기는 어렵지, 비 인도적인 방법으로 처리하자니 뉴스기자들이나 카메라가 한가득하지, 정부는 의뢰 발주 줬으니 빨리 처리하라고 난리지….

잡고 난 뒤에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거면서 굳이 매스컴을 의식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한 의뢰를 잊을만하면 받기에, 능력 과잉 장애 증후군을 앓는 환자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많이 있다.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데 생포가 임무라 심적으로 엄청나게 지친다.

“아, 그렇다면 그분은 비 방출형이겠군요!”

“그렇지? 총괄팀장님이 확인해보니까 인지 저해 쪽이래….”

나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지만, 나리와 몇몇 애들이 불쌍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으엑…. 은신계열 쪽의 능력 과다도 아니고 과잉 장애요? 우울증 급으로 사람 잡기 좋은 상태였겠네요?”

“하아…. 지금 생각났는데, 조울증도 있다고 생각되네….”

확실히 나에게 안겨든 뒤로 울었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하였다.

음…. 성화씨 괜찮으려나?

저번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나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오래 떨어있어서 그런지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핸드폰에 저장된 성화씨의 사진을 봐도, 이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더 잊기 전에 지금이라도 가게에 가볼까?

“팀장님도 여심이 있었네요. 아쉬워라. 팀장님의 처녀막은 제가 가져가려 했는데!”

“현준아…. 넌 평소에 멀쩡하면서 왜 술만 들어가면 그러는 거니?”

제5 공격팀의 4번 조장 김현준, 4번 조는 공격팀을 따라다니면서 후방지원을 담당한다.

평소에도 여성스럽다는 소리를 들어도 선을 지키지만, 술이 들어가면 이렇게 변한다.

“아니, 공격팀 전체 중에서 팀장님만 아다라니까요?”

“그 말이 왜 나오는데!!”

나리가 폭탄을 떨궜을 때부터 말을 돌리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옆에서 엿듣던 다른 팀원의 사레가 들리는 거까지 보인다.

나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슬쩍 자리를 피한다.

이놈들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하아….

“말만 해주세요. 사랑하는 우리의 팀. 장. 님! 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답니다?”

음, 성화씨와 비슷한 말투 같은데…. 뭔가 좀 아니다.

성화씨는 귀여운 모습과 더불어서 저런 말투가 자연스럽게 붙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억지로 따라 하는 듯한 어색함이 묻어나온다.

술에 관한 설명을 할 때 또랑또랑한 모습으로 ‘~이랍니다’라고 국어책 읽기 하듯이 말하는 그 어색함에서 귀여움을 느끼지만…. 현준이가 그런 말을 하니 뭔가 좀 아니다.

사창가 앞을 걸을 때 자주 듣는 언니 쉬다가~의 그런 느낌?

“현준아…. 술 마시고 그러지 말자. 내가 팀원들 간의 섹스는 신경 쓰지 않는다 했지만, 나에게는 권유하지 말라고 했지?”

남자라서 손을 쓸 수도 없고, 이전에 내가 잘못한 것도 있기에, 조원들에게 한마디를 하지 못하겠다.

“에이 팀장님두. 저라면 언제든지 가능하게, 콘돔도 주머니 속에 준비되어 있답니다? 지금이라도 모텔 가실래요?”

현준이의 폭탄 발언에 주변 몇몇 여성 헌터들이 헛기침하거나, 들었는데 안 들은 척을 하려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모든 사람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헌터들이 유독 성에 관해서 자유롭다.

고소득이지만 언제든 죽을 수 있기에, 무언가 남기고 싶은 걸까?

마음만 맞으면 상대가 누구라도 성행위를 즐긴다.

연애감정보다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는 것이겠지.

아이가 생긴다면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기는 한다.

최소한 자신의 무언가를, 이 세상에 남겼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헌터란 그런 것이다.

“하아…. 오늘따라 한숨만 느네. 남자라서 직접 건들 수도 없고, 누가 애 좀 재워라. 으휴….”

“팀장님도 너무하셔라~ 그렇지 애들아? 어라? 애들아?”

나의 말에 현준이 휘하의 애들이 만취에 가까울 정도로 취한 현준이를 만류하면서 다른 자리로 끌고 간다.

실력은 확실한데 술만 들어가면 가끔 나사가 풀리는 게 우리 팀의 단점이다.

그보다. 내가 문란한 성행위라 표현했지만, 헌터라는 직업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특성상, 나름 건전한 축에 속하는 행위다.

마약 주사를 팔에 꽂거나 자살한다고 난리 치는 것보다는 훨씬 건전하다.

내가 문란한 성행위를 싫어할 뿐이다.

여자같이 괄괄한 남성보다는, 성화씨 같은 남성이 취향 저격이긴 한데…. 음….

능력제어가 가능해지면, 파리가 꼬이지는 않겠지?

팔찌를 괜히 줬나 싶기도 한데….

여러 고민 중에 내 머리 위로 손길이 느껴진다.

대충…. 남성의 느낌이고…. 공격팀 내에서 내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쓰다듬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지혜는 여전히 순정파네.”

“으엑 서준 오빠! 아니 시설과 팀장님!”

시설과 보스라 불리는 이서준이다. 진지구축 혹은 시설점검에 제격인 능력이라서 공격팀의 거점건설 및 시설유지보수, 지형분석, 공격팀 퇴로에 지뢰나 클레이모어 등을 매설해서 몬스터들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역할 등이 있다.

군대의 공병에 해당하는 팀이다.

“에이­. 딱딱하게 그러지 말고, 평소처럼 오빠 해봐.”

“그, 그렇지만 여기는 아직 공적인 자리이기도 하고…. 그…. 좀 그렇지 말입니다?”

임무 종료 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진행되는 천칭의 ‘전통’이기에, 술자리라 하여도 공적인 자리로 봐야 하지 않을까?

“술 들어갔으면 그런 거 안 따져. 술자리에서 공적인 자리 따지는 놈 있으면 내가 조져버릴 거야. 알지 내 성격?”

“네, 그, 그렇죠. 티…. 아니 서준 오빠 성격 잘들 알죠.”

서준 오빠의 허리춤에 매여있는 손도끼가 무섭다.

남성이 시설관리과 팀장을 해서 그런지 성격이 생각보다 화끈하다.

“그보다 지혜야. 드디어 남자가 생겼다며?”

“어…. 아니 그, 그, 그런 사이는 아니고 친구예요. 친구!”

내 말이 어디가 재미있는 걸까? 키득키득 웃더니, 바닥에 있던 맥주병을 들어서 나에게 건네준 뒤, 들고 있던 빈 잔을 나에게 보여준다.

“한잔 따라봐.”

“예이~ 그리합죠 전하.”

“애는 또, 이상한 장난친다. 평범하게 따라줘.”

아직은 차가운 술병 목을 잡은 채로,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려서 밀봉된 병을 딴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맥주병.

그 맥주병을 잡은 채로 서준 오빠에게 한잔 따르고 나니, 서준 오빠가 빈손을 내게 뻗는다.

“자작하면 뭔가 슬프니까 안되~. 어서 넘겨줘.”

서준 오빠의 말에 병을 건네어 주니, 나의 빈 잔에 따라준다.

이렇게 둘이서 마셔보는 것도 얼마 만일까?

오빠가 결혼하기 전에는 친한 동생을 술친구 겸해서 끌고 다니는 느낌으로 자주 마시러 다녔다.

그리고 만취한 오빠를 매번 챙기는 게, 그 당시 제1번 공격팀 팀장이었던 지나언니의 역할이었다.

“자, 먼저 가버린 녀석들을 위해서, 그리고 내일을 같이 걸을 전우를 위해서~!”

““건배!””

내 휘하의 애들도 서준 오빠의 건배사에 맞추어서 건배를 외친다.

상관 기분 맞춰주기는 정말 빠른 녀석들이다.

일단 건배를 외쳤으니 조금이라도 마시는 게 예의겠지.

그렇게 맥주를 마시지만, 성화씨와 마신 위스키와 비교하면 많이 심심한 느낌이다.

역시 내일 바로 가게에 들려야겠다.

몇 시쯤 갈지 고민하던 나에게 서준 오빠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귀여운 아이던데 어때? 눈길이 자꾸 가니?”

“‘눈길이 간다.’보다는, 자꾸 생각이 나네요.”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휘파람 부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오공팀장니이임! 같은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지금 휘파람 분 녀석들 얼굴 외워놨다….

그보다 서준 오빠는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이다.

“아이고 우리 지혜 귀여워라!”

“오빠! 스탑! 여기 공적인 자리야!”

행동파라는 말 그대로 나를 꽉 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한다.

“자꾸 남자를 멀리하길래 레즈인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취했어!?”

막내 시절에 서준 오빠랑 같이 얼마나 마셔댔는데,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를 모를까.

서준 오빠는 지금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라 생각된다.

“아직 안 취했어! 그보다. 지혜가 계속 생각할 정도면, 어떤 남성이니!?”

“어, 어…. 귀엽고 작다?”

“그런 쪽이 취향이었구나!”

“취향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생각이 날 뿐이야.”

나의 말을 듣고는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다 마시고는, 고민을 시작한 서준 오빠다.

생각이 정리된 걸까?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 지혜야. 어느 쪽이니? ‘좋아한다.’에도 종류가 있단다? 그냥 눈길만 가는 거니, 정말 좋아하고 옆에 있고 싶은 거니?”

“엑…. 오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술맛 떨어지게….”

“아니~ 지혜가 계속 생각이 날 정도면, 얼마나 상위권의 외모겠니 싶어서? 경쟁자가 많아져서 동생이라 여기는 지혜가 괴로워하는 모습 보기는 싫거든? 그러니까 미리 마음을 어느 정도 정해두는 편이 좋을 거 같아서 말해보는 거야. 오해는 하지 말렴? 알겠지? 오빠는 전부 지혜를 생각해서 말해주는 것뿐이야.”

“뭐어…. 오빠가 그런 걱정 해주는 게, 한두 번이 아니긴 한데….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게.”

술이 들어갈 때마다 걱정이 많은 서준 오빠다.

확실히 성화씨 정도면, 날파리가 꼬여도 이상하지 않다.

제어 팔찌를 괜히 줬나 같은 생각을 했지만, 다시 뺏기에는 성화씨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된다.

아름답게 죽어있는 장식이 될 바에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나는 성화씨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그냥 귀여워서 눈길이 가는 것일 뿐일까? 친구가 필요하다는 변명으로 연락처교환을 하였지만, 그냥 놓치기 싫다는 마음만이 앞섰을 뿐이다.

마음을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겠지.

지금 가게에 가기에는 내가 술에 취한 느낌도 있으니, 멀쩡한 정신으로 내일 한번 방문해야겠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서준 오빠에게 성화씨에 대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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