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쓰면서도 고소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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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내 방이었다.
어제 회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숙소로 돌아왔는데 서준 오빠랑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떠올리고 나니 뭔가 일이 꼬인듯한 기분이다.
서준 오빠는 헌터 일에 적합한, 큰 키에 다부진 몸매라 그런지, 작고 귀여운 남성을 보면 부러워하는 듯이 본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 오빠에게 성화씨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정말로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언젠가 꼭, 가게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헌터 일하는 놈 중에는 귀여운 놈들이 하나도 없이, 시커먼 놈들만 가득해서 불만이었다나 뭐라나.
서준 오빠가 술을 마시러 간다면 지나 언니도 같이 운전기사를 겸해서 동행하겠지…?
아니 점점 일이 더 커지는 느낌은 착각일까?
‘나리 말대로 뭔가 상견례 하는 기분인데?’
그렇게 어제의 일을 회상하면서 내 방에서 나왔다.
나의 경우, 1차에서 적당히 끊고 집에 귀가하였기에, 현재 숙취가 심하지는 않다.
‘역시 숙취는…기분 나쁘네.’
공격팀 단체 회식에서 안 마실 수는 없어서, 최대한 자제 했는데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 보니, 독신자 숙소의 로비에는 시체가 즐비하다.
‘2차를 얼마나 마셔댄 거야? 아니 몇 차까지 간 거지?’
이쪽은 여성 전용 기숙사 건물일 텐데 남성들도 섞여 있다.
옷을 제대로 입은 모습이, 그 짓까지는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했으면 단체 집합이 걸릴 건이다.
‘옛날 한번 큰 사건이 있었는데, 어느 년이 난교파티를 주동했더라…?’
과거 막내 시절의 기억이 생각나서, 고민하며 걷던 중에 발에 치이는 누군가가 있었다.
“으어… 팀장님 일어나셨슴까….”
발밑을 보니 반쯤 시체가 되어서 바닥을 기고 있는 나리가 있다.
“너희 얼마나 마신 거냐?”
“평소대로요… 술은 마실 때는 좋은데 숙취가 정말 힘드러요오.”
평소대로면…. 그냥 잠들 때까지 술을 퍼마신 건가.
로비에 굴러다니는 술병이 그 증거다.
“으휴 매번 숙취로 고통받으면서 그렇게 자주 마시고 싶냐? 난 두통이 정말 싫어서 1차에서 끊으려는데.”
“먼저 가버린 녀석들 생각하니 좀 그래서 마셨어요…. 헤헤….”
헌터란 게 뭔지…. 회식하는 이유가 축하의 의미도 있으면서 추도의 의미도 있다.
무슨 추도를 술이 가득한 회식에서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술이 들어간 뒤 서로를 위로해주거나 같이 슬퍼하면서 웃거나 하는 모습을 보면, 내 기준으로 본다면 제대로 추모하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천칭의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이겠지.
나에게 있어서 술이란 슬프거나 즐거울 때 마시는 그런 물건이다.
“으휴….적당히 잊으라니까. 여기 냉수나 한잔해.”
“으어어….감사합니다 티임장니이임.”
“마시고 말해. 마시고.”
일단 내 팀원이 반쯤 시체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아서 물부터 챙겨준다.
물을 챙겨주니 상체를 일으켜 세워서 바로 받아마신다.
‘역시 숙취가 있을 때는 걷기도 싫겠지. 용케도 상체를 일으켜 세웠네. 두통 괜찮으려나?’
“푸하! 역시 시원한 물이 최고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누굴 생각하면서 마신 거야?”
나리는 표정이 우울해지면서 내 눈을 못 마주친다.
아주 잠깐 생각을 하더니 고민을 털어놓듯이 나에게 말한다.
“그, 저, 몇 달 전에 있잖아요…. 제가 담당하는 조에서 전사한 소이요….”
“아…방어능력이 출중해서 방어팀에서 언제나 탐내고 있던 걔?”
“네…언제나 제 옆을 지키면서, 제가 전장을 보면서 작전을 구상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소이요….”
소이라…나리 조에서 방어를 전담하는 녀석이었지.
몇 달 전 게이트에서 기습공격을 당하였을 때 소이의 희생으로 나리가 담당하는 조 전체가 생환할 수 있었다.
어제 회식 때 이야기했을 때 나에 관한 질문을 하기에,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2차 술자리 이후부터 죄책감이 마음속에서 올라온 것일까?
“소이를 생각하면서 무슨 생각을 한 거냐?”
“좀 더 지시를 잘했으면 살아있지 않을까요?”
“글쎄….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 기억으로는 기습공격을 당한 상황이었잖아? 그 녀석의 희생으로 오히려 나리가 살아남은 걸 수도 있지.”
“어…. 팀장님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하아…. 나리야. 그 기습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어. 오크 놈들이 기습이라는 작전을 쓸 정도로 머리를 굴릴 줄은 누가 알았겠니? 그러니 나리 너의 탓은 아니야.”
“헤헤…. 그런 걸까요…?”
팀장 자리에 임명된 뒤로 조원들의 정신건강까지 생각해줘야 한다.
나리 녀석 가끔 유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자신 탓을 하고있는 거겠지.
좀더 주위를 신경 썼으면? 아니면 본인이 소이를 구출해냈다면? 같은 생각으로 한가득할 것이다.
“역시 팀장님은 강하시네요…. 가끔 어린애 같은 면모도 보이시지만, 그게 더 사람 냄새 나는 거 같아서 좋아요.”
“너, 나 디스하는 거지? 그런 거지?! 요즘 연병장에서 안 굴렀다 이거지!?”
“칭찬이에요 칭찬! 그보다 폭력적인 방법 반대!”
강하다라….
나는 강하지 않다.
조장일 때 나리와 같은 고민을 많이 했다.
나 또한 내가 담당하는 조에서 누군가가 부상을 입거나, 죽었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나도 폭음을 많이 했지….’
한번은 이틀 가까이 술만 마신 적이 있는데, 당시에 내가 소속된 조의 팀장이었던 지나언니의 한마디가 나를 정신 차리게 해주었다.
[“헌터는 처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입사한 놈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지. 혜 만약에 네가 죽었다면…. 네가 죽어서 내가 하루 종일 울고 있는 꼴을 보고 싶은가! 하루 종일 술을 마시면서 정신을 못 차릴 거면 당장 퇴사해! 나는 내가 죽더라도 동료가 슬퍼하지 않고 웃기를 바란다. 다른 헌터들도 동료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죽은 녀석들을 추모하되 슬픔에 잠식되어서 본인을 망가트리지 말아라. 알겠는가!”]
술에 만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던 나의 멱살을 잡고 했던 말이 얼마나 박력이 있던지….
지나 언니의 말을 듣고 몇 일간 방에서 생각을 정리해봤었다.
다들 고소득만 생각하기에 착각하기 쉽지만, 애초에 헌터를 업으로 삼는 것은 죽음과 함께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내가 죽었다면 지나 언니 외에도 슬퍼해 줄 녀석들이 있다는 게 퍽 나쁘지는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죽은 녀석들이 슬퍼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보면 즐거워할까?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의 죽음을 슬퍼하는 녀석들을 죽어서 보게 된다면, 나는 즐거워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죽은 녀석이 내 탓이라 원망하면…. 죽은 뒤에 몇 대 맞아주면 되는 것 아닐까?’
살아있는 사람은 현재를 살아야지….
그 뒤로 술은, 다음날 두통이 없는 정도에서 끊게 되었다.
최근에 맥주나 소주 말고 위스키를 알게 되어서 소주 마시듯 마신 적이 있지만, 그건 예외로 하자.
“글쎄다. ‘강하다.’보다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걸지도 모르겠지.”
“으엑. 그런 게 익숙해지나요?”
“아니? 언제까지나 울면서 주저앉을 수는 없잖아? 그래도 살아가야겠지?”
“그, 그렇죠?”
“그러니까. 죽은 녀석을 생각할 거면 술을 마시지 말고 생각해봐.”
“어…. 그건…. 힘들지 않을까요?”
술을 마셔야만 누군가를 추모할 수 있을까?
어릴 적에는 술 같은 거 없어도 내 생각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잘 표현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즐겁거나 슬퍼지고 싶으면 술을 찾는 내 모습이 생각난다.
술을 마신 뒤 슬퍼하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술을 마시는 반복된 일상. 그 꼴을 본 지나 언니는 참다가 폭발했던 거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성장한 건가? 에이, 설마.’
“나리야 꼭 술을 마셔야 나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건 아니잖니?”
“그건 그렇긴 하죠….”
“죽은 녀석들 생각을 할 거면, 맨정신에 해야 하지 않을까?”
“어…. 그, 그렇죠?”
“알겠으면 나중에 정신 좀 차린 뒤에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 네가 죽었을 때 과연 팀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부터 천천히 말이야. 그리고. 그 생각 하기 전에 로비를 난장판으로 어지른 거 좀 치워두고. 지나 언니가 볼까 봐 걱정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의 감정 표현이 서툴러 지기에.
즐겁거나 슬플 때 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기 위해서 마시는 물건.
즐거울 때 마시면 더욱더 즐거우며, 슬플 때 마시면 더욱더 우울해지는 물건.
나에게 있어서 술이란 이런 물건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였던 술이지만, 최근 성화씨와 마셔본 술은 맛있었다고 생각된다.
‘아직은 오전이네, 오후부터 영업시간이었나?’
술도 맛있는 술이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 뒤로 술에 대해서 궁금해지기도 한다.
제일 큰 이유는 성화씨를 보러 가는 이유겠지.
“그런데 팀장님도 어른스러운 모습도 있으시네요?”
“야! 나리 너!?”
나리는 다 좋은데 저놈의 주둥아리가 문제다.
조만간 정신교육을 한번 하든지 해야지….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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