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쓰면서도 고소한(10)
* * *
깜짝 방문에 놀라서 나도 모르게 카운터에 나와 지혜씨에게 다가갔지만, 뭔가 너무하다고 생각이 든다.
“연락도 없이 너무해요!”
“놀라게 하고 싶어서 아하하…. 그, 저…화나셨나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누구는 얼마나 기다렸는데.
연락할지 말지, 어차피 게이트 안이면 연락을 보내도 의미가 없기에 참아왔는데.
지혜씨 말대로 약간 화가 난다.
그보다 지혜씨는 나의 얼굴을 보면서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런 걸까? 라는 생각이 들 때 내 능력이 생각이 났다.
팔찌는 빼둔 상태고 안 만난 지 며칠은 지났으니 잊히는 중이구나.
이전이라면 원인을 몰라서 나 혼자 시무룩해 하거나 우울해 할 텐데 원인을 알고 나니 신기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다.
“손 안 줄 거에요….”
“엑! 성화씨 미안해요! 정말 잘못했어요!”
내 생각이 정답이었나 보다.
무언가를 잊는 느낌이 어떤 느낌일까?
지혜씨는 정말로 미안한지 안절부절못하는데, 정장이 꽉 끼기에 가슴이 너무 강조된다.
헌터라서 몸매도 좋은데 정장 차림이라니.
가슴은 물론이거니와 잘록한 허리와 치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장을 입은 지혜씨 본인이 익숙하지 않은 옷을 입어서 그런지 행동이 조금 딱딱한 느낌이 든다.
아니 오히려 좋은 걸지도?
남녀역전 세계라 그런지, 꾸미고 다니는 여성은 생각보다 적기다. 20대~30대 초반의 한참 남자를 만나고 다니고 싶어 하는 여성이 아니면 다들 평범하게 씻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애초에 헌터라는 거친 직업이 있어서 꾸미고 다니는 사람이 적다.
오히려 성별을 떠나서 본인의 강한 모습을 어필하는 경향이 크다.
그렇기에 지혜씨의 정장 모습은 생각 외로 어울린다.
‘화장하면 남자가 했지 연예계 쪽에 일하는 여성이 아닌 이상, 여성은 잘 안 꾸미지…?’
눈도 호강했으니까 이쯤 해둘까.
“뭐,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다음부터는 연락 없이 몰래 오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지혜씨의 손을 잡아준다.
“으음, 죄송해요. 상황이 상황이기도 했고, 어제 회식에서 마시고 자버리니까 아침에 제 부하들이 사고를 친 거 청소한다고 연락을 못 했어요. 그러다 보니 가게에 오던 도중 연락을 못한 게 생각났는데, 뭔가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이렇게까지 화내실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음….지혜씨의 말이 많아졌는데…. 순수하게 놀라게 하고 싶어서 온 거겠구나 싶다.
내가 너무 쏘아붙인 걸지도….
“화 안 났어요. 그러니까 진정 좀 해요.”
진정시킬 겸 잠깐 지혜씨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전부터 느꼈지만, 여성의 손이 거친 느낌에 이질감을 느낀다.
“아, 이제 얼굴이 잘 보이네요.”
“저를 망각할 때 어떤 느낌이에요?”
“어, 그건 정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요. 능력 자체도 희귀한 능력이셔서 제가 어떤 표현으로 말할지 감도 안 잡혀요.”
“정말로 궁금한데…. 알려주실 수 없나요?”
나의 질문에 지혜씨가 잠시 고민하더니 설명하기 시작한다.
“성화씨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는데, 성화씨의 능력에 의해서 잊기 시작하면, 기억은 분명히 있는데 점점 지워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조금 전에도 느꼈는데 성화씨를 두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인지를 못 하겠어요. 하하정말 이상하죠?”
능력을 모른 채로 저 말을 들었다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줄 알았겠지만, 나의 능력을 알게 된 이상 저 말이 거짓말이 없는 진실임을 안다.
역시 설명을 들어도 감이 오지 않는다.
천천히 지워지면서 보고있어도 알지 못 한다라….
무언가 수수께끼 같다.
그렇게 능력에 대해서 고민하던 나에게, 지혜씨가 종이가방 하나를 건네어 왔다.
“쨘~. 이거 선물이에요 술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와인을 사봤는데 괜찮죠!? 지금 같이 마실래요?”
“빈손으로 오셔도 괜찮은데요….”
지혜씨에게 받은 종이가방 안을 보아하니 상자 하나가 들어있다.
‘으음…. 와인이라….’
나의 표정이 미묘해지는데, 지혜씨가 준 선물이 싫은 게 아니라,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바에서 마시는 칵테일의 경우 섬세한 향을 가진 칵테일보다는 강한 향을 섞어서 맛있는 맛을 내는 경우가 많다.
와인의 경우는 섬세한 향을 느낀다고들 표현하기에 무언가를 섞어 마시기에는 와인 가격을 생각하면 지갑이 아프다.
와인은 밀봉 후 몇 년 뒤에 마셔야 맛있는 향을 내거나, 일정 연수 이상 지나면 맛없어진다. 그리고 해당 연도의 포도 재배의 상황에 따라서 와인 맛이 변하는 등 일정한 맛을 내는 증류주에 비하면 매우 까다롭다.
게다가 와인은 개봉하면 유통기한이 매우 짧아진다.
섬세한 맛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와인을 좋아하지만, 그 섬세함으로 인해서 단독으로 마시기에는 맛이 부족한 술을 섞어서 맛있는 술로 만드는 칵테일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가격은 둘째치고 칵테일 하기 까다롭네, 와인으로 칵테일보다는 펀치계열의 샹그리아처럼 과일 향 정도만 더하는 거겠지.’
와인의 제일 큰 문제는 한번 개봉하면, 질소가스를 넣어주는 방법 등의 특수한 장비가 없으면 몇 주 내로 다 마셔야 하는 점이, 바에서 사용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보존기한이 와인에 비하면 길어진 주정 강화 와인이나 브랜디를 바에서 사용한다.
내가 와인을 바라보던 표정이 이상했던 걸까? 지혜씨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저어…. 성화씨 와인은 싫어하시나요?”
“와인도 술이기에 싫어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네요….”
나의 말이 의외였던 걸까? 지혜씨는 깜짝 놀라 되묻는다.
“성화씨면 술이라면 다 알 줄 알았어요!”
“파는 것만 알아요. 제가 판매하는 것만. 수입 안 되는 술도 많고 게이트에서 이종족이 만든 술도 다양하잖아요? 아무리 저라도 그 모든 걸 알 수 없답니다? 바텐더랑 소믈리에는 다른 자격증을 가지잖아요?”
“으음, 순수 방출계열과 무언가를 던지는 능력의 차이라 생각하면 될까요?”
“비슷해요.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방향이에요. 칵테일은 강렬한 맛을 섞어내고, 와인은 그 자체의 섬세한 맛을 추구한다. 이렇게 들으니 쉽죠?”
나의 설명에 어느 정도 이해한 표정이다.
설명을 제대로 해서 다행이다.
“혹시 제가 잘못 산 건가요?”
“아뇨? 와인도 술이잖아요? 일단 앉으세요. 손님으로 오신 거잖아요? 가게 주인으로서 접대할 의무가 있답니다.”
지혜씨가 와인을 샀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그런 건 없다.
나름 나를 생각해서 사준 물건이겠지.
수아에게도 가게 종을 포함해서 여러 물건을 자주 받았지만, 술을 받는 경우는 처음이라 그런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지혜씨가 준 선물을 꼭 안고 카운터 안에 들어간 뒤 포장을 열어봐도 될지 물어봤다.
“어떤 술인지 궁금한데 열어봐도 돼요?!”
“네! 같이 마시려면 열어봐야죠!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길래 사봤어요!”
“그렇네요, 그럼, 열어볼게요.”
활짝 웃으면서 포장을 뜯어도 된다고 말한 지혜씨.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기에 샀다는 건 그만큼 나를 생각해주는 것이겠지?
입꼬리가 살짝살짝 움직이는 게 기분이 좋다.
천천히 상자를 열어보니 엘프가 거주하던 이세계 문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아이스 와인이다.
아이스 와인이면 차가운 와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단맛이 강한 와인이라는 의미다.
단맛이 매우 강하기에 일반적인 식사에 곁들이는 와인이 아니라, 디저트와 어울리는 와인이다.
오늘 준비한 케이크 등은 카페 영업시간에 다 팔렸기에 술만 마시기에는 아까운 술이며, 화이트 아이스 와인 자체의 다양한 향으로 인해서 칵테일을 마시기에도 아깝다.
아이스 와인 자체를 디저트로써 마셔도 무방하지만, 그러기는 싫다.
‘에…. 오늘은 못 마시겠는데?’
바 영업시간용으로 남아있는 체다치즈랑 까망베르 치즈로 화이트나 레드와인을 마실 생각만 하였지, 아이스 와인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혜씨 미안해요. 같이 마시기로 했는데…. 이건 어….”
내가 어떻게 설명할지 설명을 하기 위해서 단어를 고르는 중, 지혜씨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제가 잘못 산 건가요?”
어제 가게 오픈 이후부터 생각했지만, 누군가와 대화할 때 한 박자가 느린 기분이다.
능력에 의한 고립으로 인해서, 누군가와 대화한 경험이 적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뇨아뇨! 문제는 없어요! 정말 술에는 문제는 없는데 잠시만요!”
단어를 고르는 중 시무룩해진 지혜씨를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지혜씨가 잘못한 건 없는데 왜 저리 움츠러든 것 같지?’
이 이상 내버려 두면 더욱더 오해할 것 같기에 빠르게 설명을 시작하였다.
“어…. 그러니까! 와인에도 종류가 있거든요? 사실 야이라 와인? 아이스 와인으로 들고 오셨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나의 해명에 어느 정도 얼굴이 밝아졌다.
“아이스 와인은 좀 다른가요?”
“네! 정말로! 일반 와인이랑 달라요! 디저트가 다 팔린 지금 마시기에 너무 아까운걸요?”
“아, 다행이다…. 그러면 다음에 마셔요!”
지혜씨는 생각 외로 기분의 변화가 빠른 걸까?
“그럼 다음에 날 한번 잡아서 마셔요. 제가 답례로 맛있는 케이크나 쿠키를 사 올게요. 그때 같이 마셔요.”
그렇게 말하면서 포장을 뜯은 와인병을 백 바(back bar)에 전시해둔다.
‘밀봉은 코르크가 아니라 스크류캡 와인이니까 세워도 괜찮겠지’
“일단 뭐라도 마실래요?”
손님을 앉혀놓고 너무 오래 대화만 한 것 같다. 음료부터 권유해야겠지?
“네! 그래도 뭘 마시면 될지 잘 몰라요. 하하…. 어제도 술을 해서 그렇게까지 독한 술은 못하는데, 일반 음료라도 괜찮을까요?”
지혜씨는 바에 온 적이 거의 없는 쪽이었지?
“있죠. 지혜씨, 바에서 주문은 정해놓은 칵테일이 없으면 적당히 어떤 느낌으로 마시고 싶다고 하셔도 된답니다. 술은 드시고 싶으세요? 독한 술 말고도 약한 도수의 술도 가능해요.”
“술…음…. 매번 맥주나 소주만 마셔서….술은 취하기 위해서만 마셔왔거든요?맛있는 술이 있는 줄은 몰랐죠…. 그러니까음,오늘은 술을 마시고 싶지만 무겁게 마시기는 싫어요.”
어제 회식을 했다고 했던가….
지혜씨는 이제 막 칵테일에 입문한 사람이다.
가벼우면서도 단순한 맛의 칵테일이 무난할 기분인데….
위스키나 보드카 계열의 증류주는 제외다. 도수가 너무 높다.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 백 바를 둘러보다가 내가 마시던 카페라테가 들어있는 피처를 보았다.
‘아, 이거면 충분하겠지.’
고개를 살짝 돌려서 지혜씨에게 물었다.
“지혜씨 커피는 좋아하시나요?”
“커피요? 네 좋아해요! 인스턴트도 좋고 아메리카노도 좋아해요!”
커피를 좋아하면 이것만 한 칵테일은 없다.
특별히 무거운 칵테일도 아니고 가벼운 느낌의 칵테일이다.
많이 마시면 어떤 칵테일이든 무겁겠지만, 지혜씨의 신체 능력이면 알콜을 금방 해독하겠지.
나도 커피를 마시던 도중이었는데 같이 마셔야겠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