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쓰면서도 고소한(11)
* * *
냉장고에서 저번 주에 열어둔 커피 리큐르와 우유를 꺼내었다.
리큐르는 드람뷔처럼 완성된 술에 약초 같은 향 혹은 당분을 추가한 술이다.
그렇다면 커피 리큐르는 커피 향과 당분이 추가된 술들을 말한다.
우유와 커피 리큐르를 준비하고,준비된 얼음을 냉동실에서 꺼냈다.
‘이번에는 대접하기 위한 술이기에, 좋은 얼음을 써야겠지?’
기포를 없앤 대형 얼음을 큐브 모양이나 원형으로 깎을 때 나온 조각들이지만, 이번에 만드는 칵테일처럼 얼음이 좀 필요한 술에는 제격이다.
내가 마시는 물건에 대해서는 기포가 가득한 불투명한 얼음을 사용하였지만, 손님 접대용은 기포가 형성되지 않은 투명한 얼음을 쓴다.
그런 얼음을 사용하는 이유는 기포가 없을수록 표면적이 좁아지기에 더욱더 천천히 녹기 때문이다.
‘천천히 녹아야 술의 맛을 희석시키지 않지.’
일단 보기 좋게 온더락 잔에 얼음을 담았다.
“아 그보다 우유를 좋아하세요?”
우유를 따르려다가 지혜씨가 우유를 좋아하는지 묻는 것을 깜빡했다.
“네! 문제없어요! 저 팀에서, 뭐든 잘먹는다고 소문나있어요!”
만약을 대비해서 우유가 안 들어가는 칵테일을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우유가 문제없다면 다행이다.
안심하고 컵에 커피 리큐르를 따른다.
컵의 1/4 정도? 정확한 계량 없이 눈대중으로 계량하였다.
그리고 남은 3/4을 우유로 채웠다.
정확한 계량? 음…. 정확한 계량이 필요 없는 칵테일이기도 하며, 계량 없이 칵테일을 만들면 지혜씨에게 멋있게 보이지 않을까? 음…아니면 말고?
생략해도 문제없지만, 보기 좋게 하려고 코코아 파우더를 위에 뿌려주었다.
흔히들 깔루아 밀크라 말하는 칵테일이다.
배합 순서는 상관이 없지만, 커피 리큐르를 먼저 붓는 편이다. 그래야 코코아 파우더로 장식하기 예쁘기 때문이다.
진한 갈색의 커피 리큐르가 아래에 깔렸으며 우유가 그 위에 있기에 층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뿌려진 코코아 파우더 가루 색의 조합으로 고급스러운 칵테일 느낌을 낸다.
“드셔보세요.”
스틱 하나를 꼽아서 지혜씨에게 주었다.
“네~! 그보다 어떤 칵테일인가요?! 저번처럼 독한 술은 아닐 것 같은데…. 술에 우유는 섞는 건 처음 봤고, 맛이 상상 안 되는데요?”
음, 평소에 맥주나 소주만 마신다고 하였던가?
약간의 조언 정도는 괜찮겠지?
“섞지 말고 맛만 볼 정도로만 마셔 보세요. 그리고 섞어서 마셔 보세요.”
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역시 머뭇거린다.
확실히 처음 보는 물건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럼 나도 마셔 볼까?’
아까 마시던 카페라테가 든 피처에 커피 리큐르를 적당히 넣었다.
커스텀 칵테일인데 맛은 단맛이 많이 빠졌으며, 커피 향이 좀 과한 느낌일 것이다.
‘이렇게도 마셔 보고 저렇게도 마시는 게 칵테일의 매력이니까….’
레시피대로 섞지 않은 칵테일 잔, 아니 스팀 피처를 지혜씨에게 건네면서 건배를 요청하였다.
“이번에도 로망 없는 느낌이 되었는데, 이거라도 건배가 되면 해요. 뭔가 술을 마시는데 평소처럼 건배가 없으니까 심심하죠? 습관이란 무서운 거랍니다.”
확실히 습관이 무섭긴 하지….
저번 주에 인형을 처분했는데도 인형을 보면 무심코 사고 싶어진다.
“아! 상관없어요! 그러면 건배!”
“건배.”
전생의 사회생활을 생각해보면, 지혜씨는 술만 따르면 건배를 하거나 건배사를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느낌의 술자리만 경험했을 것이다.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런 바에서 술만 마시기에 심심할 것 같아서 건배를 해주었다.
저번의 종이컵처럼 이번에도 로망 없는 스팀 피처 잔으로 건배를 하기에 모양새가 빠지지만, 맛있게 마시면 되는 게 아닐까?
건배한 이후 각자의 잔에든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나는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셨지만, 지혜씨는 나의 조언대로 조금 맛만 보았다.
만약에 잔이 좁고 긴 잔이었다면 우유만 입안에 흘러 들어갔을 테지만, 올드패션 글라스는 폭이 넓고 길이가 짧은 잔이라서 밑에 깔린 커피리큐르도 같이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마신 뒤 잠시간의 침묵이 가게 안을 감돌았다.
“헤…. 이런 맛도 있네요? 시럽 같은 단맛인데…. 커피 향이죠? 우유랑 섞이는 맛이 괜찮네요?”
“그렇죠? 자 이번에는 스틱으로 저어서 드셔보세요.”
나의 말에 지혜씨는 스틱으로 술을 섞는다.
커피 리큐르와 우유가 섞이면서 연한 갈색이 되어간다.
적당히 섞은뒤 지혜씨는 다시 한번 더 마시기 시작하였다.
“어…. 그거 같아요. 그거! 자주 마셔봤는데…. 으음, 커피 뭐더라 현준이가 자주 사 오는 메뉴인데 기억이 안 나네요.”
“아마도 카페라테 아닐까요?”
“그거요! 네 카페라테? 인가 그런 이름에 우유 탄 커피였어요!”
비슷한 맛인 게 당연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알콜이 들어간 커피라는 점?
“쓴맛이 들면서도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나죠?”
“네! 신기하네요. 술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네요.”
“맛이 달고 부담 없어서 계속 마셔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도수가 맥주랑 비슷한 수준이랍니다. 그러니까 주의하세요. 어제도 마셨다면서요? 이틀 연속 숙취는 기분 나쁘지 않을까요?”
“성화씨 말대로 숙취는 싫긴 하죠. 주의할게요! 그런데 한잔 더 될까요?”
내가 말하자마자 바로 다 마셔 버렸다. 으음…. 너무한데, 알콜 향이 적어서 도수가 낮은 줄 알지만 낮은 술은 아니다. 저번에 마신 러스티 네일과 비교하면 낮은 술인 건 맞지만….
‘흠…. 다양한 맛을 소개해주는 편이 좋겠지?’
“지혜씨 누가 먹던 것을 먹는다면 기분 나쁘신가요?”
“네? 어…. 뭐 그 정도는 상관없죠.”
“다행이다. 그러면 이거라도 마셔 보세요.”
그렇게 나의 피처에 들어있는 깔루아 밀크를 지혜씨 잔에 부어준다.
다 식은 카페라테라서 미지근하지만 잔에든 얼음으로 인해서 금방 시원해질 것이다.
“이것도 드셔보세요.”
내가 권유를 하였지만, 지혜씨는 잠깐 잔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있었다.
‘응…? 왜지? 이상한 건 들어가지 않았는데…. 역시 누가 먹던 건 좀 그런가?’
왠지 모르게 좀 아닌 것 같기에,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주려고 하였지만, 지혜씨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럼 마셔 볼게요!”
무언가 결심한 행동이…. 음 미안한 짓을 한 기분이다.
“어때요?”
“이번에는 단맛이 없고…. 그냥 시럽 안 넣은 커피 같은데요?”
“괜찮죠? 저는 커피 리큐르의 단맛이 싫어서 술과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이렇게 마신답니다. 쓰면서도 고소한 맛이거든요.”
“헤…. 술맛이 거의 없고 커피 같은데…. 이게 술이라니 신기하네요.”
지혜씨는 정말로 신기하다는 듯이 커피를 마신다.
첫 잔처럼 한 번에 마시지는 않고 천천히 음미하듯 마신다.
그렇게 지혜씨를 바라보다가 깜빡한 일이 생각났다.
‘아 참, 기록을 깜빡했네.’
바를 영업하면서 든 습관 중 하나지만, 손님이 드신 보틀 혹은 칵테일을 손님별로 기록해두는 편이다.
기록장과 펜이 돈 통 안에 들어있기에 돈 통을 열어보니 환약이 보인다.
‘아 자양강장제였나? 내가 쓰기에는 아까우니까 지혜씨 주는 편이 좋겠지?’
기록하기 전에 환약을 꺼내어서 지혜씨에게 건네어 주었다.
“이거 드셔보실래요? 주변 분에게 자주 받는 약인데 효과 좋다고 소문난 약이래요.”
“아니 안 주셔도 괜찮은데….”
지혜씨는 받기 싫어하시지만, 내가 억지로 쥐여 주니 받아준다.
“자 2잔이나 드셨으니 적당히 이쯤 하시고 논 알콜로 드실래요? 아니 그보다 자양강장제 먹어보세요. 생각보다 맛있어요.”
“성화씨 진정해요! 가끔 브레이크가 부서진 것 같으세요!”
“브레이크가 부서진 적은 없답니다? 그러니까 빨리 드셔보세요.”
내가 너무 오버하는 기분이지만, 기분이 좋다 보니 계속 권유하게 된다.
“으으…. 항복! 먹을게요!”
그렇게 권유하다 보니 지혜씨는 환약을 까서 먹기 시작하였다.
나는 헌터가 아니기에 효능은 잘 모르겠지만, 지혜씨에게는 효과가 있으려나?
환약을 먹은 지혜씨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어라…? 지혜씨 취향의 맛이 아닌가…?’
놀라서 지혜씨에게 말을 걸려고 하였지만, 지혜씨의 제지하는 손길이 먼저였다.
'으...맛이 이상한 걸까?'
“아…. 지혜씨 죄송해요…. 그 취향이 비슷해서 드린 약인데…. 이상한 맛이죠…?”
지혜씨는 입안에든 약을 몇 번 씹더니 삼킨다.
“푸하, 아뇨아뇨 독특한 약초 맛이 나서 그랬어요. 게이트에서 재배한 약초가 아니면 나지 않는 맛이라서 그렇거든요. 어디서 받으셨어요?”
“어 가게 근처에 있는 박 씨네 약방요…?”
내 말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기 시작한 지혜씨다.
지혜씨가 고민하던 와중 가게의 문이 열렸다.
딸랑하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들어왔다.
“오빠 나왔어!”
아차 수아가 저녁에 온다 했지….
이런 지인 손님이 겹쳐버린 걸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조금 당혹스럽긴 한데…. 손님 접대하듯이 평범하게 대하면 괜찮겠지?’
그보다 지혜씨는 왜 수아를 노려보는 걸까? 서로 아는 사이일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