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짜면서도 달달한 맛(3)
* * *
독사와 무기를 맞대며 대치 상황에 있다.
살기를 담은 시선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창부터 나가 버리는 습관이 문제다.
그렇게 창을 휘둘렀을 때 ‘아차’하고 힘을 빼서 다른 장소로 창날이 가도록 비틀었지만, 창끝에는 그녀의 단검이 닿아있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내가 반사적으로 창을 휘두를 것을 예상하고 단검으로 막은 거다.
‘여기서 내가 창에 힘을 빼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힘을 빼서 의도적으로 베이려 하겠지.’
그녀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자해도 서슴지 않을 성격이다.
처음부터 안 베인 이유는 체면상의 문제로 추정된다…. 아무리 감지능력자라 해도 눈먼 창에 베였다는 건 흑월에서도 쪽팔린 일이다.
게다가 정말로 베어버리면 위원회에 소속된 노인네들이 신날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능력으로 만든 창을 거두어내고 그녀와 대치를 하였다.
‘선제공격으로 받아들여도 될까라…. 하! 흑월 년이….’
“선제공격 이전에, 골목에서 살기 한가득 담은 시선으로 보면 누구든 오해하지 않을까?”
“법이 언제부터 바라만 본 거 가지고 공격해도 합법이 되었을까? 그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웃고 있다.
친근한 말투지만, 가끔 작전을 같이 뛰어서 그녀의 숨겨진 성격을 잘 알고 있다.
‘2년 전이 마지막 공동 임무였나?’
과거 게이트에서 공동작전을 뛴 이후로 ‘까마귀’의 대장 중 한 명으로 승급했다고 들었지만, 이 구역에서 활동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 선제공격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고, 내가 먼저 물은 질문이나 계속하지. 그래 성화씨에게 약을 준 거 너지? 이 구역에서 약을 가지고 장난칠 놈은 ‘까마귀’ 놈들 말고는 없을 텐데?”
“어머나. 무슨 일이 있었나 봐? 언니 나한테 말해봐, 내가 담당하는 구역이니까 처리해줄게.”
자신은 전혀 모른다는 듯이 말을 하지만, 어느 간 큰 놈이 흑월이 직접 관리하는 구역에서 설치려 할까? 불법적인 짓을 저지르는 범죄 조직조차 흑월이 관리하는 구역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건드는 순간 친족까지 전부 자원으로 써먹겠지. 인체실험이든 장기밀매든 뭐든 하는 놈들이니까.’
협약에서는 본인들과 무관한 민간인은 건들지 않는다 하였지. 사업과 관계되는 존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짓밟아 버린다.
“웃기지 마!! 네년이 성화씨에게 약을 준 것 모르는 줄 알아?! 어떻게든 너의 손을 걸쳐갔겠지!”
“언니~있지 그런 말은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하는 거다? 지금 증거 있어?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은데 자꾸 그러면 내가 ‘아버지’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
“하…. 자신의 구역이다. 이거냐? 증인이라면 성화씨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오겠지!”
“아 그렇네! 오빠가 말해줄 수도 있네? 그보다…. 네가 왜 내 오빠를 친근하게 불러?”
성화씨 이야기가 나오니까 분위기가 돌변하였다.
조금 전까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도발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날이 날카롭게 선 분위기다.
“본인은 오빠라고만 부르고 성화씨라 못 불러서 배알이 꼴리나봐?!”
성화씨라 부르는 것은 나만의 특권이라는 생각에 비꼬는 말투가 되었다.
차갑게 나를 노려보는 독사…. 아니 박수아.
앞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더니 한숨을 쉬고는, 나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였다.
“하아…. 받아주니까 끝도 없네, 가문의 수치라 불리는 꼴통이 나랑 말할 급은 아니지 않을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수아는 멱살이 잡힌 채로 벽에 부딪혔다.
아…. 지나 언니에게 몇 번이고 들어온, 손부터 나가는 버릇이 또….
그래도. 저 말은 나에게 하면 안 되는 말이다.
“야…. 다시 말해봐.”
“킥킥….‘가문의 수치?’,‘실패작?’ 어느 쪽이 좋아? 특별 서비스로 원하는 대로 해줄게.”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지금 상황이 잘못 돌아가는 순간 위원회가 열릴 게 분명하기에, 이 이상은 곤란한데….
‘내가 손이 먼저 나갈 것을 노리고 한 말이겠지.’
헌터는 냉정해져야 하지만, 저 말을 들은 이상 욕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남의 피나 빨아먹는 쓰레기 같은 년이, 누가 누구한테 욕하는 거야?!”
“정부가 안 하는 일을 우리가 대신하는데 약간의 사례금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 대 칠 거면 빨리 쳐봐.”
내가 하는 말 정도야 평소에 자주 듣는 말일 것이 분명하기에 영향도 없는 걸까?
아쉽지만, 먼저 위협한 시점에서, 주도권은 그녀가 쥐고 있다.
약 기운이 조금은 남아있고, 계속 도발 당했다가는 정말로 한 대 치거나, 창으로 얼굴에 구멍을 뚫어줄 것 같기에 이쯤 해둬야겠다.
“그래…. 그렇게 나오면 나 나름대로 성화씨를 지켜 내겠어.”
나의 말을 들은 독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멱살이 잡힌 채로 폭소하기 시작하였다.
골목 안으로 울리는 웃음소리.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누구 하나 지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 진즉에 손을 써둔 게 확실하다.
“아하하하…. 아 배 아파. 니가 뭘 안다고? 오빠에게 성화씨라 부르는 정도야 이해를 해야지. 내가 못하였지만, 오빠의 기분을 안정적으로 바꾸어줬잖아? 그래 뭣 같아도 이해는 해줘야지! 그.런.데 말이야…. 만난 지 2주도 안 된 네가 할 말일까? 안 그래? 난 최소 일 년은 만났다고 할 수 있는데? 오빠에 대해서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는 용기가 아주 광휘 놈들하고 닮았네? 천칭이면 천칭답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중립이나 지켜!! 오빠에 대해서 안다는 듯이 말하는 모습을 볼수록 역겨워!! 실패작이면 실패작답게 남이 시키는 대로만 살란 말이야!!!”
실패작이라는 말 한마디에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창을 만들어 내지 않아서 다행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조차도 계산에서 나온 말이겠지?
조장 이하급 시절의 나였다면 수아에게 보기 좋게 당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옛날처럼 그런 도발에는 이제 안 넘어가. 성화씨에 대해서 모를 수도 있지. 그래서 지금부터 알아갈 건데 그게 뭐 어때서? 넌 그렇게나 잘 아는 거 같은데 말이야…. 아까 대화를 생각해 보면, 오빠 동생 사이 정도의 그저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던데…. 그게 더 문제 아닐까?”
나의 말에 독사의 입가가 씰룩거린다. 화날 때 버릇이었나?
“이봐요 언니. 언제부터 혀가 길어졌어? 수틀리면 손 아니 창부터 나가던 실패작은 어디 가셨을까!?”
“싸물어….”
이 이상 대화를 계속하다 보면 수아의 페이스에 말릴 수 있다. 그렇기에 수아의 말을 끊었다.
계속되는 대치 상황.
문득, 수아는 아무도 없을 골목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든 뒤,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 씨발…. 일 한 번 더럽게 꼬이려 하네. 그래 넌 날 위협했고, 나는 너에게 해서는 안 될 말 한 거로 끝내자.”
그렇게 말하고는 멱살을 잡은 내 손을 잡아서 땐다.
나 또한 길게 갈 이유가 없기에, 손에 힘을 풀어줬다.
‘역시 보고 있었나.’
까마귀 놈들의 대장 아니랄까 봐, 부하 놈들이 싸움 중간에 다른 보고를 보낸 걸지도 모르겠다.
수아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도 내 오빠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도가 내가 느리긴 하지만, 내가 ‘먼.저’ 만났잖아? 그러니까 손때.”
성화씨와 처음 만난 게 자신이라서 자신감이 넘치는 걸까?
나 또한 수아를 제지할 방법이 있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위원회에 보고하겠어. ‘민간인에게 손을 댔다.’라는 명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지혜…. 너 좀 치네…?”
평소에는 언니 언니 하더니 당황하자마자 말을 놓는 다라…. 평소에 어떻게 나를 생각해왔는지 뻔히 보인다.
제삼자가 바라본다면 아주 차갑게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말을 고르다가 평소의 수아 느낌으로 비꼬아봤다.
“팀장 자리에 올라가면 머리싸움도 필요해서 말이지? 흑월은 그런 것도 안 가르쳐주나 봐?”
“하! 그 자신만만한 얼굴 언제까지 가는지 기대할게. 언.니. 다들 이동해!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기척으로 느끼고 있던 움직임들이 수아와 함께 천천히 멀어진다.
발소리만 들어보면 수아를 포함해서 8명 정도일까? 나를 상대하기 위해서 매복한 게 아니라 다른 일이 생긴 것 같다.
발소리가 사라지니, 큰일이 지나간 느낌이라 주변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 보이는 성화씨의 가게의 불이 꺼진다.
‘뒷정리를 다 하고 이제 퇴근하려는 것이겠지…? 수아와의 악연을 안 들켜서 다행이다.’
성화씨에게 아직도 이곳에 있는 것을 들키면 설명하기 곤란할 것 같기에 골목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아랑 방금 말싸움이 있었지만,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걷는 거 정도는 조직간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까마귀들은 트집 잡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걸으면서 바로 전에의 말싸움을 다시 한번 상기하였다.
말싸움 중에서 수아에게도 들었지만, 천칭은 중립을 지킨다는 인식이 너무나도 강하게 박혀있다.
다들 언제까지 천칭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소리를 할건지….
천칭의 접시도 한 번씩은 기울지 않는가?
그때가 바로 지금 같다.
모레가 아니라 오늘 자고 일어나서 가게 오픈시간에 들려야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