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짜면서도 달달한 맛(4)
* * *
밝은 빛이 눈을 때리기에 눈을 떠보니 하늘에 해가 환히 비치고 있다.
‘몇 시지?’
침대 옆 시계를 보니 11시쯤이다.
다른 사람들 보다 하루의 시작이 늦지만, 오늘도 하루를 시작할 시간이다.
일어나기는 싫지만, 어기적어기적 일어나서 아침밥부터 준비하였다.
특별히 아침밥 준비라 할 것은 없고…토스트기에 빵을 넣는 정도?
쌀밥은 혼자 생활하는데 생각보다 귀찮은 주식이다.
쌀을 씻고 밥이 되기까지 30~40분, 미리 해 두면 맛이 없고, 매번 타이머를 해두기에는 번거롭다.
‘빵을 기다리는 동안에 계란이랑 베이컨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 두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몇 주 전과 비교하면 양호하다면 양호하다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용물이 채워진 상태였다.
요 몇 년간 죽지 못해 먹는 느낌으로 먹었다면, 이제는 적당히 챙겨 먹는 수준 정도까지는 갔다.
그렇게 냉장고에서 베이컨과 계란을 꺼내어 굽기 시작하였다.
베이컨의 기름으로 계란 프라이를 튀기는 느낌으로 굽는 게 식용유도 안 쓰기에 일석이조 같아서 좋다.
베이컨은 적당히 볶는 느낌으로, 계란 프라이는 예쁜 모양보다는 대충 굽는다는 느낌으로 구웠다.
베이컨 기름의 강렬한 냄새가 방안을 감돌 때쯤 토스트기에서 다 구워진 빵이 튀어나왔다.
바싹구운 맛을 좋아하기에, 굽는 시간을 오래 두어서 그런지, 식빵의 표면이 온도는 괜찮아도 속은 매우 뜨겁다.
프라이팬에서 접시로 옮기는 시간정도면 식히기 적당한 시간이다.
지혜씨가 본다면 부족하다면서 더 많은 양을 추가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이정도면 충분한 아침 준비가 아닐까?
때마침 핸드폰의 진동소리가 들린다.
성화씨 지금 일어나셨을 거 같아서 보냈어요!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도 날씨가 좋죠!? 오늘 가게 오픈 때 방문할 게요! 이번에는 술이 아니라 커피로 마셔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지혜씨 생각을 할 때 문자가 와서 신기한 기분이다.
그런데 뭔가 장문 같은 기분인데…기분 탓인가?
식사 전이니 답장을 먼저 보내야겠다.
네 좋은 아침이에요. 가게는 언제든지 오세요.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 식빵을 먹으려 하지만, 문자가 다시 왔다.
응? 지혜씨 문자는 평균적으로 10분 이상은 걸릴 텐데…이번에는 누구지?
궁금한 마음에 문자를 확인하였다.
오빠 오늘 카페 영업 시간에 갈게. 맛있는 거로 준비해줘! :D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문자를 보내온 사람은 수아였다.
어라…수아가 내가 막 일어난 이런 시간에 문자를 보낼 리가 없는데, 문자를 보내다니…이상한 일이다.
응. 뭐든 주문해.
역시 간결하게 보내는 편이 깔끔한 느낌이다.
아침부터 이런 문자라니… ‘오늘은 특별한 날’ 이라는 느낌인 걸까?
수아의 답장이 바로 오는지 핸드폰이 진동하지만, 식사부터 한다음에 답장을 해야 겠다.
그렇게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식빵을 들어서 한입 물어봤다.
음…
빵의 고소한 맛과 함께 올라오는 술 맛의 느낌.
진짜 술 같은 맛은 아니지만, 주 재료가 같기에 연상이 되어버린다.
‘밀 맥주’와 ‘아이리쉬 위스키’를 마시고 싶은 맛이다.
이렇게 간단한 식사 중에서도 술을 연상하다니…알콜중독급의 중증인 걸까…?
‘술은 좋아하지만 중독 수준은 아닌데 말이지…’
술을 좋아하는 것과 중독은 엄연히 다르다.
술을 좋아하면 모으기만 하지,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게다가 좋은 술은 값도 비싸 져서 편히 마시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알콜중독 환자들은 비교적 값이 싼 초록색 병에 든 술을 마신다. 그들은 술의 맛과 향 보다는 알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콜 중독이라 불리는 거겠지.
이렇게 주변에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술을 연상하는 재미도 나쁘지는 않다.
‘보리빵을 먹으면 위스키나 맥주 맛을 연상하려나? 혹은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을 먹으면 진을 상상해보거나.’
너무 과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음식을 먹을 때 술 맛이 연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그동안 식사를 너무 소홀히 한 걸 지도….
일단 베이컨과 계란 프라이를 곁들어서 아침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끝냈으면 이제 씻어야겠지.
그렇게 늦은 아침 식사를 끝낸 후 정리를 하려 하지만, 그 와중에 문자가 왔다.
ㄴ ㅔ! 오픈할떄쯤 바로 갈꼐요!
뭔가 오타가 많은데…?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지혜씨 본인도 글 상태가 이상한 것을 알았는지 바로 지웠다.
음…이미 봤는데 모른 척을 해야 할까?
네! 오픈할 때쯤 갈게요!
다시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문자다.
‘네’라는 간단한 답장을 한 뒤에 생각해보니 가게 좀 더럽지 않았나…?
오늘은 좀 더 일찍 가게에 가야 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또 문자가 왔다.
‘정말 오늘따라 문자가 많은데 누구지…?’
뭐든 이랬다? 딱 기다려!
오빠? 아침 준비하고 있나…?
수아가 보낸 2개의 답장이었다.
첫번째는 아까 전의 답장에 대한 답장일테고, 두번째가 지금 온 것이겠지.
지혜씨도 그렇고 수아도 오늘따라 왜 이러지…?
편한 시간에 천천히 와. 그리고 문자 보는 거 느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적당히 답변을 해둬야겠다.
그러고 보니 지혜씨랑 수아는 서로 아는 눈치였는데…정말로 아는 사이일까?
‘하긴 약방에서 납품할 수도 있으니까. 오늘 물어봐야지.’
이제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 겠다.
@@@
씻는다 해서 대단한 것은 없다.
그냥, 자다 일어나서 부스스한 머릿결을 빗으로 정리해주고 세수를 해주는 정도?
다른 남성들처럼 화장을 하고싶지는 않다.
‘멘탈이 터졌을 때 이것저것 따라해본 건 없던 일로 하자….’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는 상식이겠지만, 나로서는 아직도 익숙해질 듯이 익숙해지지 못하는 감각이다.
아니 뭐… 지혜씨랑 있으면 이전 세상의 남성처럼 당당해지고 싶은데…뭔가 말투가 수아의 지적대로 어울리지 않은 말투가 입에 붙어버렸다. 말투에 신경을 좀더 써야 할까? 남성 답게 거친 말투?
애초에 남자 같다는 정의가 뭘까? 주도권을 먼저 잡는 쪽이라는 의미일까? 사회적 인식의 차이 일까?
‘새삼 이제 와서 또 이런 고민을 다시 시작하다니….’
옛날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지만, 성인이 될 즈음 여러 일이 있어서, 그저 살아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제어 팔찌를 하지 않은 채로 거리를 걷고 있다.
어제 지혜씨가 가르쳐준 흐름의 방향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 있었다.
처음에는 움직이기 힘들지만,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파도가 치는 느낌? 혹은 회전하는 느낌으로 몸 안에 흐르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아직까지 흐름의 제어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라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나를 봤다 못 봤다 하는 기분이 든다.
‘이번 가게 휴일날에 능력의 조건에 대해서 알아봐야지.’
그렇게 능력 제어 훈련 겸, 잡생각을 하다 보니 가게 앞에 도착하였다.
2시가 조금 지난 시간.
지혜씨의 방문 예고로 인해서,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게 되었다.
가게의 문을 열어보니, 꽃과 풀로 한가득 장식된 바가 나를 맞이해준다.
조만간 새 꽃 좀 넣어야 겠다.
‘수아가 어머니의 약방을 같이 운영하고 있으니까 꽃에 대해서 잘 알려나?’
꽃은 청소를 끝낸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청소 준비를 시작하였다.
가게의 청소는 제일 먼저 에어컨을 틀기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다.
여름에는 더워서 땀을 흘리다 보면, 옷에서 냄새가 날 것이고.
겨울에는 손끝이 차가워서 굳으면 일의 효율도 나빠지기도 하고. 추워서 몸을 움직이기가 싫다.
그렇기에 에어컨으로 실내의 온도를 적정 온도로 조절을 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상업용 전기가 싸기도 하지….’
일반 가정이었다면 엄두도 못내지만, 상가 건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에어컨은 한번 켜 놓아 두면 에너지 효율이 좋기에, 미리미리 켜 두는 편이다.
에어컨을 켰으면, 전날 싱크대의 건조대에 올려 둔 컵의 정리를 시작한다.
뜨거운 음료잔의 경우, 에스프레소 머신 위에 올려 두며, 차가운 음료 잔의 경우 선반안에 넣어둔다.
뜨거운 음료 잔 한정으로 기계위에 올려 두는 이유는 잔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상온의 잔에 뜨거운 물을 붓게 되면, 컵의 온도차이로 인해서 물의 온도가 낮아지게 되므로 미묘한 맛에서 차이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지만, 일반인이 느끼기에는 그렇게까지 차이가 있을까?
사실, 컵을 올려 두는 제일 큰 이유는, 급격한 온도차이로 인해서, 재수없으면 컵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컵이 깨지면 생각보다 파편을 찾기가 힘들고, 새 컵을 사야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오래 쓸 수 있도록 미리 예열해둔다.
컵을 정리했으면 다음은 먼지떨이를 들고 실내를 털어낸 다음, 깨끗한 행주를 들고 테이블을 닦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오늘 지혜씨와 수아가 온다고 했는데…둘의 방문이 겹치지는 않겠지? 에이….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 없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가게 청소부터 깔끔하게 끝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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