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데이트 칵테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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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팀이 전투휴무라서 아침 일찍 성화씨의 가게에 가려 하였지만, 처리할 서류가 많았다. 작전일지 정리 및 부상자・전사자, 피해금액 보고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피해가 심각했는데…나리가 회식 때 우울해하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신병 몇 명이 부상을 입거나 전사처리가 되어버려서, 몇 달 전 일이 생각난 거겠지.
‘쓸 때없이 정만 많아서는….’
헌터…. 아니, 탐사대는 돈을 많이 번다는 인식이 있지만, 위험수당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정말로 게이트 내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 전면전이나 조우전에서 죽는다면 억울하지도 않지, 매복, 저격, 광역 기술에 의한 폭사 등등…. 그렇게 죽는 게 제일 헛된 죽음이라 생각한다.
이번 탐사는 오크였지만, 머리를 굴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드물게 고블린과 협력하는 오크가 있는데, 이번에 만난 오크 부락이 그런 종류였다. 오크는 언제나 힘싸움을 한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지휘부의 탓도 있지만, 후방이라고 조심성 없이 요란스럽게 정찰을 다니던 신입 팀원들 또한 잘한 게 없다고 생각된다.
‘훈련할 때 ‘은밀하게 행동하고 의뢰를 받은 임무만 완료하면 임무는 끝’ 이라고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명했는데 실전에서 그러다니, 쯧….’
아마 신입들 중에서 겁대가리 없는 녀석들이 명령을 어기고 몰래 모여서, 후방에서 요란하게 오크 사냥을 한 것이라 추정된다. 그러다가 재수없게 매복에 당한 거고.
부상자는 그렇다 쳐도, 사망자의 인적 사항을 재검토하는데, 대부분 기록이 ‘용감함, 무모함, 겁이 없음’ 이라 기록된 녀석들이 대다수이다.
개인적으로 겁이 많거나 적당히 끊을 줄 아는 녀석이 탐사대에 적합한 인재다. 헌터들은 어디까지나 의뢰를 받은 임무에서 끝을 내야 한다.
정말 겁이 없거나 저돌적인 녀석들은 군대에 입대하면 되지만, 역시 군인 월급이 너무 낮아서 안 가려는 거겠지?
‘하여튼 부패한 정부나 똥별 들은 어쩔 수 없나?’
세계대전때 게이트의 증가율이 폭증한 뒤로는 정부의 기능이 조금 치우쳐졌다. 책에서 나오는 복지 보다는 군사국가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뭐, 아무래도 좋은 생각이다. 이런 비 생산적인 생각보다는 성화씨로부터 알게 된 술 생각인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위스키 종류도 검색해보면 다양하던데 용어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몰트, 싱글, 블랜디드 년? 년산? 등등, 전혀 모르는 단어들이 많은데…. 검색을 하기보다는 언젠가 성화씨에게 물어봐야 겠다. 그래야 말을 걸어볼 건수 라도 생기지.
서류가 너무 하기 싫어서 그런지 계속 잡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럴수록 오픈시간에 맞춰서 가는 건 힘들어지는데….
‘후…. 이럴 거면 승진하지 않는 편이 좋았으려나.’
일반 조장 시절에는 내 휘하의 애들만 보고하면 끝이었는데, 팀장으로 승진한 이후에는 팀원의 조장들로 받은 전투보고서를 종합한 뒤, 피해보고 및 작전에 관한 개인적 사견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간단한 보고서이지만, 막상 하려 하면 귀찮은 일이다. 종이에 써진 검은 글씨는 개미의 행렬처럼 느껴지며, 책상에는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다고 느껴진다.
집중하고 본다면 금방 끝낼 수 있지만, 머리를 굴리는 일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애초에 머리를 굴릴 거면 사무직으로 갔지 현장직에서 서류작업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짬처리를 해버리고 싶지만, 팀장으로서 체면이 살지 않기에 조장들에게 넘길 수도 없다.
지금이라도 내팽겨 치고 성화씨의 가게에 가고 싶다.
가게 이름이 카페 숲속 & 바 만월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가게였는데, 알고 보니 커피와 술을 판매하는 업종 이였다. 이런 가게가 흔한지 궁금해서, 팀원에게 질문을 하였다. 질문한 대상은 남성 치고 드물게 여성 헌팅을 하고 다니는 4번조장 현준이가 잘 알 것 같아 질문하였다. 그 결과, 성화씨가 영업하는 가게는 전국에서도 드문 형태의 가게라고 한다.
‘오히려 그런 가게에 가보고 싶다고 조르던 게 얼마나 웃기던지….’
팀원이 가고 싶다 하면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신경이 쓰이는 곳이다. 안 그래도 술자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성화씨의 가게에 데려간다? 성화씨의 사진이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지금 또다시 소문이 퍼질 것이 기정사실이다.
그래도 저번에 일방적으로 화를 낸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가게에 한번 데려가기로 했는데…. 지금이라도 다른 가게로 잡을까? 성화씨 가게가 아닌 다른 장소는 뭔가 많이 아쉽다.
계속 이런 생각만 하다 가는 오픈시간에 맞춰 갈수 없기에 잡념을 떨쳐내고 서류를 재검토하려 하지만, 핸드폰의 착신음이 들려왔다.
‘쉬는 날에는 연락 금지라고 했는데 누구야. 평일이라 친구 놈들은 연락을 안 할텐데….’
쉬는 날에 서류작성을 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유급휴가를 받은 상태라서 평일 오전에 연락이 올만 한 사람은 없다. 혹시 비상 사태라도 발생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핸드폰의 이름을 확인하니 ‘할배’ 라 적혀 있었다. 몇 달 만에 연락이 온 것일까?
‘하아, 씁…. 받기 싫은데. 또 같은 이야기를 하겠지?”
아직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걸 받을지 말지 고민을 해보지만, 받지 않으면 다음번에 더 귀찮아 질것이 분명하기에 전화를 받았다.
“예. 이지혜입니다.”
“그래 딸아, 나다.”
간결한 대화. 일반인들과는 대비되는 차분한 목소리 톤의 남성 목소리였다.
몇 달 만에 듣는 나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어떤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지금 서류작업 중이라서 짧게 하고싶습니다.”
가족과 관련된 일만 되면 목소리가 굳어버리는 느낌인가…? 아니 옛날부터 그렇게 배워와서 몸에 베인 말투인 거겠지. 천칭에 입사한 뒤 많이 유연해졌다 생각되지만, 역시 가족과 전화는 옛날 말투로 돌아오게 된다.
“돌아와라.”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안부를 묻거나 하겠지만, 대뜸 ‘돌아와라’ 말을 하였다…. 이 말만 몇 달에 한 번씩 해왔다. 벌써 몇 년째인 걸까?
아버지의 말에 최대한 나의 감정을 억누른 채로 대답을 하려 하였지만, 어제 독사로부터 들은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실패작’
어젯밤 골목에서 독사와 싸우면서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생각이 들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저 단어뿐이다.
실패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속에서 무언가 터져 나오려 하지만,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한 뒤 대답하였다.
“싫습니다…. 아니, 싫어요. 그딴 가문 두 번 다시 안가.”
평소라면 ‘죄송합니다.’’생각 중입니다.’ 등으로 얼버무리면 ‘그래 알겠다.’ 로 끝내는 대화였지만, 어제 들은 말로 인해서 이때까지 참아온 감정이 조금 흘러나온 느낌이다. 안 터진 게 다행이지…. 터질 거면 할망구 앞에서 해야지, 아버지 앞에서 감정이 터지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격이다.
“그게 무슨 말투인 거냐.”
하…. 싫다고 표현을 하여도…. 지적하는 게 말투라니. 헛웃음만 나오는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도 피해자라 생각을 하니 약간은 진정이 되었다.
“하아…. 아버지도 그런 집에서 나오세요! 언제까지 묶여서 살 건데요?”
“나는 내가 좋아서 결혼한거다.”
아마 집을 나올 때 했던 말과 똑 같은 패턴인 느낌인데…. 아버지도 전혀 변하지 않는구나.
“아니, 그래요 아버지 건은 좋다 쳐요. 그래도 저는 그딴 집안에 안 돌아 갈겁니다.”
“딸아 네가 돌아와야 ‘광휘’ 에서도 간부직에 들어가지 않겠느냐? 네 사촌 언니만 봐도 중요직에 들어가서 활동 중인데 언제까지 천칭에서 소꿉놀이나 할 생각이니? 그리고 후계도 생각 해야 하지 않겠느냐?”
“….”
하하…. 천칭에 들어와서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데, 소꿉놀이라…. 정말로 변함이 없는 집안이기에 이제는 대꾸할 힘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그냥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더는 대화할 힘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하고 나니 서류를 할 기운도 나지 않는다.
그냥 무언가를 마시고 싶은데…. 서류는 내일의 나에게 넘기고 그냥 가봐야 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계를 보니…3시쯤 되었는다….
‘오픈 시간에 못 맞추겠는데?’
황급히 외출 준비를 하면서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는 착신음이 들려왔다. 아마도 ‘할배’가 보낸 문자다. 하지만 보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보지도 않고 그대로 사무실에서 나왔다.
‘음…조금 늦었으니까…. 교외까지 지하철을 탄 다음 뛰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목이 마르면 성화씨 가게에서 해결하고….’
일반인 보다는 신체능력이 월등히 좋기에 시내에서 차를 타는 것보다는 성화씨 가게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지하철 역에 내려서 뛴다는 선택을 하였다.
부디 독사년보다 먼저 도착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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