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57화 (57/140)

〈 57화 〉 데이트 칵테일(6)

* * *

카페 영업시간이 끝나고 바 영업 시간이 시작되었다.

카페 영업시간 동안 절실히 느낀 것이 있는데,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감정이 없는 사람의 접대의 차이는 매우 극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이렇게 고된 일이라니.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음료 주문을 하고 끝내는 거면 다행이지, 일상적인 대화를 걸어오면 어떻게 답변할지를 몰라서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주변의 추천하는 음식점은 어디인가, 오픈한지 얼마나 되었는가, 추천 음료는 무엇인지 등등.

차라리 헌팅스러운 대화면 능력 실험 대상이라도 써먹지, 이런 일상적인 대화는 서툴러서 그런지 중간에 답변을 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때마다 웃는 얼굴로 천천히 생각하라 하거나 동생 보는 듯한 눈길을 줬지만, 말발이 부족한 점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거 음료 가게의 마스터 실격 아닐까?’

바 테이블이 있다면 가게 주인 혹은 음료를 만드는 사람은 말발이 좋아야 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딱히 말발이 좋지 않아도 괜찮다. 음료가 중요하지 대화는 부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맨즈 바같이 대화가 목적인 바라면 음료 맛 보다는 말발이 중요해진다.

애초에 가게를 시작한 것이 취미생활의 연장선에서 시작한 일이라서 말발을 중요시하지 않았으며 음료를 중시하였다.

‘능력을 모를 때 말을 걸어도 무시당하는 게 일상이라서 신경 쓰지도 않았고….’

어찌 되었든, 바텐더는 말발이 좋아야 한다는 편견이 있는 이상 어느 정도 입담을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부끄러워서 이러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사람과의 대화가 고되고 힘들지만, 그래도 기분 나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할 수 있다. 단, 헌팅 같은 이상한 대화는 기분 나쁜 대화가 맞다.

이러니저러니 하여도, 지혜 씨가 준 팔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인간 관계는 둘째치고, 아직은 조절이 미숙하지만 흐름의 움직임 정도는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팔찌를 낀 채로 능력을 막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이게 맞는 방법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예약 시간에 지혜 씨가 오면 능력에 관해서 정확히 물어봐야겠다.

딸랑~

바 영업 시간이지만, 시간이 꽤 지나서 그런지 카페 영업시간과는 다르게 손님이 뜸해졌다고 생각할 때쯤 손님이 들어왔다.

남녀 커플인가 싶은 모양새로 들어왔는데, 여성이 노골적으로 남성을 끌고 들어온 느낌이 강하다.

손님이 왔으면 인사부터 해야겠지. 지금은 바 영업시간이라서 바 만월이라 하였다.

“안녕하세요. 바 만월입니다.”

가게의 간판에 카페 숲 속 & 바 만월이라 그런지, 카페 영업 시간에 바 영업 시간 인 줄 알고 들어오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간간이 일어나서, 그런 소소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인사말 다음에 현재 영업 중인 업종명을 말하게 되었다.

시간대가 심야에 가까워지고 있어서, 이번에는 팔찌를 빼고 있었다. 손님은 나를 제대로 인지하지 않지만, 적당히 눈인사로 내 인사를 받아주고는 바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뒤 서로 무엇을 마실지 대화하기 시작하였다.

“자, 뭐 마실래? 내가 쏠게!”

“누나 안 마시면 안 돼?”

“여기까지 와서 뭘~. 내가 술맛 안나는 칵테일로 골라 줄게!”

커플로 보이지만, 마시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끌고 온 느낌인데…. 완전 매너 없네 라 생각하면서 무엇을 주문할지 지켜보았다.

“그럼 스크류 드라이버 두 잔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스크류 드라이버 라면, 얼음이 가득 담긴 컵에, 보드카 1: 오렌지 주스2 비율로 섞으면 완성되는 간단한 칵테일 중 하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도수가 높다는 점일까?

의외라 생각할 수 있지만, 보드카는 40도 전후의 도수를 자랑하는 술이다. 그 보드카가 들어간 시점에서 도수가 높은 칵테일이다.

스크류 드라이버를 기본 레시피 대로만 해도 12~15도는 왔다 갔다 한다. 일반적인 맥주가 4~5도, 초록 병 소주가 15~18도쯤 한다. 단순 도수로 소주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디까지나 도수가 같다는 말이지 마시는 양은 스크류 드라이버 한잔이면 소주의 2.5배 많은 양을 마시게 된다.

게다가, 스크류 드라이버의 가장 큰 특징은 술맛이 전혀 안 난다. 보드카에 쥬스를 섞는 칵테일의 공통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런 특징이 있어서인지 레이디 킬러… 아니 맨 킬러 칵테일, 혹은 작업주라 불린다. 정말 멋 모르고 마시면 주스 같아서 훅훅 마시게 된다. 두 세잔 마신다면 일반인은 만취해 버려서 인사불성 상태가 되어 버릴 텐데…. 그 뒤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저 여성의 흑심이 가득해 보이는데…. 어떻게 하지?’

남성 손님이 걱정이 되기에, 스크류 드라이버를 만들면서 남성 손님에게 줄 잔의 오렌지 쥬스 비율을 높여줬다.

보드카 1: 오렌지 4~5정도로 섞으면 강한 도수가 어느 정도 희석될 것이다. 그래도 소주 한 잔 정도 마신 느낌은 들 것이다.

마시기 싫은 듯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적당히 알콜을 빼주는 것이 바텐더의 중요한 임무가 아닐까? 사람과 대화야 자연스레 배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 스크류 드라이버 나왔습니다.”

“어, 장식이…. 둘 다 같은 칵테일 맞나요?”

“네~ 같은 칵테일 이랍니다. 그냥 장식만 차이를 줬어요.”

“아, 감사합니다.”

오렌지 칩과 생 오렌지 조각을 각각의 잔에 장식하였다.

그렇게 한 이유는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오렌지 칩이 든 잔은 여성 손님에게 드렸으며, 생 오렌지로 장식한 잔은 남성 손님에게 줬다.

전자가 평범한 스크류 드라이버 라면 후자가 알콜 도수가 낮은 스크류 드라이버다.

잔을 받고는 여성 손님은 바로 마셨지만, 남성 손님은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마시기 싫다고 하였다.

“아니 누나 안 마실거라니까?”

“괜찮아. 술맛 전혀 안 나는 오렌지 쥬스야”

“그, 그래? 그럼 한잔 정도면 괜찮겠지…?”

“물론이지~. 자자, 마셔봐.”

남성 손님은 못이기는 척하면서 생 오렌지가 장식된 스크류 드라이버 잔을 들고 마셨다.

“아! 맛있어. 소주 맛 날 줄 알았는데 그냥 주스네?”

“그치~! 내가 쏠 테니까 많이 마셔!”

방금 전 여성의 말로 인해서 대충 속마음이 짐작된다.

만취시키려는 목적이겠지? 적당히 비율을 바꾼 것이 정답이다.

‘오늘 마신 경험으로 인해서 스크류 드라이버는 도수가 낮다고 착각하면 안 될 텐데….’

다른 바에가서 스크류 드라이버를 쭉쭉 마실지 걱정이 되지만, 거기까지 챙겨줄 이유는 없다. 어디까지나 손님이 술을 싫어하시는 듯하여서 알콜 비율을 조절한 것뿐이다.

‘손님과의 잡담에만 집중해서 취향을 반영하지 못한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가 있다면 바텐더 실격이 아닐까?’

오히려 능력 덕분에 손님을 잘 관찰하게 된 것 같기에, 아이러니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렇게 오묘한 기분으로 있다 보니, 커플 손님은 2~3잔을 더 마시고 나갔다.

다 마셨을 때 오히려 여성손님이 만취해서 나갔는데, 모텔을 가자고 찡얼대던 게 얼마나 웃기던지.

아마 남성 손님은 여성 손님에 대한 호감이 조금 떨어졌을 것이다.

@@@

‘이제 슬슬 예약 손님이 올 시간인데 언제오려나.’

커플 손님 이후에 간간이 손님이 오긴 했다.

신기하게도 2차를 마시려고 내 가게에 온 것이라 추정되는 몇몇 손님들은 카운터를 보고는 황급히 뛰쳐나갔다. 도대체왜? 라는 생각이 들지만, 가게를 혼자 운영하기에, 이미 바깥으로 나간 손님을 붙잡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 외에는 며칠 전 위스키를 마시면서 내 컨셉에 관하여 묻던 두 여성 헌터 분들도 왔었지만, 그때는 팔찌하고 응대를 하였다.

단골 손님에 대한 서비스는 중요하다. 마시는 양이 술고래 같아서 간 건강이 걱정되는 손님이지만, 두 분 다 인자하신 분이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손님과의 대화가.... 수동적인 답변만 하였다면, 이번 만큼은 두 헌터 분들에게 능력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두 분도 능력에 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답변이….

“숨쉬기 같은 것을 가르쳐 달라 해도 우린 몰러이.”

“그렇지? 우리한테는 숨쉬기 같은 거라서 말이지.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해지는구만, 그보다 팔봉위스키나 한 병 더주게.”

역시 정상적인 능력을 갖췄다면, 자연스럽게 익히는 힘인 건가 싶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 곧 도착할 시간인데 왠지 모르게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초조해 하던 찰나.

딸랑~

“성화 씨 저 왔어요!”

지혜 씨가 도착하였다. 뒤에 손님은 약 2명 정도. 생각보다 적은 수다.

지혜 씨도 왔으니까 오늘은 어떤 술을 드리지?

헌터들이면 역시 독한 술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님 접대를 시작하였다.

“어서 오세요! 바 만월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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