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새로운 한 주의 끝(4)
* * *
대부분의 사람은 잠을 자고 있을 심야시간.
나에게는 이제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이다.
퇴근 후 이제 다 씻고 나와서 속옷 차림으로 수건으로 젖은 머리의 물기를 닦고 있다.
생각보다 많이 기른 옆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짜는 느낌으로 주물러줄 때마다 머리를 자르고 싶은 욕구가 흘러 넘치지만, 지혜 씨가 옆머리에 눈길을 몇 번 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자르기가 조금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이대로 자고 싶지만 베개가 젖으니까 안 되겠지.’
이대로 자기에는 조금 그렇기에 적당히 물기를 닦아낸 다음에 머리를 말리려 하였지만, 드라이기는 뜨겁다 생각하기에, 선풍기를 켠채 침대 옆에 걸터앉아 멍하니 앉아 있다.
침대에 기대어 이번 주 있었던 일을 회상하여 보았다.
제일 중요한 일은, 능력 사용법을 알게 된 다음 사용을 해봤다…. 정도…?
꿈에도 그리던 능력 사용이지만, 막상 사용해 보니 허무하기도하고, 지금 가게를 운영하는데 쓸 곳이 있나 싶기도한, 복잡하고도 오묘한 느낌이다.
지혜 씨 말로는 쓸 일이 있을 것이라 했는데, 본인을 숨기는 용도 말고 쓸 곳이 있을까?
거기다 일상적인 가게라고 생각해왔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컨셉형 가게였다니…. 가끔 신기하게 가게 안에 들어오던 손님은 그런 의미였나….
멍하니 있으면서 머리를 말리고 있으니, 조금 목이 말라오기에, 샤워하기 전에 침대 옆에 둔 맥주 한 캔을 들었다.
맥주도 위스키와 같이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맥주라 한다면 부가물 라거라 불리는 미국식 맥주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드라이 맥주라는 청량감을 극대화시킨 맥주거나.
정말 향이 있는 술을 맛보고 싶다면 에일을 선택하겠지만, 라거는 알콜이 들어 있는 시원한 음료수라는 느낌으로 마시기에 제격이다.
그렇게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시기 시작하였다.
목 뒤로 넘어가는 맥주의 탄산의 느낌과 약하게 올라오는 홉과 보리향.
주재료의 향이 적어서 아쉽지만, 이 또한 라거 스타일이기에, 즐기는 편이 좋지 않을까?
괜히 퇴근 후에 마시게 되는 술이 아니다.
향 보다는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 마시는 탄산이 가득한 음료 한잔이라는 느낌이 강한 맥주다.
맥주의 탄산이 식도를 타격하는 느낌에 무언가 뻥 뚫린 기분이 된다.
한 번에 500ml 캔의 절반쯤 마셨을까?
“푸하ㅡ”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나니,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담배를 피우고 싶은 심정이 된다.
평소에는 정말 힘들 때만 피우고 그랬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
뭐어,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여러 가지…. 으음.
술을 마셔서 그런지 얼굴에 피가 다시한 번 더 몰리는 기분이다.
벌써 취기가 오르는 것일까 싶지만, 내일은 휴일이기에 조금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하면서 차가운 맥주 캔을 한 손에 든 채로 빈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였다.
지금 시간이면 문자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며…. 마셨던 칵테일의 도수를 생각하면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스 와인을 마신 이후에 급 어색해진 분위기를 못 이겨서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간 기분이 드는데….
솔직히, 소오올직히! 지혜 씨랑 사귀게 되었다는 게 실감되지 않는다.
무언가 훅 지나가듯이 고백하고, 승낙하고…사귀는 느낌인데….
‘이게 고백 없는 사귐 인 건가…?’
정식적으로 고백이 없어서 이런 생각하는 걸지도?
기회를 봐서 내가 고백한번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의 사회통념? 그런 게 뭐가 중요한 걸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면 그만인 것을.
이상하게도 맥주 한 캔 정도로도 취하는 느낌이 돌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으면 빨리 취하는 효과라도 있는 것일까?
다 마신 맥주 캔을 옆에 두면서 새 캔을 까기 시작하였다.
문자하자니 시간이 시간이고, 자고 있을 까 봐 미안해진다. 맥주만 마시기에는 심심해져서 대충 핸드폰을 만지면서 최근 뉴스 등을 보기 시작하였다.
ㅁㅁ뉴스
(속보) 이종족의 반란? 군당국, 반란 관련 살처분 지시…
(사회) 최근 약물 범죄의 급등, 전문가: 능력증폭 가능하지 않아…
(연예) 인기 아이돌의 행방불명! 그녀는 어디로!? 휴식기?...
(사건) 정부는 무엇을 하는가? 최근 골목길 치안상태 논평…
평소라면 제3자의 느낌으로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넘어갈 만한 뉴스들이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것일까?
이종족의 반란과 골목길 치안에 관한 뉴스에 눈길이 간다.
그렇게 눌러본 뉴스의 내용은 간단하였다.
어느 점령된 게이트에서 노동을 하던 이종족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들을 전원 살처분 및 다른 이종족으로 채웠다는 뉴스이다.
댓글에는 그 누구도 이종족을 옹호하지 않고 있다.
그저 관리를 못한 정부와 기업을 욕하는 내용들로 가득하였다.
이런 뉴스를 보니…. 이종족 권리 보호단체처럼,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구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지적 생명체를 노예 혹은 부품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조금 찜찜할 뿐이다.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한테 말한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상식이란 절대적이지 않고, 절대다수가 믿고 있는 문화, 지식이 상식이라서 내 생각을 이 세상 타인에게 말한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말 조심 해야겠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기에 말만 하지 않으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다음뉴스를 보았다.
다음 뉴스는 골목길 치안이 최근 악화되었다는 소식인데, 도심에서 강 건너편의 구역이야기이다.
어, 음.
여기는 내가 영업하면서 사는 구역인데….
지혜 씨 말 대로 능력을 자주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서 다른 뉴스를 보지만, 전부 흥미위주의 기사 제목들뿐이며, 대부분 패턴이 비슷하기에 예상되는 내용들이 많았다.
맥주 두 캔 째를 다 마실 때쯤, 한 뉴스가 눈에 띄였다.
(헌터) 천칭 이지혜 실력이 돌아왔는가? 저번 실수를 만회.
지혜 씨에 관련된 뉴스다.
이번에는 고민 없이 뉴스를 누르게 되었다.
연예계 뉴스나 헌터 뉴스가 다 그렇듯이 제목과 크게 다르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저번에 크게 실수하였을 때 주가가 조금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수확이 그럭저럭 있어서 오늘 장이 열릴 때 천칭의 주가 상승이 예상된다는 내용?
‘헤에…지혜 씨 생각보다 유명한 사람이었구나.’
그런 사람과 나는 사귀고 있고….
맥주도 알콜이 들어간 음료라 그런지 몸에서 열이 느껴진다.
막상, 이런 유명한 사람과 사귄다는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면서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소시민적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여러 생각…아니 망상을 하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성화시ㅣ씨ㅣㅣㅣ 저ㅓ 도착해써ㅕ.요!]
이번에는 데리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다 같이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간다고 하였는데, 이제 도착을 했나보다.
다행히 자고 있지 않아서 문자를 할 수 있나 보다.
평소라면 친구라는 명목으로 적당히…. 진짜 적당히, 간결하게 답장을 해주거나 말을 해 줬을 텐데, 어떻게 보낼지라는 생각에 손가락이 멈칫하였다.
5분은 고민했을까? 의도치 않게 밀당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정말 고민을 하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뭐라고 보낼지…. 고민하면서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남은 맥주를 다 마셔버렸다.
고민 결과, 간결한 문자를 보내었다.
[네 씻고 주무세요. :D]
아악! 저질러 버렸다!
나의 부족한 어휘력에 좌절감을 느낀다.
아니면 취해서 저렇게 보낸 걸지도 모르겠다…
‘응, 취해서 저렇게 보낸 거지,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니까.’
애초에 붙임성이 좋은 성격도 아니고, 이, 이 정도면 충분한 답장 아닐까?
머릿속에 찾아온 대혼란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하지만 여러 생각하면 할 수록 더 많은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 얄궂다.
그렇게 문자를 보낸 직후 바로 답장이 왔다.
[네! 자고 일어나서 봬요! 전화라도 하고 싶지만, 기숙사 방음이 좋지 않아서…. 떠드는 소리 심야에 들리면 좀 그렇잖아요!? 일어나시면 먼저 문자 해주세요! :p]
다행인 점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지혜 씨도 적당히 나에 대해서 적응해서 단답형 문자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눈치…?
‘괜찮겠지…?’
남자가 용기 없게 단답형이나 하고 있고…. 그런 생각도 들지만, 누군가 사귀게 되었다는 점을 의식하게 되어서 그런지, 답장으로 할 말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사귄다라….
실감이 오면서도 오지 않는 오묘한 기분의 연속이다.
머리카락도 적당히 말려진 기분인데 슬슬 잘 준비해야겠지?
빈 캔을 치우기 전에 지혜 씨에게 간결하게 답장을 하였다.
[그럼 자고 일어나서 문자 할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D]
답장을 보냈지만, 답변이 없다.
아마 이런 패턴이 익숙해져서 그런 거겠지.
‘자고 일어나서 먼저 문자나 보내줘야겠다.’
그렇게 빈 캔을 정리하고, 방안의 불을 끈 이후 침대에 누워 있으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아이스 와인도 마셨고 맥주도 마셔서 그런지 기분 좋게 취한 느낌이 들기 시작할 때쯤, 핸드폰을 들고 단어 몇 개를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였다.
[사…]
[사…]
[사ㄹ…]
음….
[좋아해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오늘은 정말 기분 좋게 잘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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