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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72화 (72/140)

〈 72화 〉 새로운 한 주의 시작(3)

* * *

내가 어떤 말을 들은 건지 순간 당황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으응? 뭔가 사귀자는 느낌의 말투인데?

나 정도면 나쁘지 않다…?

믿을 수 없는 말이 성화 씨 입바깥으로 나와서 그런 걸까? 나는 다시 한번 반문하게 되었다.

“네? 성화 씨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하여 성화 씨에게 질문을 하자. 성화 씨의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마냥 붉어지면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이미 깨끗한 유리컵을 다시 한번 닦고 있다.

그리고 말이 잘 안 나오는지 살짝 더듬으면서 대답해주었다.

“지, 지혜 씨랑 사, 사, 사귀는 거, 것!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을 하지만 성화 씨의 행동은 어색함이 가득하였다.

이거 허락한거로 생각해도 되는 거지?! 그린라이트!?

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사장님을 안을 수는 없으니, 옆에서 멍하니 있던 나리에게 안겼다.

“예…? 정말로요!? 꺄아아! 정말로요!? 나리야 어떻게 해!!”

평소에는 징그럽다 생각되는 동성간 껴안기가 오늘따라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성화 씨 가 본다면 방정맞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이러고 싶을 뿐이었다.

뭔가, 능력제어에 관해 제대로 설명 못한 점을 사과하러 왔지만, 성화 씨와 사귀게 된다는 점이 너무나도 기뻤다.

고백을 해 오던 남성은 많았지만, 성화 씨는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으며 내가 어떻게 해야 고백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그런 말이라니.

믿지 못할 현실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게 되었다.

“성화 씨 저희 사귀는 건가요?!”

“어…. 나쁘지 않겠네요라 한 것 같은데요?”

하하. 우물쭈물 하면서 말하는 모습이…. 성화 씨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나 또한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장난을 쳐보고 싶었다.

평소에 혼내면 기죽은 척을 하던 현준이 느낌을 내면서 축쳐진 느낌으로 있으니 성화 씨는 더욱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나리나 현준이의 반응 또한 절묘했다.

분위기가 오묘해지자 성화 씨는 유리잔을 내리고는 양팔을 흔들면서 크게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아, 아니, 자, 장난이었어요!”

부끄러움을 얼버무리기 위한 장난이겠지만, 나로서는 장난을 쳐볼 껀수를 얻은 것과 같다.

“네 이번도 장난이었겠죠. 사귀자는 것도 장난이겠네요.”

“아악! 아니에요! 그런 거! “

성화 씨가 장난친 만큼 되갚아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현재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다.

내 연기가 너무 좋았는지 성화 씨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이래서 성화 씨도 장난을 즐기는 것일까?

일단 장난이라는 것을 말 해 둬야겠지.

“저도 장난이었어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성화 씨도 나를 보고 웃어 주더니 가게 안의 분위기는 조용해졌다.

으음, 이것 참 할 말이 없고, 평소에 연애를 안 해 봐서 이럴 때 어떤 말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와중에 성화 씨는 술을 한잔하자고 하였다.

아, 저번에 내가 사 온 아이스 와인!

아직 마신 건가 싶지만, 단둘이서 마시고 싶었다.

으음, 그래도 내가 데려온 녀석들이니까 다음번에는 더 좋은 술을 한번 가져와서 같이 마셔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비싼 술이면 칵테일 맛도 좋아지려나?

와인을 차갑게 할 겸 또다시 잡담시간이 시작되었지만, 자기 능력이 실사용에 쓸 만한지 고민하는 모습이 귀엽기만하다.

아마 이런 곳에서 남자 혼자 가게를 운영한다면….

뒷골목을 범죄조직을 떠나서 쓸 일이 엄청 많을 것이다.

그보다 능력을 어떻게 써 본 건지 물어 봤지만, 성화 씨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요약하면 조금 전에 사용한 능력은 최대한도 아니고 약하게 움직여 본 게 전부였다고 하였다.

와…정말 그렇다면 진짜 헌터 재능이 넘칠텐데…

아, 아니다. 오히려 능력을 단련시켜서 다른 암여우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어야지….

이 정도 욕심은 괜찮지 않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옆에서 현준이가 나리를 껴안고 작업을 걸고 있는데, 현준이가 나리를 노린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다.

나도 하는 연애를 나리도 한번은 해 봐야지. 암 그럼.

흠…

사실 취해서 그런 건지, 연애를 몰라서 그런 건지.

실감이 오지 않는다.

성화 씨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으음, 사귀는 중인 걸까요?”

그러게.

정말로 사귀는 중인 것일까? 실감이 오지 않는다. 뭔가…

아니다. 그냥 다음번에 멀쩡한 상태에서 고백을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최대한 성대하게? 아니면 잔잔하게?

그렇게 고백을 하고 나면, 그다음은 프러포즈까지…?

생각이 너무 나간 것 같은 상황에서 성화 씨가 와인 잔을 내밀어 주었다.

칵테일 잔과 다르게 매우 얇았다.

약간의 힘이라도 주면 깨질 듯한 두께, 성화 씨만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겠다.

이번에는 건배사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칵테일은 약간 복잡한 맛이었지만, 아이스 와인은 달달하면서도 꽃내음이 한가득하였다.

기분이 좋으니 평소에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던 꽃 향기까지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나쁘지 않은 하루였나?

아니면 새로운 하루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스 와인을 한 잔씩 마신 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갔다.

이번에도 계산을 안 하려던 모습이 얼마나 사… 아니 귀엽던지.

이거. 성화 씨 두고 어떻게 기숙사를 가지?

****

기숙사에 돌아갈 때는 자정이 지난 새벽시간이라 택시를 탔다.

취해서 버스안에서 제 몸을 가누지 못할 바에야 택시를 타는 편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택시 안에서도 현준이의 입은 계속 조잘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팀장님, 데이트는 언제 한번 해 보실 건가요!?”

“아, 아니 뭘 벌써 거기까지 생각해?”

“어허…. 팀장님 뭘 모르… 아 첫 ‘연애’시구나?”

“야! 현준이 너!?”

택시의 앞좌석에 앉아서 그런지, 나리에게 기대고 있는 현준이를 한 대 쥐어박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나리 또한 연애에 관해 이야기해오기 시작하였는데, 연애’이론킹’ 아니랄까 봐, 말이 청산유수다.

“팀장님 역시 처음은 소소하게 공원이나 이런 곳 어떠세요? 가게 분위기를 보니까 꽃을 좋아하실 것 같았는데, 최근에 정원으로 만든 게이트 있으니까 그곳에서 데이트를 하는 편이 좋겠는데요?!”

“오, 그거 좋…. 아니다. 그거 말고 교외 주변에 좋은 곳 없어? 도심에서 데이트는 뭔가 분위기 없잖아?”

정원으로 개조한 게이트라면 최근 뉴스에서 본 느낌이 든다. 아마 사람이 갈 수 있는 곳 전체를 꽃밭으로 조성했다는 곳인데, 데이트 장소로는 최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성화 씨의 과거를 생각하면 게이트 안은 조금 그럴지도 모르겠고… 직접 알리기는 조금 그런…개인정보라서 그냥 평범하게 교외 근처의 장소를 물어보았다.

“으음, 그렇다면 평범하게 강변공원 데이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 그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성화 씨 성격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평범하면서도 소소한 느낌으로 데이트 신청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아…니들이 보기에는 정말 사귀는 것 같냐?”

“으음, 그러게요. 뭔가 훅 지나간 기분인데….”

사귄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나와 나리를 보던 현준이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을 하였다.

“사장님이 큰맘 먹고 사귀자고 말한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 아니 좀 분위기를 탄 것 같잖아?”

“에이, 그렇다면 팀장님이 고백 한 번 더…아니 첫 고백 한번 해 보는 거죠.”

“여, 역시 고백이 없어서 이런 느낌인 걸까?”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꼭 고백이 있어야 사귀는 걸까요? 지금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가끔 예리한 말을 하는 게 역시 나리 다음 작전담당은 현준이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라…

이러한 고민하고 있던 도중 현준이의 말이 이어졌다.

“너무 고백에 집착하시는 느낌이신 데, 이런 방식도 있다 하고 그냥 순응하시죠! 그러다가 살림도 차리고 애도 낳고 하는 거죠!”

“어…음 고맙다…?”

“그보다 팀장님! 우리끼리라도 기숙사 들어가서 축하 파티라도 열까요?!”

“내일 출근은 생각 안 하냐?”

“에이, 훈련은 이틀 뒤잖아요. 내일은 재미없는 서류만 오후에 대충 처리하면 될 텐데.”

“안 돼. 그냥 자”

“푸, 남성에게만 스윗한 팀장님 반대!”

나리녀석 약간 취했는지 헛소리를 시작했다.

이제 슬슬 기숙사에 도착하기 전이지만, 현준이가 이상한 말을 하였다.

“아마, 사장님이 리드할지도 몰라요~?”

“뭘?”

“그러게요. 뭘까요~? 저도 취했나 봐요”

씨익 웃으면서 이해하지 못 할 말을 하였다.

현준이 녀석, 취했나보다.

이제 기숙사에 도착하였기에 빨리 방에 들어가서 자고 싶었다.

아, 문자!

[성화시ㅣ씨ㅣㅣㅣ 저ㅓ 도착해써ㅕ.요!]

악! 너무 급하게 보내서 그런지 완전 오타투성이었다.

일단 보냈으니 택시 요금을 계산하고 내리는데 답장이 왔다.

다행히 자고 있지는 않았나 보다.

[네 씻고 주무세요. :D]

누가 본다면 관심 없는 상대에게 답장을 준 듯한 느낌을 주는 메시지지만, 며칠간 문자를 주고받은 결과 성화 씨는 저렇게 보내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문자를 주고받을 때마다, 너무 간결해서 나에게 관심이 없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 익숙해져야 하는 문제다.

문자는 문자다…. 너무 기죽지 말자.

일단 답장을 보내야겠지.

[네! 자고 일어나서 봬요! 전화라도 하고 싶지만, 기숙사 방음이 좋지 않아서…. 떠드는 소리 심야에 들리면 좀 그렇잖아요!? 일어나시면 먼저 문자 해주세요! :p]

[그럼 자고 일어나서 문자 할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D]

이제 기숙사 로비입구이며, 성화 씨도 피곤할 것이 분명하기에 전화없이, 자고 일어나면 문자를 달라 하였다.

뭐, 전화는 해 본적이 없지만, 아직은…. 뭔가 부끄러울 뿐이다.

아마, 성화 씨 스타일상 이 이상의 답장은 없을 것이다.

“팀장님 문자 끝내셨나요!?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신경 꺼 임마. 너도 슬슬 남자 사귀어 봐야지?”

“어허…팀장님 사귀신지 몇 시간 지나셨다고 이러시깁니까!?”

“억울하면 너도 사귀라니까?”

나리랑 농담이나 따먹으면서 기숙사안에 들어가지만, 그때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어라? 성화 씨가 답장을 보낸 것일까?

나는 핸드폰을 들고 문자 내용을 보았다.

[좋아해요]

….?

어….

내가 핸드폰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나리와 현준이가 궁금해서 슬쩍 핸드폰을 보았다.

“오… 팀장님 축하해요?”

“거 봐요 제가 말했죠? 거기 사장님 의외로 한 성격 할지도 몰라요~?”

두녀석이 말은 하는 것 같지만, 내 귀에는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성화 씨가 보낸 문자의 글만이 가득했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술이 확 깨는 단어였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반응을 했는지, 기숙사 로비라는 것을 생각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야!! 2차도 내가 쏜다!!!!!!”

“”예~이!””

호응해주는 두녀석의 반응 또한 나쁘지 않았다.

뭐, 기숙사에서 소리친 게 문제라도 될 것이 있을까?

지나 언니도 없고 어차피 기숙사 짬킹은 나다! 까짓 것 마시고 싶은 녀석이 있다면 얼마든지 마셔도 좋다!

기숙사 로비에서 아직 마시고 있던 몇몇 녀석들은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른 나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내가 말하기 전에 나리와 현준이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했으며, 나는 은근슬쩍 어깨와 입가가 올라가는 것을 멈추지 못하였다.

그렇게 로비에서 술판을 열기 시작하였다.

아, 오늘은 정말 기분 좋게 마시고 잘수 있을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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