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흑백의 조합(1)
* * *
오늘따라 유난히 날씨가 좋은 것 같다.
출근할 때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던 오후의 햇살.
아~.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을 느긋하게 즐겨 볼까 싶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없이 출근을 해야 했다.
이틀 전부터 지혜 씨랑 사귀고 있지만, 아직도 크게 실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소소하게 변한 느낌은 들었다.
어제는 가게가 쉬는 날이라 그런지 온종일 문자하게되었다.
지혜 씨도 서류작업 귀찮다는 문자가 주를 이루었다.
헌터일은 몸만 움직이는 일이 주된 일 인 줄 알았는데, 서류작업이라….
서류작업보단 현장을 좋아할 듯한 지혜 씨 성격을 생각하면, 서류작업은 질색할 만한 단어이긴 했다.
그리고 오늘의 지혜 씨 일정상 조금 바쁠지도 몰라서, 문자를 자주 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였다.
아마 내일부터 훈련 준비한다고 조금 바쁘다 하였던가?
출근 직후 가게 안을 청소한 뒤 카운터에 앉아 있지만, 조금 전까지 하고 있었던 문자를 생각하면서 히죽이고 있었다.
표정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상태라 생각하지만 표정 관리는 손님이 온 뒤에 하여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 아침부터 온 문자는 별것 없었다.
[성화 씨! 아침이에요!]
[네! 아침입니다! :D]
[아침 뭐 드셨어요!? 또 인스턴트 이런 거 아니겠죠?]
[잘 구운베이컨에 계란프라이 빵 몇조각정도요!]
[와 잘하셨어요!!]
이런 느낌의 문자만 주고받아도 즐거웠다.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 보니 수아로부터 문자가 왔다.
[오빠. 요즘 뭐 해?]
평소라면 가게로 들렸을 텐데 문자라니, 수아답지 않다는 기분이 들면서 답장을 해 줬다.
[뭘 하긴 일하지. 며칠간 못본 거 같은데 바쁘니?]
[에이, 조금 바쁠 뿐이야. 그보다 오빠가 먼저 그런 말을 하는 게 신기한데?]
[:S 평소대론데… 아니 최근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궁금한데 어떤일일까아?]
나는 입가를 씰룩이면서 며칠 전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부끄럽고…지혜 씨가 사귄다는 정보가 아닌 능력에 관하여 문자를 보냈다.
[나 이제 능력생겼따!]
이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오타까지 보내버렸다.
능력이 생긴 게 아니라 제어한 거지만, 수아한테는 이렇게 보내는 편이 좋지 않을까?
보내고 난 뒤 생각해보니 수아는 감지 능력이었나…?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어를 할 수 있으면 이제 능력이 생겼다고 자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와 축하해]
으음, 오늘따라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 수아답지 않게 짧은 느낌인데.
지혜 씨랑 문자를 자주 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문자를 계속 이어 나갔다.
[대단하지! 잘했지!]
[와~ 잘했어 잘했어. 아, 조만간 놀러 갈게 지금 조금 바쁘거든?! :S ]
[응~ 천천히와!]
수아는 최근에 바쁜 건지,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도 문자를 해 뒀으니 괜찮겠지?
딸랑~
이런 손님이 왔다.
오늘따라 유독 손님이 늦게 방문하였다.
무슨 날인가 싶지만, 일단 방문한 손님부터 받아야 하겠지.
핸드폰이 보이지 않게 카운터아래에 둔 뒤에, 들어온 사람을 바라봤지만, 생각보다 많은…? 손님이 들어왔다…?
손님들은 전부다 옷을 맞춰서 입은 것일까?
검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를 입은 여성들이 가게 앞 테이블에 서서 일렬로 섰다.
으응? 범죄 조직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벌써 만나게 되는 것일까?
내가 뭔가 그들의 신경을 건들 만한 짓을 했는지 고민과 긴장하면서 카운터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지혜 씨한테 연락이라도 보내야 하나 싶은 그때.
가게 입구에 서 있던 여성이 나를 바라보면서 옆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열린 입구 사이로 들어오는 한 손님은 여성 손님이었다.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 웨이브 진 롱헤어에, 약간의 화장을 했는지 얼굴 전체가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복장은 코르셋 느낌을 주면서 하복부까지 전부 덮어 버리는 검은색 하이웨스트 치마를 입었으며, 흰 브라우스에 넥타이 대신 검은색 리본 장식을 한 여성이었다.
뭔가 있는 집안 아가씨 같은 느낌이 확 몰려온다.
아가씨 이전에 이런 가게에 올 만한 손님이 아닐 텐데…?
어느 호텔 바와 착각한 것일지도… 어떻게 설명하지?
아니 생각해 보니 아직은 해가 떠 있는 오후 시간대인데…? 수, 술 안 파는데!?
내가 너무 당황하고 있었던 걸까? 그녀는 어느새 바 앞까지 와서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와아 반가워요. 여기가 음료가게 겸 바라 불리는 곳이죠?”
“네, 넷!”
뭔가 이런 가게에 어울리지 않을 분위기의 손님이셨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계층의 차이.
계급이란 무엇일까?
현시대에는 계급이 없다고는 하지만 재력적으로 능력적으로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급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바로 지금이 그 급의 차이를 느끼는 중이다.
지혜 씨의 경우에는 급 차이 보다는 첫 만남부터 파격적이라 그런지 이리저리 넘어간 분위기라면, 지금 현재는 너무 높이 있는, 절벽위의 꽃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뒤에 있는 검은색 정장부대. 아마도 보디가드로 추정되는 그녀들은, 내가 말 한번 잘못하면 목이라도 ‘뎅강’ 하고 날아갈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녀들이 직접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었지만,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여성의 말이 먼저 이어졌다.
“이런 가게는 처음인데, 어디에 앉으면 되는 건가요?”
고급 음식점이나 바의 경우 지정석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나 같은 소시민이 운영하는 가게라면, 어디에 앉아도 문제없다.
딱히 지정석이 없기에 편하게 앉을 것을 권하였다.
“펴, 편하실대로 앉으세요.”
“그럼 실례할게요.”
나의 말에 그녀는 생긋 웃어 주더니 나의 바로 앞에 앉았다.
아마 어디든 편하게 앉아도 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예의상 물어본 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테이블에 앉는다면 바위에 팔꿈치를 올려서 편안한 자세로 있겠지만,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체로 양손을 무릎위에 다소곳이 올려 두었다.
전체적으로 가느다란 느낌을 주는 인상 때문인지, 예쁘게 장식된 한 송이의 꽃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정말 예절이 몸에 밴 행동이…. 부잣집 아가씨로 추정되는데 이런 가게에는 왜…?
그렇게 앉은 그녀는 이번에는 가게 안을 살짝 둘러본 뒤, 나를 바라보며 웃어 주더니 자기 용건을 말하였다.
“아는 동생이 이곳에 왔다 갔다는 ‘소식’을 들어서요. 생각 이상으로 잔잔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데요?”
“아. 네. 그, 그렇죠 하하…”
청초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아가씨계열의 손님이지만, 뒤에 서 있는 보디가드의 위압감으로 인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 아는 동생이라…. 아, 아마! 아는 동생이 이 가게를 ‘알려 준’ 것일까?
그럴 만한 손님은 없었지 않았나?
말도 말이지만, 생각 또한 잘 굴러가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딱딱해서 그런지 그녀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가, 보디가드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고개만 살짝 돌려 명령을 내렸다.
“나가 있어 주실래요?”
“저, 아가씨. 사모님의 지시가….”
“하아… 언제까지 감싸고 돌건지…. 손님도 없는 가게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요? 그러니까 나가 계세요.”
“그, 그래도 아가씨의 안전을 위해서….”
보디가드 들은 그녀의 지시에 반박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하지만 그녀는 계속 고개를 살짝 돌린 채로 웃는 표정에서 약간 무표정에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옆 얼굴을 보고 있어서 다행이다. 정면에서 봤다면 정말 무서웠을 표정이다.
이전까지는 화사한 음성이었다면, 이번에는 차디찬 북극의 바람처럼 느껴지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아주 짧은 한마디였다.
“나가.”
“예, 옙!”
간단 명료한 명령.
그 말을 들은 보디가드들 또한 긴장을 했는지 하나둘 나가서 가게 창 바깥 너머에서 일렬로 서 있었다.
바깥에 대기한 차량도 서너 대 정도 있는 것을 보면, 이 아가씨가 오기 전부터 있던 차량 같았다.
아, 그래서 손님이 안 들어왔던 걸까?
이런 상황에서 긴장이 안 되면 거짓말이다.
정말로 높은 집안의 아가씨라면 타입이시면, 마, 만족 시, 시, 시킬 만한 음료가 이…있나?
대부분적당한 가격의 커피콩이나 시럽, 숙성 년도가 낮은 술 등등, 그녀의 처지에서 본다면 서민적인 느낌의 맛일 텐데….
주문을 받지는 않았지만 벌써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디가드를 내 보낸 이후 다시 한번 나를 마주 보면서 생긋 웃어 준다.
‘
조금 전 무서운 표정을 보지 못했다면, 그저 밝게 웃기만 하는 아가씨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분위기가 금방금방 바뀌는 것이 조금 적응이 안 된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네요, 죄송해요.”
“아, 아뇨. 괘, 괜찮습니 다, 닷.”
긴장을 했는지 혀와 입술이 굳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터져 나온 말실수.
이런 모습을 보고는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말을 편하게 할 것을 부탁하였다.
“정말 귀여운 사장 님이네요. 정말이지, 이럴 때는 사촌 동생이 부러워요. 아, 이게 아니지 편하게 말해주실래요?”
“소, 손님에게 편하게 말하는 건 조금….”
“흐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지금은 술은 안 되죠?”
“가게 영업시간상 그러네요…? 아니 그냥 드릴까요?”
취객과 커피를 마시는 손님이 섞이지 말라고 적당히 정해 놓은 시간대이기에, 지금 시간에 술을 팔면 안 된다는 명확한 구분은 없지만, 그녀는 눈을 살짝 감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을 하였다.
고개를 젓는 모습 마저도 기품이 있다 느껴진다.
“이런, 규칙은 지켜라고 있는 거죠. 으음, 그럼 커피로 괜찮을까요?”
“어떤 커피로 드, 드릴까요오…?”
“잠시만요. 생각 좀 하고요.”
그녀는 메뉴를 보지도 않고 어떤 커피를 마실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서민적인 곳에 왔다는 자각은 있지만, 이런 곳에서 그녀의 습관이 보인다.
아마 비싼 가게에서는 메뉴판을 안 보더라도, 원하는 음료를 말하면 바로바로 내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고급스러운 음료를 시킬지 긴장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보다….
도대체 어떤 동생에게 이런 작은 가게를 추천받은 걸까?
아니, 추천이 아니라 들었다고 했는데….
그냥 누군가로부터 들었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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