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흑백의 조합(5)
* * *
하하하…. 가게 바깥의 인파? 그런 거 모른다….
바깥일은 나중의 일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슬슬 저녁이 되기 전이라 그런지 노을 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가게안에서 그녀, 아니 미나 씨가 혼자 앉아있는 모습은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아 보인다.
피부와 머릿결의 윤기가 반짝이는 게 진한 위스키의 색의 노을 빛을 받아서 그런지 호박(??)을 갈아서 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와…확실히 아름답네….
권력을 휘두르니, 귀찮은 사람은 적당히 쳐내겠다 느니 말을 하였어도 몸에 베인 기품은 어디가지 않는다.
예술품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정말이지 지혜 씨와는 다르게 은은하게 웃어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어울린다.
미나 씨도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에 심심하였는지 아인슈패너를 반쯤 마시고는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장님 혹시 취미가 무엇 이신가요?”
“어… 술 모으기요? 특히 사각형 병으로 모으는 걸 좋아한답니다.”
“와~ 의외의 취미네요. 귀여운 것을 모으실줄 알았는데…어떤 술인지 궁금해요!”
“그, 싸구려 술들이라 그렇게까지 자랑할 만한 물건은 아니고요….”
집에 있는 술을 생각해보면, 일반인 기준으로 비싸다면 비싼 술이 있기는 하지만, 미나 씨에게 어울릴 만한 술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기죽은 모습을 봐서 그런지 미나씨는 아인슈패너잔을 양손으로 잡고 정면으로 나를 보면서 포근한 미소를 지어주면서 내가 걱정하는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글쎄요. 물건의 값이란 상대적이잖아요? 그렇게 기죽을 필요는 없으신데…. 저도 싼 술 좋아해요! 그러니까 언젠가 한번은 보고싶네요.”
“아하하. 그렇죠, 가치는 절대적이지는 않죠, 기회가 된다면 보여 드릴 게요.”
“오, 보여주신다고 말씀을 하신거죠? 기회가 되면이라고?”
“어, 어라…? 비…ㄴ.”
“빈말이라 하시는 건 아니겠죠?”
호랑이 앞의 토끼가 된 기분이 바로 지금일까?
미나 씨는 얼굴을 굳히고는 약간 싸늘한 표정을 짓는 느낌을 주면서 나의 말을 끊어왔다.
겉치레 같은 말로 어물쩍 넘어가려 했는데…. 아무리 겉치레라 하여도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겉치레로 넘어 갈 수도 없다. 내 발등에 내가 찍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나의 집은 미나 씨의 눈에 차지도 않을 작은 규모일 것이 분명하다. 방안도 혼자 살기에 적당한 크기지, 누군가 들어온다면 두명부터는 좁다고 느껴질 만한 크기일 게 분명한데….
이런 저런 걱정을 잠시 해봤지만, 평소에 사람을 자주 관찰해오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할 미묘한 웃음기를 보고 나니 장난이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평소에 이렇게 부하직원을 다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는 것이 표정만 바뀌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미나 씨의 부하 직원이 아니기도 하고, 장난을 친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양손을 하늘 높이 들고는 항복 선언을 하였다.
“살려만 주세요.”
“에이 정말로 갈까봐요.
다행히도 정답이었나 보다.
그래도 눈이 웃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면, 진심으로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장난스러운 이야기가 끝나자 서로 가볍게 웃었다.
이틀 전 지혜씨와 마실 때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이런 잔잔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생각 하던 도중 미나씨는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더니 이제 슬슬 갈 시간이 되었는지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자, 그보다 슬슬 돌아갈 시간인 것 같네요. 아마 오늘 마지막 결제 서류가 책상위에 올려져 있을 것 같은데, 제가 결제를 안하면 진행이 안되니까 가볼게요.”
“네에. 안녕히가세요.”
“다음에는 바 영업시간에 올 게요. 그때는 동생도 데리고요.”
“언제든지 오세요! 연락 해주시면 더좋아요.”
미나씨가 문에 다가서자 바깥에서 대기하던 경호원이 문을 열어줬다. 경호원이 있는 것을 몰랐다면 언제부터 가게문이 자동문이 되었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문 움직임이었다.
가게 바깥으로 나서려던 그때. 무언가 생각이 난 건지 고개만 옆으로 돌리며 나에게 한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이런. 여기에 온 용건을 잊어버릴뻔 했네요. 오늘이나 내일 오후에 기자 한 명이 올지도 몰라요.”
“네?
“음, 제가 보낸 건 아니니까 오해는 말아 주세요.”
“어떤 의미가 있…”
“조심하세요. 화는 입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미나씨는 본인 할 말만 하고는 가게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은근 마이 페이스인 아가씨다.
방금 전에 언론 청탁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역시 언론과 연관된 사람인 건가?
갑작스레 문제 하나를 주고 간 상황이라 그런지 어안이벙벙할 뿐이다.
기자라…. 올 만한 이유는 지혜씨 혹은 미나씨 말고는 드는 생각이 전혀 없는데….
으음, 오히려 지혜씨나 미나씨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기자일지도?
…?
아! 커피값!!!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가서 계산을 깜빡 하였다.
미나씨는 창 바깥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손을 살짝 흔들고 있다.
이제 차에 타려는 것이겠지.
하아… 말할 타이밍도 놓쳤고, 아인슈패너 2잔 값이면 뭐…. 공짜로 드렸다 생각하면 되겠다.
지혜씨와는 다른 느낌의 미녀와 대화한 것으로 만족을 해야 겠다.
대화만 한 거니까 바람은 아니겠지?
***
때마침 바 시간으로 바뀌는 시간 전이라서 1~2시간 정도 휴점을 선언하였다.
미나 씨가 나간 뒤로 손님이 갑작스레 들어오려던 것을 경호원들이 막아주었다.
그보다 다행인지 황당하다고 해야 할지… 미나씨가 마신 커피값은 경호원이 계산을 하고 갔다. 커피값에 혼자 가게를 빌린 가격까지 쳐서 돈을 받아버렸다.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었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던 게, 경호원의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실내라도 절대 벗지 않는 선글라스가 가장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얼굴은 나를 향해 있지, 눈은 보이지 않기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재미있었던 점은, 미나씨가 움직인다고 해서 모든 경호원들이 동시에 움직이지는 않았다. 남은 경호원들은 가게 입구를 막아주는 겸,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각자 한잔씩 챙겨서 갔다는 점이 경호원 모습과 매칭이 되지 않기에 실소를 흘려버렸다.
그래 경호원도 사람이지.
지금 현재, 가게의 손님용 소파에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디까지나 손님의 입장으로서 앉… 아니, 아니. 누워있는 것뿐이다.
소파의 푹신함은 나쁘지 않고, 소파에서 보이는 가게 실내 장식 또한 나쁘지 않다.
가게에서 손님의 시선에서 의외로 잘 보이는 것이 먼지다.
먼지가 엄청 쌓여있다면,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광택이 있는 표면 혹은 검은색의 물체위에 먼지 한톨이라도 올라가 있다면, 엄청나게 신경이 쓰이게 된다. 그렇기에 매일 영업시작전에 먼지떨이로 털어주는 작업을 해왔다.
장식용 관엽수의 경우에는 먼지떨이로 강하게 털 수 없기에 행주로 닦아주는 느낌으로 살살 문질러 준 뒤 광택제를 살짝 발라주는 편이 보기에는 좋다.
그렇게 소파에 누워서 가게안을 둘러보니, 실내를 약간 어둡게 조명을 조절해 둬서 그런지 은은한 분위기가 풍겨온다.
여기에 발광 꽃만 있다면 완벽 할 텐데…. 묘종의 가격이 비싸서 구매를 못해 봤는데…. 지혜 씨한테 한번 부탁을 해봐? 가격은, 내가 하기에도 손발이 오그라들며 해본적도 없지만, 가끔 인터넷에서 보는 애인의 애교로…?
하하….
하하하….
하아….
그래 현실 도피는 그만두자.
가게 바깥이 보이지 않게, 바깥에서도 안을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를 쳐 두었다.
경호원들이 입구를 막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을 때, 나는 음료를 만들어야 하기에 블라인드를 내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간단한 부탁이라 그런지 다들 빠르게 블라인드를 내려줘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 혼자 블라인드를 내리면서 바깥에서 웅성거리던 손님들의 시선을 버텨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라?
하아…멍청이…. 지금 와서 생각이 났지만, 팔찌를 빼거나 한번 능력을 조절해보면 해결될 것이 아니었을까?
방금 전에는 당황을 해서 그런지 생각이 전혀 들지가 않았다.
끄응, 관심이란 게 정말이지 오묘하다면 오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몇 주 전만 하더라도 관심을 받기 위해서 지혜 씨에게 그 난리를 쳤는데, 이제 와서 관심을 받기 시작하니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란….
막상 주목을 받으니 얼굴에 피가 쏠리기 시작하여서 당황을 해버린다.
그렇게 당황을 하면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고…. 여러가지 사고를 몇 번 쳐오긴 했네….
내가 흑역사 제조기도 아니고 왜 이런 일이 자주 터지는 것일까?
고민을 해봐야 답도 없기도 하고, 소파의 푹신한 감촉을 즐기면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데.
SNS에 익숙한 장소의 사진과, 미나씨의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와! 미친, 광휘의 귀공녀가 이런 곳에도 손님으로 방문하네?]
사진을 자세히 보니. 작은 간판이 보인다.
무언가 익숙한 느낌의 풍경이라서 그런 건지, 사진을 확대해보니… 내 가게였다.
어라… 내 가게인데?
이번에는 내가 사고를 친 것은 아니지만, SNS에서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어딘가의 아가씨라 생각은 했…했지만! 과…. 광휘 소속이였어!?
미나 씨는 상상 이상으로 높은 위치의 아가씨 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궁금하기도 해서, 계속 SNS 내용을 읽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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