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단순함의 한잔(2)
* * *
바 영업을 위해서 창문의 블라인드를 하나하나 열 때마다 바깥에서 대기중이던 인파가 나를 주목하는 기분이 든다.
남녀 구분 없이 다들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데, 예상외로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가게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나는 어떤 생각으로 영업을 시작했던 것일까?
차라리 바영업시간에 휴업 선언하고 쭉 쉬어 버릴 걸…
지금 현재 가게의 상황은 정말로 혼자서 영업하기 바쁜 상황이 되었다.
“여기 위스키 언더록으로 한잔요.”
“네 어떤 위스키로 드릴까요!”
“제일 싼 거로요!”
“쏘맥 주세요.”
“쏘맥의 소주는 여기서 취급 안해요!”
“안주는 뭐가 좋나요?”
“어, 치즈나 육포…?”
“케이크는 없나요?”
“오, 여기가 귀공녀가 왔다간 그 가게인가요?!”
“으, 네…”
“사장님 귀여워요!”
“멋지다고 해주세요!”
“사진 같이 찍어요!”
“죄송합니다!”
끝없는 질문과 주문이 몰려오고 있다.
개 중에는 핸드폰을 들고 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기 촬영하지 말고 주문부터 해주세요!”
“에이 가게 리뷰 해드리는 거예요 ‘리뷰’.”
리뷰고 나발이고 그냥 주문부터 해줬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팔찌를 하기 전후의 영업 난이도가 너무나도 틀리다.
주문만 해주던 손님과 주문하지 않고 말을 걸려는 손님들….
팔찌를 낀 이후에 블로그 리뷰로 인해서 안 그래도 흥미 위주로 오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젠 유명인이 방문했다는 이유로 손님이 몰리기 시작한다.
하아… 이때까지 나 혼자 운영하여도 문제가 없었기에 그냥 영업을 해왔지만, 이제는 진짜 알바를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전에 지금의 난장판 같은 상황부터 정리해야 겠다.
나에게 치근 덕 대는 손님이 있기는 하지만 몇 주 전의 나였다면 바라던 상황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사귄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임자 있는 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이제, 주문 이외에 손님을 가려 받기 위해서 능력을 살짝 발동해 두었다.
그러니 다들 자신이 가게에 온 이유는 단순히 마시러 왔다고 생각 하고는 음료 주문만 하기 시작하였다.
어라…? 이거 생각보다 편한데?
이전보다 한결 수월해진 상태로 주문만 처리하니 나름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몇몇 손님들은 자신의 SNS에 글을 쓰면서도 왜 쓰는지를 모르던 모습이 좀…많이 웃겼다.
****
이번에 몰린 손님들도 오후 10시쯤이 되어가니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은퇴 직전의 두 여성 헌터, 저번에 마신 팔봉 위스키가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로 월차를 내서 관광을 갔다 왔다며 나에게 맥주 캔 박스를 선물로 주었다.
거절하려 했지만, 아들 같아서 마음에 들어서 주는 선물이라 하여서 거절도 못하였다.
이번에는 술보다는 정말로 나에게 맥주를 선물로 주기 위해서 였는지, 조금만 마시고 가게를 나갔다.
위스키 한 병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저분 들에게는 정말 적은 양이었다.
주량이란 상대적인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자주 오던 손님이 오시면 능력을 풀고, 아니면 능력을 조금씩 사용하는 정도로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이제 마감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적당히 손님도 없고 슬슬 청소라도 할까 생각을 했지만, 때마침 들어오는 손님 때문에 그러지 못하였다.
딸랑
가게의 문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순간 당황하였다.
“앗….”
“어라? 마감시간 인가요? 최근 유행하는바라고 해서 방문을 해봤는데.”
“아, 아뇨! 그냥 한산해서 청소라도 해볼까 싶어서 빗자루를 든 거뿐이에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요!”
내가 인사를 하지 않고 빗자루를 든 채로 당황해서 그런지 마감시간 인 줄 알았나 보다.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데…. 누구지?
어디서 본기억이 있는 여성이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머리를 대충 묶은 모습에, 줄무늬 셔츠를 걸쳐 입었으며 그 안에는 회색의 단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늘 온 미나 씨와 대비되는 후줄근한 느낌?
어디서 봤더라…?
그보다 손님을 세워 둘 수 없기에 앉을 것을 권유하였다.
“일단 앉으세요.”
“네에. 그보다 작업 멘트는 아닌데…. 저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상대도 나와 안면이 있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으음, 정말로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 하면서 답을 해주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흐으음, 정말 낯이 익은데 말이죠.”
그러게나 말이다.
나 또한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그녀의 윗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은 사원 카드의 윗부분이 보였다.
[HC신문 취재팀]
아!!!!
지혜 씨와 두 번째 만남을 가진 날, 가게 문 앞에서 만난 기자다.
이름이…저, 저… 정나연? 이었나? 정아연 이었나…?
몇 주전 일이라 그런지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는 상황이 혼란스러워서 대충 넘어갔는데, 왜 또 가게에 온 것이지?
이번에는 지혜 씨가 없는 상황인데, 도대체 왜?
지혜 씨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방문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에, 오전에 있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조심하세요 화는 입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갑작스레 생각난 미나 씨의 말.
아마 기자 한 명이 방문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이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
왜 방문했는지에 관한 이유가 궁금하기에, 그녀를 경계하면서 술 주문부터 기다려 보았다.
내가 말없이 서 있으니.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서 고민하고 있던 기자는 아차 하면서 주문을 하였다.
“아, 간단한 거 아무거나 주세요.”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아무거나’ 다.
여기서 내가 테킬라나 숙성년도가 낮은 럼주를 주면 이상한 맛이라고 화를 낼 것이 분명하다.
그걸 칵테일이 아닌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맛있다고 하는 사람을 거의 못 보았다.
하긴, 둘 다 칵테일로 쓰지 않고 원액으로 마시기에는 조금 힘든 술이다.
약간 경계를 하고 있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취향을 물어보았다.
“이런 바는 자주 오셨나요?”
“아뇨? 이렇게 분위기 좋은 바는 처음이네요. 와아, 전부 사장님의 센스신가요?”
미나 씨와 비슷한 느낌의 칭찬이지만, 내가 경계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썩 좋지만은 않았다.
뭔가, 억지로 칭찬하면서 방심을 유도하는 느낌을 받는데.
첫만남이 최악이라 그런지, 너무 경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네, 일단 제가 의뢰한 디자인 들이랍니다. 바가 처음이시면 간단한 탄산수는 어떠신가요?”
“응? 탄산수면 콜라 같은 음료 말하나요?”
“아, 청량음료와 비슷하지만, 탄산에 알콜이 들어간 음료 쪽이 가장 쉽지 않을까 해서요.”
“그럼 그걸로 해주세요.”
바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거나, 바에 자주 들리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마시는 칵테일 중 하나는 토닉워터나 탄산수를 사용한 칵테일이다.
제일 간단하면서도 칵테일에 입문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렇기에 가장 기초적인 칵테일을 추천해 보았다.
“그럼 진 토닉으로 한잔 드릴까요?”
“오, 자주 들어 봤어요 진 토닉. 칵테일 이름으로는 자주 접해 봤는데 마셔보지는 않았네요. 그걸로 한잔 주세요.”
후, 한번 생긴 편견이라 그런지, 계속 그녀의 말을 경계하면서 듣게 된다.
진 토닉이라.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진 토닉 한잔을 위해서 얼음을 잔에 넣으면서 생각 해보았다.
진 토닉은 제일 단순하면서도 진이라는 증류주의 맛을 상세히 볼 수 있는 칵테일 중 하나다.
하지만 나의 가게 특성상 문제가 있는 칵테일 중 하나다.
어디까지나 고급바와 비교한다면 그렇다는 것이지, 가격 대비로는 적당한 맛이다.
증류주의 경우에는 물을 아주 조금만 넣어도 복잡한 향이 조금 풀리는 느낌을 받게 되며, 물이나 탄산수를 탄다면, 아주 많이 희석된 술에서 다양한 향이 나올 것이다.
칵테일은 재료가 복잡하거나, 자신의 특색을 뽐내는 술, 즉, 강한 맛을 내는 리큐르 계열의 술이 있다면, 싼 재료를 써도 무방하며 대부분 비슷한 맛을 내는 칵테일이 완성된다.
하지만 증류주에 탄산수만 섞는 경우에는 말이 조금 달라진다.
탄산수로 술을 희석하여서, 복잡했던 향을 풀어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 번에 입과 코로 몰려오던 향이, 희석으로 인해서 순서대로 몰려오는 그러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진 토닉 또한 그런 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얼음을 잔에 넣고는 칵테일 재료를 준비하던 도중에 그녀가 질문 하나를 하였다.
“혹시 이지혜 헌터 잘 아시나요?”
그러면 그렇지….
이번에도 지혜 씨 때문에 가게에 방문한 것 같다.
최대한 지혜 씨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답변을 해야겠지?
오늘은 왜 이리도 등에 식은땀이 잘 흐르는 것일까?
긴장을 유지한 채로 그녀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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