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단순함의 한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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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질문에 속으로 최대한 경계를 하고 있지만, 너무 경계하면 표정에 티가 날지도 모르니, 최대한 음료를 만드는 척을 하면서 시선을 얼음이든 잔에 고정한 채로 대답을 하였다.
“그건 왜요?”
“아, 아. 최근 소문이 좀 그렇지 않은 가요?”
“어떤 소문요?”
“혹시, 최근에 스캔들 터졌다는 소문 못 들으셨나요?”
잔을 보고 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무언가 물어보는 말투로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몸이 자연스레 굳어 버렸다.
언론에 언급된 건 저번 투창 실수 사건 정도일 텐데?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가 생각하면서 냉동실에서 미리 냉각해 둔 진 꺼내어 텀블러 잔에 50ml 정도 따랐다.
알콜이 높은 술의 경우에는 냉동실에서 얼지 않기에, 칵테일 용으로 넣어 두는 편이다.
그러는 편이 상온의 술보다 얼음이 녹는 속도가 늦기 때문이다.
어차피 증류주의 알콜 도수면 일반적인 냉동실에 두어도 얼지 않는다.
일단 칵테일을 만들면서 관심이 없다는 태도로 있었지만, 기자는 그런 것 모른 다는 듯이, 자신의 말만 이어 가기 시작하였다.
“아, 못 들으셨나 보구나.”
기자로 추정되는 여성은 어떤 말을 원하는 것인지 정말로 모르겠다.
“저, 손님.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약간 진상이라는 기분을 받아서 그런지, 비싼 라임이 아니라 구하기 쉬운 레몬을 조금 넣었다.
레몬을 짜는 척하면서 짓이기듯이 짜버렸지만, 맛에는 큰 문제없을 것이다….
맛이 이상하다고 항의를 하면 원래 그런 것입니다 라고 말해야지.
일단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약간 화를 내면서 말을 하였지만, 그녀는 큰 반응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 최근에 남성을 끼고 이 바에 왔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요.”
“으음, 글쎄요?”
최근 여기에서 지혜 씨가? 으응? 그런적 없는데?
그녀를 계속 지켜봤지만, 딱히 표정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라면 며칠 전 직장 동료와 가게 방문을 하였을 때? 혹시 그때를 말하는 것일까? 나리 씨와 현준 씨였지, 아마 오늘 지혜 씨와 훈련을 한다고 고생을 하고 있을 텐데. 아, 이 사람이 가면 문자나 해봐야겠다.
일단 주문이 우선이기에 토닉워터를 잔에 한가득 담았다.
여기서 기다란 바 스푼으로 위아래로 휘저어 주면 완성이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손님에게 하는 사소한 복수?
아니, 맛이 많이 다르 긴 하겠지만, 알게 뭐람.
알아서 저어서 마시겠지 생각 하면서 진 토닉이 든 잔을 넘겨주었다.
가게에서 가장 무난하고 특색 없는 조합으로 만들었다.
진상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가장 무난한 조합이기에 그렇게 준 것이다.
진짜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만 재료까지 바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진 토닉은 바텐더의 실력을 볼 수 있다고들 하지만, 이 실력은 만드는 실력이 아니라, 재료를 선별하는 실력을 보는 것이다.
그냥 진만 넣고 토닉워터를 끝까지 넣는 것에 큰 기술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기교와 지식의 차이 정도일까?
문제는 비싸고 고급스러운 가게라면 진이라는 술을 종류별로 구비해 두겠지만, 이런 동네 바라면 1~3종류를 대량으로 구비해 두는 편이라서 진의 종류가 부족하다.
그래서 가장 특색없고 맛없…아니 그냥 무난 무난한 조합으로 드렸을 뿐이다.
“음료 나왔습니다.”
“이게 칼럼에서 자주 보이던 진 토닉이군요. 소주에 음료를 섞는 것과 차이 좀 나겠지요?”
“초록 병에 든 소주라면 보드와 비슷한 느낌이겠지만, 기주가 다르니까 맛 또한 다르답니다?”
“그럼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해보죠.”
뭘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것일까? 난 하기 싫은데.
그녀는 진 토닉이 든 텀블러 유리컵 잔을 잡고는 마시기 시작하였다.
아마, 첫맛이 꽤나 곤혹스러울 것이다.
레몬향이 처음에 치고 올라오면서, 토닉의 쌉쌀한 맛이 오묘하게 나다가, 진 원액이 입안에 들어오면서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시게 될 것이다.
처음 마시고 난 뒤부터는 적당히 섞여서 그나마 마실 만한 진 토닉이 될 것이다.
그만큼 칵테일은 섞는 과정이 중요하다.
“으, 음. 생각했던 맛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데요?”
“아마 첫맛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한번 마셔 보세요.”
태연하게 거짓말을 쳤다.
뭐, 손님이라도 정도가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정도로 사소한 앙갚음 정도야 괜찮지 않을까?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다시 한번 잔을 들어서 진 토닉을 마시기 시작한 그녀는, 이번에는 맛이 괜찮은지 첫 모금 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을 마시고는 바 테이블 위에 잔을 올렸다.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레몬향이 조금 강하고, 전체적으로 신맛이 세다고 느껴지지만, 깡술만 마신다면 이정도로 충분 하겠어요.”
“초록병에든 술과 비교하기에는 진 에게 실례아닐까요?”
“그렇기는 하죠. 자아, 목도 축였으니. 자기소개부터 해볼까요?”
자기소개라니 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안 해도 문제없겠지?
그녀는 자기소개를 한다고 말하고는, 지갑을 꺼내어 안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참. 명함 인쇄의뢰를 해 두는 것을 깜빡해서 말이죠. HC신문 취재팀의 정아연이라고 합니다.”
명함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줄근한 인상의 그녀는, 명함 대신이라는 느낌으로 셔츠 윗주머니에 들어있는 사원증을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HC신문 – 취재팀]
[정아연 기자]
아 몇 주전에 들은 이름을 들었던 상황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아연 기자였지…!
그때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떻게 지혜 씨가 온 것을 알고 대기하고 있던 걸까? 이번에는 어떻게 알고 여기 오기 됐을까?
수상함만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최근에 이지혜 헌터가 여기에 왔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입니다. 혹시 뵌적이 있는지요.”
처음부터 이렇게 물었으면 될 것 아니었나? 굳이 지혜 씨를 까 내리는 말로 시작하다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유도신문을 당한 기분이다.
내가 너무 완고하게 모른다고 해서 전략을 바꾼 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이지혜 헌터를 모른다는 듯이 테이블을 적당히 정리하면서, 최대한 감정을 숨긴다 생각 하면서 퉁명스럽게 말을 하였다.
“글쎄요. 워낙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가게라 그런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왠지 모르게 말하면 안 된다는 촉이 오고 있었다. 아니면 그냥 말하기 싫은 걸지도.
그렇게 말하여도 정아연 기자는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이라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에이 오늘 매출 좀 올려 드립니다. 정보 좀 알려 주시죠. 기자일 좀 하다 보면 이런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정말로 기억에 없는데요.”
“거, 비싸게 구시네. 주변 증언들을 토대로 가게에 들어온 겁니다. 좀 알려 주시죠.”
팔찌를 한 이후 첫 진상 손님이 기자라니.
기억에 없다고 잡아 때는데 정말로 끈질기다.
기자들 악명을 생각 한다면…. 이것보다 더 한 짓을 할지도 모르겠다.
“저 기자 씨? 유명인이 왔다 가더라도 제가 그 사람에게 관심 없으면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그렇죠. 그럼 잠시만요.”
나의 말에 정아연 기자는 핸드폰을 들고는 무언가 찾는 듯이 누르기 시작하였다.
이내, 자신이 찾던 것을 찾아 냈는지, 왼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나에게 보여주면서 오른손으로 진 토닉이 든 잔들 들었다.
“자, 이런 얼굴입니다. 기억나시나요?”
아, 지혜 씨의 사진이다.
아마 게이트 원정직후 찍힌 사진인 것 같다.
중요 급소를 가리는 정도의 간단한 경무장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였는지 위장크림을 바른 흔적이 남아 있는 얼굴.
언론에서 보이는 모습은 언제나 정장 모습이거나, 깔끔한 모습만 봐서 그런지 이런 모습 또한 귀중하게 느껴진다.
“으음, 글쎄요. 기억이 잘 안나는데.”
“모르는 얼굴은 아니라는 소리군요.”
자꾸 유도신문을 걸어오는데 이것이 기자들의 스타일 인 것인가?
직접적으로 가게에 손해를 끼치는 상황도 아니고, 그저 물어보는 상황이라 그런지 좀 짜증내기도 애매한 그러한 경계선에서 대화가 오가는 느낌이다.
기자 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핸드폰을 다시 회수하고는 반쯤 마신 진 토닉을 다시 마시기 시작하였다.
“하아, 왜 자꾸 지혜 씨 일을 알려고 하는 건데요?”
“어? 지금 지혜 씨…라고?”
“아, 아니 이지혜 헌터라고 한 건 데요!”
너무 짜증나는 상황에 의해서 습관적으로 지혜씨라고 말을 해버렸다.
일 내버렸다…! 어떻게 하지!? 지금 모른다고 잡아 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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