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81화 (81/140)

〈 81화 〉 단순함의 한잔(4)

* * *

이지혜 헌터라 말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자연스레 지혜 씨라고 말하는 사고를 쳤다.

습관이란 정말로 무서운 것이다.

바에서 몸을 굳힌 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도, 기자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입이 방정이지.’

아주 잠깐의 시간이지만, 너무나도 느리게 흘러간다….

게다가 기자의 표정은 큰 변화는 없었지만, 눈이 웃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아니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진정하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자….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더욱더 큰일이 일어날 것 같다.

남들이 보고 있다면 분명 긴장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자연스럽게…자연스러움을 연기해 보자.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던 중에 정아연 기자가 먼저 말을 하였다.

“지금 지혜 씨라고 한 것인가요?”

아니나 다를까 지혜 씨에 관해서 물고 늘어지려 한다. 특종을 잡았다는 느낌으로 묘하게 짜증나는 표정이 되었는데 내색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프로다… 나는 프로다…. 무슨 프로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말을 하였다.

“아.뇨? 잘.못 들.으.신.거 아.닐.까.요?”

기껏 한다는 변명이 잘못 들은 거 아닐까요 라니…. 게다가 의식해서 말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대본을 읽는 듯한 말투가 되었는데, 기자의 감으로 무조건 알 수 있을 텐데…

머릿속이 혼란스럽던 와중에 한가지 해결 방법이 보이기는 하였다.

능력을 써보면 되는 것인데, 능력 사용전에 있었던 일을 잊을 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고 있으니.

정아연 기자는 칵테일을 다 마시고는 선심을 쓴다는 듯이 말하였다.

“아, 정보값이 부족한가요? 그럼 같은 거로 한잔 더? 이번에는 레몬 좀 빼 주셨으면 하네요.”

확신을 가지고 주문을 하는 모습이…. 진짜 사고를 쳤구나….

고민을 해봤자 답도 없다. 그냥 능력을 살짝 발동해 둔 채로 주문을 받았다.

“그, 그럼 이번에도 같은 거로 드릴 까요?”

“흐으음. 레몬이 없는 맛도 궁금하니까 이거 마시고 다른 거 추천해보세요.”

해주세요도 아니고 해봐라 라는 느낌으로 팔짱을 끼는 모습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듯한 몸짓이다.

살짝 짜증이 나지만, 능력도 발동 해두었겠다…. 최대한 참으면서 해결 방법을 찾자…. 스마일, 스마일 지금은 웃어야 한다.

다 마신 텀블러 유리잔을 치우고는 이번에는 레몬을 뺀 진 토닉 한잔을 만들어 줬다.

이번에는 바 스푼이라 불리는 도구를 활용해서 내용물을 섞어 주었다.

“여기 진 토닉 레몬 빼서 한잔입니다. 그래서 손님의 개인정보는 물어서 뭐 하시게요?”

“역시 이지혜 헌터가 자주오는 바는 맞나 보네!”

어차피 숨길 수 없기에 손님의 개인정보인 것 처럼 말을 하였더니. 지혜 씨라고 부른 사건을 말하지 않고 자주오는 바 인줄 알고 있다.

아마 현준이랑 나리씨가 같이 온 것만 생각하고 나와의 관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으음,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그보다 취해서 그런 건지 능력 때문인지 말투가 약간… 하대하는 기분이 든다.

이정도야 손님이니까 상관은 없지만…. 기자라는 신분을 알고 난 뒤에 하대하듯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왜 이리 짜증이 나지?

“이지혜 헌터가 몇 번 오신 적은 있죠.”

“그렇다면 어떤 말 했는지 기억해? 뭐든 좋아 뭐든 특종이 될 만한 것이면 뭐든!”

“글쎄요…. 갑자기 생각해라 하면 생각이 안 나는데…. 그보다 특종을 써야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전부터 가게 앞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서 특종이 그렇게도 중요한지 묻게 되었다.

지혜 씨를 물고 늘어질 이유가 있을까…?

“돈.”

“네?”

“왜이리 답답해? 특종이라면 돈이 되잖아?”

“어…. 굳이 이지혜 헌터를 잡으신 이유라도?”

기자에게 있어서 특종이란 돈이 되는 정보이긴 하지만 굳이 이지혜 헌터를 노리면서까지 특종을 쓸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나의 머릿속을 보았다는 듯이 정아연 기자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을 하였다.

“딱히?”

으응? 특별한 목적이라도 있는 줄 알고 긴장하면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 지혜 씨가 문제가 있다거나, 비리가 있다거나, 다른 남자가 있다거나, 잘나가서 라거나… 그런 이유도 없이?

“그런 이상한 표정으로 보지마. 이쪽 업계에서는 평범하다고.”

“그렇게 말하셔도 저는 기자라는 직업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지혜 씨라고 말한 것은 완전히 잊은 듯이 그냥 자주오는 가게로 낙인 찍힌 것 같다. 다행인 것일까…?

이상한 스캔들이 나는 것 보다는 괜찮지만, 그래도 이상한 기사가 오르는 것 또한 그리 썩 좋지만은 않다.

그렇게 내가 내민 진 토닉을 마시더니, 이번에는 괜찮다는 표정이 되었다.

“레몬을 빼니까 괜찮네. 다음부터는 이렇게 주문해야 겠어.”

당연하지,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어 줬다.

레몬 같은 향을 빼기는 했지만, 칵테일은 저어주는 것이 정말 중요한 작업중 하나다.

술과 탄산수나 토닉워터를 제대로 섞지 않는다면, 첫 맛은 비 알콜 음료 맛만 나다가, 다 마셔 갈 때쯤 술의 향이 심하게 날 것이다.

그렇기에 쉐이커통을 쓰지 않더라도 섞기는 중요한 작업중 하나다.

“그래서, 이지혜 헌터 이유 없이 취재를 시작한 것인가요?”

“어….음, 그냥 지나가다가 가게를 나오는게 보여서 취재를 시작한거지.”

진 토닉을 마시던 정아연 기자는 내가 이유를 물어보니 멋쩍어 하면서 이유를 말하였는데, 진짜 단순한 이유였다.

아니, 진짜? 정말로 그런 이유로 무작정 취재를 시작한 것인가?

“아니, 바에서 나온 것 정도로 특종이 될까요??”

“돼.”

“어떻게요?”

“그냥 제목하나 잘~ 뽑으면 되는 거지.”

머리가 띵해지는 발언이다. 제목만으로 기사를 쓸 거면 의미가 있을까?

“저는 잘 모르겠네요.”

“으흥. 일반인은 모를 수도 있지. 자, 생각해봐 아직 제목을 안정했으니까…. 간단하게 ‘이지혜 헌터 바에서 무슨 일이?’ 라는 제목이 사이트 제일 앞에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어?”

“궁금하긴 하겠죠…?”

“그렇지? 궁금해서 그걸 누르면?”

“언론 사이트로 연결되겠죠?”

답변을 하자 정답이라도 된 듯이 한손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조금 들뜬 듯이 이야기를 하였다.

그보다 손가락질당한 기분이라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오늘 하루 어떻게 미나 씨가 방문한 여파를 어떻게 버티고 마감하나 싶었는데, 마지막 손님이 이런 진…아니 기자라니.

헌터 아주머니들이 사 주신 맥주캔을 집에서 뜯을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이게 뭔 일이람….

“그걸로 끝이야. 사이트에만 들어가면 개미들이 광고 조회 수를 올려주는데 얼마나 편해?”

“아니, 조회 수 이전에 내용은요?”

아, 광고수익 그쪽이었나…?

내 말에 정아연 기자는 피식하고는 진 토닉을 다 마시고는 잔을 내렸다.

“어차피 내용은 안 중요해. 뭐, 조사해서 특종이 나오면 대박이겠지만, 거기까지 기대도 안 해. 본인도 그런 뉴스를 보면 내용 슥 내리고 댓글만 보지않어?”

“아. 그렇기는 하네요….”

정작 나 자신도 뉴스를 본다면 내용을 중시하지 않았다.

댓글에 요약이 있겠지 하면서 매번 기사를 내리고는 글에 내용이 없음을 욕하던 나 자신이 생각난다.

나 자신도 양심이 찔리기는 하는데…. 이, 일단 못쓰게 막아야 겠지?

“그래도 무작정 특종이라고 쓰시는 것은 문제되지 않을까요?”

“으응? 전혀? 거짓말을 안 했으면 그만이잖아?”

“어…. 댓글로 욕을 먹거나 항의 전화는 신경 안 쓰는 건가요?”

“당연하지! 어차피 메이저 언론도 아니겠다. 조회수로 광고수익만 뽑으면 그만이야.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대리가 막아 주겠지. 난 시키는 대로 조회수 뽑힐 만한 글을 싸지를 뿐이야. 아, 다른 거로 한잔 더 줘봐.”

생각보다 막 나가는 기자였다. 인터넷 언론이란 다 이런 것일까? 이러다가 정말로 지혜 씨에 관해서 특종을 쓰겠는데?

“이번에도 간단한 칵테일로 드릴까요?”

“간단한 거 좋지. 어, 음. 나 같은 기자가 마실 만한 분위기 있는 칵테일 없어?”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마실 만한 간단한 칵테일 같은 게 있을까? 내가 생각해도 그런 칵테일은 없는데….

상대하기 귀찮으니까 하이볼 종류의 칵테일로 추천을 해줘야 겠다.

술의 비중을 조금 늘려서 취하게 해볼까 싶었지만,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 시간에 올 손님이 있던가? 그렇게 놀라 입구를 바라보니 종이 가방에 무언가를 들고 온 수아가 있었다.

“쨔쟌~. 오빠 일이 빨리 끝나서 지금왔……? 정 기자?”

“어, 어… 아, 아, 안녕하십니까? “

수아가 지금 가게에 온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으로도 안심이 된다.

정아연 기자는 수아를 보더니 뱀 앞의 쥐 마냥 바짝 얼어 있었다. 식은땀도 보였는데 착각이겠지?

일단 정아연 기자의 칵테일부터 만들어 줘야 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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