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단순함의 한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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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여유롭고 조용함을 즐기던 수아답지 않게, 나를 놀래킬 생각이었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종이가방을 앞으로 내밀면서 들어왔다.
검은색 종이가방에 모퉁이에 금색 테두리의 까만 깃털 마크가 비싼 물건이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아악! 들고 오지 말라 하였는데 또 들고왔어! 이번에는 종이가방까지…. 비싼 물건은 아니겠지?
매번 받는 게 부담스러운데 또 들고 온 건가…. 박씨 아주머니한테 뭐라도 챙겨드려야 하나…? 비싼 술이라도…?
어떻게 해야 완곡히 거절할까 생각하던 도중, 정아연 기자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더니 수아를 보고는 깜짝 놀랬다.
“쨔쟌~. 오빠 일이 빨리 끝나서 지금왔……? 정 기자?”
“어, 어… 아, 아, 안녕하십니까? “
정 기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는 사이가 맞는데….
카페 겸 바라는 장소 자체가 방문하기 쉬운 장소라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단지 정아연 기자가 특종이랍시고 지혜 씨를 취재하려는 상황 자체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일단 수아부터 환영해 줘야겠지.
“아, 수아왔어? 바쁜 일은?”
“적당히 끝내고 왔지~. 오빠 보고 싶어서 얼마나 빨리 처리했는데.”
“그래도 일은 똑바로 해야 아주머니가 좋아하지 않을까?”
“아~. 어머니의 경우에는 이 정도는 신경도 안 쓸걸?”
“그래?”
“그러엄! 나 이래 봬도 약방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있다니까? 그렇지 정.기.자?”
오늘따라 텐션이 많이 높은데 좋은 일이라도 있던 것일까?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카운터석까지 온 수아는 자리에 앉으면서 자연스럽게 정기자를 불렀다.
왠지 모르게 정아연 기자가 긴장을 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그, 그렇죠! 도…ㄱ 으극!”
“수아야….”
“에이, 앉으려다가 실수한 거야 ‘실수’. 미안 합니다? 정기자?”
“읏, 그, 그럴 수도 있죠 아하하.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죠 암 그럼요!”
“거 봐 오빠 내가 실수한 것뿐이야.”
“끄으응…. 일단은 알았어.”
아무리 봐도 수아가 옆자리에 앉은 정기자의 발을 밟은 것 같은데…. 수아가 실수를 했다 하고, 정 기자가 사과를 받았으니까 내가 낄 문제는 아니겠지.
수아가 슬쩍 가방을 테이블 위로 올리는데, 빳빳한 종이재질에 검은색 날개 문양은 프린팅 된 게 아니라 금속 뱃지를 붙인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는, 생각을 걸치지 않고 입에서 한마디가 바로 나왔다.
“엑….”
또 무언가를 받는 것인가 싶어서 당혹스러웠다.
종이 가방만 본다면 이 세상의 일반적인 남성들은 좋아서 환호를 할 만한 상황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부담감만 쌓일 뿐이다.
절대로 정말로 진짜로 비싼 물건은 아니겠지? 속으로 비명을 지르다 못해 입 바깥으로 한마디가 튀어나왔지만, 나의 반응을 본 수아는 평소 답지 않게 크게 웃으면서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아하핫. 이거 비싼 거 아니야. 오늘 나올 때 종이 가방이 없어서 적당히 손에 잡힌 종이가방에 넣어서 온 거야.”
“그, 그렇니…?”
“정말이야. 안에 뭐가 들었는지 볼래?”
그렇게 말하고는 종이가방 내부를 보여주었다.
확실히. 종이가방 안에는 종이박스가 들어 있었다. 한…2박스 정도려나?
다행히 종이가방이 비싸 보였을 뿐이다.
“그냥, 오빠 요즘 피곤해 보인다는 ‘상가사람들’ 소문이 있어서 말이야. 그냥 단순한 자양 강정제야~.”
“어…그런 거치고는 일반적으로 파는 상자가 아닌 것 같은데?”
확실히 일반적으로 판매하는 상품이라면 종이 상자 전체에 프린팅이 되어 있는 게 정상인데, 수아가 가져온 종이가방 안에는 갈색의 종이상자에 ‘박 씨네 약방’ 이라는 글귀와 귀여운 SD 캐릭터 얼굴이 그려진 스티커로 상자를 포장한 상태였다.
박씨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데…. 수아 아이디어 인가…?
상자를 보면서 고민하고 있으니 수아가 우쭐해하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거? 당연하지~. ‘오빠 맞춤형 특제’ 라고 붙일 수 있는 물건이니까?”
“으음, 특제?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최근 우울한 느낌을 받거나 어디가 간질 거리는 느낌 받지 않아?”
“어…어떻게 알았어?”
“다 보여~. 그냥, 매일 먹는 건 아니고 가끔 힘들면 마셔봐. 그렇지 정 기자?”
기자라는 직업은 주변에 적이 많은 것일까?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뜨려던 정아연 기자를 부르고는 어깨동무를 하였다. 정아연 기자를 만난 게 이번이 두번째 지만, 사람이 저런 표정도 짓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수아의 눈동자가 옆을 향했을 때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이내 잔잔한 웃음이 있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본인은 안 들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바보라도 안다….
정아연 기자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가 싶지만, 가게 사장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으니까 모른 척을 하는 편이 좋겠지…?
“그, 그렇죠! ㄷ…아니 수아 님…! 으극…. 수아 씨의 실력은 박사장님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수아의 악력은 생각보다 강한 것 같다…. 아니 이게 아니지.
“수아야…. 그, 너무 티 나거든…?”
“아, 그래? 정기자가 너무 거리감 있게 부르니까 조금 화가 나서 말이지. 그렇지 정기자?”
“예, 옙 그렇죠! 말을 놓기로 했는데, 자꾸 존댓말이 나와서 말이죠. 기자라서 그런 걸까요? 아하하”
“와아~. 정기자 기자 정신이 투철하구나?”
“하하하…그, 그렇죠…?”
“그.래.서 무슨 일로 가게에 온 거야?”
수아도 정기자에게 당한 적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엄청 경계하고 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기 자가 귀찮은 일을 만들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아의 반응도 너무 과격하기에, 수아를 말리기 위해서 수아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응? 아, 그런 거구나.”
볼을 꼬집힌 수아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볼을 꼬집은 내 손을 만지고는 혼잣말을 하였다.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인데 괜히 했나…?
“수아야?”
“아냐, 아냐~. 아무것도. 일단 내가 준 것 받아주는 거지?”
“어…응, 고마워.”
수아는 볼을 꼬집고 있던 내 손을 물리고, 정아연 기자를 불렀다.
“일단 정 기자? 아니 정씨?”
“예, 옙!”
“에이, 저번에 제가 좀 당한 일이 있어서 너무 경계했나 보네요. 미안해요.”
“그, 그렇습니까?”
“너무 딱딱하게 있지 말고 어떤 일로 가게를 방문한 걸까요? 스타일상 그냥 방문했을 리는 없을 테고…”
“저, 그…그게.”
뭔가 평소의 수아 분위기가 돌아온 느낌인데 착각일까…? 오늘따라 수아의 텐션이 너무 바뀌어서 조금 당혹스럽다.
정아연 기자는 자신이 지혜 씨의 기사를 쓰려는 것을 말하기 힘든 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아. 일단 수아의 주문부터 받아야겠다.
“수, 수아야 주문부터 할래?”
“아차, 음. 오빠. 간단한 음료로 해 줘~.”
“아, 그거라면 잠시만.”
때마침 수아도 간단한 음료로 부탁하였다. 그럼 하이볼이 제격이지.
하이볼도 정말 간단한 칵테일 중 하나다.
기주의 맛이 중요한 것은 간단한 칵테일 들의 특징이다.
뭐, 그런 심오한 맛을 바란다면 이런 바가 아니라 좀 더 비싼 바를 가거나 호텔바를 가겠지만….
이번에는 하이볼 글라스를 꺼내어 얼음을 담았다. 텀블러 잔과는 다르게 수직 원통모양의 잔이다.
여기에 위스키 30ml를 붓고 탄산수를 가득 부어 주면 완성이다.
바 스푼으로 살짝 저어 주고는 이번에는 레몬 조각을 꼽았다.
절대 수아가 있으니까 꼽는 것이 맞다.
정 기자만 마신다면 레몬 칩으로 때웠을 텐데.
“여기 하이 볼 나왔습니다.”
수아가 오기 전부터 위스키와 탄산수를 준비해 두었기에 빠르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였다.
“응~. 고마워 오빠. 그보다 정씨는 왜 온 것일까요~? 뭐, 오빠한테 물어봐도 되는데…그치 오빠?”
“아, 아니 그, 손님의 개인정보 아닐까? 아하하…”
수아는 정말이지 재미있다는 듯이 정기자를 놀리고 있었다.
정아연 기자도 적당히 말을 정리하였는지 입을 열었다.
“그게, 이지혜 헌터의 소문이 돌고 있어서… 특종감이 있을까 싶어서…. 그, 어…. 그, 이지혜 헌터로 기사한번 쓸까 해서 왔는…데요?”
“응? 천투?”
“여, 역시 아니겠죠…아하하….”
“글쎄~. 아 오빠 잘 마실 게.”
수아는 하이볼이 든 잔을 가볍게 들고는 그대로 절반 정도를 마셨다.
그러고 보니…. 수아는 분위기를 타는 칵테일을 즐겼는데, 이런 탄산이 들어간 칵테일을 마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아~. 생각보다 시원하네.”
“으음, 수아야 평소에 잘 안 마시던 탄산이 들어간 칵테일인데…. 괜찮아?”
“물론이지~. 가게 분위기가 좋아서 여기서는 탄산을 안 마시지, 내가 콜라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보다. 천투의 이야기 계속해볼래요~?”
“그, 그게 말입니다…!”
정아연 기자는 가게를 방문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여성 둘이서 이야기에 빠진 건 좋지만, 나는 다른 문제로 고민 중에 있다.
아무리 남녀가치관이 반대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주던가…?
무언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물건을 받아버렸는데, 수아는 이런 쪽에서는 너무 자연스럽다.
하아…. 이제 단호히 거절하는 법도 배워야 할 텐데….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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