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단순함의 한잔(8)
* * *
수아가 당황하는 모습은 신선 하였다. 벌써 위스키를 반이나 마신 것 같은데, 역시 취한 탓일까?
잔을 잡고 어떻게 말할지 내 눈을 피하는 모습이 괘씸해서 조금 보채 보았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한 건데?”
“아니, 어, 으음~.
“궁금한데~ 안 알려주는 거야?”
“끄응, 최근 밝아진 모습을 보니까 좋기는 한데 오히려 당하는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본인의 페이스를 찾기 위해서 대화를 돌리려 하지만어림도 없다.
그보다 최근에 밝아지기는 했나? 으음, 무시당한 원인을 알고 난 이후에 많이 좋아지기는 했다. 그래도 가끔은 우울한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또 멀쩡하다. 오히려 편안한 기분?
지금은 수아를 놀려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래서 안 알려 줄 거야~?”
평소 수아의 말투를 따라 해 보았는데, 내 말을 들은 수아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피식하고는 남은 위스키를 다 마시고는 빈 잔을 내밀었다.
이미 수아의 위스키는 다 마셨는데 다른 위스키를 달라는 의미인 것 같다.
“항복. 비슷한 위스키로 아무거나 한잔 줘~.”
“이번에는…. 음, 비슷한 느낌으로 해 줘?”
“그러면 좋지~. 바디감이 떨어져도 되니까. 약간 단맛이 나는 쪽으로 추천 부탁해~.”
“잠시만 기다려봐.”
다시 한번 진열장을 뒤지기 시작하지만이번에는 술만 찾지 않고 수아가 슬쩍 넘어가지 못하도록 말을 걸었다.
“그래서, 정아연 기자랑 어떤 이야기를 한 거야?”
“에이, 뭘 그리 보채~. 위스키 한잔 더 받고 이야기해도 돼는 거잖아~.”
“수아면 슬쩍 넘어갈 것 같으니까?”
“어머나 슬퍼라~. 그렇게 신뢰감이 없는걸까?”
“조~금?”
“내가 취한 건지, 오빠가 오늘따라 강하게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슬쩍 안 넘어갈 테니까 위스키 천천히 찾아.”
“기다려 봐. 무조건 찾는다.”
술 병이 정리가 안 된 채로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그런지, 수아 취향의 술을 찾는데 조금 걸리고 있다.
이 술도 아니고 저 술도 아니고, 진열장 날 잡아서 정리를 하던지 해야지…. 아, 이 술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렇게 진열장에서 술 한 병을 꺼내었는데, 검이 교차된 마크로 12년이라 붙어진 술병이었다.
개봉한지 조금 된 술이니까, 에어링으로 현상으로 인해서 부드러운 맛이 날것이다.
“짠, 이 블랜디드 위스키면 충분 하겠지?”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네~. 듣고 나면 재미없어서 실망할지도 모른다? 난 경고했어~. 내 탓 하기 없기~.”
“질문한 게 난데, 그러면 실례지~.”
수아는 ‘그러네~.’ 라고 말하면서 내가 따라준 술을 받았다.
아차,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서 새 잔을 안 주고 그대로 잔을 따랐는데…. 괜찮겠지?
아이스큐브가 들어 있는 잔에 그대로 위스키를 부웠지만, 수아는 상관없다는 듯이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셨다.
“은은하게 단맛이 나쁘지는 않네. 그래. 그, 정기자가 말이야.”
“응, 응.”
“잘못된 ‘정보’로 약방을 취재하려 해서 ‘오해’를 서로 푼 것까지는 말했고…. 위스키도 세긴 세나보네, 벌써 취기가 오르는 것을 보면. 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말할 게~. 정기자가 소속된 언론은 비 메이저. 즉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힘든 언론이잖아?”
수아가 슬쩍 다른 이야기로 새려고 하는 것 같아서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니, 제대로 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힘든 언론이라….
“인터넷 신문이니까 보는 사람들은 한정되긴 하지….”
“응, 인터넷 언론사. 어차피 메이저 언론도 아니고. 취재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잖아?”
“그렇지?”
“정기자한테 이렇게 말했지. ‘니가 소속된 언론은 돈이 드는 취재가 아닌 돈을 벌어오는 논란 거리를 바란다.’ 라고. 거 봐 재미없는 이야기라고 했잖아~.”
으음. 표정이 조금 좋지 않았나 보다. 다시 한번 표정 관리를 하고는, 내가 마실 위스키도 준비하였다.
수아만 마시는 것을 보다 보니 나도 술을 마시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수아가 마지막 손님인 것은 시간을 보면 확정 사항이고…. 나도 마셔야지.’
수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칵테일을 마시기 보다는 스트레이트로 위스키를 준비 하였다.
위스키를 한잔 마시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수아를 보채었다.
“아니, 괜찮은데? 계속 해봐.”
“뭐~. 그렇게 정기자는 ‘취재’를 그만두고 오락용 소재만 특종으로 내는 기자가 되었습니다? 정도의 이야기야~”
“너무 심심한 결말 아니야?”
“그래서 말 했잖아~ 그리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라는 거~.”
“그런가아.”
한껏 궁금하게 해놓고선 이런 결말이라니, 수아의 말투 때문일까?
내가 마실 위스키를 따를 때 한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사람이 그렇게 금방 바뀌는 거야?”
“아니? 몇 달은 고민하더라~.”
“그 몇 달 동안 취재할 만한 기삿거리가 없었나봐?”
“현실과 한계를 알게 된 거지.”
“현실?”
“취재라는 게 혼자 힘으로 가능한 게 아니잖아~?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고 취재를 나가는 등, 여럿이 필요한 작업이야. 취재를 하겠다는 패기만으로 가능한 일이었으면 그 누구라도 쉽게 기자가 되었을 걸?”
“그치만 노력은 하지 않았을까?”
“노력? 하.”
코웃음 치는 수아라…. 오늘따라 수아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다.
“진짜로 기자를 할 생각이었다면 무모하게 취재를 하지 않았겠지. 가령 사전 준비를 하던지 정보를 모아서 왔겠지. 대뜸 가게에 ‘혼자’ 취재를 와서 찔러 보기만 해서 얼마나 성질나던지 알어?”
“어, 으응?”
바 테이블을 탁탁 치면서 짜증 난다는 듯이 말을 시작하는데, 취하긴 했나 보다.
수아의 주사는 평소 참아온 말을 하는 쪽인 걸까? 정아연 기자에 관한 이야기를 막 쏟아 내기 시작하였다.
“자꾸 가게에서 이상한 걸 물어보잖아. ‘식품 위생’ ‘식약처 승인’ ‘특허등록’ 등등 정부에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 부분을 걸고 넘어지잖아. 이게 뭔 기자야!”
“그, 그래서 이야기로 오해를 푼 거 구나.”
“응, 아니, 진짜. 가게의 ‘일’을 지적해왔으면 본격적으로 ‘대화’ 라도 해 보지. 이건 뭐, 가게 악평만 보고 찾아와서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만 해대니까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더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돈이 되는 글을 써라 한 거고?”
“오구오구 내 오빠 똑똑해. 정~다압. 너무 황당하니까 오히려 돈만 버는 방법을 가르쳐 준 거지.”
내 말이 정답이라 말하고는, 갑작스레 양손으로 볼을 잡고는 주무르기 시작하였다.
애가 왜 이런데? 정말로 취한 걸까?
“수아야아 취한 거야?”
“아~니? 안치했는데?”
상체가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응, 취했네 취했어.
수아의 가늘고 부드러운 손길이 나쁘지는 않지만, 연장자로서 위엄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아니, 그런 위엄 같은 게 있었나…? 평소에 음침하게 생활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그런 위엄 없었네?
아하하….
수아가 계속 볼을 만지고 있는데,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없어서 양손으로 수아의 손을 잡고 내렸다. 그리고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아연 기자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볼 부드러워서 좋았는데 아쉽네. 으음, 쉬운 길만 가려고 하는 기자 겠지?”
“수아가 그렇게 권한 것치고 너무 확 바뀐 거 아니야?”
“아냐, 생각보다 그러는 것이 정상이야. 해 보겠다는 신념만 앞서고 사전 조사도 없이 패기 하나만으로 취재하는 어려운 길을 걷은 건 좋은데, 개인 사업이 아니라 언론사 소속이 된 이상 상사들의 갈굼이 있었을 거야~.”
“돈이 안 되는 기사를 들고 와서?”
“그렇지~. 결국 자기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 신념이 아닌 쉬운 길을 한번은 걷게 되지. 그렇게, 한번 쉬운 길을 맛본 정기자는 두 번 다시 어려운 길을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이야기야. 정말 재미없지?”
“그래도 ‘기자’ 정신은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글쎄. 한 번 쉬운 길을 맛본 상황에서, 굳이 돈이 안 되는 어려운 길을 가려 할까? 어려운 길을 향해 있는 눈과 귀가 아직도 열려 있다면 모르겠지만, 한번 쉽게 버는 것을 맛본 이상 어려운 길을 보지 않은 척 듣지 않은 척하려 할걸?”
한번 쉬운 길을 걷게 된 이상 어려운 길을 안 보려 하는 것은 이해를 못 할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 쉬운 길을 정아연 기자 혼자서 걷고 있을까?
아마도 다른 기자들도 걷고 있을 것이다. 쉬운 길, 쉬운 가십거리, 어그로성 기사를 생각해보면, 인터넷에 널린 것만 해도 엄청나지 않은가.
그런 뉴스만 쓰는 정아연 기자의 본심은 어떨까? 여기에 있지 않아서 물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복잡하지 않을까?
“어렵네….”
“에이 별 관계없는 사람이잖아?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수아는 말을 끝내고 잔을 나에게 내밀면서 무언으로 건배할 것을 재촉하였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가볍게 잔을 부딪혀 주었다.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보다, 수아의 잔에 들어 있는 아이스큐브의 잘그락 거리는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약속이라도 한 듯, 위스키를 한 모금씩 하였다.
오늘따라 수아가 안 하던 행동해서 그런 걸까?
“갑자기 왜 이래?”
“으응~? 그냥? 변덕이랄까… 변덕…음.”
수아는 정말로 취했는지 몸이 약간씩 흔들리고 있다.
변덕이라 말하고는 잠시 고민을 한 수아는….
“그보댜~. 오빠 데이트 안 할래?”
“응?”
“그냥 도심이라도 좋으니까 놀러 가보쟈~. 맨날 일만 하는 것 같잖아?”
어, 그러고 보니 수아한테 지혜 씨와 사귄다고 말 했던가…?
아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