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퇴근 길(1)
* * *
내가 대답을 느리게 해서 그런지 가게 안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지혜 씨와 사귄다고 하지만 수아는 동생이기도하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수아의 데이트 요청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승낙을 하기로 하였다.
“알았어. 지금은 좀 그렇고 쉬는 날 날 잡아서 가는 거다. 다음 휴일 일지도 모르겠네?”
“예~. 처음으로 데이트 권유 성공이댜.”
“으음, 할 게 있으려나?”
데이트라 하여도 경험이 없어서 별 감흥이 들지 않는다.
그냥 같이 나가서 주변을 돌아다니는 정도 아닐까?
이때까지 수아가 가게에 찾아오면서 여러 가지 챙겨 준 것을 생각하면, 이번 기회에 맛있는 거라도 사 먹여야겠다.
“글쎄, 도시 쪽이면 백화점 정도일까? 오빠 움직이는 거 별로 안 좋아 하잖아?”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적당히 다녀.”
“솔~직히, 오빠 체력도 걱정되는데 어때 내가 운동도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술 배 안 나온 거만 해도 어디야. 일단 가게가 있으니까 운동 할 시간이 잘 없을 테니까 호의만 받을게.”
“에이~. 수아의 PT라면 귀여운 오빠라도 어느 정도 근육을 붙일 수 있다니까~?”
“수아 평소에 바쁘지 않아?”
“오빠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뺄 수 있지~!”
손뼉을 치면서 자신은 할 수 있다고 어필 하는 모습이 역시 귀여운 동생이다.
수아의 장난을 받아 주면서 가벼운 데이트라 생각하니, 대화도 가볍게 느껴진다.
아니면, 나도 취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위스키 잔을 기울이면서 수아와 동네 이야기 등 잡담이나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어떠셔?”
“어머니? 아 요즘 귀찮은지 나한테 일을 넘기고 있다니까~. 정말이지 일이 늘어나고 있어서 곤란해 죽을지경이야~.”
“그만큼 믿고 있는 것 아닐까?
“글쎄, 가끔 획 도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번 위스키를 마시는 수아다.
하긴, 부모님과 관계가 좋다고 직설적으로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박씨 아주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딸내미 어떠냐고 매번 물어오신 분이기도 한데…
아, 아주머니한테도 어떻게 설명하지…?
워낙 받아온 것이 많다 보니 설명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된다….
음, 취기가 오르기도하고 있고, 이 일은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봐야겠다. 부탁해 내일의 나!
나 또한 취기가 오르기에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기분을 받던 그때 수아가 다른 질문을 해 왔다.
“그보다 오빠, 동네 분위기나 치안 어떻다 생각해~?”
“치안? 으음, 안 나가서 모르겠는데. 아, 그래. 방문한 손님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요 며칠간 좋아졌다던데?”
“그으으래? 다행이네.”
“수아도 약방하면서 신경이 쓰이나 봐?”
“안 쓸 수도 없잖아? 최근 좋아졌다니 다행이네~.”
갑작스레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을 하고는 다시 한번 위스키를 마시는데, 아이스 큐브가 수아 입술까지 닿은 것을 보면, 마지막 잔이었나 보다.
“한잔 더 줄까?”
“흐음 그럴까~?”
병을 들어서 한잔 더 따라 줄려고 하였지만, 수아의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착신음으로 인해서 따라주지 못하였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자정은 넘었고…. 이런 시간에 전화라니 급한 일인가?
역시 저녁에 전화가 온다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것인지 수아가 약간 찡그린 표정이 되었다.
오늘 정말…. 수아의 다양한 표정을 보고 있다.
“뭐ㅇ…ㅑ….여.보.세.요? 아~ ‘네 네’, 납. 품 관련 이야기군요. 오빠 잠시만 전화 좀!”
“천천히 해.”
납품 관련 급한 이야기라도 온 것인지 수아의 반응이 다급하였다.
거의 대답이 ‘네 네~.’라던지 내 눈치를 보면서 ‘그렇게 하죠.’ ‘계약상 문제가 있을 텐데요.’ 등등 엄청 숙이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일하는 수아의 모습은 이런 느낌인걸까?
그렇게 내 위스키를 다 마셔갈 때쯤 수아의 전화는 끝이 났다.
“오빠 미안 해! 지금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렇게 바빠?”
“납품 문제가 조금 꼬여서 말이야~. 사실 안 가도 되는데 아직 내가 상가에 있는 것을 ‘알고’ 있나 봐~.”
“으음, 취했는데 괜찮겠어?”
“뭐, 어때~. 본인들이 부른 거잖아? 도와 달라니가 줘야지 별수 있나~.”
“수아도 고생이네.”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갑작스레 걸려 온 전화 때문인지 수아는 계산할 준비를 하였다.
안 받아도 상관없는데, 억지로 카드를 쥐여주는 모습 때문에 포기하고 결제를 하였다.
“아는 사람이니까 안 받아도 상관없는데….”
“에이~ 아는 사람일수록 결제는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일단 수아가 마신 것만 결제를 하고 카드를 돌려주려니 이미 나갈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렇게 바쁜 일이야?”
“으음? 아, 간다고 했으니 최대한 빨리 가는 편이 좋잖아?”
“아, 응. 잘 가?”
“어머~ 오빠는 내가 가기를 바라는 걸까~?”
“그, 그건 아니지만. 일이 있잖아?”
“그러네~. 아쉬워라…. 씁, 일단 가 볼 게! 데이트 일정은 문자로 보낼 테니까 나중에 꼭 봐~.”
“그래. 잘 가.”
가게 문을 나서기 전에 뒤를 돌아서 손 인사를 한번 해주고는 가게 바깥으로 나갔다.
손님이 더 오기 전에 불과 음악부터 꺼야지.
지금 시간에 손님을 받으면 언제 퇴근할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불부터 꺼두는 편이다.
전부다 끈다면 나도 보이지 않기에 벽 쪽에 위치한 조명 몇 개만 켜 두었다.
적당히 정리한 다음에 퇴근해야겠지.
그렇게 마시고 남은 흔적을 정리하며, 테이블을 가볍게 닦는 정도로 뒷정리를 하였다
잔 설거지? 술을 마셨다면 유리로 된 물건은 만지지 않는 편이 좋다.
자칫 잘못 하다 가는 잔을 깨트릴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유리 파편이 박힐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마신 날은 설거지를 하지 않으며, 세제를 풀어 둔 물에 담그는 정도로 정리를 하고 퇴근한다.
다행인 점은 가게가 작아서 뒷정리가 금방 끝난다. 빗자루질이나, 물걸레질은 출근한 다음에 해야겠다.
정리는 끝냈지만, 이렇게 퇴근하기에는 조금 아쉬워서 우유와 코코아를 준비하였다.
우유는 스팀피처라는 스테인리스 잔에 담고 에스프레소 머신에 달린 스팀완드라 불리는 증기 배출하는 원통 관을 우유가 담긴 잔 안에 넣었다.
그리고 레버를 돌리니 ‘치이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스팀피처 잔 안에 들어 있는 우유가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일반 가정이라면 우유를 데우기 위해서 냄비에 끓이겠지만, 에스프레소 머신에 스팀완드라 불리는 증기 배출 관이 있다면, 이를 활용하여 뜨거운 우유를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스팀완드로 스팀밀크를 만든다면 1분도 안 걸린다. 뜨거운 우유가 금방 완성된다.
그렇게 가게 안에서 ‘치이익 ‘하는 소리가 몇 번 울리고 난 다음 완성된 스팀 밀크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다음 준비물은, 종이컵에 코코아 파우더를 두 스푼 정도 넣고는 헤이즐넛 시럽을 넣었다.
코코아만 마시기에는 향이 심심하기 때문이다.
종이컵과 코코아 파우더가 준비되었다면, 스팀밀크를 아주 조금 종이컵에 따랐다.
이제 코코아 파우더를 녹일 차례다. 설거지 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기에, 포크나 휘핑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종이컵 끝을 잡고는 원을 그리듯이 흔들다가 반대로 흔들기를 몇 번 반복하니, 적당히 코코아가 녹아 있었다.
이제 남은 작업은 스팀밀크를 잔 끝까지 따르는 것뿐이다.
따뜻하고 거품이 많은 우유를 따르다 보니 특별한 소리는 없었지만, 다 따르고 나니 컵에서부터 거품이 사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가게에 틀어 둔 음악 소리나, 손님들의 잡담소리로 못 들을 소리지만, 퇴근준비하면서 만든 뜨거운 코코아다 보니 이런 소리도 들려오나 보다.
완성된 코코아를 한잔 마시니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 차지만, 몸이 녹는 기분 보다는 술이 깨는 느낌이 강하였다.
‘오늘 하루도 적당히 끝났고 이만 퇴근할까?’
오늘 하루라…
생각보다 많은 일이 지나갔다.
카페 장사때부터 대형 폭탄이 떨어진 느낌이었고…. 그다음은 손님 웨이브를 버텼으며, 정아연 기자까지…. 마지막에 수아가 안 왔으면 정말귀찮은 하루였다고 생각할 뻔하였다.
왠지 모를 울컥하는 기분과 함께, 코코아가 든 종이컵을 바라보았다.
내가 마신 만큼 없어진 양을 보니…. 애매한 양인데…. 그러면.
아직 정리하지 않은 위스키병을 잡고는 그대로 코코아가 든 잔에 부었다.
다시한 번 더 잔이 꽉 차게 되었다.
'이게 정답이지!'
부족한 무언가를 채운 느낌이 든다.
이제 앞치마를 벗고 바람막이 정도를 입고 가게 마감을 하였다.
남은 불은 다 끄고 위스키가 들어간 코코아를 들고는 가게 문단속을 하고 문을 잠갔다.
잠근다 하여도 전자식이라 비밀번호를 누르는 정도다. 그 외에는 경비업체가 해 줄 것이기에 신경 쓸 것은 없다.
이제 퇴근이다. 정말이지 하루가 길었던 느낌이다.
심야시간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리고 무엇과 조우할지도 모른 채로 상가 거리를 걷기 시작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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