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퇴근 길(2)
* * *
불이 꺼진 상가사이를 걸어 가는데, 나 혼자만의 세상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대부분의 불은 꺼져 있지만, 몇몇 가게는 간판 불만 켜 두어서 걷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매번 생각 하지만, 퇴근길은 정말이지 고요하였다.
게다가 날씨는 약간 싸늘하기에 바람막이를 입고 있는데, 위스키를 넣은 코코아가 적당히 따뜻한 느낌이 난로를 대신하고 있다.
호로록.
걸으면서 입이 심심하기에 위스키를 넣은 코코아를 마셔보니, 딱 알맞은 맛이었다.
위스키의 향은 다 날아가버렸지만, 코코아를 마신 뒤 속에서 올라오는 위스키의 알콜 느낌이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느낌을 준다.
물론 알콜의 작용에 의한 효과라서 본격적으로 알콜 분해가 시작되면 몸이 더 차가워질 것이 지만, 집에 금방 도착하기에 추위를 느낄 만하면 천천히 마시고 있다.
적당히 따뜻하면서 추운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위스키를 넣었기에 담배도 피우고 싶지만, 아무리 심야라고 하지만 길거리이기에 참고 있다.
그렇게 조금 걸었을까?
상가의 끝이 보이고 주거 단지가 보이기 시작하려던 그때, 골목 구석에 두 다리를 모은 채로 고개를 숙인 여성이 있었다.
이거…. 말 걸면 무조건 귀찮은 일이 일어날 듯한 상황이다.
그녀의 팔에 난 상처자국과 말라붙은 핏자국을 보면서 지나쳐갔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던 그 때.
코코아를 쥐고 있는 왼손에 걸려있는 팔찌가 눈에 밟히고 있었다.
끄응….
처음 본 사이라도 곤란한 상황에 처한 나를 본지혜씨는 도움을 줬는데…. 그런 온정을 받은 이상내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 갈 수는 없었다.
온정을 받았다면 갚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어야 겠지.
그렇게 뒤로 돌아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았다.
“괜찮아요?”
쪼그려 앉아서 보는데 그녀의 몰골은 처참하였다.
푸석푸석한 생머리에 몸 여기저기에 난 상처의 흔적들, 그리고 넝마에 가까운 옷의 상태까지.
헐벗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은 한쪽 끝 부분이 잘려 있는 귀.
아…. 이종족이다.
간간히 있다고는 하는데, 도망친 노예인 것일까?
그래도 불쌍해 보이기에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보았다.
“저기요?”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그냥 가기에는 뻘쭘하기에 몇 번 더 흔들어 보니 반응을 해 주었다.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는데, 반쯤 죽어 있는 눈빛이 무언가 겹쳐 보이는 느낌이었다.
몇 주 전의 나를 보는 기분?
“아, 드디어 봐주…. 으아아 숙이지 마요!”
드디어 봐 주는 가 싶었는데, 다시 고개를 숙이려 하기에, 어깨를 조금 강하게 흔들었다.
‘왜?’ 라는 느낌의 눈빛이 나를 보고 있는데, 막상 멈춰 세우니 무슨 말을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옷이라 부를 수 없을 수준의 헝겊을 걸쳐 입어서 그런지 그녀의 어깨에서 느껴지는 피부의 감촉은 정말이지 얼음의 감촉 같았다.
이런 날씨에 얼마나 바깥에 있었던 것일까?
“어…. 괜찮으시다면 이거 한잔이라도 드실래요?
그녀를 불쌍하다 여기긴 했지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모르기에, 지금 현재 가능한 것을 해주었다.
약간의 위스키가 들어가긴 했지만, 아직 따뜻한 코코아로 몸을 따뜻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생각 해서이다.
그렇게 코코아를 내밀었지만, 받지를 않는다.
아까 일 보다 더 뻘쭘한데….
“안 마셔요?”
나를 바라보던 허무함만이 가득한 눈빛에 약간의 호기심이 감도는 눈빛이 되었다.
나와 코코아를 번갈아 보던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면서 코코아를 받았다.
코코아를 건네어줄 때 느낀 거지만, 생각보다 고된 생활을 보내어 왔는지 손 바닥 피부도 굉장히 거칠고 차가웠다.
그리고 마셔도 되는 건지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데.
“마셔요. 달달한 거긴 한데 술을 조금 넣어서 입맛에 맞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마셔요.’라는 말을 듣자 한 모금 마시기 시작하였다.
곤경에 처한 사람, 아니 엘프에게 도움을 주고자 건넨 코코아지만, 일반적인 따듯한 코코아가 아니라 위스키가 들어간 코코아라서 조금 걱정이 된다.
이 세상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사람이 아닌 이종족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행위 자체가 그리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 행동이긴 하지만, 심야시간이기도 하고 보는 사람이 없다면 괜찮을 것이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오후시간대라도 코코아를 건네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도중 천천히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 그녀는 종이컵에서 입을 떼고는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허무함이 가득하던 눈에서, 물기가 가득 차오르더니 그대로 흘러내렸다.
“어…음. 괜찮으신가요? 저기요오?”
무언가 잘못된건가 싶어서 물어보았지만, 망부석이 된 채로 눈물만 흘리던 그녀는 남아있는 코코아를 천천히 마시기 시작하였다.
으아, 내 코코아가아!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위 자체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그녀 앞에서 쪼그려 앉아서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니, 코코아를 음미하면서 마신 그녀는 내가 컵을 줬을 때 자세 그대로 돌아간 뒤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동자는 마음의 창이라고 누군가 말 했던가, 그녀의 공허함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계속 비어 있는 종이컵을 들게 할 수는 없었기에 나에게 달라는 손짓을 하자, 나에게 넘겨주었다.
받은 종이컵을 잠시 바닥에 두고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 해보기로 하였다.
코코아를 마신 뒤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 딱히 말은 없었다. 말 할 줄 모르거나, 안 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인식표가 달려있어야 할 귀의 끝 부분은 최근에 잘렸는지 약간의 고름이 맺혀 있었다.
인식표가 없다라….
“잠시 얼굴 좀 들어 볼래요??”
내 말을 무시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내 말이 떨어지자 마자 고개를 위로 올렸다.
역시….
목에는 목걸이의 흔적이 있었다.
도망 방지용이라고 이종족에게 의무적으로 끼우는 전자 장치인데…. 그게 없다니.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고민을 해봤자 내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이런 곳에 두고 집에 간다면 몇 달 내내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은 일어섰는데,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있던 그녀의 시선은 쭈욱 나를 보고 있던 것이었는지 고개를 든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공포영화에 나올 만한 장면 같아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 그. 고개 내리셔도 괜찮은…데요.”
뭔가 기선 제압당한 것 같은데, 애써 무시하면서 그녀에게 말을 하니 그녀는 고개를 내렸지만,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결심한 제안을 그녀에게 하기로 하였다.
“어, 으음. 갈 곳 없으시다면 같이 가실래요?”
허리를 약간 숙이면서 손을 건네니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면, 이번에는 당혹스러움, 공포, 불신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뭔가 잘못 말한 건가…싶지만, 그녀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도 하고…. 이때까지 당해온 일을 생각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흐음….
기껏 일어섰지만, 그녀의 반응이 신경 쓰이기에 다시한번 쪼그려 앉으면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줘봐요. 손.”
내가 한 말을 못 믿어서 그런 걸까 잠시 머뭇 거리기는 했지만, 이내 손을 내밀어 줬다.
가늘고 거친 손이다. 거친 느낌이 아니었다면 정말 예쁜 손이었을 것이다.
“강압적으로 말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갈 곳이 없다면, 가자는 건데…. 뭔가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냥. 두고가면 제가 불편할 것 같아서 이러는 것뿐이니까. 싫으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단지 그 뿐이다. 그냥 두고 가면 내가 불편할 것 같아서…. 곤경에 처한 사람, 아니 엘프를 그냥 두고 가기에 신경이 쓰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지만, 여전히 없었다.
역시 신뢰를 못 준 것일까?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으니….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다시한번 일어서려 하지만, 나를 잡아당기는 손길로 인해서 똑바로 서지 못하고 약간 숙인 채로 서게 되었다.
“어?”
잡아 당긴다라는 표현 보다는, 내가 손을 잡아줬던 그 상태에서 멈춰 있는 상태였다.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힘이 강한 것 같은데….
일단 무언가 의미 전달을 잘못 했나 싶어서 다시 한번 더 물어봤다.
“어….같이 가실래요?”
고개를 위아래로 천천히 흔드는 그녀.
다행인가…?
“그럼 가요.”
내 말에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키가 컸다. 지혜 씨 보다 조금 크려나…?
그녀의 팔과 다리는 매우 얇다고 느껴지며 굴곡이 느껴지는 몸매였다. 괜히 얼굴이 빨개진다.
이제 대려 갈까 했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웅크려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서고 보니옷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옷이라 부를 수도 없다. 천 두 장을 적당히 매듭지은 상태?
천에는 핏자국이 가득 했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상처는 아닌 듯하였다.
게다가 앞 뒤 두장으로 이루어진 천을 적당히 연결해 둔 옆 매듭으로부터 흘끗 보이는 그녀의 신체가 시선 처리를 곤란하게 만든다.
이런 것을 보려고 도움을 준 것이 아닌데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기에 내가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어서 걸쳐 주었다.
“사이즈가 안 맞겠지만, 이거라도 걸쳐 입으면 괜찮을 거예요”
내가 걸쳐준 옷을 멀뚱히 보다가 다시한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아…!
“일단 손 줘봐요.”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리고 다시한번 멀뚱히 바라본다.
아, 이거 생각보다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자, 가요.”
손을 잡고 당기듯이 걷자 따라오기 시작하였다.
코코아도 마시고 몇 번 잡아줘서 그런지 그녀의 손에서 조금의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손을 잡은 채로 상가를 벗어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