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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89화 (89/140)

〈 89화 〉 퇴근 길(4)

* * *

엘프 여성은 생각보다 험하게 살아왔는지 씻는 다는 것 자체를 물로 세척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시 들어가서 씻어라 하여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그녀를 씻기기로 결심하였다.

‘그래 최대한 씻기기만 하는 거야…. ‘

그렇게 다짐 하고 화장실에 들어 갔다.

***

남을 씻긴다는 행위는 의외로 힘든 일이다.

거품이 눈에 들어가지 않게 신경을 쓰거나, 물 온도를 신경 쓰거나 혼자 씻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사소한 것들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게다가 그녀의 민감한 곳을 씻을 때는 그녀에게 지시하는 형태로 최대한 내가 만지기를 피하였다….

흥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그리 하였다.

다 씻기고 나니 뭔가 허무하면서도심적으로 지친 기분이다.

이런 나의 상황도 모른 채로 그녀는 얇은 이불을 감은 채로 방안에 앉아 있으며, 나는 그녀의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그녀의 체격이 커서 맞는 옷이 없기에 여름 이불을 돌돌 말아 두는 임시 방편을 썼다.

누군가의 알몸을 본다는 것 자체가 조금 그렇기도 하고….

그렇게 머리를 말리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뜨거우면 말해요.”

“응, 뜨거운 거…. 잘 참아.”

으음, 그녀의 답변을 들으면 상상이상으로 고난이 될 듯한 기분인데…. 일단 그녀의 머리를 말리면서 말을 걸어 보았다.

“뒷골목에 왜 앉아있었어요?”

“몰라, 그냥 위험하다 느껴서. 달렸어…. 그러다 힘들어서 앉았어.”

지쳐서 앉아있던 그때 나를 만났던 것인가?

일단 주인이 있는지 물어는 봐야 겠다.

질문을 하기 위해서 쓰는 단어지만 주인이라…. 뭔가 어감이 그리 썩 좋지만은 않았다.

“저어…혹시 그러니까… 주, 주인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 밑에서 일 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주인? 몰라 처음 들어….”

“아으, 그러니까 평소 주변에 사람 없었나요?”

“…? 있긴 했어. 파란 옷 입은 사람. 매일 번갈아 가면서 일 지시했어.”

약간 대화 능력이 떨어지는 기분인데….

일단 그녀의 대화를 종합해 보면 누군가의 전속 노예가 아니라 공장이나 생산 관련에서 일하던 엘프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곳에서 어떤 일을 했어요?”

“매일…. 천을 만지면서 옷 만들 었어. 응, 천을 자르고재봉했어.”

아, 직업…이라 표현하기에도 애매하지만, 그녀는 공장에 소속되어 있었나 보다. 하지만, 공장에 소속된 엘프가 이런 상가 쪽에 올 일이 있던가…?

묻기도 애매하여서 반쯤 말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계속 만져 주면서 말리고 있으니,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는 계속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공장 이제 없어.”

“네?”

“그리고 다들 사라졌어.”

그녀의 몸은 성인이었지만, 어린 아이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아마 공장이 없어지고 같이 일 하던 엘프들이 없어졌다는 말일까?

뭔가 찜찜한 기분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좀더 세심히 만지면서 질문을 계속 하였다.

“다들이면…. 같은 엘프들인가요?”

“응, 친구들 안보여.”

공장이 폐업해서 엘프들이 처분되었다는 의미일까. 그냥 뿔뿔이 흩어졌다는 의미일까…? 후자 쪽이길 기원하면서 대화의 주제를 돌려 보려 하였다.

그래도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어떤 대화를 할지 모르겠다는 점…? 그래서 그녀에 대한 점을 물어보았다.

“으아! 우울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언제부터 옷을 만드신 건가요?!”

“언제…? 몰라. 매일 천을 만져왔어.”

“어…으, 음. 그런가요!”

그녀는 인지하지 못하였지만, 묻고 난 뒤 생각 해보니, 물어서 안될 질문이었다.

미나 씨 일도 그렇고….나 사실….대화실력이 부족한 걸까…? 바…. 바 마스터로 실격 아니야…?

하아…. 어찌됐든…. 이미 물어본 것은 어쩔 수 없고….

그녀의 말로 추축하면, 그녀는 게이트 출신이 아니라 이곳에서 태어난 엘프 같았다.

발음이나 말 자체는 괜찮은데…. 대화 내용 자체가 단순한 어휘를 쓰는 느낌에 조금씩 끊기는 기분이다.

아마, 노동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대화가 통할 정도로만 가르쳤겠지….

그녀는 자각이 없는 것 같지만. 이 이상 물어보기 애매하여 그냥 머리나 말려주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머리카락은 먼지 투성이에 퍼석퍼석한 느낌이었지만, 종족이 달라서 그런 것일까? 한번 씻기만 하였는데 금 실 같은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카락이 정말 얇아 손으로 만질 때마다 부드러운 털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의외로 머리카락 만져주는 행위 자체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계속 질문을 했다가 나만 우울해질 것 같아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말리는데 집중을 하였다.

***

역시 머리카락이 길면 말리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나 보다.

타인의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말린다는 경험을 처음해서 그런지, 최대한 뜨겁지 않은 온도로 하였다.

뜨거운 온도로 머리카락을 말린다면, 그녀는 열풍을 참으면서 가만히 있을 것 같아서 그리 하였다. 그래서 시간이 더 걸린 것일지도.

그녀는 뭔가…. 몸은 성인이지만, 행동은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성격은 유순한…. 백치미가 느껴지고 있었다.

백치미라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성장한 환경이 이렇게 만든 것이겠지….

그렇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 말려서 그녀의 귀에 난 상처를 보기 위해, 자리를 앞으로 옮기니 내 팔목에 끼고 있는 팔찌를 보고는 질문을 해왔다.

“너, 그거 뭐야…?”

“이거요?

“응…. 좋지 않은 느낌.”

팔을 들어서 팔찌를 보여주는데, 그녀의 표정은 ‘왜 이런 것 하고 있어?’같은 순수한 의문을 가진 표정이 되었다.

이종족은 기감이 좋다 던데, 팔찌의 효과를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일 지도 모르겠다.

능력을 억누른다는 시점에서 좋지 않은 물건은 맞으니….

“타인한테는 좋지 않을 지 몰라도. 저한테는 필요한 팔찌랍니다~.”

“좋지 않은 건, 안 좋은 거.”

팔찌가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며 나를 신경 써주는 듯한 말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팔찌를 뺄 수는 없었다.

설명하기 난감한 주제라서 그녀의 말을 살짝 무시하면서 말을 돌렸다.

“팔찌 이야기보다. 상처 난 귀 좀 이쪽으로 향하게 해봐요.”

“응.”

내가 지시를 하자 얼굴을 돌려서 귀를 보여줬다.

어….

씻길 때는 너무 더러워서 알지 못하였지만, 생각보다 상처가….

이런 지식은 없지만, 잘린 절단 면과 딱지부분의 경계에서 조금씩 피가 흘러내리는 모양이….

아무리 봐도 생긴지 며칠 안된 상처였다.

겹겹이 굳어 쌓인 피 딱지가 앉아있어서 상처부분을 직접 건들 수는 없지만, 상처와 조금 떨어진 귀를 만져보니 씻길 때 만져본 그녀의 피부 체온 보다 뜨거웠다.

내 손이 귀에 닿자 귀가 위아래로 움직이려 하였지만, ‘읏’ 하는 소리와 함께 귀의 움직임이 멎었다.

원래 엘프의 귀가 이렇게 뜨거운가 싶어서 손을 뻗어 상처가 없는 반대쪽 귀를 만져보니, 차가움이 느껴졌다.

하…. 뭐라고 말 해야 할지….

“안 아파요?”

“아픈 거. 잘참아.”

“아니…아픈지 물었잖아요. 그보다 고개 원상태로 돌려도 괜찮아요….”

“…응.”

잘 참는다는 말에 조금 언성이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내 전생은 조금 꼬인 기분이다.

차라리 헌터가 되지 못한 것에 감사를 하고 있다.

나의 능력 또한 이런 현실과 직면하지 못하게 막아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쓰읍. 화 난 거 아니니까 눈치 보지 마세요.”

“??”

단어가 어려웠던 것일까?

그녀의 볼을 양손으로 감싸듯 잡고는 얼굴을 쪼물딱 거려봤다.

종족 사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드러운 피부에 탱탱한 볼살이다.

내가 쪼물딱거리고 있으니 그녀의 긴장은 풀린 듯하지만,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그래 차라리 이 표정이 낫지.

이제 머리를 말리기 전부터 준비해온 약상자를 열어서 소독제를 꺼내었다.

이미 절단된 귀의 단면에 단단하게 굳어 있는 상처 딱지를 비전문가인 내가 건들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상처감염이라는 만약이라는 것이 있어서 솜에 소독제를 듬뿍 붓고는 그녀의 상처 부근에 톡톡 치듯이 상처 소독을 시작하였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봐요.”

“나. 잘 참아.”

예상 범위의 답변이었다.

그래도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지, 솜이 상처 근처에 닿을 때 마다 몸 전체가 움찔 한다.

그 외에도 잔잔한 상처나 흉터가 몸 여기 저기에 나 있지만, 귀의 상처에 비교할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소독을 하면서 정말 궁금해서 상처의 경위에 관해 묻게 되었다.

“어쩌다 상처 난거래요…?”

“몰라.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처분’ 전에 없애는 편이 좋다 해서 가위로 잘랐어.”

“아….”

그녀는 분하지도 않는 것일까? 체념을 한 것일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일까?

자신이 당한 일을 그저 덤덤히 말할 뿐이었다.

이러한 대답에 어떻게 말할지 몰라, 조용히 소독을 하였다.

그녀의 절단된 상처 외에 그녀의 양해를 얻어서 그녀 몸에 난 다른 상처도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주니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상한 것일까 세상이 이상한 것일까?

대답은 ‘모르겠다.’ 이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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