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90화 (90/140)

〈 90화 〉 퇴근 길(5)

* * *

상처를 소독했으면 밴드를 붙일 차례인데 귀라는 특성상 어떻게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일단 그녀의 귀에 연고를 듬뿍 바른 뒤, 거즈를 붙이고 대형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쁘지 않은 상태다.

“자 이걸로 끝인데 귀에 이상한 느낌이 들거나 하는 그런 문제없죠?”

말없이 끄덕이는 그녀, 있어도 말하지 않았을 것 같다.

상처 처리는 다하니 뭘 할지 고민하던 그때, 꼬르륵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뭐라도 드실래요?”

“…응.”

이런 상황에 배에서 소리가 났다면 부끄러울법 하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신으로 화장실을 나온 것도 그렇고 수치심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잠시만 기다려 봐요.”

배가 고프다고 하니까 냉장고를 열어 보는데…. 냉장고 안은 텅 비기 직전이었다.

아니…. 그 장보는 게 귀찮기도하고….

요 며칠 정도는 열심히 장보거나 했다! 공교롭게도 오늘 딱 냉장고가 비기 직전일 뿐이다…!

끄으응…. 변명은 그만두고 냉장고에 남아 있던 샐러드 팩을 꺼내어 보았다.

1인분이니까 이거 하나면 충분하려나?

엘프 = 채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부족한데…. 으음, 역시 귀찮을 때 단백질 쉐이크 정도면 충분 하겠지…?

그녀는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나를 멀뚱히 관찰하면서 앉아 있었다.

집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지혜 씨와는 다른 느낌이라 생소한 기분이다.

지금 생각하면 지혜 씨는 무슨 생각으로 집안에 들인 거지…? 결과적으로 사귄다는 선택지로 이어져서 괜찮았지만…. 지혜 씨가 안 좋은 마음이라도 먹었다면…어후….

그와 반대로 지금 내 방에 앉아 있는 엘프는 그 어떤 일도 없을 느낌이다.

뭔가 말 잘 듣는 강아지 같은 느낌인데 기분 탓이라 생각하자.

일단, 야채만 먹이기는 너무 그래서 단백질 파우더 통을 꺼내지만 코코아 맛이라 써져 있지만, 일반적인 코코아 맛이 아니다…. 뭔가를 넣지 않으면 그리 좋은 맛은 아니다.

가게에서 나올 때 만든 위스키를 넣은 코코아 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만들어야겠다.

샐러드 팩은 너무 차가우면 좀 그러니까 잠깐 싱크대 위에 올려 두고는 쉐이커로 사용하기 위해서 원형 밀폐 통 하나를 꺼내 었다.

평소라면 가루에 물만 타 마시겠지만, 그렇게 주기에는 조금 가혹하다 생각하여서 차가운 우유를 먼저 부었다.

가루를 먼저 넣으면 섞을 때 정말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가루가 벽면에 들러붙어서 젓가락 같은 무언가를 사용해야 하고…그러면 설거지 거리가 늘어나서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 최대한 간단한 게 정답이다.

일단 우유를 넣었으면, 이번에는 바닐라 시럽만 두세펌프를 넣었다. 헤이즐넛 시럽은 가정에서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바닐라 시럽을 넣었다고는 하지만단백질 파우더 그 특유의 맛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라 튜브에 담아둔 꿀을 꺼내어 조금 많~이 넣었다.

차가운 우유에 잘 안 섞이겠지만 미친 듯이 흔들어 대면 해결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파우더를 쉐이커 통에 한 스푼을 넣었다.

으음…. 막상 다 만들어 가던 도중에 드는 생각인데, 엘프가 이런 거 먹어도 괜찮…나?

뭔가 상상속의 엘프는 야채나 과일만 먹는 이미지인데, 나 스스로 그 이미지를 깨는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

냉장고에 든 게 없어서 어쩔 수 없다지만….

일단 쉐이커 통을 닫고는 한참을 흔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멀뚱히 바라볼 뿐이다. 질문을 먼저 하지 않는 성격인지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것인지….

그렇게 완성된 단백질 쉐이크와 샐러드 한팩…. 어…. 요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나…?

재료가 없어서 요리를 못 한 것이 민망하기는 하기는 한데…. 자고 일어나서 장부터 봐야 겠다.

“자, 냉장고 상황이 빈약하긴 한데, 이거라도 드세요.”

그렇게 쉐이커통과 포크가 들어 있는 샐러드 팩을 건네어 주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이게 무엇인지 모르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어…혹시 모르시나요?”

내가 쥐여 준 그대로 이불을 잡은 채로 얼굴을 위아래로 끄덕이는데.

어떤 삶을 살아 온 건지….

하는 수 없이 샐러드 팩을 뜯어서 포크를 그녀에게 쥐여 주려는 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바로 그녀가 걸치고 있는 이불이 문제였다.

포크를 쥐고 다른 손으로 팩을 쥔다면, 자연스레 이불이 걸쳐진 모습이 될 것이며…. 그녀가 이불을 잡아주지 못한다면….

…음.

막상 생각해 보고 나니 ‘그게 뭔 대수라고.’ 라는 기분이 든다.

뭔가 한 생명체를 도와주려는 상황에 이상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닐까? 아니 내가 이상한 것인가? 아니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어라…? 이상한 건 혹시나…?

최대한 번뇌를 버리고 그녀가 쥐고 있는 이불을 놓게 한 뒤에, 이불을 어깨에 걸쳐 주었다.

“손 줘 봐요.”

“응.”

지시를 하자 즉각적으로 손을 앞을 향해 완전히 뻗었는데…. 이불이 그대로 흘러내렸다.

잠시간의 정적…. 아니 나만 굳은 거였다. 그녀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손을 뻗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오늘 하루만 여기서 재우고 경찰서든 보호소든 맡길 만한 장소에 갈 생각이었는데…. 뭔가 갈 길이 먼 것같이 느껴졌다.

다시 한번 이불을 걸쳐 주면서 먹을 것을 챙겨 주었다.

“너무 펴지 말고 반만 펴요. 그리고 포크랑 팩 받으세요.”

“? 이거 뭐야…?”

무엇인지 물어보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식사니까 한번 먹어봐요.”

“배급…? 알았어.”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샐러드를 먹으려 하지만 포크를 쓸 줄 몰라서 헤매고 있었다.

포크부터 가르쳐 줘야 하나 싶던 그때, 그녀는 바닥에 포크를 조심스럽게 올려 놓더니 손으로 샐러드를 조금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샐러드 같은 채소를 처음 먹는 것인지. 처음 먹는 음식처럼 탐색을 하듯이 천천히 씹기 시작하였다.

토끼가 풀을 씹어 먹는 것 같은 느낌? 그렇게 몇 번 입을 오물거리고는 음식물을 삼켰다.

삼키고 난 뒤 샐러드를 지그시 바라보는데,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걸까?

다른 거라도 챙겨 줘야 하나 싶어 걱정하던 그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마, 맛있어….”

이때까지 대화가 수동적인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녀 스스로 내뱉은 첫 말이었다.

내가 맛이 어떤지 물을 새도 없이 그녀는 손으로 천천히 먹기 시작하였다.

아. 드레싱 포장을 안 뜯어 줬는데…. 풀 쪼가리라도 정말 맛있다는 듯이 먹는 그녀를 보고는 마음 한켠이 먹먹해져서 그냥 먹는 것을 바라만 봤다.

***

맛이 있어서 천천히 먹은 건지, 원래 천천히 먹는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다 먹어가던 그녀에게 질문 하나를 하였다.

“평소에 어떤 밥을 먹었나요?”

토끼처럼 우물거리던 그녀는 내 말뜻을 모르는 듯이 멀뚱히 바라보다가 입안에 들어있는 음식물을 삼키고 말했다.

“밥…? ‘배급’말해?”

밥보다는 배급이라는 단어를 썻구나….

“네 그거요. 어떤 음식을 드셨나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샐러드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약간 풀이 죽은 듯한목소리로 변하였다.

“하얀색 액체 같은 것. 이상한 맛…배급했어. 언제나 같은 맛….”

“아….”

그녀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죽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영양을 빠르게 공급하는 방법으로 밥을 줘왔던 것이다.

그녀에게 주려고 만들었던 단백질 쉐이크가 생각이 나는데…. 아무리 달게 만들었 어도 그녀가 말한 배급과 비슷한 무언가였다.

누구는 강제 배식을 당하는 물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편하게 먹기 위해서 만드는 물건이라….

“잠시만 기다려 봐요. 마실 것 가져올게요.”

“마실 것…? 응. 나 잘 기다려.”

이건 줄 수 없겠다 싶어서 바닥에 두고서 마실 것을 주기 위해서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방에서 물만 주기에는 안타까워서 무엇을 줄지 고민하던 그때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새벽이 다 돼 가는 시간에 문자라니? 누군가 싶어서 문자를 확인하니 지혜 씨가 아니라 수아였다.

­오빠! 괜찮아??

수아의 문자인데…. 괜찮냐니? 너무 뜬금없는 문자라 그런지 조금 당황은 했지만, 수아 나름대로 걱정이 있어서 보낸 것이라 생각하며 답장을 하였다.

­응? 갑자기 왜?

­아니, 집에 잘 갔는지 걱정돼서 연락해봤지~.

­벌써 집이야 별일 없었어 :D.

­그럼 괜찮은 거네? 다행이다! 내일 봐!

최근 들어서 그냥 문자 하는 빈도가 증가한 것 같다.

이렇게 실없이 문자 하는 애가 아니었는데….왜지?

으음, 정아연 기자 일도 있다 보니 문자를 한 것일지도…?

일단은 그녀에게 줄 음료부터 고민을 하려던 찰나, 핸드폰을 들은 김에 인식표와 목줄이 제거된 경우에 관해서 검색을 하기 시작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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