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91화 (91/140)

〈 91화 〉 퇴근 길(6)

* * *

잠깐 조사한 내용은 그리 좋지 않은 내용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보호소라던지 경찰서에 데려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말한 것을 토대로 옷 공장 관련으로 검색을 하니, 관련 뉴스가 바로 나왔다.

뉴스에는 점거 중이던 게이트에 지어진 옷 공장 하나가, 정부에 게이트 사용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하여 폐업 절차에 들어갔다고 한다.

폐업 절차로 인하여 일하고 있던 인부는 일자리를 잃었으며, 이종족의 경우 경매에 넘기거나 폐기 처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인식표나 목걸이를 제거한 엘프의 경우가 폐기처분에 해당하고…. 폐기 방법은 폐기업자 마음대로라….

고개를 돌려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여전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귀여웠다.

그냥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하나?? 이대로 보낸다면 어찌되었든 폐기 당할 확률이 높은데….

수아와 마신 것도 있기에 슬슬 잠이 오는데…. 자고나서 생각 해볼까?

그보다 마실 게 뭐가 있을까….

막상 주려고 보는데, 집에 있는 음료는 우유나 술 정도다.

잎차 종류? 그런 정리하기 귀찮으며 관리하기 힘든 물건은 집안에 두지 않는다. 자주 마셔야 관리가 되는데 잎차는 막상 집에 들여놓으면…. 어째서인지 손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엘프는 뭔가…. 잎차를 마시는 이미지가 있는데 뭔가 아쉽네.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감정이 복잡하게 밀려오기 시작하는데…. 술을 줄 수도 없고…. 응, 그래 그걸로 하자.

이번에도 핫초코를 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만났을 때 잘 마시기도 했고…. 이번에는 단백질 파우더도 아니고, 술을 넣은 코코아도 아닌 일반 적인 핫초코다.

만드는 방법이라 할 것도 없다.

뜨거운 우유에 핫 초코 믹스파우더를 한 팩 넣는 정도다.

그렇기에 우유를 잔에 부으면서 처음 마신 음료가 어떠하였는지 물어봤다.

맛없었다면 다른 음료로 바꿔야지.

“처음에 마신 거 어떠셨나요.”

“? 처음? 맛있어…!”

맛있었다면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입맛을 신경 쓰지 않고 만들기만 하면 된다.

우유 한 컵을 전자레인지안에 넣어서 1분 정도 돌려준 후, 전자레인지에서 잔을 꺼내니 우유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였다.

귀찮음에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처음 마셨던 음료가 괜찮았다고 말 해줬으니 핫초코 믹스파우더 한팩을 뜯어서 우유가 들어있는 컵 안에 부었다.

갈색의 코코아 가루와 흰색의 설탕가루가 혼합된 파우더가 우유가 담긴 잔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 흰색의 우유가 천천히 진한 갈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파우더를 다 넣자 잔 위에 떠오르는 마시멜로 조각들. 이제 스푼으로 살짝 저으면서 가라앉은 가루와 마시멜로를 녹여주면 완성이다.

가게에서 만든 핫 초코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핫 초코이지만, 이쪽이 좀더 걸쭉한 느낌을 주면서 강한 단맛을 낼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핫 초코를 들고 가는데, 그녀는 여전히 앉은 자세 그대로 있었다.

이불 사이로 보이는 나신이 조금 신경 쓰이는데…. 그보다 옷이라….

화장실 앞에 비닐 봉지에 담아둔 그녀의…. 옷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천 쪼가리는…. 그녀의 피가 아닌, 오래전부터 굳어 있던 피의 흔적들이 잔뜩 묻어 있었기에 일반적인 옷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 상상이 과한 것일 뿐이고…. 그냥 잠깐 입혀진 옷이겠지…? 그렇다고 믿고 싶다.

어찌되었든 지금 이 시간에 옷을 살 수도 없으니, 내일 장을 보면서 옷도 적당한 옷이라도 사야겠다.

“자, 이거라도 드세요.”

그렇게 핫 초코를 내밀자 그녀는 잔을 받았지만, 무엇인지 몰라서 냄새부터 맡기 시작했다.

“골목에서 마신 핫 초코에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든거긴 하지만 마실만해요.”

“핫 초코…?”

“네~ 핫 초코라고합니다~.”

“응, 핫 초코….”

본인 나름의 탐색을 끝냈는지 한 모금 마셨다.

핫 초코를 마시던 그녀는 갸웃 하면서 귀가 조금 쳐진 뒤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맛…. 달라.”

처음 마셨던 맛과 다른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생각보다 귀엽네….

엘프라서 그런 걸까? 지혜 씨도 저런 표정을 지으면 귀엽겠지?

그보다 맛이 다르다…? 카카오 파우더가 다르다지만 같은 음료인데…? 이쪽이 좀더 진한 맛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렇게 고민하던 도중 한가지 다른 점을 알았다.

그냥 원래 그런 음료입니다~. 라고 말 할지. 한가지를 추가해줄지 고민을 하다가, 괜찮겠지 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물었다.

“처음 마셨던 맛이 괜찮았나요?”

“…응. 따뜻한 맛…좋았어.”

“위스키라는 술을 넣은 건데…아까 마셨을 때 몸이 흔들리거나 하는 느낌 없었나요?”

“…? 그런 느낌 없어.”

위스키가 들어간 핫 초코라면 마셨을 때 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으음, 엘프는 술에 강한 걸까? 아니면 자각이 없었던 것일까….

어느 쪽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정도야 취하지는 않겠지 싶어서 그녀 옆에 전시 되어있는 술병들을 뒤적이면서 위스키를 찾기 시작했다.

최근에 집안을 정리했다고 하지만, 술병에 먼지가 벌써 금새 쌓이기 시작한 것이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지혜 씨가 보면 잔소리를 하려나? 아니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말을 안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남아있는 위스키 중 핫 초코에 섞어 마셔도 상관없는 위스키 하나를 꺼냈다.

이번에도 가장 무난 무난한 아이리쉬 위스키다.

음료에 있어서 재료의 개성이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제일 개성이 없는 재료로 음료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본인의 취향을 찾아서 개성이 있는 재료로 넘어 가는 것이 정석이 아닐까?

역시 마신 게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졸립다. 그녀가 핫 초코를 다 마시면 일단 자야겠다.

“강렬한 피~트 향보다는 이게 좋을거랍니다~.”

“피트? 응.”

내가 뭔 말을 하는지 이해는 못하지만 대답은 계속해줘서 그런지 뭔가…. 이 말을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뭔가 키우는 느낌이 강렬하게 든다.

키운다라….

보호소나 경찰서에 신고를 해봤자 좋은 꼴을 못 볼 것이 분명하고…. 결국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보면, 지혜 씨가 말한 인권단체가 생각이 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누군가의 권리를 되찾아주는데 관심이 없다.

최근까지 내 멘탈이 반쯤 날아간 상태였는데, 누가 누구를 불쌍하게 여겨?

내 정신건강 챙기기도 바쁘다.

그렇기에 최근에 좋은 생각 즐거운 생각, 혹은 일 등으로 어떻게든 멘탈을 잡으려 하지만, 한 번에 바뀌지는 않는 것인지 가끔 안 좋은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말이다.

내 눈 앞에 있는 엘프를 내가 책임지고 보호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다른 엘프들까지 책임질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구해온 엘프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이대로 보내면 꿈자리가 사나워질 것 같기 도하고….

말은 잘 듣는 쪽인 것 같으니까 가게일 좀 같이 하면 되겠지.

어라, 인건비 굳은 건가?

“아차, 잠깐 생각한다고 안 드렸네요. 들고 있는 잔 이쪽으로 내밀어 봐요.”

“응.”

그녀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가 핫 초코에 위스키 넣어주는 것을 깜빡 하였다. 이놈의 취기….

내 말에 얌전히 잔을 내밀어 주는데, 핫 초코 맛은 살리되 취하지 않을 정도로 위스키를 조금 부웠다.

“자, 마셔봐요. 코코아 파우더가 달라서 처음 마신 것과 완전히 같은 맛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맛은 날거랍니댜~.”

이번에도 냄새를 맡고는 이 향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핫 초코 한 모금을 마신 그녀는 맛을 보더니 조금씩 마시기 시작하였다.

믹스 파우더를 활용한 핫초코라서 위스키가 없어도 엄청 달달한 맛일텐데…. 처음 마셨던 위스키를 넣은 핫초코가 뇌리에 강렬히 남았던 것일까?

“위스키를 넣은 쪽이 더 맛있나요?”

“응! 인간 처음 나에게 줬어. 그래서 더 좋아.”

“어…아니 뭐…으음. 그냥 보여서 준 것뿐인데요.”

표정에 변화가 적었던 그녀는 내가 물은 질문에 베시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번 대답이 이때까지 들은 대화 중 가장 밝은 톤의 목소리였다.

본인은 자각없이 말한 것 같지만…. 왠지 모르게 듣는 내가 얼굴이 화끈해지는 말이었다.

본인은 순수한 의미로 말했는데, 내가 이상하게 받아들인 것일지도….

괜히 머쓱해진 느낌에 그녀의 옆에 앉아 침대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애매하게 남아있는 위스키의 병목을 잡고는 그대로 마시기 시작하였다.

흔히들 말하는 병나발이다.

위스키가 애매하게 남아 있다면, 기분내기용으로 이렇게 마시면 재미가 있다.

한 번에 취할 양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안 취할 양 또한 아니었다.

위스키를 넣은 핫초코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마시고 있으니 오묘한 기분이 든다.

뭐, 괜찮겠지.

그보다 그녀를 데리고 살기로 했으면 계속 그녀라 부르기도 애매한데…이름이라….

….

그녀의 이름을 생각하다가 자버린 것일까?

눈을 뜨니 다음날이었다.

“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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