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93화 (93/140)

〈 93화 〉 출근 전 소소한 일상 이야기?(2)

* * *

식음료 코너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는데, 야채를 맛있게 먹던 모습이 생각나서 샐러드 채소를 보기 위해서 신선식품 코너에 섰다.

평소라면 샐러드 팩으로 적당히 구매하겠지만, 누군가에게 준다는 목적을 가지고 와서 그런지 조금은 고민이 된다.

손질 안 된 야채류를 구매할지 적당히 타협해서 샐러드 팩을 구매할지….

생각해 보니 그녀나 나나 아침을 안 먹은 상태였다. 너무 당황하면 그럴 수도 있지.

까짓 것 나도 먹는 거니까 손질 안 된 야채를 사는 편이 싸게 먹힐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적당히 구매를 하려다 그녀가 엘프였던 것을 생각 하고는, 엘프 게이트 쪽에서 생산되는 특산품 몇 개를 샀다.

씹을수록 달고 짠맛이 나는 부드러운 야채나, 과육이 이곳보다 크고 튼실한 사과 등등. 신선한 야채라면 역시 엘프 쪽 생산품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엘프 외의 종족의 특산품들은…. 대부분 육류나 광석류가 많았다. 기껏 해 봐야 채식하는 수인이 주 종족인 게이트에서 특별한 채소가 재배된다고 하지만 채식하는 수인이 주 종족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시중에는 유통이 되지 않는다.

일단 식료품 코너에서 야채류를 적당히 담은 뒤 육류 코너로 넘어 가려다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엘프도 육식을 하나…? 하겠지?

으음, 고기라…. 어떤 것을 살지 고민하던 그때. 오픈 직후라 시식코너 자체가 없을 줄 알았는데, 시식코너를 준비하고 있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총각. 장보는 거야? 그럼 드워프제 멧돼지 뒷다리살 훈제 어때?”

“네?”

갑작스러운 판촉행위에 당황을 하였지만, 아저씨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듯이 진공 포장 되어 있지만, 거대한 뒷다리살의 발목을 잡으면서 나에게 보여줬다.

둔기로 써도 문제없을 정도로 거대한 뒷다리였다. 휘둘러도 되나? 훈제를 해서 이 정도 크기라면 생고기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게이트의 동물의 생태가 궁금하니까 다음 주 수아와 놀러 갈 곳은 동물원 같은 곳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나의 궁금해하던 반응이 좋았던 것일까? 아저씨는 신나서 제품을 광고하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처음 입고돼서 말이야~ 기다려 봐! 지금 전원 넣었으니까 조금 구워 줄게.”

“아, 네.”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도 팔찌 덕분이라고 하지만 당혹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기에 팔찌를 바로 빼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그래도 이게 일상생활 인가 싶은 기분이 들어 나쁘지만은 않았다.

시식코너의 아저씨는 도마 위에 거대한 훈재 뒷다리살을 올린 뒤 조금 잘라서 불판 위에 올렸다.

고기가 익는 소리와 함께 향신료 냄새가 올라왔다.

그리고 시작된 판촉행위.

“어휴, 이게 처음 입고됐을 때 다들 뭐라 한 줄 알아? 고기가 아니라 무기코너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들 하던 게 어찌나 웃기던지 일단 드워프가 주 종족인 게이트에서 사냥한 멧돼지인데 엄청 거대한가 봐, 그걸 드워프들이 먹는 방식으로 훈재해서 말이야……”

그리우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나는 그저 ‘네’, ‘그러네요.’ 하면서 맞장구쳐주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간 그의 수다를 들어 주니…. 물건을 파는 행위 보다는 수다스러운 잡담으로 변질되었다.

지금 시간에 장 보러 나온 것이 요즘 주부 치고는 대견하다를 시작으로 내조를 잘해야 한다 등…. 내가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새댁으로 보였나보다.

“자~ 다됐네 한번 먹어봐. 아내한테 먹이면 술이 아주 솔솔 들어갈 거야. 그리고 그날 밤~흠흠.”

“아, 감사합니다.”

나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새댁으로 보고 있는 것은 확정이었다.

일단 받았으면 먹어봐야겠지 하고 한입 먹어 봤는데, 훈재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씹을 때 육즙이 입안에 흐르면서 이국적인 향신료의 맛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거 좀 더 바싹 익혀서 맥주나 위스키 안주로 써먹어도 문제없을 정도의 맛이었다.

가격은 게이트 생산제라 그런지 엄청 쌌다. 그렇다면 고민할 이유도 없다.

“한 개 주세요.”

“어우 고마워~. 다음엔 서비스 줄 수 있으면 팍팍줄 테니까~!꼭 와!”

드워프와 엘프는 상성이라고 하지만 술과 같이 먹고 싶은 마음에 구매를 해 버렸다. 뭐…괜찮겠지?

육류도 구매했으면 다음은 주류 코너겠지만, 오늘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 패스하고 넘어가기로 하였다.

***

주류코너를 패스하고 도착한 곳은 의류・방어구 코너였다.

보호장비가 잘 팔리는지,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런 것들을 무시하면서 일반 옷 진열장 쪽으로 갔다.

…아…!

지금 와서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는데, 그녀의 알몸을 보고 어제 오늘 당황한 나머지 그녀의 신체 사이즈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으음, 겉옷은 셔츠나 면바지를 조금 크게 산다 하더라도 속옷이 문제다….

직접 만져 본 것으로는 사이즈를 알 방법이 없고….

아! 대충 지혜 씨와 비슷한 사이즈였으니 물어보면 될…까?

이전 세상에 여성에게 묻는 건 실례지만, 여기서는 괜찮겠지?

­지혜 씨 안 바쁘세요?

일단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걸릴 줄 알았으나 바로 답신이 왔다.

­네! 저어언혀! 안 바빠요! 훈련 쉬는 중이에요! 거짓말 아니에요!

­그럼 속옷 사이즈 좀 알려 주실수 있나요?

아, 너무 직설적으로 물어 봤나 싶지만…. 사귀고 있으니 상관없을지도?

­ㄴ ㅔ? 잘못 보내신 거 아니죠?

역시 물으면 안 되는 거였나…?

아니면 너무 뜬금없이 물어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네 지혜 씨 가슴 사이즈요. 몇 이예요?

이번에는 답신이 바로 오지는 않았다.

본인 사이즈를 지금 확인 중인가 싶어서 여성 속옷 코너에서 진열된 속옷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어느 것을 사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내성이 없는 것인지, 벌써 장을 보고 있는 몇몇 남성들은 여성속옷을 적당히 고르고 지나가는데, 어떤 속옷을 살지 몰라 헤메고 있는 나를 보는 눈빛이 그냥.... 아빠미소가 한가득 하였다. 아니면 젊은 신혼집 보는 눈빛?

결혼도 안 했는데 이런 복잡 미묘한 시선을 받는 게 정신적으로 타격이 좀 있다.

일단 속옷은 무난하 게 무늬가 없는 흰색으로 할까 생각하던 그때, 지혜 씨로부터 문자가왔다

­어….■컵 ■■인데요?

­아! 고마워요! 일단 출근 후에 다음 주 일정 알려 드릴게요!

­어…어디쓰시려고 물으신 건가요?”

­비밀이랍니다 :D

솔직히 다른 사람 속옷을 챙겨 주기 위해서 물어 봤다고 할 수는 없어서 적당히 얼버무렸다. 며칠 지나면 지혜 씨도 적당히 잊겠지 싶어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지혜 씨 사이즈와 같은 속옷을 골랐다. 팬티는 키가 있으니까 적당히 L사이즈면 괜찮겠지…? 아마 그녀가 조금 더 작을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작은 사이즈보다는 큰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선택한 판단이다.

속옷만 산 건데 벌써 지친 기분이다.

그렇게 카트를 밀고 카운터에 가려다 책코너가 눈에 보였다. 글을 조금 읽을 줄 안다고 했으니…. 온종일 집에만 있으면 지겨울 것이 분명하기에 초등학생 수준의 동화책 한 권을 골랐다.

이제 목적을 달성했으니 계산을 한 뒤 집에 가면 된다.

***

장바구니를 들고 나지막한 비탈길을 걷고 있는데…. 고기를 구매한 것은 실수였을 지도 모르겠다.

부피도 크고, 은근 무겁다.

그래도 맛있는 술을 위해서 참는다는 기분으로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정신적으로 정말 지친 기분이다.

계산대에서까지 이상한 미소로 바라보던 계산원의 표정이 정신적 데미지의 결정타였다.

내가 구매한 물품의 구성을 보고 계산대의 아저씨가 상상을 하신 것 같은데….

고기를 보고는 ‘아내분이 고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이런 대용량 고기를 사는 주부는 드문데….’ 라고 말하지를 않나.

초등학생 수준의 책을 보고는 ‘자녀분이 귀여울 때인가 보네요’ 같은 주부의 잡담 같은 대화가 오갔는데, 그때마다 맞장구를 칠 뿐이었다.

자녀라고 생각하는 대상이, 다 큰 성체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긴 했지만, 입 바깥으로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일단 집부터 가서 조금이라도 쉬어야겠다 싶어서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앉은 자리 그대로 이불을 덮은 채로 앉아 있었다.

“정말로 가만히 있었던거예요?”

“응. 말 잘 들어.”

장을 봐온 것을 바닥에 두면서 그녀에게 줄 옷을 꺼냈다.

“옷 입을 줄 아시죠?”

“응, 알아. 그리고 만들 줄 알아!”

표정 변화가 드물지만 자신이 할 줄 아는 일을 말해서 그런지 자신 있는 듯한 표정이 묻어 나왔다.

“그럼 다행이네요…. 여기요. 사 온 것들 정리할 테니까 입고 계세요.

그렇게 그녀에게 포장을 뜯은 검은색 면바지와 흰색셔츠, 속옷을 건네어 주었다.

그녀는 받은 옷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입으려 하기에, 황급히 돌았다.

그리고 장을 봐온 물건들을 들고 많이 늦은 아침을 준비할겸 싱크대 쪽으로 갔다.

알몸인 상태로 무자각하게 행동하는 그녀가 부담스럽기도 하고,지혜 씨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자리를 피했지만….

“미안. 입는 방법, 몰라….”

“네…? 악…!”

그녀의 나신을 보지 않기 위해서 기껏 자리를 피하였지만, 자신 있게 말했던 표정과 대비되게 이번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브래지어와 팬티를 양손으로 든 채로 내 옆에 와서 입는 방법을 묻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말이다….

아, 두통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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