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94화 (94/140)

〈 94화 〉 출근 전 소소한 일상 이야기?(3)

* * *

잔뜩 긴장해서 그런지 전신의 털이 바짝 세워진 기분이다.

그녀와 대치중인 상황….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답이 없다면 정면 돌파가 최선의 방법이라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하아….

깊어지는 한숨.

정말로 입는 방법을 모르는지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정말로 속옷은 처음 입나요?”

“응…. 미안.”

본인은 옷 입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였지만, 처음 보는 옷으로 인해 입는 방법을 몰라 시무룩하는 표정과 함께,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이 불쌍해 보여 뭐라 말하지 못할 상황이다.

아니 말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알고 있다 생각한 것부터 내 실수일지도 모르겠다.

“끄으응… 이리 줘 봐요.”

“응….”

그렇게 순백색의 여성 속옷을 받은 나는 복잡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

여성의 알몸을 본다고 해서 이상한 헛짓거리를 할 나이도 아니고, 길 냥이 주웠다는 마음 가짐으로 옷 입는 방법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브래지어 입는 법 정도야 광고 영상에 간간이 입고 벗는 모습이 나와서 지식상 알고는 있었다.

그렇게 옷을 입히는 데까지 성공을 하였다. 그녀도 한두 살 어린아이도 아니고, 입는 방법을 어느정도 가르쳐주니 알아서 입었다.

문제가 있다면, 팬티는 사이즈가 조금 안 맞아도 잘 입었는데, 브래지어 사이즈를 잘못 사서 그런지, 입어보더니 불편 해하여서 결국 민감한 부분을 밴드로 가리는 정도로 타협을 보았다…. 정도?

내가 브래지어를 써볼일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선인지 줄인지 뭔가 피부를 찌르는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였다.

속옷 사이즈가 작은 걸지도 모르겠네….

처음 보는 속옷에 당황을 했던 거인지, 속옷 입히는 방법을 알려주니 셔츠와 바지는 스스로 입었다.

사이즈가 전체적으로 큰 옷이지만, 흰색의 셔츠에 검은 면바지 조합. 역시 단순한 게 보기가 좋은 법이다.

옷 재질이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고 옷감을 만지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보다 씻길 때도 봤지만, 옷을 입힐 때 본 피부에 남아있는 흉터자국들을 볼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현재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니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계속 나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는데…. 흠.

“손질하는 거 좀 도와주실래요?”

“응…!”

이번에는 해내 보이겠다는 의지와 함께 아침 준비를 돕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세세하게 지시를 해 줄 필요는 있었지만 말이다.

***

양배추를 씻으면서 옷이 물에 젖거나, 엘프 게이트에서 생산된 야채를 보면서 뭔가 그리워하는 눈빛이 되는 등 사소한 일이 있었지만, 매우 늦은 아침 겸 빠른 점심인 잘 구운 훈제고기를 올린 샐러드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싱크대에서 들고 와 그녀와 같은 바닥에 앉아서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 먹었을 때만큼의 격한 감정표현이 없었지만, 이번에도 샐러드를 신기하다는 듯이…. 그리고맛있다는 듯이 먹고 있을 때, 샐러드 그릇 한쪽에 올려 둔 훈제고기 조각을 보았다.

오늘 마트에서 구매한 드워프식 멧돼지 뒷다리살 훈재다. 내가 먹었을 때는 특별히 걸리는 점은…. 이국적인 향신료 맛? 뭔가 허브향이 확 올라오면서 톡쏘는 향이었다. 술과 마시면 향이 부드러워질 그런 향신료.

허브향이 심하게 강한 면이 있지만, 샐러드와 먹는 정도면 괜찮겠지 생각하고 올렸다.

내가 먹고 싶어서 구매한 거지만, 괜찮겠지…?

고기도 처음 보는 건지, 채소류를 처음 먹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포크를 어설프게 쥔 그녀는 이번에는 고기를 신기하다는 듯이 콕콕 찔러보고 있었다.

“그것도 먹는 거니까 먹어봐요.”

“먹는 거? 응!”

매번 영양 죽 같은 이상한 음식을 먹어왔다 했으니, 고기 맛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그녀의 표정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설픈 포크질로 고기를 찔러 자신 있게 입안에 고기를 넣었지만, 몇 번 씹어 보더니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되었다.

뱉고 싶어 하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턱을 몇 번 움직이더니 꿀꺽하고 삼켰다.

“머, 먹었어…!”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는 행동인지 나에게 확인시키듯 말을 하는데…. 맛있다가 아니라 먹었다…? 고기가 입맛에 안 맞던 것일까?

샐러드를 먹다가 궁금해서 질문해보았다.

“혹시 맛 이상하던 가요?”

“으, 으응. 처음 맡는 풀 냄새. 기분 나빠.”

“향신료 자극이 강했던 걸까요…?”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면서 샐러드를 먹던 그녀는, 드워프식 훈제 고기를 먹더니 포크를 어떻게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 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안 먹으면 내가 혼낼 것이라 생각하는 걸지도.

혹시…. 육식을 못하는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내가 말없이 일어나니 무언가 오해를 했는지, 그녀는 황급히 고기를 먹으려 했지만, 일단 안 먹어도 괜찮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

일단 주방에서 찾아볼 것은…. 며칠째 먹는 것을 깜빡해서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소시지 팩이다.

며칠쯤 이야…. 진공포장을 안 뜯었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

가위로 소시지의 진공포장을 뜯은 뒤, 그것을 들고 다시 방으로 가서 그녀에게 소시지를 한 개 건네어 주었다.

“이거는 어때요?”

“이거, 뭐야?”

“금방 먹은 거랑 다른 맛인데…. 한번 맛만 봐 보세요.”

그렇게 샐러드 위에 올려주니 포크로 한껏 경계를 하면서 소시지를 몇 번 찌르며 확인을 한 뒤, 포크로 소시지를 찍어서 한입 베어 먹었다.

뭐, 전자레인지로 데우거나 하지 않아서, 고기의 향이 조금 덜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반응이 궁금해서 지켜본다.

작게 오물오물 거리는 그녀의 입. 몇 번 더 오물거리고는 삼켰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감탄사.

“맛있어!”

“정말요?”

“응! 이상한 풀냄새 없어. 그러니 맛있어. 그리고 씹을 때 뭔가 터져!”

확실히 소시지의 케이싱부분을 씹을 때 씹히는 느낌이 중독적이다.

이번 육류는 괜찮은 건지 계속 먹기 시작하였다.

엘프는 강한 향을 싫어한다는 소문이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샐러드 드레싱도 식초향이 없는 것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천천히 먹어요.”

“응…!”

조금씩 먹고 있다고 생각 했지만, 어느샌가입에 한가득 물고 있는 모습이 햄스터 같았다.

뭔가…. 다 큰 애를 키우는 느낌이다.

@@@

그후 그녀와 같이 출근을 하였지만, 가게에 가기 전에 지역내 행정 센터에 방문을 하여, 그녀의 정식 등록을 하였다.

인격체를 소유하기 위해서 전산등록을 한다는 시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하지 않는다면 여러가지 복잡해질 것이 분명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방문을 하였다.

이종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를 등록할 때 접수원의 말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라? 인식표랑 목줄 없는데…. 혹시 폐기 전 물품이었나요?”

“어…으음, 그,그런거죠?”

“흐으음, 가격은 좀 들지만 신품에 비하면 싸고, 보기 좋은 물건을 보관하는 ‘보호소’와 연결해드릴까요?”

그녀의 흉터 많은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면서 다른 보호소를 연결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표정관리가 안 되었는지 인상을 조금 찡그렸나 보다.

내 표정을 본 접수원은 자신이 말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아니 뭐…. 폐기 전 물품을 등록한 사람 대부분이 다시 유기해서 말이죠…. 그러면 저희 일만 늘어나서 그런 말 한 거뿐이니까 오해마시죠.”

“아. 네….”

“그럼 등록하시는 걸로 알고 진행합니다. 그보다 저런 비실비실한 엘프보다 저 어때요? 한번 식사라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보는 것도….”

접수원 여성은 등록 절차를 진행하면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나를 야릇한 눈빛으로 바라 보면서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남이 보면 이상한 상상을 해도 문제없을 만한 상황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손도 잡고 있으니…. 고민없이 팔찌를 풀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팔찌를 풀었을 때 그녀는 잠깐 놀랐으며, 접수원은 사무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거. 뭐야?”

“네?”

“손에 붙은 거, 없애니, 순간 흔들렸어.

“아아…이거요? 조금 있다 설명해드릴게요.”

일단 서류 작성을 끝낸 다음, 이곳을 빨리 나가고 싶어서, 그녀가 궁금해하는 능력에 관한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였다.

그보다 접수원으로부터 받은 서류의 항목을 하나하나 채워 나갔는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

이때까지 저기요 라고 부르는 등의 방법으로 불러왔는데, 그녀의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름 같은 건 없었다 했으니…. 뭘로 지어 주지? 아니 내가 지어 줘도 되는 걸까?

“저…이름 써야 하는데, 원하는 이름이나 이때까지 불려온 이름있으신가요?”

“없어….”

“가족분…들이 부른 호칭 같은 건 없나요?”

“가족은 가족이야.”

정말로 이름이나 특별한 호칭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이를 어쩌지…. 내 작명 실력으로는 ‘해피’ 정도가 최선일 것 같은데….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그때, 이름에는 의미가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꽃 하나를 생각해냈다.

앵초 혹은 취란화, 영어로는 프림로즈(primrose)

다행히 이쪽 세상에도 있는 꽃이다. 꽃말도 전부다 동일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엘프면 왠지 한국어 보다는 영어 쪽이 좋겠지…?

그렇게 프림로즈의 희망이라는 꽃말에 맞게 그녀가 희망을 품고 살았으면 하는 의미로 이름 칸에 ‘프림’ 이라 썼다….

부디 이 희망을 잃지 않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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