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97화 (97/140)

〈 97화 〉 스트리머(3)

* * *

주문부터 물어볼까 싶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정말로 몰랐어요! 아니 왠지 저 말고 다른 스트리머나 기자가 없었다 싶었죠! 제가 제일 먼저 왔나 싶어서 쨔~안! 하고 들어온 건데 이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죠! 그…! 그러니까! 없던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저, 주문부터 하시죠…?”

“아! 주문! 그렇죠! 어디 보자 독특한 바 라고 SNS에있던데! 마셔도 괜찮죠!? 아! 아니 이제 성인이니까 마셔도 문제없네요! 자! 그러면 바라면 마티니! 한잔 주세요!”

개성이 너무나도 강하였다.

내가게에 오는 것도 충분한 조사 없이 방문한 것 같은데 스트리머면 그래도 되는 걸까…? 그녀의 성격을 보면 그냥 무작정 온 것 같은데….

그보다 마티니라니! 이런 소규모 가게에서 마티니를 찾는 건 실례다! 만들기 얼마나 까다로운데!

“지금은 카페 영업시간이니까 일반 음료를 주문해주세요.”

“네? 술집 아니었나요?”

“지금 시간은 술집 아니고 일반 가게인데요….”

간혹 가게의 컨셉을 모르고 오는 손님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힘이 빠지는 손님은 처음이다.

“아! 다행이다! 그냥 막 들어 온거라서 어떤 칵테일을 주문할지 긴장했는데! 다행이다아아.”

사과하던 모습은 싹 사라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테이블에 엎어지는 서치였다.

전형적인 바를 처음 오는 사람의 반응이다. 어떤 것을 주문할지 몰라서 당황하지만 들은 칵테일은 있어서 일단 기억에 있는 칵테일을 주문하는 그런 유형이다.

대부분 유명한 칵테일 들은 비싼 바 혹은 바텐더가 취미로 영업하는 가게가 아니라면 좋은 술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면 그런 주문은 못 받는다고 거절당하거나.

테이블에 엎어졌던 서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면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일반적인 음료 가능하죠?! 그렇죠!?”

“네~. 지금은 논 알콜 시간이니까 적당히 주문해주세요.”

“그러엄. 뭘로하지…. 잠시만요! 잠깐! 고민좀 해볼게요! 으음! 이것도 좋은 것 같고 저것도! 아! 지금 시즌은 고구마라떼도 맛있을 것 같고…! 아악 못고르겠어! 자, 잠시만 기다려줘요! 잠시만요! 금방이면 돼요!”

다시 한번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서치다.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스트리머 최적화 성격이 아닐까? 본인은 자각을 못 하고 있지만 오버액션적인 몸짓과 입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들….

최근에 말 많은 손님이라고 해봤자 지혜 씨 팀의 소속인 나리 씨…였나? 나리 씨도 말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서치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프림도 어느새 옆에 와서는 나에게 질문하였다.

“나. 뭐해…?”

“일단은 저기 보이는 의자에 앉아 계세요.”

“응.”

“아! 골랐어요! 이걸로 할 게요! 오…. 역시 이 가게에서도 이종족을 구매해서 종업원으로 쓰고 있네요! 이러면 점점 제가 할 일이 없어지는데 말이죠…. 결국 게이트에 보내지는 신세가 될 거라니. 크으읏…. 그건 싫어어! 나도 도시에서 일 하고 싶어어!”

서치는 기나긴 고민 끝에 한 음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주문을 정했다고 말을 했지만, 프림을 보더니 발작을 시작하였다.

다들 헌터일을 선망하지 않던가…? 이 사람이 독특한 걸까?

프림을 일단 카운터 구석에 배치되어 있는 의자 쪽으로 보내고는, 혼자서 양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면서 주문을 물어보았다.

“진정 하시고 일단 주문은 뭘로 하실 건가요?”

“이거 주세요 이거!”

“네…?”

괴롭다는 듯이 머리를 싸매면서 힘들어 하던 그녀는 내가 말을 걸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카운터에 배치된 메뉴판에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네! ‘이거’요! 시즌 음료는 아니지만 맛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거’ 주세요!”

아니 그러니까 ‘이게’ 뭔데!

유감스럽지만 카운터 쪽에서는 메뉴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질문하였다.

“여기서는 메뉴판이 안 보이는데요….”

“…? 아! 죄송해요오! 그걸 깜빡 했네요! 이거요! 이거! 자몽에이드 한잔 주세요! 이거 수제라 적혀 있는데 여기서 만든 거 맞죠!? 그렇죠!? 병음료 아니죠!?”

나보다 어려 보여서 그런 걸까?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느낌의 행동만 골라서 말하고 있었다.

“네에 수제랍니다. 그보다 자몽에이드 한잔 맞으시죠?”

“네!!”

그렇게 주문을 받아서 자몽에이드 한잔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

자몽에이드는 아니 에이드류는 생각보다 만들기 쉬운 음료 중 하나다.

주 재료가 되는 원액과 탄산수를 부으면 끝.

거의 하이볼을 논 알콜로 마신다고 생각하면 편할 정도로 간단한 음료다.

준비된 자몽청을 꺼내어 두 국자 정도 잔에 담는데…. 여기서 가게 주인의 특권이 존재한다.

바로 자몽 과육을 얼마나 넣어줄지! 에 관한 주인 재량이 존재한다.

손님이 진상이면 자몽 과육을 거의 뺄 수 있다. 하지만…. 음, 이번 손님은 그런 계열의 진상이 아니고 천성이 그러한 손님 같으니… 평균치보다 조금 많이 주었다.

그녀 행동이 재미있기도 했고…. 해를 끼친 건 아니기에 조금 더 준 것뿐이다.

“헤에…. 진짜 수제인가 보네요! 시중에 판매되는 청과는 다르게 과육이 살아있어요! 정말이지 지금이라도 한입 먹어 보고 싶을 지경이에요! 오오! 저 탱글함! 씹으면 과육에서 터져 나오는 즙이 얼마나 맛있을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에!”

정말이지 쉬지 않고 말을 하는데 지치지도 않는 것일까?

음료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녀를 적당히 제지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번에도 탄산 캔이다.

대용량 패트 병을 사용하고 싶지만, 탄산의 김이 다 빠지기에 캔을 사용하고 있다.

­치익

캔을 까자 밀봉되어 있던 캔에서 탄산이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캔을 잡고 얼음이 가득 담겨 있는 잔에 천천히 부웠다.

탄산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잔이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도 장식으로 레몬 칩을 잔에 꼽았다. 가성비도 좋고 이게 제일 편하다.

자몽 칩? 자몽을 데코레이션 하기에는 가격이 좀 비싸고 따로 만들기도 귀찮으니까 레몬 칩으로 퉁 치는 것이다.

자 이제 일반적인 에이드류면 완성이지만 자몽에이드이기에 한 가지 더 준비하였다.

바로 스푼.

자몽 과육을 먹는 경우도 있기에 길쭉한 스푼을 잔에 꼽았다.

그렇게 자몽에이드가 완성되었다.

“여기 자몽에이드 완성되었습니다.”

“감사해요! 오오! 이 사랑에 빠진 하트를 그릴 때 칠할 듯한 핑크 색에 바닥에 깔려 있는 루비빛 과육이 탐스럽네요! 아, 자몽은 루비빛 과육이라 하던 가요…? 아니 뭐 그건 모르겠고! 한잔 마셔볼까요!?”

그녀는 받자마자 홈쇼핑 호스트 마냥 혼잣말을 하면서 자몽에이드에 대한 평가를 내린 다름 한잔 마시기 시작하였다.

“하하….”

서치라 자칭한 그녀는 스트리머가 진짜 천직일지도 모르겠다.

뜨지 못하는 것은 역시 ‘여성’이라서 그런 걸까? 하긴 이 세상에서는 남성이 스트리머를 한다면 확 뜨기 좋은 세상이다.

그냥 무명의 스트리머가 남성이고 잘 생겼다면 방송을 켜서 ‘안녕하세요.’ 한마디에 좌표가 찍히는 곳인데….

나도 이참에 스트리머나 해봐…?

그렇게 스트리머가 되는 상상해보았는데…. 얼굴도 안 보이는 시청자 앞에서 안녕하세요를 외치거나, 무언가 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후원을 받으면 무언가 리액션을 해야한다던가….

아, 맨정신으로 절대 못 할 영역의 무언가다.

막상 방송을 한다면 한마디도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잘생기지도 않았다.

“푸하! 이거 맛있어요! 근데 자몽 향이 너무 진한 것 같은데 이게 맞나요!?”

“저어서 드세요. 저어서.”

“아!”

일반 시중에서 판매하는 자몽에이드면 섞어서 마실 필요가 없겠지만. 직접 만든 청이라면 잘 섞이지 않아서 직접 저어 줄 필요가 있다.

내 말을 듣고 바로 이해한 그녀는 스푼으로 스터를하듯이 위아래로 천천히 젓고는 다시 한번 마셨다.

“와! 맛있어요! 근데 안 젓고 마셨을 때 원액을 조금 더 마셔서 그런지 약간 엷은 맛이 나네요!?”

“으휴…. 아 죄송해요. 그보다 잔 이리 줘 봐요.”

“네? 네! 여기요! 조금 마시긴 했는데 왜요!?”

왠지 모르게 밉상이지만 싫어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그녀였다.

뭐, 여기서도 가게 주인의 재량을 발휘해서 그녀의 잔에 자몽청을 반 국자 정도 추가를 해줬다.

“자, 마셔봐요 이정도면 괜찮을 거에요.”

“와! 감사합니다! 이거 나중에 라이브 방송 때 언급해도 괜찮아요!? 괜찮겠죠!? 괜찮다고 해주세요 네!?”

“안 돼요.”

“힝!”

“그래도 안 돼요. 그보다 안 마셔요?”

“아! 감사합니다! 그럼 한 번 더 마셔 볼까요!”

이번에는 스푼으로 젓고는 다시 한 번 더 마시기 시작하였다.

“와! 비율 딱 좋아요!”

“그렇죠?”

“네! 그러니까 여기 광고도 해드릴 겸 진짜 언급하면 안 돼요!?”

“자꾸 그러면 혼나요?”

“히에엑! 까마귀는 봐주세요! 죄송해요!!”

또 다시 트라우마가 발동한 것인지 공포가 가득한 얼굴이 되는데, 이때까지 봐온 그녀의 행실 때문인지 이 조차도 리액션으로 보인다.

아차, 그녀의 말이 너무 많아서, 까마귀가 무엇인지 묻는 것을 까먹었다.

일단 음료도 마셨고 어느 정도 진정…아니 진정되었나? 어느 쪽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까마귀에 대한 것을 묻기로 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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