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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103화 (103/140)

〈 103화 〉 생각의 차이(2)

* * *

가게에 들어온 남성손님은 생각보다 키가 컸다. 아니 내가 작은 건가?

어쨌든 날카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남성은 나를 보자 아차 하는 표정이 되더니 인상을 쓰고 있던 표정을 풀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아뇨아뇨 괜찮아요. 앉으세요.”

좀 무서운 손님인 줄 알았는데, 사과를 바로 해 오는 것을 보아하니 가게에 들리기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일단 내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으려는데 등 뒤에 메고 있는 대형케이스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 정도 케이스면 테이블에 세워 둬도 문제없을 거예요. 딱히 사람이 많은 시각은 아니잖아요?”

“그러네요.”

나의 권유에 간결하게 답하면서 거대한 케이스를 바 테이블에 세워두었다.

아마 두께가 그리 나가지 않고 케이스가 긴 것을 보면 장검이나 저격총을 넣은 것 같지만, 내가 물을 만한 질문은 아니기에 묻지는 않았다.

그보다 손님의 행색은 전형적인 헌터의 모습이었다. 아니 몰골이라 해야 하나…? 게이트에서 막 귀환한 느낌의 행색이다.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반장갑과 흙먼지가 묻어 있는 바지나 소매 끝과 적당히 풀어헤친 전술조끼, 그리고 거기에 매달린 탄창 주머니나 대검들, 탄창주머니가 일반 것과 비교하면 더 크고, 주머니가 조금 쳐져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실탄이 장전된 탄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목에 걸쳐져 있는 전술 헤드셋까지. 이런 행색으로 가게에 방문하는 경우가….

아…. 있긴 있었다. 아까 가게를 나간 단골 중년 헌터분들도 막 게이트에서 퇴근한 행색이긴 하셨지만, 다르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뭐랄까…. 깔끔한 상태의 차이?

짬이 낮아서 많이 굴렀다는 느낌을 주는 몰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계속 보는 상황에 이상함을 느꼈던 것일까? 자기 몸 상태를 둘러보고는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너무 더러우면…. 음, 다음에 오는 편이 괜찮겠습니까?”

“아뇨~. 문제없답니다. 그보다 물 티슈라도 드릴까요?”

나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데 생각보단 과묵한 성격 같다.

오히려 이런 남성이 상대하기 편하긴 하다. 이전 세상의 느낌을 받게 돼서 그런 걸지도?

자리에 앉은 그는 한숨을 쉬더니 왜 이런 몰골로 가게에 들어왔는지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복장이 좀 그런데 게이트에서 바로 귀가하다 보니 이런 몰골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요. 뭘로 주문하시겠어요?”

“아, 주문…. 깜빡했습니다. 으음….”

주문을 무엇으로 할지 물어보니 메뉴판을 보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메뉴판을 보더라도 기본적인 메뉴만 적혀 있어서 원하는 술이나 칵테일을 못 찾을지도 모른다.

모르면 바텐더에게 묻는 편이 좋겠지만, 그는 고민하면서 메뉴를 들여 보더니 한숨 내쉬었다.

그리고 메뉴판을 옆으로 치우고는 어두운 안색으로 주문을 하였다.

“하아…. 그냥 독한 거로 한잔해 주시죠.”

“어…. 독한 거면…. 높은 도수만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게 아니면 뭐가 있죠?”

“으음, 독한 거에도 종류가 있어서요. 어떤 맛이나 방식을 원하세요?”

“맛?”

“네. 달게 할 수도 있고 쓰게 할 수도 있고. 탄산수를 섞거나 다른 술끼리 섞어서 양을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지요.”

“흠. 잠시만요.”

맛이나 방식까지 생각을 못 하였는지 턱을 만지면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이 세상 기준의 남성을 보다가 이런 남성을 보니까 좀 색다르다.

남성 혼자 이런 가게에 오는 경우는 카페시간이 아니면 거의 없으며, 바 영업 시간에는 여성을 끼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볼 때마다 적응 안 되는 성격까지…. 그래도 팔찌를 한 이후 접대하면서 영업용 미소를 잃은 적은 없었다…. 음,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보다 칵테일의 방법에 따라서 도수를 높힐 수도 있으며 맛의 방향도 달라진다. 무작정 높은 도수면 위스키 혹은 증류주, 스피X터스를 주면 그만이지만, 그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도 독한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개인적인 고민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메뉴를 고민하던 그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독한 거로 주세요 아무거나. 맛은 모르겠고…. 그냥 독한 거로요.”

곤란한 주문이 들어왔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무언가를 지시할 때 애매한 말로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 말이다.

예를 들면…. 느낌적인 느낌으로 세련미와 투박함이 공존하면서도 멋지지만 귀여운 느낌을 팍팍 넣어서 천천히 해도 되지만 마감전에 다 해주시면 좋겠네요 같은 주문 말이다.

바로 그런 주문이 이런 주문과 와닿는 느낌이 비슷하다. 뭘 해 줘야 할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 그런 주문….

그래도 어쩌겠는가? 손님의 주문이라면 어떻게든 맞춰 줘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시작하였다.

“그러면 마시는 방법은 어떤 것으로 원하세요? 양이 많은 거로 드릴까요? 아니면 적은 양으로도 알콜을 느낄 수 있는 거로 드릴까요?”

“음? 적은 양이면 소주 같은 겁니까?”

“뭐어… 비슷하죠?”

“소주랑 차이 있나요?”

“소주보다는 양이 많고, 도수도 높다는 정도요?”

“그럼 그거로 주시죠.”

“맛은….”

“맛은 상관없으니까 그냥 해주세요.”

“네, 잠시만요.”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그의 주문을 받기 시작하였다.

작은 샷잔을 꺼내면서 준비하고 있는데, 그는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바 테이블 저 멀리서 대기하는 프림을 보고는 인상을 썼다.

“’저거’ 시장에서 구매해서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인가요?”

“아, 프림요? 으음, 다른 경로긴 하지만 여기서 일을 시키고 있죠.”

“쯧, 인건비만 아니라면 이런 곳에 올 일도 없을 텐데…. 좀 그러네요.”

프림이 인간이 아니라 이 종족이라는 이유로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지만, 프림은 그런 시선에는 익숙한지 이쪽을 향해서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아마도…. 괜히 눈을 마주쳤다가 머리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에 알고 무시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맥이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지나가듯 하는 말이었겠지만, 그리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런 세상인 게 문제인 거지.

“그래도 일은 잘하니까 신경은 안쓴답니다.”

“뭐, 거기까지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종족이 서비스 산업까지 진출하는 것은 좀 그래서요. 어디까지나 1차 산업만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기엔 노동력을 놀리는 게 아닐까요?”

“음,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주제넘은 참견이면 죄송합니다.”

사과를 한 그는 더 이상 지적하지 않겠다는 듯이 내가 만드는 것을 지켜보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손님과 말싸움을 하기 싫었기에 샷잔을 준비하였으며 커피리큐르를 먼저 잔에 따랐다. 따르는 정도는 잔의 1/3 정도까지만 부운 뒤, 크림 리큐르를 붓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바스푼을 준비해서 스푼을 타고 흐르도록 천천히 붓자, 커피색 층과 베이지색 층으로 구분되어 나뉘어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번에도 1/3 정도 부웠다.

확연히 나뉘어지는 층. 그리고 마무리를…. 어떤 리큐르로 할지 고민을 하였다.

이번 칵테일은 마지막 재료에 의해서 이름이 바뀌는 칵테일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들어가는 술을 어떤 것을 넣을지 고민을 하였지만, 손님의 취향도 모르기도하고…. 적당히 독한 술을 원하는 것 같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술을 선택하였다.

둥글면서도 반원 모양인 독특한 술병에 들어 있는 오렌지 리큐르를 사용하여 천천히 붓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도 바 스푼을 타고 흘러내리는 오렌지 리큐르는 최상단에서 층을 이루면서 주황빛 색을 띠고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B–52라 불리는 칵테일.

폭격기라는 의미가 있는 이름의 칵테일이다.

이 세상에도 동일 기종의 폭격기가 존재하지만 인류를 대상으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대부분 게이트 전쟁에서 활용된다. 당연하 이야기지만 아직도 현역 기체다.

종족빨을 조금 타기는 하지만 오크나 고블린 혹은 수인이 주 종족인 게이트에서는 비행 물체를 공격할 방법이 한정적이다. 그렇다 보니 안전한 폭격으로 최대한의 살상 효과를 내는 킬러 머신으로 불리는 기체다.

물론 낮은 등급의 게이트에서는 투입되는 비용이 더 높다는 이유로 잘 사용되지 않지만, 상위 등급의 게이트에서는 자주 활용되는 기체다.

그런 기체의 이름을 붙인 칵테일 답게 아주 독하면서도 맛있는 칵테일이다. 알콜특유의 향이 싫다면 취향을 타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하지만 이번 손님은 그냥 독한 술을 원했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총 3개의 층으로 분리된 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제일 아랫 층은 커피색을 띠고 있으며 그다음 층은 베이지색, 최상층은 오렌지색을 띠고 있는 칵테일이었다. 층층이 구분되어 있어서 보기에는 나쁘지 않으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칵테일이지만, 그 내용물은 아주 흉악한 물건이다. 그리고 소주잔 보다는 크지만, 딱 한 모금이면 끝날 크기의 잔이다.

그렇게 완성된 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주문하신 ‘독한 술’입니다. 이름은 B­52라고 하며 천천히 마셔도 되지만 한 번에 마시는 것도 방법이랍니다.”

“오, 잘 마시겠습니다.”

내가 내민 잔을 고민 없이 한 번에 마시기 시작하였는데, 생각보다 고된 일이 있었나 보다.

“푸하! 이거 진짜 독하네요.”

“그렇죠?”

“예. 맛은 달달한데…. 단맛 보다는 독한 맛이 마음에 드는데 한잔 더 주시죠.”

“으음, 그건 좀 곤란하네요.”

“왜죠?”

“진짜 독한 술이라서…. 음, 5분 정도 있다가 마실지 말지 고민하는 편이 좋을거예요. 알콜이 흡수 될 때까지 조금 기다리는 느낌이죠.”

“그런가요…. 흠, 잠시 기다리죠.”

다행히 내 말에 수긍해주는 분위기였다. 다행이다.

일단 가게 안에 손님은 없었고 그 혼자였기에 멀뚱멀뚱 있기에는 심심하기에, 잡담을 할 요량으로 그에게 질문을 하기로 하였다.

이상한 질문은 아니다. 그냥 사소한 질문 정도일 뿐이다…. 이상한 방향으로 흐름을 타지만 않으면 멀쩡한 질문일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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