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생각의 차이(4)
* * *
손님은 원샷으로 마시기 위해 들었던 잔을 바 테이블 위로 내려쳤다.
쾅!
아마 본인도 모르게 자연스레 나온 행동 같은데…. 다행히도 잔을 잡고 있던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 친 것이라서, 잔이 깨지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약간 당황을 하였으며, 손님도 본인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는 뻘쭘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몇 초간의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을까? 손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말입니다….”
“아, 네넵!”
“이거 비싼 테이블이나 그런 거 아니겠지요…?”
조금 전 넘치게 독하디 독한 술을 원샷한 패기는 어디 가고 소시민적인 모습이 된 것이 조금 웃기다.
테이블은 무사한 것 같고.... 세게 내려친 것 같은데 손은 괜찮으려나?
“잔이 직접 부딪힌 거는 아니니까 문제는 없을 텐데…. 혹시 손뼈 안 부러 지셨나요?”
“물론 문제없습니다. 평소 회식 자리서 이렇게 내려치는 게 습관이다 보니 해 버리고 말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에이. 테이블은 별문제없어 보이네요. 손뼈 무사하면 다행인 거죠.”
“그렇군요…. 아하하….”
남성손님이 살짝 웃자 나도 사장된 입장으로서 자연스레 웃게 되었지만, 둘 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헛웃음을 짓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상대가 웃기에 같이 웃어 주는 정도며, 남성손님은 정말 허탈한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그렇게 잠깐 웃더니 남성 손님은 한숨을 크게 내 쉬고는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하아….씁. 정말 죄송합니다. 뭐, 여러 일이 있다 보니 말입니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요? 아, 말하시기 곤란하면 안 해도 괜찮아요.”
“그렇게까지 비밀은 아니고 뭐…. 성별이 문제 되는 일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취기가 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 조금씩 꼬이고 있으며, 딱딱했던 말투도 풀어지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응? 헌터일에 성 차별이랄 게 있을까요?”
여성 중심 사회라고 하지만 능력이라는 존재로 인해서 남녀의 격차가 어느 정도 좁혀지다 보니 현장에서는 남성차별을 당할 일이 적다고 알고 있다.
차별이 있다면 뭐, 일상생활 정도일까?
그런 내생각을 부정하듯이 남성 손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헌터 일에 차별은 없죠….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말입니다….”
“아, 대충 알 것 같기도 한데….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차별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남성 공군은 안 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수색대에서 제일 상대하기 곤란한 건 남성이라는 등 개소리를 지껄여서 말입니다.”
“일상에서는 그런 것 못 느껴왔는데, 헌터 일에는 있나 봐요?”
확실히 일상생활에서는 성차별적인 요소를 들은 기억이 그다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경험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놈의 능력이 능력인지라….
학창 시절도 그렇고…. 으음, 일단 손님에게 맞장구를 쳐준다는 기분으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은 해 보고 있지만, 내가 경험을 못 해서 그런지 그런 일도 있었어? 라는 기분으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내 말에 손님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로 빈 잔을 다시 손안에서 굴리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습관인 것 같은데 분위기상 나쁘지 않은 모습이다.
지친 퇴근길에 한잔하는 직장인의 모습이란…. 하루의 일과를 끝낸 후 한잔 마실 때가 가장 지쳐 있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많죠. 아주 많습니다. 목숨이 달린 험한 일이라서 알게 모르게 성적인 농담을 하거나, 성적 차별을 두는 법입니다.”
“으음, 그 정도로 심한가요?”
“쩝…. 일반…. 아, 일반인 일반인 거려서 죄송합니다.”
“아뇨, 뭐 헌터가 아니면 관계자는 아니니 잘 모르는 법이죠.”
“후….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굳이 입 바깥으로 꺼내야 할 문제일까요?”
같은 성별이라 그런지, 약간 짜증이 난다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 짜증의 대상이 내가 아니긴 하지만 생각보다 직장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
“어…어떤 일을 격으시는 건가요?”
“남자가 일을 못한다거나, 남자라서 안 돼, 혹은 집에서 일이나 하지 같은 개소리를 지껄이는 새끼들한테 .44매그넘 탄이 장전된 데저트 이글의 총구를 아가리에 박아주고 갈겨줘야 한단 말입니다! 그 씨부랄 갈보년들은 지들이 음담패설만 하면 남자가 쳐 대주는 줄 알아! 아악!”
“오….”
“특히! 분대장이라는 년은 툭하면 지랄 지랄이고…! 뭐 남자가 힘이 없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냔 말입니다! 어차피 능력의 밀도 차이가 있으면 물리적 힘의 강약에 영향을 주기에 성별은 크게 상관없는데! 씨발 생각하니 빡치네? 내가 약하면 왜 수색대에 쳐들어가겠냐고! 뭐? 남자니까 파일럿 지원해도 떨어질 거라고? 씨이이이발! 범위도 좁은 탐지 능력이라서 쓸모도 없는 게 뭔 수색대 분대장이야! 아악!”
대화중에 결국 분노가 터져버린 것일까? 생각보다….폭주가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런저런 일이 있다고 하지만 얼마나 울분이 쌓였으면 저러는 걸까?
아니면 술주정이 저런 쪽 일수도 있고…?
손님의 반응이 너무나도 격렬 했던지 옆에서 지켜보던 프림이 움직이려 했지만, 손짓으로 제지하였다. 괜히 이종족에 관해 안 좋게 보는 헌터를 자극해서 좋을 것은 없었다.
분노의 대상이 내가 아니기도하고, 본인 나름의? 스트레스 풀이니 내버려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절대로 괜히 건드렸다가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이러는 것 아니다.
분대장 욕부터 시작해서 분대원 욕까지 다양한 험담이 줄줄 나오고 있는데…. 이제 슬슬 뒷담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온 것인지 말이 딱딱하면서도 느린 느낌을 주던 말투에서 빠른 말투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씨발. 솔직히 말입니다! 거 제가 남자답지 못하게 털털한 성격이다 쳐! 근데 분대원 놈들은 남성스럽지 못하다느니 쉬는 날 어때? 이지랄이고 정작 장거리 시야확보는 내 담당인데 지들이 발견한 것처럼 소란을 떨지 않나! 씨발 거기서 소란을 쳐 떨면 오크한테 발각되는 거 뻔히 알면서 개 염병하지않나….! 지금 생각하니까 꼴받네? 이딴 년들로 구성된 분대원이라니! 와 씨발 폐급인데?”
“어…음, 생각보다 직장생….아니 헌터 생활이 힘드신가 봐요?
“힘들죠! 씨발 헌터 일에 성별이 뭔 관계냐고요!? 내가 받은 임무는 내 선에서 전부다 해결 하는데, 옆에서 남자라서 안 된다, 체력이 틀리다 같은 개소리 지껄이는 년들에 게 납탄….아니 할로우 포인트탄이 장전된 권총으로 배때지에 쏴줘야 한다니까요? 아니면 두 번 다시 그딴소리 못하게 아가리에 수류탄 하나 물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썅! 가슴이 커서 포복도 제대로 못 하는 것들이 뭔 수색대야!”
그렇게 말하고는 자연스레 술을 한잔 더 마시려 하였지만, 빈 잔에서 정말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이 손님의 입안으로 떨어졌다.
손님은 자기 분을 못 삭혔는지 턱을 괴고 있던 손으로 이마를 짚었으며 반대쪽 손은 다시 한번 빈 잔을 굴리고 있었다.
오…. 대화가…. 팔찌를 한 뒤 나와 대화를 한 손님 중에서 가장 강렬한 손님이었다. 이걸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 고민하는데, 자연스레 침묵이 이어지게 되었다.
“하아…. 한잔 더 줘 봐요. 지금 마신 거랑 같은 거로.”
“너무 마시면 심하게 취할지도 몰라요? 그냥 냉수로 드릴까요?”
“음…. 일단 냉수 먼저 부탁할게요.”
“네 잠시만요.”
일단은 진정시킬 겸 냉수라도 줘야겠다.
빈 잔을 받고는 제빙기에서 얼음을 가득 꺼내어 잔에 얼음을 가득 넣었다. 그리고 물을 따라서 냉수를 만든 뒤 손님에게 내미니, 바로 받고는 단숨에 마시기 시작하였다.
냉수를 반쯤 마셨을까?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이 잔을 내린 뒤 사과해왔다.
“시원하네요…. 그…. 죄송합니다.
냉수를 마셔서 머리가 어느 정도 식혀진 것일까? 자신이 소란을 피운 것을 사과해 왔다.
술을 마시면 그럴 수도 있는 법이라 생각한다. 난동이나 범법 행위만 안 저지른다면 이 정도면 애교 아닐까? 욕하는 대상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의 소란이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다.
“이 정도야 바에서 있을 법한 일 아닐까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나의 말에 안심하는 표정이 된 손님은 잠깐의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그, 그러니까…. 바 면 마스터라고 합니까?? 지나가던 길에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는데, 이런 곳은 익숙지 않아서 말입니다.”
“뭐…. 편하실 대로 불러도 괜찮아요. 마스터라던지 사장님, 종업원 등등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어서요.”
“그렇다면…. 음, 마스터면 오히려 이런 바에서 제가 경험한일 비슷하게 경험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취한 년들이 많아서 더 지랄하지 않나요?”
“흠…. 글쎄요.”
막상 질문을 받으니 그런 경험이 있는 것 같기도 하며 팔찌를 한 다음 자주 들은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나쁘거나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술을 마시고 싶지만, 연속으로 마시기에는 간에 부담이 갈 것 같기에 냉수 한잔을 준비하였다.
아직 영업 종료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손님이 안 오는 것을 보아하니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 될 것 같기도 해서 편안 하게 대화할 겸 옆에 둔 의자를 끌고 왔다.
자….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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