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소소한 이야기
* * *
가게 카운터 방향으로 켜진 은은한 조명 하나만 켜 두고는 가게 안의 모든 조명을 다 껐다.
손님은 다 나갔고 가게의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마무리라 하여도 언제나 같이 간단한 청소하는 정도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프림 여기 간단하게 청소하고 가는 거에요 알겠죠?”
“응.”
“그러니까 완전 무장해서 청소할 생각은 그만두시고요.”
“응….”
청소를 하고 가게를 마친다는 말에 물통에 물을 한가득 담고 락스까지 준비하려던 프림을 말리는데 성공을 하였지만, 어째서인지 실망하는 모습이 가득하였다.
가게에 광을 낼 정도로 청소 하고 싶었던 걸지도…. 그렇게 더러웠던 걸까…? 평소에 열심히 청소해왔다 생각되지만 남이 청소를 열정적으로 하려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럽게 청소를 했나 같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시간도 시간이고 피곤하기에 일찍 퇴근하기 위해서 적당히 정리하는 정도로 청소 지시를 하였다.
프림은 가게 안을 청소를 시작하고 나는만년필로 메모장에 글을 쓰고 있었다.
[Mr. J]
가게영업 마감전에 받은 남성손님의 명칭이다.
물론 본명은 아니지만, 본인이 본명을 말하지 않을 것 같기에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독한 술을 잘 마심
바는 처음인 손님
성별적 문제보다는 현재일의 적성이 안 맞는 것 같음
마신 칵테일 B52/B53
같은 외적으로 본 손님의 상세한 정보를 써 두었다.
능력 때문에 말 걸기도 뭣하고 혼자 멍때리기 심심해서 쓰기 시작한 명부이지만, 생각보다 중요한 수첩이다.
다음에도 한 번 더 올 것 같은 손님이다 싶으면, 이렇게 써 두는 편이다음에 손님의 취향을 알아내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손님의 정보도 적당히 써 둔 수첩이지만, 예외가 있는 손님이 있는데….
현장 은퇴직전의 두 여성 헌터 분들이 그 예외 중 한분이다.
그냥 칵테일 없이 싸고 양이 많은 술만 찾으셔서 어느샌가 기록 하지 않게 되었다.
손님의 취향을 외운 경우에 해당된다.
적당히 휘갈겨 쓴 수첩을 서랍에 넣으니 프림이 앞에 서 있었다.
몇몇 상처나 흉터를 빼면 갈색 앞치마가 정말 잘 어울리는 엘프인데, 역시 피부의 흉터나 잘린 귀가 눈에 밟힌다. 본인이 원해서 난 상처는 아니겠지만…. 역시 눈에 보이다 보니 신경이 쓰인다.
일단 집에서 귀에 난 상처소독부터 해야겠지?
가게 안을 둘러보니 정리는 끝난 상황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의자와 테이블….이거, 나보다 일 잘하는 거 아닐까?
“다 했으면 갈까요?”
“응. 집 가.”
고개를 끄덕이는 프림.
오늘 하루 생각 외로 적응을 잘해서 놀랐다. 담담하기도하고…. 천성이 그런 걸까?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가게에 마지막 남은 불을 껐다.
이제 퇴근할 시간이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프림의 귀를 소독한 다음 밴드를 두껍게 붙여두었는데, 소독할 때에도 눈하나 꿈쩍 안 하는 것이 이게 엘프인지 목석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천성이 그런 것인지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천적인 성격이라면 살갑게 대하다 보면 좋아질까?
그렇게프림의 귀소독을 다한 뒤 방안에 퍼질러져 있었다.
누워서 시계를 보는데, 집에 도착한지 30분은 지난 것 같다.
밤 늦은 시간에 퇴근하면 능력을 발동한 채 퇴근을 하였지만, 어제오늘은 능력을 억제한 채로 퇴근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프림이 있어서이다.
혼자 다니면 이상하게 볼지도 몰라서 보호겸 같이 다녔는데, 아니나 다를까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몇몇 여성들이 있었다.
상권지역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인데 왜 그리 프림을 뚫어져라 쳐다보던지….
그리고 프림의 귀에 박힌 인식표를 보고는 한숨을 쉬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대장한테 뒤졌다.], [아 이걸 도망치네.], [씨발 놓친 새끼 위로 내 밑까지 집합 걸어] [하필 저 사람이냐.] 등등 역시 프림을 잡으러 온 불법 처리업체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등록을 해 버렸다.
본인들도 그것을 알기에 섣불리 손을 내밀지 못하였지만, 내가 남성이라는 점도 한몫 한 것 같다.
여성이었다면 힘으로 누르거나 협박을 할 것 같았지만, 남자라 그런지 접근은 하지 않고 도처에 널린 CCTV가 방패의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문제없이 집에 도착하였지만, 신경을 곤두서서 그런지 피곤한 것은 매한 가지였다.
“으아… 안 피곤해요?”
“응. 안 피곤해. 피곤해? 그럼 자.”
오늘 아침부터 장을 봐오고 프림 등록을 위해서 평소와 다르게 이곳저곳을 다녀서 그런지, 한참을 옷을 입은 채로 따끈한 바닥에 누워 있지만, 피곤함은 여전하였다.
하지만 프림은 내 머리맡 옆에 무릎 꿇고 앉은 상태로 있었다.
정말이지 내 체력이 나쁜 건지 프림의 체력이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잠은 오지 않았다. 평소에 잘 시간도 아니고…. 심심하니까 핸드폰을 만지기 시작하였다.
아, 프림도 핸드폰을 사주던지 집 안에 텔레비전을 한 대 놓던지 해야겠다.
혼자서 멍하니 있는 모습은 내가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편하게 앉아 있어요.”
“이 게 편해.”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은 채로 명상하는 모습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신비로운 느낌을 엄청 주는 것이 엘프 같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오늘 프림 옷 사이즈를 알았으니, 여성복으로 프림 사이즈에 맞는 옷과 속옷을 주문한 뒤 이곳저곳 사이트를 둘러보고 있으니 지혜 씨로부터 답장이 왔었다.
잘 도착하셨나요?!
네 집이예요 :D 오늘 이상한 것 물어서 죄송합니다.
아뇨! 문제없어요! 정말로 괜찮아요1 ㄱㅖ속 물어보셔도 돼요!
으아…. 이거 100% 내가 말을 잘못한 탓이다. 그걸 왜 물어서는….
에이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죠? 죄송합니다.
으음. 괜찮은데 정말로 문제없어요!
으으음…. 솔직히 사귀자고는 말 했지만 사귄다는 실감이 확 와닿지는 않는다. 그냥 은인이라는 감정이 더 앞서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조만간 한번 만나서 데이트…라는 것을 해 보던지 해야지….
생각만 해도 얼굴에 피가 몰렸지만, 다행히도 내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안심하고 문자를 이어 나갔다.
조만간 쉬는 날 잡아서 놀던지 해요.
네! 저야 좋죠! 날짜 미리 말씀 해주시면 준비해 둘게요!
그렇게 실없는 이야기와 함께 문자를 하던 도중에…. 오늘 아침 수아씨가 말한 사이즈를 확인하기 위해서 대화 내용을 다시 한번 위로 올리고는 사이즈를 확인한 후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거…. 검은색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수아는 왠지 모르게 답장이 없는 상황인데 왜일까?
이유를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 이곳저곳 혹은 뉴스를 보다가 서치 씨의 스트리밍 채널에 들어가 보았다.
오늘 자 스트리밍은 이미 끝이 났고 편집 중인지 아직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유료 가입 서비스를 하지 않으면 편집하지 않은 녹화본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생각보다 잘나가는 스트리머 같은데…? 그래도 2만 전후면 적은 것일까? 역시 이런 쪽은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어쨌든 올라온 영상들을 보면 전부 나사가 빠진 듯한 느낌을 주는 영상으로 가득했다.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의 영상들…. 무기 리뷰를하면 들떠 있기만 하고 내용물은 없고, 이슈를 말하면 이슈보다는 본인이야기에 치중되는 그런 느낌의 영상들….
그런 것들을 본 소감은…. 어우…. 제발 가게 리뷰는 이상하게 안 해줬으면 한데….
그렇게 속으로 빌면서 앱을 일반 검색으로 돌렸다.
그러자 나오는 다양한 기삿거리들.
실제 게이트 내에서의 성차별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임무 수행에는 차별이 없지만, 농담이나 일상 대화에서 성적 차별이 만연하다는 내용이었다.
흐으으음. 내용을 종합해 보면…. Mr. J 의 경우에는 그냥 수색대 팀원들이 나사가 빠진 사람들이 아닐까…? 지혜 씨의 팀원 중 하나인 현준 씨였나? 그분의 경우에는 멀쩡히 조장직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팀을 잘못 만난 걸 수도 있다.
진짜로 수색 팀 나와서 공군에 지원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아직 나이도 젊어 보이니 입대는 문제없을 것이고…. 파일럿 시험은 본인의 역량의 문제니까…. 도전할 만 하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게를 나설 때는 꽤 좋은 모습으로 나갔다.
문제가 있다면…. 택시를 불러줘서 내가 실어줬다는 정도일까? 헌터 일하고 바로 퇴근한 모습이라 흙먼지가 가득한 옷이다 보니 택시 기사가 엄청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괜찮을 것이다. 내일이 아니니까 말이다….하하….
취한 모습이었지만 정신은 어느 정도 있는 모습이었으니 지금쯤이면 Mr. J도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다양한 손님을 보다 보니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기분이 든다. 이것이 전생인 것인가?
하하…. 내일은 어떤 손님을 보게 될까?
“프리이임 불 좀 꺼줘요.”
“응.”
그건 모르겠고 등도 따시고 피곤하니 이대로 잠이나 자야겠다.
그렇게 씻지도 않고 옷도 안 갈아 입은 채로 마룻바닥에 퍼질러 잠을 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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