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혼자가 아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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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감이 좋은 사각 유리병을 손에서 놓고는 질문을 시작하였다.
“어떻게 아신거죠?”
“아, 그거 의심 가는 부분이 몇몇 있어서 찔러본 거지. 말 편하게 해도 되지?”
“하아…. 이미 편하게 하고 있으면서 뭘 물어봐요.”
“자자, ‘귀여운’ 사장님 진정하시고 나 물 한 잔만 주라. 칵테일 말고 어머니표 생명수면 충분해.”
“그게 무슨 물이예요.”
“에이 재미를 몰라 재미를. 팀장님이나 나리선배 괴롭힐 때만큼의 반응은 없네. 빨리 생명수나 한잔 주세요!”
나의 반응이 재미없다는 듯이 생명수를 달라고 조르기 시작하였다. 말로는 물을 달라고 하는 것 같지만, 말이 물이지 술을 달라고 생때를 부리는 거다.
이곳 기준으로 말하자면 불곰국이 아버지로 표현되기에 어머니, 표현이 그리우면서도 어색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뭐 별수 없나 싶기도 해서 진열장에 있던 보드카 한 병을 꺼내서 잔에 따라주었다.
어디까지나 보드카의 어원이 생명의 물이지 진짜로 생명을 구해주는 약품은 아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보드카나 소주로 상처 소독이 가능하기에 생명의 물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 중 하나다. 물론 긴급한 상황에서 사용해볼 만 하지만 도수가 40도는 넘어야 한다.
어, 그러면 생명수인가…? 아니 40도 이상의 보드카를 소독용으로 사용할 정도면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의미인데 생명수라 할 수 있을까? 으음….
어찌 되었든 보드카를 빈 잔에 따르기 시작했는데, 현준 씨가 생각보다 밉상으로 느껴지는 발언들을 시작하였다.
“에이, 생으로 보드카 한잔인데, 급 더 높은 거 없어?”
“그런 급을 작은 가게에서 따질 거면 호텔이나 호스트 바로 가세요.”
“와 팀장님이랑 같이왔을 때랑 서비스가 달라졌…. 알았어 알았어 장난 그만 칠 게, 어떻게 알았냐고 한다면…. 진짜 ‘감’ 이라고 할지 약간의 힌트들이 있었다고 할지….”
“그냥 힌트가 뭔 지 말해 보면 되는 것 아닐까요?”
자꾸 말을 돌리면서 놀려 먹으려는 느낌이 들어서, 팔찌 풀고 한 대 때릴 생각으로 웃으면서 빈 병을 잡으니까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대화주제로 다시 돌아왔다.
감정을 나타내는 보석도 색이 탁해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하는데, 그냥 시원하게 한 대 쳐 버리는 편이 좋을지도…?
이번에는 장난이 아니라는 듯이 보드카를 마시면서 진지한 표정을 짓는데, 생각보다 잘생긴…. 쪽이었네, 누군가와 비교가 되네….하하….
그래도 술은 한 번에 마시는 쪽이 아닌지, 아주 조금 보드카를 마시고난 뒤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내가 같은 처지의 사람을 찾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설명이 조잡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그 뭐냐, 사장님 과잉장애 있었지?”
“있었지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네요.”
“어쨌든 그거 나도 있어. 중학교 때인가? 통조림행 당할 뻔한 거 천칭에서 알아보고, 천칭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개 같이 구르면서 겨우겨우 제어방법을 습득했거든. 아, 통조림 사장님은 모를 수도 있겠구나, 그냥 능력 빡시게 사용당하는 사축이라 생각하면 편해.”
“과잉장애…. 그게 힌트라도 되나요?”
과잉장애가 힌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능력조절 못 하는 쪽이 아닐까 싶은데…. 일단 현준 씨의 설명을 경청하기로 하였다.
“얼핏 보면 힌트라고 생각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라고 할지…. 지금 연결된 ‘빙의자 모임’의 사람들은 백이면 백 과잉장애를 경험했던 사람들 이거든. 물론 과잉장애 = 빙의자라고 말할 정도의 수는 아니지만, 대부분 특전이라도 받은 듯이 이능 쪽은 엄청 강하거든.”
“거기에 남자면 이 세계 출신일 경우가 높아지겠네요?”
그런 힌트로 사람을 떠본 건가 싶어서 질문을 하니, 현준 씨는 보드카를 마시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그건 장담 못 해, 아까 역전 세계 개념을 도입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했지?”
“그, 그렇죠?”
“걔 여자임.”
“엩”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피식하고 웃으면서 남은 보드카를 다 마시고는 빈 잔을 든 채로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정보값으로 보드카를 달라는 것이 확실하다. 정보값이라…. 그래 보드카정도면 싼 것이라 생각하며 물컵에 한가득 찰 정도로 보드카를 따라 주었다.
보드카가 잔 안에 한가득 차오르자 입을 열었다.
“뭐 좀 웃긴 년? 같은 이 세계 출신 사람끼리 대화해서 그런지 년 붙이니까 심각한 욕처럼 들리네, 어쨌든, BL이 넘치는 세계에 와서 좋아라하다가 생각보다 실생활이 만만치 않아서 이전 세계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애가 있는데…. 뭐, 한번 여기에 놀러는 올 거야.”
“으음, 딱히 성별은 안 가리네요.”
“그렇지? 가끔 만취 상태에서 남자들은 여기서 꿀빤다면서 욕하는 소리를 직접 들으면 얼마나 기쁜지 알어? 최상의 칭찬이라니까?”
“그게 칭찬인가요?”
“칭찬이지! 우리도 못 빤 꿀 여기서 빨아보고 싶은걸! 그런 의미로 사장님은 진짜로 못 즐긴 쪽 같은데 어때?”
이 세계를 즐겼냐고 물어본다고 해도…. 별로 좋은 기억은 없었다. 아마 내 특유의 능력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는데, 내 안색이 좋지 않았던 걸까? 현준 씨는 내 안색을 살피고는 실수했다는 표정과 미안 함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 미안, 팀장님에게 들었던 능력 이제 생각났네, 은신쪽 능력이지?”
“그, 그렇죠? 팔찌 없으면 심각한 수준의 인지 저해 능력인 것 같은데, 약간의 최면 효과도 있다고 할지….”
“약간의 최면? 그거 좀 부러운데, 아니 지금 생활도 누나들이나 동생들이 있어서 나쁘지 않은데…! 최면이라니…. 나랑 같이 헌팅…아니지 역헌팅 하러 다녀보지 않을래? 로~망이 넘치잖아? 더블 피스!”
첫날의 장난기 넘치던 이미지와 처음 압박을 가해 오면서 질문을 하던 헌터의 모습은 어디 가고, 이 세계를 즐기는 자의 표정이 된 현준씨만 남아 있었다.
첫인상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변하기도 힘든데….
“일 없어요. 지금은 지, 지혜 씨가 있기도하고.”
“오, 순정파 커플이네. 같이 여자 사냥은 포기하고, 이 커플 지지하는바입니다. 땅땅땅.”
현준 씨는 자신이 판사라도 된 것처럼 바 테이블을 살짝 두드렸다.
순정파 커플이라니…. 그럼 지혜 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이거 현준 씨를 활용하면 지혜 씨의 상황이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BAR개점 시간이 코앞이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어떻게 하면 현준 씨로부터 정보를 얻을까가. 더욱더 중요한 상황이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고민하던 도중, 보드카를 벌써 반이나 마신 현준 씨가 먼저 질문하였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은 이전 세계 기억 몇 년까지 있는 거야? 그리고 몇 살에 빙의 된 거고?”
“어, 아마…. ■■■■년? 그리고 빙의라…. 솔직히 기억나지 않네요. 자아가 확립된 그때부터 쭈욱 이전 세상 기억이 선명했으니까요.”
“오, 빙의 시기는 논외라 쳐도. 마지막 기억의 시기가 나랑 비슷해! 역시 시간이 뒤섞이거나 그러지는 않네.”
“음, 어떤 말인가요?”
“별것 아니고, 그냥 나이가 들 수록 마지막 기억이 과거 쪽이고 젊거나 빙의된 지 몇 년 안 지났으면 마지막 기억 년도가 과거보다는 미래쪽이지. 이게 기준점이 없다 보니까 미래니 과거니 하는데, 나잇대 비슷하면 대충 마지막 기억년도도 비슷하더라? 대충 플러스마이너스 5년 전후?”
“그거 혹시 마지막 기억을 기준으로 상하관계 정하려는 의도…?”
왜 마지막 기억의 시점을 묻는지 의문이 들어서 질문하였다.
내 말을 듣자 아니라는 듯이 손을 좌우로 흔들어댔다.
“아냐 아냐, 그냥 옛 이야기…. 공통적인 이야깃거리가 있나 없나 싶어서 물은 것뿐이야.”
“그런가요…”
그렇게 가게 안에는 침묵이 감돌지만, 이번에는 불편한 침묵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손님과 사장님처지에서 볼 법한 정도의 고요함이었다.
그런 고요함속에서 남은 보드카를 다 마신 현준 씨는 시계를 보더니 슬슬 일어서려고 하였다.
“이런 영업 시작 직전이네, 슬슬 갈게.”
“자, 잠깐! 그래서 결론이 뭐죠? 그보다 왜 처음에 압박 면접 비슷하게 대한 거죠?!”
아무 생각이 없다가, 수업을 마치자는 소리와 함께 질문거리가 생기는 학생처럼, 현준 씨가 가게를 나가려고 하니 의문점이 생겨서 질문하게 되었다.
현준 씨 또한 이제 그거 물어봐? 라는 표정을 짓더니 일어서려던 움직임을 멈추고는 질문을 경청하고는 대답해주었다.
“결론? 동향 사람끼리 가끔 얼굴 보고 지내자 정도? 뭐야 그 실망한 표정은? 가끔 있지 않아? 나 혼자 세상에 떨어진 느낌을 받으면 우울해지 거나 그러잖아?”
“그, 그렇죠…?”
“그런 이유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기 위해서 가끔 모이는데, 친목회야 친목회. 그러니까 사장님이 장소 제공좀 해주라. 대화 참가는 자유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장소가 절실하거든? 그리고 이거 내 명함과 연락처. 단체 예약은 가게전화로 하면 되는 거지?”
“장소랄게 있나요…? 집에서 모이는 것도 방법 아닐까요?”
“어허. 분위기지 분위기! 집에서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안 살잖아? 그렇다 해서 일반 바에서 하면 정신병자 모임 취급 당하잖아?”
“그러네요….”
확실히 대화에 있어서 분위기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어떤 장소에서 대화를 하냐에 따라서 대화 주제와 결과가 바뀌기 때문이다.
아마 전생자 모임이라고 하는 곳은 남들이 들으면 정신병자 취급당하는 것을 신경 쓰다 보니 좋은 가게를 다니지 못한 느낌이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이곳이다 정도일까?
“압박면접도 그거랑 비슷한 이유지. 정신병자 취급당할까 봐 밑밥 까는 것도 있지만…. 확신이 없기도 해서 그런 질문하는 거니까.”
“그래도 충분한 질문으로 해답을 찾았어도…. 압박을 주는 질문을 멈추지 않은 것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이게 좀 불만이었다.
이 세계라는 단어에서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자기 정체를 밝히고 대화를 했으면 내가 긴장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준 씨는 계속 질문을 하였고, 내가 긴장한 모습을 보고는 대폭소를 하였다.
내 질문에 현준 씨는 아 그거? 라는 표정과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하였다.
“나도 당했거든.”
“네?”
“나도 당해서 처음 해본 건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 사장님도 나중에 빙의자 발견하면 한번 해 봐. 재미있어!”
하아….
본인 나름 멋지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척하면서 들었는데…. 지금이라도 저 손가락을 잡고 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 일단 참아야겠지…? 아니 그냥 저질러?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현준 씨는 이미 가게 바깥을 나가기 직전이었다.
“자, 오늘 팀장님이랑 데이트 잘해 봐~. 간다.”
덕담을 말하면서 가게 바깥을 나가는 현준 씨를 보고는 카운터 안에 배치된 의자 위에 힘없이 앉았다.
그렇게 텅 비어있는 가게 안을 한번 둘러보고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래도 나 혼자는 아니구나….
그런 생각하고 있던 도중, 감정을 나타내는 보석은 청명한 하늘 빛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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